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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로 님의 서재입니다.

귀환한 고인물이 특전을 독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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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로
작품등록일 :
2024.08.17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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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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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8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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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경계를 넘는 자 (2)

DUMMY



 연구소 바깥으로 나와 천천히 걸어간다.

 시술에 꽤 오랜 시간이 걸려서 그런지, 점심은 훨씬 지나버린 애매하게 늦은 오후 시각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치료는 거절당했다.


 -거기까지 약속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혹시나 내가 기분을 상하게 한 부분이 있었나 싶어 장난쳤던 것들을 사과했지만, 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그런 문제가 아니라고 하고는 치료법에 대해 알려주었다.


 ‘크리스탈라인 신경 재정렬’.


 본래는 치료법이 아니라, 네트워크식 그릇의 제어도를 더 높이기 위한 신체 개조의 일종이라고 한다.

 몸의 신경을 아예 새로 만드는 것이나 다름 없어 재탄생에 가깝다고.


 -일단, 여기서는 하고싶어도 못해. 핵심 설비가 하나도 없고, 재료를 구할 수도 없어.


 무엇보다도. 라며 냉정하게 말을 이어갔다.


 -설비가 있었다고 해도 내가 그냥 해 줄 이유는 없지. 그릇과 연공법. 그 이외의 것은 조건이 없었으니까.


 [ 호구 하나 제대로 잡은 줄 알았더니, 그녀도 고위 마법사다운 면이 있군요. ]


 “따지고 보면 이미 과분하게 받았지.”


 알티의 말마따나 그녀가 이것저것 다 퍼주리라 여기고 있었지만, 사실 그것들은 단순히 호의로 제공한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엘레이나는 내가 어떻게 중간 절차 없이 마법을 꺼낼 수 있는지 연구하고 싶어했다.

 그렇기에 먼저 뇌를 살펴보았고, 그게 실패하자 마법을 전수해 직접 그 과정을 보려했다.

 그릇을 만들어주려 한 것도 같은 이유다.

 본인과 같은 계통의 그릇을 만든다면 그 발현 과정을 더 자세하게 관찰할 수 있을테니까.


 과정이야 어찌 됐든 같은 계통의 그릇은 깃들었다.

 그걸 통해 마법을 발현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그러니 약속에 없던 치료까지 해줄 이유는 없던 것이다.


 [ 포기하실 계획입니까? ]


 얘가 무슨 소리람.


 “아니. 엘레이나 씨가 분명히 말했잖아. ‘그냥 해줄 이유는 없다’라고.”


 대가.

 그녀가 충분히 만족할만한 대가를 지불한다면, 얼마든지 내 신경을 치유해줄 수 있다는 말이다.


 포기할 이유따윈 전혀 없다.

 아니, 오히려.


 '줄 대가는 넘치지.'


 그녀는 마법사다.


 마법사가 환장할 법한 대가.

 그것은 당연히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지식과 정보 아니겠는가.


 아는 것은 힘이고, 난 많은 걸 알고있다.


 잊혀진 고대 마법이 있는 유적.

 마법의 신들이 세상에 남긴 유물.


 과거 내가 얻어냈던 마법 유물들은 정말 셀 수 없을만큼 많다.

 그 정보를 이용한다면 대가로 쓰기엔 충분하고도 남을 터.


 “고대 마법이나 마법 공학에 대한 보상을 얻었던 섬들. 그 중에서도 200레벨이 넘고 내가 좌표를 언급했던 섬들만 전부 정리해줘.”


 [ 1분 안에 정리하겠습니다. ]


 “천천히 해. 당장 거래할 건 아니니까.”


 아무래도 내가 게임 중독자이기 때문일까.

 한참 뒤 먼 미래에나 얻을 수 있는 것들임에도 너무 좋은 것들은 넘겨주기 싫었다.

 아직 그녀의 수준을 정확히 짐작할 수 없는 만큼 얼마나 많은 정보를 줘야할지도 모르고.


 적당한 걸 찾아봐야지.


