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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로 님의 서재입니다.

귀환한 고인물이 특전을 독식함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새글

딜로
작품등록일 :
2024.08.17 00:12
최근연재일 :
2024.09.17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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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4.08.26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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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글자
20쪽

최초의 특전 (2)

DUMMY

가방에 무언가 툭 하고 떨어지는 감각을 느낀 나는 곧바로 열쇠를 꺼내보았다.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크기의, 한쪽에만 천사 날개가 붙은 디자인의 금빛 열쇠.


 그리고 나는 주저 없이 방의 구석을 향해 열쇠를 던져버렸다.


 휙. 툭.


 허공을 가르던 열쇠는 벽에 닿기도 전에 시야에서 뿅 하고 사라진 뒤, 가방 안으로 돌아왔다.

 게임이던 시절과 다르게 지금 이 세계에는 인벤토리가 존재하지 않길래, 귀속 방식이 어떻게 적용이 되나 했더니 그냥 이렇게 돌아오는 것 같았다.


 “이러면 잃어버릴 일은 없겠네.”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고는 열쇠를 손에 잡고 허공에 내밀었다.

 사용 방법이 다를 일은 없겠지.


 쿠궁!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소리가 나더니, 이내 반투명한 형상이 눈앞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새하얀 문.

 그 문은 곧 주인을 맞이하듯 저절로 열렸고, 나는 빛이 나는 곳 너머로 걸어갔다.


 “이야.”


 넓게 펼쳐진 들판, 시야 멀리 거대한 나무 한그루가 나를 반겼다.

 고개를 어디로 돌려도 섬의 경계가 눈에 들어올 정도로 아담한 사이즈의 하늘섬이었다.

 작다고는 해도 소규모 도시 하나 정도는 세울 수 있을 정도의 넓이.


 그리고 눈앞에는 튼튼하게 세워진 듯한 통나무집 한 채가 있었다.

 이곳이 바로 수집 시스템의 특전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기능인 ‘하우징’ 이었다.


 슬슬 무거워지기 시작한 몸을 이끌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텅 비었네. 원래 이렇게 시작했었지.’


 내부는 새로 지은 것 처럼 깨끗하긴 했지만, 깨끗해도 너무 깨끗하다고 해야 할까.


 가구 하나 없이 창문과 벽, 나무를 깎아 만든 바닥, 그리고 모닥불을 피울 수 있는 중앙 공간.

 마지막으로 구석에 보이는, 지하실로 향하는 바닥 문이 끝이었다.


 이렇게 휑한 모습은 아주 오랜만이었다.

 수집과 하우징 시스템은 새 캐릭터를 만들어도 진행 상태가 공유되기 때문에, 이런 초기의 모습은 보고 싶어도 다시 볼 수 없었으니까.


 물론 다행스럽게도 이 공간을 나 혼자서 바꿔나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모닥불 바로 옆에는 사람의 키 정도 높이까지 올라오는 금빛 벨이 달린 장식대가 있었다.


 ‘이걸 치면.’


 하우징에는 반드시 한 명의 관리자가 있고, 그 관리자를 호출하는 게 바로 이것이다.


 딸랑.


 벨을 울리자 눈앞에 푸른 포탈이 생겨났고, 곧 그 안에서 사람의 다리 같은 것이 천천히 튀어나왔다.


 터벅터벅.


 한 손에는 꽤 길쭉한 곡괭이 겸 망치를 들고 어깨에 기댔고, 안전모를 쓰고 흰 러닝셔츠를 입은 모습.

 짧게 솟은 밝은 갈색의 털, 언뜻 보면 두더지처럼 보이는 길쭉한 코와 귀.

 나보다 머리 두 개···가 아니라 하나 정도 작은 키.

 거기에 털 너머로도 탄탄하게 부풀어 오른 근육이 보였다.

 장갑을 끼고 있지만, 그 위로 강철같은 단단함을 가진 길쭉한 손톱이 튀어나와 있다.


 당연히, 저 모습은 사람이 아니다.

 하우징 관리인은 두더지의 모습과 닮은 수인인 ‘몰다린’ 족이 맡는다.


