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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나 에이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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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ldegard
작품등록일 :
2021.05.17 21:03
최근연재일 :
2022.03.10 22:56
연재수 :
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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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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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32

작성
22.03.10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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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생존자들 1

DUMMY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쿤델라로 입성하는 잇시시 항구 쪽으로 노란색 구명 보트 12척이 향하고 있었다. 구조된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서른 명도 채 되지 않았다. 절반은 넘게 줄어든 숫자였다.


발터 선장은 나머지 11척의 보트를 통일하여 움직일 수 있는 리드 보트의 운전을 담당했다. 그는 서 있었다. 선 채로 리드 보트를 조종했다. 발터 선장이 앉을 수 있는 좌석을 포함한 자리들에 다섯 구의 시체가 가지런히 뉘인 채 썩어갔다.


시체들은 이름 없는 승객들이었다. 어쩌면 다섯은 서로 살아 생전에 가족이었을지도 몰랐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들의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물건이라고는 없었다.


브리엔카 왕국의 병사들은 무기를 버렸다.


그들은 각자의 쇠로 만든 투구로 구조상자에 들어있던 정수물을 나눠 마셨다. 승객들의 입술은 파리했고, 몇몇 사람들은 추운 바닷바람에 몸을 떨었다. 에이미 아르부스의 선두지휘 아래 페트로와 파올로, 이중 국적자를 포함한 몇몇 이들이 부상당한 사람들의 상처를 소독하고 붕대를 감아준 뒤 파올로에게서 받은 성수를 조금씩 나누어 흡수시켰다.


큰 부상을 입은 이가 네 명, (그 중 한 명은 진통제를 반 이상 처방했음에도 처절한 고통을 호소하다가 반 시간 전에 목숨이 끊어졌다.) 상대적으로 덜한 부상을 입은 이들은 열 다섯 가량이었다. 그 중에 라나 에이블리아도 포함이 되었다.


"아아... 아..."


로젤라 란 블룸은 새어나오는 신음에 배를 감싸안고 허리를 굽혔다.


"당신은 참을성이 그렇게도 없소?"


브륀.K의 귀족 영애였던 로젤라는 체스트라 블룸 경이 몹시도 원망스러웠다.


처음 만났을 때, 혼기가 찬 상태였던 로젤라는 체스트라 블룸 남작에게 단박에 이성적인 호감을 느꼈다. 잘생기고 이지적인 얼굴과 당당하고 넓은 골격의 어깨. 세련된 매너와 유머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호감을 사는 성격. 거기다가 브륀.K에서 손꼽히는 재력가라는 사교계의 풍문까지.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화려한 결혼식이 끝나고 나서 알게 된 그는 냉정하고 오만하기 짝이 없는 이기주의자였다.


뼛속부터 그는 귀족으로서의 우월감에 사로잡힌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보다 계급이 높은 귀족에게는 그토록이나 깍듯하고 매력적으로 행동하면서도, 자기보다 계급이 낮거나 영향력이 덜한 귀족들은 벌레 취급을 했다. 평민에게 대하는 태도는 말할 것도 없었다. 벌레 취급을 하는 건 자신의 아내인 로젤라 란 블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본디 피오나트 남작의 딸이었던 로젤라가 자신의 저택으로 온 뒤부터 체스트라 남작은 하대하기가 기본 태도였고, 면박 주기와 무시하는 태도는 일상적인 일이었다.


사실 체스트라 경에게 로젤라는 차선의 선택이었다. 그는 로젤라의 외모도 크게 매력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고, 그녀를 특색 없고 재능도 없는 그저 그런 귀족 아가씨라고 여겼다. 그가 로젤라 란을 아내로 맞아들이기로 한 것은 오직 재산을 불릴 목적에서였다. 피오나트 남작이 막대한 지참금을 약속했던 것이다. 결정적으로 그가 로젤라 란을 선택한 것은, 그가 결혼 상대로 재고 있었던 다른 사교계의 영애들, 바버슬로 가문의 재스민과 올렌더 가문의 이자벨에 비해 사치와 허영이 그나마 덜하다고 느낀 이유가 컸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체스트라 경에게 재스민 바버슬로 양도, 이자벨 란 올렌더 양도, 모두 자신의 아내ㅡ로젤라 란 블룸ㅡ보다는 낫게 느껴졌다.


'저 툭 튀어나온 윗입술과 그늘진 뺨 밑을 보라지. 저게 정말 스물 한 살의 외모란 말인가? 하여튼 예쁜 구석이라곤 조금도 없는 여자야.'


체스트라 경은 혀를 차며 아내륵 힐끔 본 뒤 눈길을 돌렸다. 로젤라는 입술을 꽉 깨물며 통증을 참아냈다. 뱃속의 통증보다 남편의 냉대와 무관심이 더욱 날카롭게 가슴을 후벼파는 것 같았다.


"흐흑... 흑... 흑..."


