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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로 님의 서재입니다.

귀환한 고인물이 특전을 독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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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로
작품등록일 :
2024.08.17 00:12
최근연재일 :
2024.09.17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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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4.09.02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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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글자
20쪽

진짜 재능이란 (1)

DUMMY

 기초 훈련의 수료식.


 “왜 나까지, 정말···.”


 서태오 파티의 마법사, 최민서는 입이 댓 발이 튀어나온 채 툴툴거리고 있었다.


 “실전은 경험해 봐야만 한다. 우리는 아직 애송이니까.”


 “그걸 모르는 건 아냐.”


 여전히 불만 어린 표정이지만 고개를 끄덕인다.

 그들이 많은 훈련을 거쳐왔다고 해도, 몬스터다운 몬스터와 실전을 해본 적은 없었다.

 심화 훈련에서는 실제 몬스터를 토벌하러 간다고 하니 유익할 것이 분명하다.


 가끔 사망사고가 있다지만, 그건 쭉정이들이나 당할 일이고.


 “교관들이랑 대련해야 하잖아. 마법사는 일대일이 쥐약이란 말이야.”


 “그래도 단련까지는 열외되니 이해해라, 최민서.”


 서태오를 포함한 파티원은 체력 단련과 무기 훈련이 열외가 된다.

 성적 우수자와 수석이 포함된 파티는 특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


 물론 아직 발표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우수 자리를 받지 못할 거란 생각은 추호도 하고 있지 않았다.

 주변에서 그 잡담을 듣고 있던 다른 개척자들도 마찬가지였고.


 “우수자는 최민서, 윤태성, 주나영, 그리고 수석은 서태오. 이렇게 4인이다.”


 예상대로 발표가 진행되고, 주변에서 적당한 세기의 박수가 들려왔다.

 그냥 수료식 순서상 어쩔 수 없이 치는 가벼운 박수.

 서태오 또한 이 결과를 그리 뽐낼 마음은 없었다.


 ‘우리는 한발 앞서 출발한 사람이다.’


 훈련을 진행하며 눈대중으로 같은 기수의 개척자들을 확인했다.

 기껏 해봐야 레벨 2에서 3 정도의 초보자 개척자들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레벨 5까지는 경험치 요구량이 매우 적어, 신예의 둥지에서 3달간 성실히 훈련을 받는 것만으로도 레벨 5는 찍을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5레벨부터 시작된다.

 그때부터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경험치 양은 에테르 오브 없이는 상승이 불가능할 수준이었으니까.


 그런데도 지금 서태오의 레벨은 무려 11.

 기초 훈련의 우수자 선정은 2주간 얼마나 성장했는지가 아니라 누가 이 중에 가장 강하냐를 고르는 것이다.

 당연한 결과를 뽐내선 면이 살지 않는다.


 박수 소리가 잦아들자, 빅터 교관의 말이 이어졌다.


 “자, 그래서. 수석 발표에 이의가 있다면 지금 말하도록 해라.”


 “···이의제기?”

 “그런 게 있었나?”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것도 같지만, 어차피 누가 지금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겠나.

 파티원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주변이 갑자기 조용해지더니, 곧 주변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빅터 교관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끄덕이곤.


 “앞으로.”


 이어진 말에 누군가 산책하듯 편안히 걸어 나왔다.

 개척자들 중 거의 유일하게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다니고, 중세풍 가죽이 덧대진 활동복 상의를 입은 남자.

 날카로운 인상을 가졌지만 동시에 편한 분위기를 풍기는 자.


 ‘성도혁?’


 교관의 지시에 의해 앞으로 불려 나가면서도 서태오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누구인지는 당연히 알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등록소에서 커다란 라이트를 선보인 사건.

 마치 실수처럼 당황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그것 또한 자신의 가치를 올리기 위한 연기일게 뻔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들 파티 입장에서는 그 인물을 전혀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자신들의 파티에는 이미 규격 외의 마법사, 최민서가 있었다.


 짜증도 많고 신경질적이지만, 잔정도 많고 생명을 잘 죽이지 못하는 성격.

 개척자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성격임에도 이 파티에 들어올 수 있던 이유는 오로지 그녀가 가진 마법적 재능 때문이었다.


 아직 재능이 있는지 확실하지도 않은 마법사를 굳이 스카우트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 소문에 따르면 분명 그는 ‘마법사’였다.


 ‘제정신인가?’