 여기까지는 내가 알고 있던 사실이다.

 하지만, 무언가 조금 이상했다.


 ‘왜 키가 내가 알던 것보다 크지? 거기에 근육까지···.’


 포탈 안에서 걸어 나오는 몰다린 족의 덩치가 생각보다 훨씬 더 컸던 것.


 이윽고 완전히 포탈에서 빠져나온 그의 얼굴은 사람처럼 덥수룩한 회색 수염이 길게 나 있었고, 입에 시가 담배처럼 생긴 무언가를 문 채로 자신의 옷을 바라보고 있었다.


 “흠, 옷은 이런 식으로 저절로 변하는군.”


 그리고 그는 나를 바라보았고, 그 순간 내 눈은 크게 떠지고 말았다.


 “뭐냐, 이런 애송이가 계약···.”


 “모르반 반장님!”


 반가움을 도저히 참지 못하고,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외쳐버리고 말았다.

 포탈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과거 내가 레닉수스에서 만났던 소중한 인연이자, 몰다린 종족을 오랫동안 다스리고 있는 최고 지도자.


 몰다린 대족장, 모르반 반장님이었으니까.



**



 양반다리를 하고 자리에 앉은 모르반 반장님은 머리를 벅벅 긁어대곤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뭐시냐, 정보창에 내 이름이 보였고, 다른 종족을 보는 건 처음이라 신기해서 외쳤다는 거냐?”


 “예. 저희 개척자들에겐 상대방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도 있거든요.”


 “그래? 허.”


 열심히 변명을 이어간다.


 당연하게도 그는 나를 알리가 없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처음 만난 인간이 뜬금없이 이름을 알고 있으니 크게 당황할 수 밖에 없다.


 상황만 보면 나를 경계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이 공간에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하우징’은 시스템의 보호를 받고 있어, 합의된 대련 같은 것이 아닌 이상 서로에게 피해를 입히지 못하니까.

 관리인으로 소환된 그 또한 당연히 알고 있을 사실.


 그리고 애초에, 내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자신에게 피해를 주지 못할 만큼 약하다는 것도 바로 느꼈을 거다.


 그의 팔에는 손목부터 어깨까지 감싸는 문양이 노란빛을 발하고 있다.

 저게 어떤 전투력을 가졌는지는 이전에 숱하게 겪어보았다.

 몰다린 대족장의 자리는 세습으로 이어지긴 하지만, 족장들이나 대전사들의 도전을 받으면 거절할 수 없고 패배할 경우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대족장은 곧 종족 최강자를 의미한다는 것.

 나와 반장님 사이에는 적어도 인간과 개미, 그 이상의 격차가 존재했다.


 반장님은 길게 담배를 피우더니 생각을 정리한 듯 말을 이었다.


 “그럼, 그 반장님이라는 호칭은 뭐냐? 내 코에 수염이 난 이후로 반장이라는 직함은 한 번도 단 적이 없었는데.”


 반장님이라는 호칭은, 지금 이 세상이 아니라 옛날에 있었던 어떤 사건 때문에 내 입에 붙은 호칭이었다.

 그곳에서 그와 나는 꽤 각별한 친분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한참 메인 캐릭터로 레닉수스를 플레이하던 시절, 여러 섬이 한번에 추락할지도 모르는 큰 레이드 이벤트가 있었다.

 참가한 플레이어는 나를 포함해 고작 5명.

 우리끼리 섬을 지키는게 불가능해 NPC들을 포섭해야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내게 힘을 빌려준 것이 모르반 반장님이었다.


 당연히 이것도 나만 알고 있는 기억.

 지금은 둘러대는 수밖에 없었다.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정보창에 떠올랐던 이름을 그대로 읽은 것뿐이라서요.”


 “그 정보창이라는 거에 정확히 뭐라고 적혀있지?”


 “모르반 반장, 괄호 치고 대족장이라고 적혀있습니다.”


 “정말로 그게 단가?”


 “예.”