 어차피 능력치가 하락해 있는 것이 단련에도 유리하고, 또 에테리움 서지를 마스터해야 다음 연공법으로 넘어갈 수 있으니 급할 필욘 없었다.


 거래를 하는 것은 이 섬을 떠나기 직전.


 그때로 하자.


 연구소를 떠나는 발걸음은 무척 가벼웠다.



**



 그렇게 연구실을 나온 뒤 발걸음을 옮긴 곳은 단련장···이 아니라.

 ‘성광(聖光)의 제단’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그 이름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이곳은 신성력에 대한 재능을 검사하고 교육받는 곳이다.

 마법 같은 경우 각성과 동시에 마력 수치로 적성이 있는가를 알 수 있지만, 신성력이나 정령술 같은 경우 반드시 직접 적성 검사를 받아봐야만 했다.


 며칠 전에 정령술은 테스트해 보았지만, 결과는 적성 제로.

 이번에는 신성력에 대한 자질이 있는지 확인해 보려고 이곳에 들렀던 것인데. 


 “형제님에겐 안타깝게도 적성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신성력 또한 아무런 재능이 없다는 결과를 통보받았다.

 혹여나 하는 생각으로 신경계 치료에 대한 이야기도 꺼내보았지만, 이곳의 대사제 또한 치료는 불가능하다고.


 차라리 속이 후련했다.

 정령술이나 신성력은 자질이 없더라도 후일 얻어낼 방법은 여럿 있으니, 그리 아쉽지도 않았고.


 저녁을 먹기엔 좀 이르고, 그렇다고 몸을 움직이기에는 곧 배가 고플 것 같은 애매한 시간이었다.


 “음, 제작직 기초나 겉핥기로 배우러 갈까?”


 [ 그냥 일찍 밥을 먹으러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


 그렇게 개척자용 검사실을 빠져나와 주민들이 기도하고 있는 넓은 예배당까지 지나치던 순간, 누군가 내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오, 혁씨 아녀!”


 이렇게 반갑게 인사할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어라, 사수 씨.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


 “으허허, 테스트받으러 왔지유, 뭘.”


 환하게 웃으며 말하는 이사수.

 시기상 기초 훈련도 끝났을 테니 여기 있는 것도 이상할 건 없지.


 “그럼 혹시, 신성력이···?”


 “꽝입디다. 동료들이 한번 검사나 받아보라고 해대서 와보긴 했는디, 평생 뭘 믿어본 적이 없으니 신성력 같은 건 없을 께 뻔하지유”


 “신성력의 자질은 신앙심하고 크게 관련이 없긴 합니다만.”


 “으잉? 그래유? 쓰읍. 핑곗거리 하나 사라졌네. 뭐라고 말한담.”


 그는 볼을 긁적이며 밝게 웃었다.


 “그래도 그 대신 약초학이랑 응급 처치 같은 걸 배우고 있슈. 전위 역할에 치료도 할 줄 알면 파티에 방햇거리는 안 될테니까.”


 “정말 살아남는 거에 집중하고 계시네요.”


 탱커 역할에 파티의 치료사까지 맡겠다는 그의 말은, 처음 만났을 때 했던 말처럼 어떻게든 이 세계에서 살아남고야 말겠다는 강한 집념이 느껴진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던 중, 그의 옆에 있던 사람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사수 씨, 옆에 계신 분은···?”


 “아참, 소개할게유. 이분은 이 도시에 사는 마일스 경비병님이유. 오며 가며 인사하다 친해졌지유. 오늘은 여기서 우연히 만나서 떠들고 있었구.”


 마일스는 헬멧을 벗어두고 있었지만, 도시 특유의 경비대 정복을 입고 있어 경비병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안녕하심까. 마일스라고 불러주십쇼.”


 둥글둥글한 얼굴에 순해 보이는 눈을 가진 마일스는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나도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는 꽤 헐렁한 옷차림에 통통한 체구로, 굉장히 나른해 보이는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었다.