 체력 훈련을 열심히 하던 것 정도는 기억난다.

 노력도 열심히 하고, 마법적 재능도 넘치면 훌륭한 개척자가 되겠다는 생각 정도에서 끝이었는데.


 어느새 빅터 교관이 서로에게 무기와 보호구를 가져다주었다.

 수석 수료생의 자격은 교관 입회하에 정당한 자격으로 얻어낼 수 있다느니 하는 말을 옆에서 해왔지만, 그다지 잘 집중할 수 없었다.

 보호구를 착용하면서도, 그 시선은 반대편에 고정되어 있었다.

 지금 맞은 편에서 성도혁이 몸을 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어처구니없었으니까.


 그는 숏소드 한 자루와 곧게 뻗은 단검 하나를 든 채, 이리저리 가볍게 흔들어보고 있었다.

 양손에 각각 무기를 쥐는 걸로도 모자라, 서로 다른 무게를 지닌 무기라니.

 겉멋만 든 초보자 따위가 할 실수 아닌가.


 ‘어디서 영화라도 보고 왔나 보군.’


 “이제 언제든 시작해라.”


 어느새 대련의 시작 소리가 들려왔고, 서태오는 손에 든 무기를 바라보았다.

 지금 쥐고 있는 이 연습용 바스타드 소드는 검신만 1.5m에 달하는, 훈련소 내에도 몇 없는 특제 사이즈를 가진 대검이었다.

 이걸 진심으로 휘두르면, 보호구를 착용했더라도 적은 상처론 끝나지 않을 터.


 서태오는 흘긋 빅터 교관을 바라보았다.


 그래, 분명 문제가 생긴다면 그가 나설 것이다.

 평소와 달리 이미 허리춤에 무기를 착용한 것도 분명 그런 이유에서겠지.


 천천히 터벅터벅 걸어오는 성도혁을 향해 그는 입을 열었다.


 “네게 재능이 넘치는 건 알겠다. 하지만 만용을 부릴 자리는 잘 찾아서 폈어야지.”


 양손으로 대검을 꽉 쥐고.


 “내가 들은 네 재능은 분명···.”


 파앗!

 쐐액!


 쾅!


 훈련으로 쌓아 올린 반사신경이 절로 팔을 휘둘렀다.

 섬전처럼 쏘아진 무언가를, 대검의 가드 부분으로 가까스로 쳐냈다.


 “이, 뭔.”


 묵직하진 않았으나, 터무니없는 속도였다.

 하마터면 그대로 공격을 허용할 뻔했다.


 한 수.

 단 한 수로 그는 무언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제서야.

 그는 온몸의 긴장감을 바싹 끌어올렸다.


 까딱까딱.


 맞은 편의 성도혁은 왼손에 쥔 단검을 자기 쪽으로 가져가며 흔들어댔다.

 명백한 도발이었다.


 까득.


 ‘이빨을 숨긴 맹수였나.’


 만용을 부리던 게 자신이라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참으로 수치스러운 일을 해버렸다.


 상대의 역량도 가늠하지 못하고, 그저 거리의 소문만을 들은 채로 상대에게 조언이랍시고 객기를 부리지 않았나.

 스승님이 보았다면 큰 호통을 치셨겠지.


 상대가 역량을 숨기고 있다는 걸 안 이상, 더 이상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자, 심장이 온몸에 혈액을 돌린다.

 양팔에 핏줄들이 솟아오르며 근육이 꿈틀거린다.


 ‘단검과 숏소드를 함께 다루는 기묘한 상대.’


 처음 상대해 보는 무기의 조합이었지만, 자신은 있었다.


 조금 전 나누었던 한 수는, 빠르긴 했으나 가벼웠으니까.


 하나만 명심하면 괜찮다.


 절대로.

 초근접전을 허용하지 말 것.


 적당한 간격을 유지한 채, 상대의 움직임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몇 합 나누다 보면, 조금 전의 스피드도 반드시 눈에 익는다.


 성도혁은 잠깐 고개를 갸웃하고는, 곧바로 몸을 숙이며 질주했다.


 슈욱!


 대검의 장점은, 사거리와 파워.

 상대의 돌진 궤적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검을 집어 들고.


 “흡!”


 좌상단으로부터, 상대를 찢어 발길 기세로 휘두른다!


 그런데.


 “!”


 카가각!


 그 짧은 순간.

 상대의 숏소드가 마치 독사처럼 검날을 타며 쏘아져 들어왔다.