 의심의 눈초리가 나를 향했지만, 나는 옅은 미소와 함께 믿어달라는 눈으로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이내 그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거짓말은 하고 있지만 악의는 전혀 없는 놈이군.”


 “감사합니다, 반장님.”


 “허, 참. 애송이 녀석이 능글맞기까지.”


 날이 조금 실려있는 말인데도, 웃으며 답하는 모습에 혀를 차는 모르반 반장님.

 그 표정은 전혀 화나지 않고 오히려 만족스럽다는 듯한 느낌이었다.


 ‘반장님이 흔히 쓰는 떠보기 수법.’


 그는 사실 거짓말을 구별해내는 능력은 없다.

 대신 자신을 향해 아주 조금이라도 악의나 경계심, 살기 같은걸 품는다면, 그 종류까지 감지해낼 수 있었다.

 그의 팔에는 자연을 상징하는 수려한 문양이 빛을 발하고 있는데, 그 문양이 가진 다양한 권능들 중 하나였다.

 그 떠보기 수법에 당황했던 시절도 한땐 있었지만, 내게는 이게 두 번째 첫 만남이니 당황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저 능력 덕분에 더 빨리 친해지지 않겠나.

 약해빠진 주제에 악의, 경계심, 살기, 그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는 신기한 인간이라니.


 “혹시 저도 하나 물어봐도 괜찮겠습니까?”


 “쓸데없는 질문은 하지 말게.”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함부로 입을 열지 말라는 경고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저것도 허락의 표현이었다.

 말을 잘 가려서 하기만 하면 괜찮다는 의미다.


 “정보창에는 대족장님이라고 뜨는데, 대족장님께서 모든 개척자의 하우징을 담당하는 겁니까?”


 “흐하, 그럴 리가 있나. 내가 그리 한가한 사람처럼 보이는가?”


 “아뇨.”


 당연히 그럴 리가 없다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다.


 이 질문의 진의는 왜 평범한 몰다린 기술자가 아니라 반장님이, 한 종족의 대족장께서 이곳에 왔냐는 걸 묻기 위함이었다.


 “···기록도 안 남은 먼 옛날부터 우리 종족에 전해 내려오는 계약이 있었다.”


 모르반 반장님은 담배를 한번 길게 빨아들이곤 말을 이어갔다.


 “그게 오늘에서야 처음으로 이행 단계에 들어갔지. 원래대로라면 굳이 내가 올 필요 따윈 없다만, 우리 애들이 다 겁먹고 가기 꺼리는 것이 눈에 보이더군.”


 “아하, 그래서.”


 “그래. 대족장이 먼저 솔선수범을 보이는 것이 도리 아니겠나.”


 그제야 상황이 이해가 갔다.


 내가 개척자들 중 최초로 하우징을 열었고, 처음으로 관리자 계약이 이루어졌다.

 처음 겪는 계약에 기술자들은 혹시 무슨 문제라도 없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던 바람에, 반장님께서 대족장의 책임을 생각하며 들어왔다는 이야기였다.


 ‘이런 행운이 있나.’


 몰다린 족 같은 거대한 종족의 대족장과 미리 친분을 쌓을 수 있는 기회는 절대로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그 자체의 이득보다도, 반장님을 이렇게 빨리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게 좋았지만 말이다. 


 “겁쟁이 녀석들. 곧 계약 이행이 시작될 수 있다고 분명 예언까지 했건만, 뭐가 그리 두렵다는 건지, 원.”


 “계약이 시작된다는 걸 알고 계셨군요.”


 “우리의 하이 샤먼이 한 예언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예언보다 몇 달이나 빠르긴 하다만, 마음의 대비 정도는 미리미리 했어야지.”


 하이 샤먼이라는 말을 듣자 또 자연스레 옅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모를 리가 있나.

 하이 샤먼은 반장님의 반려자이신데.

 부부 싸움이 있던 날, 어떻게 기분을 풀어주면 좋겠냐며 코가 벌게지신 채 내게 상담해 오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응?”


 나도 모르게 너무 크게 미소 지었는지, 뭐 잘못 먹었냐는 듯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모습에 황급히 헛기침을 하곤 얼굴을 굳혔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는 어깨를 한번 으쓱이곤 말을 이었다.