 그나저나 사수 씨는 경비병과도 금방 친해지고, 참 붙임성 좋은 사람이기도 하네.


 [ 처음에 도시 입구에서 저희를 맞이했던 그 경비병입니다. ]


 ‘아.’


 이 도시에 처음 들어올 때 하품하며 안내하던 그 경비병이었구나.

 어렴풋하지만 살짝 기억이 난다.

 그런데 정복까지 입고 여기 있는 거면, 단순히 쉬러 온 건 아닌 것 같은데.


 “마일스 씨, 혹시 지금 근무 시간 아니십니까?”


 “아~···. 맞슴다. 지금 사실 여기도 조사를 위해서 온검다.”


 “조사요?”

 “으잉? 조사?”


 사수씨도 몰랐다는 눈치.

 일하는 사람 붙잡아놓고 떠들고 있었던 걸까.


 “음. 은폐 지시는 없었으니 말해도 괜찮을 거 같슴다. 요즘 도시 외곽의 민가에서 절도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슴다. 아무래도 도시 주민들의 짓은 아닌 것 같아서, 개척자분들이 많이 모이는 곳 위주로 조사하고 있었슴다.”


 “나, 난 아녀!”


 “당연함다. 이틀 전에 저랑 둘이 밤새 술 마시지 않으셨슴까. 그날에도 절도 사건이 있었슴다.”


 둘이 밤새도록 마셨다니, 얼마나 친해진거람.

 설마 그때도 야간 경비를 농땡이 치고 마신건 아니겠지.


 한가지 좀 궁금한 게 있어서 입을 열었다.


 “개척자들이 범인이라고 확신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아티팩트의 파장 흔적이 남아 있슴다. 의식을 잃게 하는 부류의 아티팩트임다. 도시의 아티팩트는 다 관리 중이니, 외부에서 들여온 물건인 게 확실함다.”


 “의식을 잃게 한다···. 그럼, 범인의 의상 착의도 모르겠군요.”


 “그렇슴다.”


 이 정도의 이야기라면 혹시.


 ‘알티, 혹시 퀘스트 떴어?’


 NPC···가 아니라, 섬의 원주민이 이런 식으로 상세하게 말을 꺼내 올 경우 퀘스트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 시스템 상에서 확인되는 알림은 없습니다. ]


 아쉽게도 퀘스트가 발생하진 않았다.

 아마 도시에서 외부 협력이 필요하진 않다고 판단한 것이겠지.


 그 뒤에도 짧게 이야기를 더 나눠볼까 싶었는데, 마일스 씨의 동료 경비병분들이 오셔서는 그를 황급히 데려갔다.

 보아하니 농땡이 핀 것이 상사에게 들킨 모양이었다.


 뭐, 퀘스트로 발전한 게 아닌 이상 내가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시간은 이미 저녁 시간이었고, 이사수 씨에게 저녁을 같이 먹자고 제안했다.


 그는 역시나 그답게 제안을 거절하진 않았지만, 식사하는 내내 무언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는 듯했다.



**



 시간은 또 금방 흘러, 이 섬에 도착한지도 벌써 한달하고도 반이 지났다.

 여전히 마법 훈련과 신체 단련을 병행하며 기반을 다지는 생활을 계속했다.

 한가지 특이 사항이 있다면, 훈련 도중 단련의 소산 특성이 한 번에 두 단계나 진화해서 D등급이 되었다는 것.


 [ 변경점 ]

 [ 근력 +5 내구 +5 민첩 +5 ]

 [ 신체(근력, 내구, 민첩)의 단련 효율이 30% 증가합니다. ]

 [ 훈련으로 인한 체력 소모가 매우 빠르게 회복됩니다. ]


 [ 추가 효과 발생 ]

 [ 모든 연공법의 효율이 10% 증가합니다. ]


 "크으."


 성장형 특성의 진가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사용자의 상황에 따라 새로운 효과들이 추가될 수 있다는 것.