 믿을 수 없는 수준의 기교.


 그러나, 이 정도면 공격을 멈출 이유가 없다.


 ‘그 정도는!’


 대검이 둔해 보인다고 해서 근접전의 대비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서태오는 힘의 배분을 다시잡고, 몸을 비틀어 동시에 보호구를 착용한 무릎을 온 힘을 담아 쳐올렸다.


 잘 단련된 신체는 그 자체가 무기.


 이윽고 그의 무릎은 몸을 앞으로 숙인 성도혁의 팔목을 향해.


 닿아야 했는데.


 툭.

 카앙!


 ‘어?’


 빠악!

 쾅!


 “―!”


 서태오의 턱과 가슴팍에 동시에 어마어마한 충격이 가해졌다.

 망치라도 얻어맞은 듯 거센 충격에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했고, 몸이 뒤로 휘청였다.


 “이, 개···.”


 턱.


 목젖을 건드리는 뭉툭한 감각.

 어느새 서태오의 목에는 숏소드가 들이밀어져 있었고, 그 칼의 주인은 정면조차 아닌 서태오의 등 뒤에 조용히 서 있었다.

 숨마저도 극히 평온했다.


 “···.”


 “흠. 패배를 인정하나?”


 어딘가 즐거워 보이는 듯한 빅터 교관의 목소리가 들린 순간, 치밀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한 서태오는 검을 뒤로 휘둘렀다.


 쾅!


 그의 마음과는 다르게 검은 허공을 갈랐고, 애꿎은 흙만 퍼내는 데에 그쳤다.


 분노로 인해 숨이 거칠게 쉬어졌지만, 머리만은 차갑게 유지한 채 조금 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복기했다.


 ‘이미 반 이상 내려간 대검과 무릎 사이, 그 틈으로 두 개의 공격이 모두 가해졌다.’


 뱀처럼 휘어지며 들어온 숏소드는 그에게 유효타를 먹이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큰 피해를 주진 않았다.


 문제는 단검.


 조금 전, 무릎을 차올리던 순간에 이미 그의 무릎 보호대 위에는 성도혁의 왼손이 닿아있었다.

 그 손에는 단검이 쥐어져 있었는데, 성도혁의 몸이 비상식적인 각도로 비틀리며 무릎의 궤도마저도 피해버렸다.


 동시에 온 힘을 다했던 무릎의 힘은 고스란히 단검의 것으로 변했고, 그대로 턱에 쾅.

 얼굴 전체를 감싸는 보호장구가 아니었다면 얼굴이 꿰뚫렸을지도 몰랐다.


 ‘그걸 한순간에 해냈다고?’


 적어도 그의 상식에서는, 인간의 반응 속도로는 결코 불가능했다.

 복싱 챔피언들의 경기를 슬로우 모션으로 천천히 돌리며, ‘이건 피하고 이건 쳤어야지’ 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내가 무릎을 올려 칠 거라고 예상하고, 그에 맞춰 움직였다.’


 적어도 그게 반응속도로 대응했다는 것보다는 현실성 있었다.

 서태오는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이런 복기가 얼마나 의미 없는가.

 이미 목에 칼이 들이밀어졌다.


 명실상부, 그는 패배했다.


 하지만 이렇게 끝내서는 안 됐다.


 툭. 투둑.


 그는 곧바로 입고 있던 보호장구를 모두 집어던졌다.


 “···이건, 페널티다.”


 검을 가지런히 아래로 쥔 채,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숙였다.

 얼마나 추한 행동을 하고 있는지는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한 번만 더 승부를 받아다오.”


 그는 다시 대련을 요청했다.


 서태오라는 인간은 이런 곳에서 패배해선 안 되니까.


 숙여진 고개를 바라보던 성도혁은 잠깐 그를 바라보더니 숏소드로 바닥을 툭툭 쳤다.

 서태오의 고개가 앞을 바라보자.


 까딱까딱.


 다시 와보라는 듯, 성도혁의 단검이 흔들렸다.



**



 서태오가 고개를 숙이고 다시 한번 대련을 요청할 때까지, 최민서의 벌려진 입은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아무리 한번 방심했다고 해도, 목에 칼이 들이밀어질 때까지 고작 2합.

 그 결과가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결국 대련은 다시 개시되는 듯했다.

 자존심마저 내려놓는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서태오가 질 것이라고는 여전히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리 상대가 상식 외의 움직임을 보여준다고 해도, 그가 진심을 보인 이상 이젠 끝이었다.