 “뭐, 어쨌든 이제 궁금한 게 없으면 할 걸 해야지. 어쩌다 보니 설명이 많이 늦었다만.”


 어느 정도 의심이 풀렸는지, 반장님은 본래 관리자가 해야 하는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여긴 신들께서 너희 개척자들에게 제공하는 공간이다. 너희는 하우징이라고 부르는 것 같던데, 어떻게 부르든 마음대로 해라. 기억해야 하는 건 딱 두 가지.”


 어깨에 메고 있던 곡괭이로 톡톡 벨을 건드리는 모습.


 “첫 번째는 이걸 치면 우리 ‘하우징 관리자’가 온다는 점. 두 번째는 정당한 대가만 지불하면 뭐든지 만들어 준다는 점. 모닥불이든, 으리으리한 왕성이든, 마법 공학이 가미된 요새든, 뭐든 말이다.”


 “뭐든지, 말이군요.”


 “그래. 이 섬의 지지기반이 버티는 한, 뭐든지.”


 그 말에 허풍 같은 건 전혀 섞여 있지 않다.

 적어도 건축과 설계라는 측면에 있어서는 그 유명한 드워프 종족조차 몰다린 종족을 따라갈 수 없으니까.


 “정당한 대가의 기준은 신께서 이미 정해놨다고 하니, 속일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고.”


 그렇게 말한 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싸늘할 정도로 휑한 내부의 모습을 보더니 혀를 쯧 하고 차고는.


 “일단 여기부터 뭐라도 채워야겠군. 이딴 공간에 있는게 기분이 나빠. 어이, 애송이. 돈은 얼마나 있지? 우리가 쓰는 ‘몰더’는 당연히 없을 거고, 공용 화폐인 ‘지르’는 있나?”


 당장이라도 일을 시작할 것 같은 모습으로 내게 물어오기 시작했다.

 이걸 뭐라고 말한담.


 “그게···.”


 “뭐냐, 사기라도 칠 것 같냐? 걱정 마라. 우리의 거래는 신의 가호 아래 보호 받는다. 이치에 벗어나는 대가를 지불하면 그 사실을 알 수 있···.”


 휙.

 투둑. 툭.


 말이 더 길게 이어지기 전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거꾸로 들어 보였고, 안에서는 몇 개 없던 물건이 툭툭 떨어졌다.

 그 안에 남아있는 것은 연금용 합성 주머니와 수통, 헤메이는 숲으로 귀환할 수 있는 귀환의 돌, 그리고 이사수씨에게 전해 받은 맥가이버칼, 파이어 스타터, 연고가 전부였다.


 거기에 주머니까지 그에게 거꾸로 꺼내 보였다.

 하우징 열쇠, 그리고 반투명한 '발칸델 큐브'가 모습을 드러냈지만, 이건 당연히 돈이 되지 않는다.


 “···.”

 “···.”


 “진짜 이게 끝이냐?”


 “실루나께 맹세코.”


 실루나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주로 땅 아래에 거점을 두며 살아가는 종족들이 섬기는 이 세계의 신들 중 하나였다.

 그 이름을 여기서 들을 줄은 몰랐는지 살짝 놀란 눈치였지만, 무어라 할 말을 찾지 못했는지 우리 둘 사이에는 계속해서 정적이 흘렀다.


 아쉽지만 적어도 오늘은 여기서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제가···. 아?”


 휘청.


 그런데 당장 필요하진 않다고 말을 꺼내려던 순간, 갑자기 땅이 하늘로 솟기 시작했다.

 머리가 핑 도는 듯한 어지러운 감각.


 ‘땅이 솟는 게 아니라, 내 몸이.’


 [ 아드레날린 효과 종료 ]


 알티가 제정신이었다면, 미리 경고를 해줬을 텐데···.


 쿵!


 이야기하느라 한참 앉아 있다가 일어나는 타이밍에 하필이면 아드레날린의 효과가 끝나버렸고, 억지로 움직여오던 몸이 탈진하며 쓰러진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머리를 부딪힌 탓에, 의식마저 점차 흐려졌다.