 ‘발칸델 큐브의 효과에 곱연산으로 적용되니까, 이제 실제 상한치 성장 속도가 200%에 가까워졌어.’


 [ 떠나실 겁니까? ]


 ‘그래야지. 특성도 진화했으니까.’


 최대 3달을 머물 수 있다곤 해도, 목표치를 달성한 이상 남아있을 이유는 없다.

 당장은 마법 이외에 다른 자질이 없기도 하니.


 [ 단련장이 조금 아깝겠습니다. ]


 ‘거기에 매몰되면 안돼.’


 진짜 성장을 위해서는 경험치가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선 섬을 등반해야만 한다.


 ‘일단 최종 시험은 내일 바로 봐두자.’


 기초 훈련을 이수했고 쌓여있는 빚이 100 크레딧 이하라면 누구나 최종 시험을 신청할 수 있다.

 그 내용은 간단하다.

 도시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유적이 있고, 내부에서 증표를 들고 나오기만 하면 된다.


 각종 함정과 몬스터가 존재한다는 흔해빠진 시험용 유적이다.

 그래봐야 헤메이는 숲을 조금 더 좁고 위험하게 만든 것에 가깝다.

 누군가는 목숨을 잃기도 하겠지만 나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


 비록 가본 적은 없어도 튜토리얼 섬이라는 특성상 유적의 구조는 뻔할 것이다.

 이미 내 능력은 평범한 초보 개척자의 수준을 한참 넘어섰다.

 고난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쉽겠지.


 똑똑.


 “어, 왜 그러냐?”


 룸메이트 황지호가 샤워실의 문을 두드렸다.

 무슨 일이지?


 “저기, 형. 손님이 오셨는데요.”


 “아무도 안 받는다고 했잖아.”


 “네, 근데 이번에는 좀···.”


 우물쭈물하는 걸 보아하니, 무엇인가 특별한 상황인 것 같았다.

 대충 몸을 닦고 나가서 문을 열었다.


 “···.”


 “···?”


 의외의 인물들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서태후?”


 “서태오다.”


 서태후가 아니었구나.

 그들은 지금 이 섬에서 가장 유명한 파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호가 거절하지 못할만도 했다.


 본래 6명이라고 알고 있는데 보이는 것은 4명.

 다 함께 온 것은 아닌 것 같다.


 “무슨 용무지?”


 “제안을 하러 왔다.”



**



 서태오 파티의 전속 마법사, 최민서는 지금의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집 안에 있을 사내가 규격 외의 힘과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쯤은 이전 대련에서 확인했다.

 하지만 그날 밤, 최민서는 B등급 아티팩트 ‘맹금의 눈’을 통해 그의 정보창을 확인했다.


 ‘레벨이 무려 18이었어.’


 다만 ‘맹금의 눈’이 확인할 수 있는 정보는 레벨과 능력치, 그리고 특성의 개수가 끝.

 그게 무슨 특성인지 까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게 평범한 특성일 리는 없었다.


 ‘분명 엄청난 특성이겠지. A등급이나, 어쩌면 세계에도 몇 없다는 S등급 일수도.’


 그게 아니라면 고작 하나의 특성으로 서태오를 그렇게 밀어붙일 리가 없으니까.

 레벨빨, 그리고 특성빨.

 그날 보였던 대련은 분명 그 두가지 덕분에 일어난 일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파티의 리더 서태오는 그날 이후, 무엇에 홀린 것 마냥 수련과 명상을 반복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오늘 폭탄선언을 내뱉었다.

 성도혁을 이 파티에 영입해보고자 한다고.


 파티에는 균형이 중요하다.

 현재 파티의 멤버는 성직자 하나, 마법사 하나, 전위 셋, 궁수 겸 트랩퍼 하나.

 이미 전위는 차고도 넘친다.


 하지만 서태오는 한번 결정한 일을 쉽게 꺾지 않는 성격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영입을 말릴 순 없어도 자존심 정도는 꺾어두고 싶다.’


 파티의 평화와 조화를 위해 그의 기세를 꺾어두어야겠지.