 오히려 진심을 끌어낸 것을 칭찬해야만 한다.


 ‘엄청난 움직임을 보였어도, 이젠 안돼.’


 갑옷을 벗어 던지고 호흡을 가다듬는 서태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고작해야 기초 훈련 과정에서 만난 개척자에게 이걸 미리 보여주게 될 줄은 몰랐다.


 태오 또한 마찬가지겠지.

 어차피 언젠간 알려지게 될 것이었지만, 적어도 신예의 둥지에서 밝히려고 하진 않았으니까.


 ‘2계층에 도달하게 되면 드라마틱하게 공개할 생각이었을 텐데.’


 눈을 감고 차분히 이어지는 호흡.

 서태오의 기세가 점차 변화하고 있었다.


 이 자리에 있을 모두가 착각하는 것이 하나 있다.


 서태오가 평소에 착용하고 다니는 거대한 갑옷과 대검.

 그야말로 ‘철의 길’을 상징하는 것과 같은 겉모습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눈에 마나를 휘감자, 서태오의 단전에서 시작된 기운이 혈도를 따라 흐르는 것이 보였다.

 지금 그의 몸에 흐르는 것은 ‘내공’.

 그가 ‘기의 길’을 걷는 자라는 것을 여실 없이 보여주고 있다.


 ‘모두 잘 봐두라고, 태오가 어떤 사람인지.’


 고작 3개월 만에 랭커가 하사한 초식을 완벽히 습득하고, 심법마저 4성의 경지에 올라섰다.

 개척자의 위에 군림할 재능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청풍심법을 통해 모은 내공이, 사람의 키만 한 대검조차 부드러운 바람처럼 움직이게 한다.

 푸른 바람처럼 움직이기 시작하던 대검은 이내 점차 속력을 늘려가며.

 이윽고 미쳐버리기 시작한다.


 광풍환류검법(狂風幻流劒法).


 보아라.

 미쳐버린 회오리와도 같은 기세 속에, 그렇게 날뛰던 성도혁조차도 초식에 닿지 않으려고 피하기에 급급하지 않은가.

 태연함을 가장하고 있는 얼굴도, 분명히 금방 무너질 것이다.


 ‘곧.’


 곧이었다.

 한대만 닿는다면, 전투는 그대로 끝난다.


 한대만.



**



 금속이 바람을 가르며 파르르 떨리는 듯한 소리.

 내지르는 동작과 회수하는 동작이 끊임없이 회전과 순환의 묘리를 따르며 나를 베려고 시도한다.


 그걸 바라보는 나의 감정은.


 환희로 가득 차 있었다.


 정말이구나.

 정말,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 됐음에도, 바뀐 것은 없구나.


 ‘알티, 이거 질풍파계검식 거환류 계통 맞지? 이거 언제 찍었더라?’


 [ 예, 맞습니다. 2년 차 정도에 올리셨던 영상에서 이런 컨셉의 검술을 사용하셨습니다. ]


 ‘이야. 이게, 정말로···. 그대로 있구나.’


 바깥에서 배우고 왔다곤 해도, 고작해야 레벨 10 전후밖에 되지 않을 것 같은 녀석이 파계검 류(流)의 초식을 사용하다니.


 이 얼마나 기특한가.


 너무 오랜만에 보는 궤적이라, 나도 모르게 더 보고 싶어 그저 회피만 거듭했다.

 자로 잰 듯한 높은 완성도에 박수라도 쳐주고 싶은 기분이다.


 검을 맞대기 시작하면, 그 사람의 성격이 꽤 많이 전해진다.

 그 법칙은 역시 이 세상이 현실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막 각성하여 힘에 취해있는 애송이인 줄 알았더니, 보기보다 강직하고 의지가 굳건하며 노력도 멈추지 않는 녀석이었다.


 태후라고 했나, 뭐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은데.

 하필 왜 서태후람.

청나라를 몰락시킬 것 같은 이름이지않나.


 아무튼.


 나는 크게 뒤로 뛰어 거리를 벌렸다.

 멈추지 않는 검의 연격이 다시 나를 덮치러 들어오기 전에.

 단검을 주머니에 대충 넣곤, 양손으로 숏소드를 강하게 잡았다.


 ‘보자. 이거 숏소드라서 잘 안되긴 할텐데.’


 스킬의 형태로 등록되지도 않았다.