 “어, 어이, 야 이놈아!”


 어두워지는 의식 속으로 반장님의 목소리만 들려왔다.



**



 “내 참, 살다 살다 돈 없다고 자해공갈 하는 새끼는 내가 처음 본다. 바닥에 머리 박고 기절까지 해? 독한 놈.”


 “아니, 그···. 예. 죄송합니다.”


 나는 멋쩍게 뒷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숙였다.


 의식이 다시 돌아온 순간 내 눈앞에 보인 것은 차가운 바닥이 아니라, 조금 낡았지만, 따뜻한 이불이 깔린 킹사이즈 침대였다.

 심지어 본래 모닥불을 피우기 위해 만들어진 중심에는 멋들어지게 마감된 고급 난로 같은 것이 설치되어있었다.


 갑자기 쓰러져버리는 모습에 당황한 반장님이, 순식간에 가구를 만들어 설치해 준 것이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자해공갈로 가구를 받아낸 최초의 인간이 돼버렸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딴 식으로 물물교환하는 건 두 번 다시 없을 거다, 이 공갈 애송아.”


 완전히 무료로 해준 것은 아니고, 이사수씨가 주었던 맥가이버칼과 파이어 스타터, 연고를 대가로 가져가긴 했다.

 당연히 터무니없는 교환비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몰다린 족의 대족장이 만든 가구는, 아무리 급조했다고 해도 그 급이 다르니까.


 [ 급조 침대 ]

 [ 등급 - 미정 ]

 [ 몰다린 대족장이 제작한 급조 침대. 단순한 재료, 적은 정성이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정상급 명장의 손길이 닿은 탓에 예상 이상의 효과를 발휘한다. ]

 [ 종합 회복 효율 +31% ]

 [ 수면 효율 +12% ]


'···이런 미친 효과가 고작 급조 침대라니.'


 침대뿐만 아니라 저 난로 또한 무언가 부가효과가 크게 붙었을 게 틀림없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껌 한 통을 주었더니 차 한 대를 얻은 수준과 다름없는 행운이었다.

 그저 감사를 계속해서 표하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게 없었다.


 반장님은 그런 나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뱉고는, 호출벨을 스스로 톡톡 두들겨 포탈 너머로 돌아갔다.


 그가 떠나고 적막해진 하우징 내부를 잠시 둘러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알티.”


 [ 정보창 이외의 기능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


 아직도 멀었나.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었기에 기능이 제한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니 다행이었다.

 알티도 없이 조용해진 방 안에서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세상은 도대체 뭘까.

 아니, 정확히는.


 ‘도대체, 레닉수스는 누가 만들었던걸까.’


 미래 세상의 게임 속에 있던 하늘섬, 몬스터, 버그에 이제는 몰다린 종족과 반장 아저씨까지.

 게임이라고 생각하면 전혀 의문을 가질 일이 없었지만, 지금은 그 세상이 현실과 합쳐져버리지 않았는가.

 지금 이 이계 속의 전투 스킬, 마법이나 신성력, 정령, 그리고 무협지에나 나올법한 무공들까지 모두 현실에서도 사용이 가능하다고 들었다.


 그 게임은 도대체 뭐였던 걸까.


 ‘운영자들의 존재는 끝까지 정체불명이긴 했지.’


 그들은 오직 인터넷 상에서만 활동하고, 공지를 올리곤 했다.

 하지만 내가 수집했던 레닉수스에 대한 정보들, 그 어디에도 운영자들이 실제로 얼굴을 드러내며 오프라인 행사에 참여하는 일은 없었다.

 정말로, 신이 장난이라도 치려고 이 세상을 만들었을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피곤한데도 불구하고 잠이 오지 않았기 때문일까.


 꼬르륵.


 정확히는, 배고픔이 피곤함을 누를 정도로 강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숲에서 버섯이라도 캐올걸 그랬나. 얼마나 시간이 지났지?’