 일이 틀어져 파티에 들어오지 않으려 하면 그것대로 좋고.


 한때 둥지에선 성도혁이 마법사라는 소문이 퍼졌었다.

 하지만 그건 헛소문에 불과하다.

 마력 재능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겠지만, 적어도 그는 제대로 마법 교육을 받지 못했을게 뻔했다.


 그는 한달이 넘는 기간 동안 마법 교육소에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니까.

 그녀는 하루도 빠짐없이 출석했기에 그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아직 성도혁은 나오지 않았다.


 우웅―


 그녀에겐 지금 몰래 캐스팅한 두 개의 마법이 홀드 되어 있었다.


 하나는 발과 다리를 묶는 그림자의 마법, 섀도 그랩.

 그게 발동하는 것과 동시에 패럴라이즈드 썬더가 솟아오르리라.

 둘 모두 무려 3등급의 제어 마법이었다.


 ‘4등급까지 쓸 일은 아냐. 아직 불완전하기도 하고, 태오가 눈치채기도 하겠지.’


 그녀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성도혁의 기를 꺾어두는 것이었으니까.


 메모라이즈를 통해 어딘가에 저장해두지고 않고, 두 개의 마법을 동시에 캐스팅하고 ‘홀드’시켜두는 능력.

 그리고 4등급 마법을 쓸 수 있기까지.

 10레벨을 조금 넘어가는 마법사가 보일 만한 능력이 아니다.


 서태오와 비교해도 결코 밀리지 않는 재능.

 오히려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누군가는 더 높게 평가할지도 모른다.


 곧이어 문이 열렸다.


 “무슨 일이지?”


 “제안을 하러 왔다.”


 성도혁은 막 씻고 나온 듯 머리가 젖어있다.

 오히려 좋았다.

 패럴라이즈드 썬더의 효과가 좀 커질 테니까.


 ‘지금.’


 홀드 시켜두었던 섀도 그랩을 발동시켰다.

 칼로도 베어낼 수 없는 그림자의 손이 성도혁의 발목을···.


 발목을 묶어야 할 텐데.


 ‘이게, 무슨.’


 분명 마법은 쏘아졌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마법을 실패했다고?’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분명, 그에게 무언가 마법을 중화하는 아티팩트라도 있는 것이 분명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분명 기묘한 간섭 같은 것이 느껴졌다.


 아티팩트라면, 그 효과가 연속해서 발휘될 가능성은 낮다.


 “파티? 흠. 안 그래도 파티를 구하고 있긴 한데.”


 서태오의 제안에 귀찮다는 듯한 반응을 보이는 성도혁.

 저 콧대를 어떻게든 누르고 싶었다.


 ‘홀드 아웃.’


 묶여있던 ‘패럴라이즈드 썬더’가, 고삐가 풀리며 성도혁을 향해 질주한다!


 그 순간.


 오싹―


 몸 전체에 불안한 전율이 몰려왔다.

 마력이, 제어를 잃고 있다.

 변질되어간다.

 본인의 의지와는 달리 뱀이 몸을 휘감는 것 마냥 기묘한 감각이 전신을 훑는다.


 쏴아―


 자식같던 마력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순식간에 그녀를 배신하고 맹수가 되어 달려들기 시작한다.


 ‘이게 무슨!’


 마력이 역류한다.

 그릇이 폭주한다.


 파지지지직!


 “끄, 꺄아아아악!”


 마치 수류탄처럼 폭발하는 마력들이 단전에서 솟구쳐올라 전신을 뒤흔들었다.

 신경을 베어내는 듯한 충격이 뇌를 강타했다.

 눈 앞이 일순간에 하얗게 번져나가며, 최민서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최, 최민서!”


 당황한 서태오가 다급히 뒤를 돌아보고, 성도혁의 나른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요즘은 등 뒤에 칼을 숨겨놓고 파티 제안을 하기라도 하나? 3등급 마비 마법을 날릴 줄은 몰랐어.”