 심법은커녕, 내공 능력치를 개화하지도 않았다.

 무기조차 대검이 아니다.

 심지어 능력치도 불충분하여 한 손으로 발휘할 초식도 억지로 두 손으로 만들어야 한다.


 뭐 어떤가.

 성공하면 성공하는 대로, 또 실패하면 실패하는 대로 재밌지 않나.


 내 몸이 기억하는 대로 보여주기만 하면 그만인데.


 [ 초식 가이드 복원본을 글로 띄울 수···. ]


 ‘필요 없어, 알티. 알잖아.’


 게임을 시작하고 알게 되었던 나의 재능.

 알티가 그토록 다른 게임을 해보자고 애원하게 만들었던 재능.


 반응 속도와 전투 센스가 뛰어난 게 전부가 아니다.


 나는 한 번이라도 제대로 익혔던 움직임이라면.

그게 스킬이라고 해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다.


 힘의 세기, 몸에 걸리는 압박,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 몸속 기운들의 흐름.

 그걸 따라가는 털끝 하나하나의 감각까지 모두 영원히 각인된다.


 잊지 않는다.

 스킬이 사라질지언정, 그 이름마저 잊을지언정.

 그 움직임만큼은 결코.


 절대 망각하지 않는 기억력을 가진 사람들을 보고 ‘완전기억능력’을 가졌다고 하던가.

 그것과는 조금 궤가 다르다.

 굳이 따지자면, 그래.


 ‘완전재현능력’이라고 해야겠지.

 누구에게도 들은 적 없는, 오직 나만이 가지고 있는 재능.


 “후우···.”


 이 세상은 이제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었기에, 어쩌면 스킬 또한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고맙다, 서태후.

 아무것도 변한 게 없음을.

 네가 증명해 주었다.


 발을 어깨너비로 벌리고, 오른발을 한 뺨 정도 앞으로 내밀어 중심을 낮춘다.

 양손을 모두 왼쪽 허리에 붙여, 검은 아래로 뻗어 그 끝을, 바닥을 향하게 한다.

 근육의 긴장을 바싹 당기고, 숨을 가다듬는다.


 내공이 없더라도, 심법이 없더라도.

그 호흡만큼은 완벽히 재현한다.


 폭풍이 몰아치기 직전의 고요함이 내게 깃든다.

존재하지 않을 허(虛)의 기운이 느껴지는 듯 하다.


 “자.”


 불완전한, 그저 겉만 흉내 낼 뿐인 초식이지만.

 받아봐라.


 질풍파계검식, 제 일초.

 파격(破擊).


 늘어뜨린 검이 한순간에 태풍의 눈 속으로 내질러졌다.

 몰아치던 광풍을, 한줄기의 질풍이 정확히 찔러 들어간다.


 카아아앙!


 패리가 성공했음을 상징하는 붉고 노란 불꽃이 튀기며, 끊임없이 이어질 것만 같던 초식이 멈춰 섰다.


 내공 하나 담기지 않은, 힘 능력치마저 저열할 것이 분명한 검이.

 내공과 힘이 가득 담긴 초식을 깨뜨려버리는 순간이었다.


 경악한 듯 커다랗게 떠진 눈과 입.

 그래, 알아볼 수밖에.

 순환의 묘리로 ‘억지로’ 이어 붙인, 너의 핵심 동작 중 하나 아니냐.


 네 기술에는 굳이 순환과 반복의 묘리가 필요하지 않다.

 누구에게 가르쳐 받았는지 몰라도, 어설프게 합일(合一)시키려 한 티가 역력하지 않은가.

 태풍? 용오름? 뭘 따라 하려고 한 진 얼추 짐작이 간다만.


 ‘그 해석은 완전히 틀려먹었다.’


 더욱 빠르게.

 거대한 검의 움직임을, 상대가 감지할 수조차 없게.


 몸은 정면에서 정직하게.

 허나 동시에 궤적은 사각에서 비열하게.


질주하는 바람처럼.


 제 이초.

 단쇄(斷碎).


 질풍이 바위를 마침내 끊어내는 것 마냥, 아래를 향하던 검이 위로 솟구치며 녀석의 손목을 강타했다.

 짧은 숏소드를 쥐고 있었음에도, 대검에 얻어맞은 듯한 반동이 전해졌겠지.

 그렇게 검을 놓친 녀석.


 경악하던 표정을 고쳐, 이를 악물며 놓친 검을 잡으려 하는 모습에서 그의 투지가 전해진다.