 [ --- 업적 기록 --- ]

 [ 헤메이는 숲 ]

 [ 돌파 랭크 : SSS ]

 [ 소요 시간 : 0일 5:51:15 ]

 [ 지역 랭킹 : 1위 (개인) ]


 숲에서 탈출하는 데 걸린 시간이 6시간, 유적까지 오는 게 한 시간, 전투 이후의 휴식까지 포함하면 얼추 9~10시간 정도 지난 것 같았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격한 전투가 없었을 테니, 지금쯤 도시에서 휴식을 취하며 식사도 할 시간이었다.


 아드레날린을 놔줄 알티도 없으니, 배고픔을 잊고 억지로라도 잠을 자려고 했는데.


 킁킁.


 “응?”


 그때, 어딘가 고소한 냄새가 풍겨오기 시작했다.


 곧바로 그 냄새의 근원지를 찾을 수 있었다.

 고급 난로 윗부분에는 옆으로 여는 작은 뚜껑이 달려있었는데, 그 안에 주황색 무언가가 어렴풋이 보인 것이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안을 살펴보았다.


 “선베리···.”


 몰다린 족이 즐겨 먹는 이 세계의 과일 ‘선베리’가 여러 개 있었다.

 귤과 파인애플을 합쳐놓은 듯한 과일이라 갈증까지 해결할 수 있는 과일.

 거기에 먹기 쉽도록 윗부분에 칼집까지 나있었다.


 반장님이 놓고 간 게 분명했다.

 고마움에 앞서, 의문이 먼저 들었다.


 ‘이렇게까지?’


 그가 얼마나 선한 심성을 가졌는지는 알지만, 그건 자신의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다.

 반장님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정말로 쉬이 마음을 열지 않으신다.

 아무리 내게 악의가 없는 것을 느끼셨다 한들, 거의 공짜로 가구를 만들어주고 먹을 것까지 놔두고 가는 친절을 베풀 분은 아니실 텐데.


 쭈압.


 하지만 그런 의문은 곧 입안 가득 차오르는 선베리의 달콤함에 지워졌다.


 아무렴 어떤가.

 덕분에 편안하게 허기와 갈증을 해결할 수 있으니, 무슨 의도가 있든 없든 중요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이 어떻게 이뤄졌는지도 지금 내겐 중요하지 않고.’


 지금은 오직, 같은 보육원에서 자란 의남매 둘을 찾는게 중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해져야 했고.


 그래. 그거면 충분하다.


 배를 채우고, 침대에 기어가듯 올라가 다시 누웠다.

 잠깐 기절했을 뿐인데도, 확실히 몸이 좀 움직일만 한 것 같았다.


 곁눈질로 하우징 구석 지하로 향하는 문과 가방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가방 안에는 아직 등록하지 못한 섬의 정수 ‘발칸델 큐브’가 있고, 지하실은 그걸 등록하러 가는 입구였다.


 ‘지금은 쉬는데 집중하고.’


 자고 일어나면, 곧바로 정수를 등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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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진짜 재능이란 (2) +2 24.09.03 1,287 44 20쪽
16 진짜 재능이란 (1) 24.09.02 1,318 45 20쪽
15 돌풍을 몰고 오는 (4) 24.08.31 1,305 41 18쪽
14 돌풍을 몰고 오는 (3) 24.08.30 1,333 40 18쪽
13 돌풍을 몰고 오는 (2) 24.08.29 1,431 39 18쪽
12 돌풍을 몰고 오는 (1) 24.08.28 1,508 39 19쪽
11 최초의 특전 (3) +1 24.08.27 1,578 44 20쪽
» 최초의 특전 (2) 24.08.26 1,643 43 20쪽
9 최초의 특전 (1) +1 24.08.25 1,689 42 16쪽
8 튜토리얼? 일단 버그부터 써보자고 (3) +2 24.08.24 1,683 45 18쪽
7 튜토리얼? 일단 버그부터 써보자고 (2) +3 24.08.23 1,719 44 18쪽
6 튜토리얼? 일단 버그부터 써보자고 (1) +1 24.08.22 1,809 43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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