 “3등급, 마법이라고? 그게 무슨···.”


 최민서의 신형이 아래로 쓰러지자, 같이 찾아왔던 파티의 성직자 윤태성이 급히 그녀를 받아낸다.

 윤태성은 입술을 꽉 깨문 채 입을 다물고 있었다.

 마력 감지에 최민서 다음으로 재능이 넘치던 그가 반박하지 않는 것이, 곧 성도혁의 말이 사실임을 오히려 증명하고 있었다.


 [ 역산 완료. ]

 [ 전투는 이런 기분이군요. 나쁘지 않습니다. ]


 성도혁은 만족스럽게 웃고 있었다.

 실전 아닌 실전이었지만, 알티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전투였다.

 마법을 감지한 순간 단숨에 역산하여 마력을 통째로 해체해버렸던 것.


 한번 더 마법이 이어지자 알티는 대응 단계를 높이겠다고 알려왔다.

 마력을 역순으로 풀어내고, 제어를 잃은 마력에 무작위의 명령을 수도 없이 집어넣은 것.

 폭주하는 마력은 술자를 향하고, 그 결과 그릇 속 마력까지 연쇄 폭주가 벌어졌다.


 인간의 궤를 벗어난 연산 능력이 있기에 가능했던 일.


 ‘3등급 마법을 쓸 줄 알면 뭐하나. 아직 마력을 지배하는 법도 모르면서.’


 가볍게 코웃음 친 성도혁은 최민서의 마력 상태를 점검해주라고 지시했다.

 그릇의 폭주가 이어지면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으니, 그 정도는 진정시켜주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 현재 그녀의 마력 흐름은 안정 상태입니다. ]


 그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쓰러지는 몇초 사이에 폭주하는 마력을 다 진정시켰어?’


 전신이 마력에 감전되면서도, 의식을 잃기 전까지 고작 5초 정도 사이에 역류하던 마력들을 제어해 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실로 어마어마한 재능이 아닌가.


 팔짱을 끼고 잠시 고민하던 성도혁은 이내 상쾌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 진짜 재능 하난 인정해줘야겠다. 놀라울 정도야.”


 “···.”


 서태오는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최민서가 공격을 시도하려던 걸 미리 파악하지 못한 자신에게도 잘못이 있다.

 그러나 더더욱 믿을 수 없던 것은, 그녀의 마법은 발동되기도 전에 성도혁에게 파훼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막 씻고나와 가벼운 옷차림을 한 그에게 아티팩트가 있어보이지도 않았다.


 최민서의 마법조차 성도혁에게는 닿지 않는다.

 격이 다른 것은 검술 뿐만이 아니었다는 말인가.

 도대체 어디서 이런 인간이.


 그러던 와중 성도혁의 말이 이어졌다.


 “그 정도면 내 짐꾼 자격은 충분하겠는데.”


 생각치도 못한 말에 서태오는 얼이 빠진 표정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작가의말

연잎새 님 후원 감사합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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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진짜 재능이란 (1) 24.09.02 1,319 45 20쪽
15 돌풍을 몰고 오는 (4) 24.08.31 1,306 41 18쪽
14 돌풍을 몰고 오는 (3) 24.08.30 1,333 40 18쪽
13 돌풍을 몰고 오는 (2) 24.08.29 1,432 39 18쪽
12 돌풍을 몰고 오는 (1) 24.08.28 1,508 39 19쪽
11 최초의 특전 (3) +1 24.08.27 1,578 44 20쪽
10 최초의 특전 (2) 24.08.26 1,643 43 20쪽
9 최초의 특전 (1) +1 24.08.25 1,690 42 16쪽
8 튜토리얼? 일단 버그부터 써보자고 (3) +2 24.08.24 1,684 45 18쪽
7 튜토리얼? 일단 버그부터 써보자고 (2) +3 24.08.23 1,719 44 18쪽
6 튜토리얼? 일단 버그부터 써보자고 (1) +1 24.08.22 1,809 43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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