 하지만 그 눈은 내 검 끝이 아니라, 나의 동작을 바라보고 있었다.

 믿을 수 없다는 감정이 투지조차도 이기고 있다는 의미.


 네가 정말 재능이 있다면, 배워가는 것이 있겠지.


 제 삼초.

 격쇄(擊碎).


 폭풍의 눈을 찔러 들어가는 기세가 실린 검이, 그대로 녀석을 집어삼킨다.

 일 점에 모인 폭발적인 힘이 이마의 한중간을 강타했고.


 빠아아악!


 휘릭.


 바람개비처럼 회전하며 날아간 신형이 바닥에 거꾸로 처박혔다.


 쿵!


 모든 것이 한 호흡도 되지 않는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녀석은 의식을 잃고 공터의 한중간에 쓰러져있고, 나는 이 자리에 서 있었다.


 순간 긴 정적이 흐르고.


 “우, 우와아아!”

 “이런 미친, 진짜 저 서태오를···! 두번이나!”

 “뭐야, 저 사람 마법사라고 하지 않았어?”

 “검이, 막! 이렇게!”


 주변에서 박수와 환호성 소리가 터져 나오는 게 느껴졌지만, 난 부들거리는 손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거 인대까지 나갔겠는데.’


 팔목부터 손까지, 억지로 그 움직임을 체현(體現)하다 보니 근육이 또다시 미칠 듯이 비명을 질러댔던 것.

 최신형 소프트웨어를 오래된 고물 컴퓨터에서 켜버렸으니 당연히 과열될 수밖에 없지.

 따지고 보면 최신형 소프트도 아니긴 하다만, 아무튼.


 그렇게 고통을 참는 내게 누군가 다가왔다.


 “승부가 정해졌군.”


 빅터 교관이었다.

 그는 늘 보여줬던 무표정한 얼굴이 아니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불안했다.


 “자, 그래서.”

 “예, 이제 수석은 제 자리···.”


 그 예감이 현실이 되지 않도록 선수를 쳐보려 했지만.


 “혹시 수석이 되려면 나와도 대련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나?”


 빅터 교관은 대놓고 거짓부렁을 토해내곤 무기에 손을 얹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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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철과 기계의 섬 (3) NEW +1 11시간 전 256 23 18쪽
29 철과 기계의 섬 (2) +3 24.09.15 557 30 18쪽
28 철과 기계의 섬 (1) 24.09.14 685 31 18쪽
27 뜻 밖의 행운 (3) +2 24.09.13 796 33 18쪽
26 뜻 밖의 행운 (2) +4 24.09.12 926 36 18쪽
25 뜻 밖의 행운 (1) +2 24.09.11 978 38 18쪽
24 경계를 넘는 자 (4) +1 24.09.10 1,031 40 18쪽
23 경계를 넘는 자 (3) 24.09.09 1,045 36 20쪽
22 경계를 넘는 자 (2) 24.09.08 1,149 42 19쪽
21 경계를 넘는 자 (1) +1 24.09.07 1,224 44 19쪽
20 진짜 재능이란 (5) 24.09.06 1,256 43 18쪽
19 진짜 재능이란 (4) +2 24.09.05 1,277 42 19쪽
18 진짜 재능이란 (3) +1 24.09.04 1,286 43 20쪽
17 진짜 재능이란 (2) +2 24.09.03 1,287 44 20쪽
» 진짜 재능이란 (1) 24.09.02 1,319 45 20쪽
15 돌풍을 몰고 오는 (4) 24.08.31 1,306 41 18쪽
14 돌풍을 몰고 오는 (3) 24.08.30 1,333 40 18쪽
13 돌풍을 몰고 오는 (2) 24.08.29 1,432 39 18쪽
12 돌풍을 몰고 오는 (1) 24.08.28 1,508 39 19쪽
11 최초의 특전 (3) +1 24.08.27 1,578 44 20쪽
10 최초의 특전 (2) 24.08.26 1,643 43 20쪽
9 최초의 특전 (1) +1 24.08.25 1,689 42 16쪽
8 튜토리얼? 일단 버그부터 써보자고 (3) +2 24.08.24 1,684 45 18쪽
7 튜토리얼? 일단 버그부터 써보자고 (2) +3 24.08.23 1,719 44 18쪽
6 튜토리얼? 일단 버그부터 써보자고 (1) +1 24.08.22 1,809 43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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