로젤라 란 블룸이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라나는 그들, 특히 체스트라 남작이 하는 작태가 보기 싫어 고개를 돌려버렸다. 체스트라 남작이 울고 있는 로젤라에게 끊임없이 구박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좀 닥쳐."


라나가 말했다.


로젤라 란 블룸은 놀라서 눈물을 그치고 라나를 바라보았다. 체스트라도 로젤라에게 구박하기를 멈추고 라나를 보았다.

라나는 체스트라 경을 턱끝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니가 더 시끄럽다고."


체스트라 남작이 기가 막힌다는 듯이 코웃음 쳤다.


"하등한 평민 여자 주제에 감히 뭐라고?"


"아... 입만 그런 게 아니라 귀도 썩으셨구나." 라나는 두 손을 모아 잡으며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주둥이 냄새 나니까 다물어주시면 감사하겠다는 뜻이에요."


라나가 생긋 웃음을 지었다.


* * *


체스트라 남작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격분한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라나의 뺨을 주먹으로 갈겼다. 갈겼다고 생각했다. 그가 주먹질한 자리 바로 뒷편에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짓고 있는 라나가 있었다. 그가 한 번 더 라나를 주먹으로 갈기려고 했을 때, 이번에는 라나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라나는 순식간에 체스트라 남작의 팔을 낚아채서 꺾은 뒤 자신에게 안기듯이 포박당한 그의 뺨을 나머지 한 손으로 철썩 때렸다.


"이런, 씨...!"


체스트라 남작이 고함을 내지르며 라나를 밀쳐내려고 했지만 어째서인지 뒤로 꺾인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분명히 어린 계집애인데...!' 근육의 흔적도 없어보이는 라나의 하얗디 하얀 팔뚝을 보며 체스트라 남작이 생각할 때, 라나가 먼 수평선 너머로 시선을 둔 채 무심한 표정으로 다시 한 번 남작의 뺨을 철썩 때렸다. 남작이 욕지거리를 하며 입속의 피를 뱉었다. "도대체 뭘 하는 계집이기에 힘이 이렇게 센 거야!" 라나가 이번에는 손바닥으로 남작의 얼굴 정면을 우악스럽게 내리쳤다.


체스트라 남작의 코와 인중이 붉어졌다. 뺨은 이미 퉁퉁 부어오른 상태였다. 사실은 너무 아팠다. 남작은 다시 한 번 몸에 힘을 주어보았지만 포박을 풀 수 없었다. 창피하고 모욕스러운 것도 문제였지만 정말이지, 너무, 아팠다. 라나는 쯧, 소리를 냈다.


"엽사(獵師) 님, 부탁드릴게요. 제 남편을 놓아주셔요..."


로젤라 란 블룸이 자리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고 라나의 발목에 매달렸다. 라나는 체스트라 남작을 밀치듯이 내동댕이쳤다. 체스트라 남작이 휘청거리면서 보트 가장자리로 쓰러지며 거의 바다에 빠질 뻔 했다. 간신히 보트의 가장자리를 붙잡고 몸을 지탱해낸 남작을 보며 라나는 성가시다는 듯 바닥에 침을 뱉었다.


"감히... 평민 계집이..."


"더 맞을까요?"


라나가 손목을 돌리며 말했다. 다급해진 로젤라가 체스트라 남작을 끌어안듯이 붙잡고 자리에 앉혔다. "저 분은 우리를 몬스터에게서 구해주신 분들 중 한 명이에요." 남편에게 빠르게 속삭이는 그녀의 목소리를 라나도 들을 수 있었다. 체스트라 남작은 수치스럽고 절망스러워 로젤라의 팔을 뿌리쳤다. 그가 뱉는 침에 피가 계속 섞여 나왔다.


"라나!"


라나의 보트로부터 약 1미터 정도 떨어진 보트에서 붉은 머리의 페트로가 힘껏 소리쳤다.


"부상자가 아직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된 거야?"


"남는 거 여기로 던져."


페트로가 붕대를 라나에게 던졌다. 라나는 붕대를 낚아채듯이 받아 체스트라 남작 발치로 던져주었다. 로젤라는 어느새 배가 아픈 것도 잊고 붕대를 집어든 뒤 천을 이로 찢기 시작했다. 고개를 숙인 채 맥없이 앉아 있는 체스트라 남작의 피를 로젤라는 닦아낸 뒤 꼼꼼한 솜씨로 붕대를 감기 시작했다.


이제야 좀 조용히 가겠군. 라나는 양 손을 뒷머리에 깍지 끼며 생각했다.

그들의 모습을 처음부터 파올로가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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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이중 국적자 22.02.23 23 0 4쪽
18 페어딘 카녹의 분노 22.02.14 35 0 6쪽
17 브륀.K에서 22.02.13 28 0 2쪽
16 롬 플루셰 (외전) 22.02.06 28 0 5쪽
15 쿤델라 왕국으로 4 (完) 22.02.04 32 1 4쪽
14 쿤델라 왕국으로 3 22.01.12 34 0 4쪽
13 쿤델라 왕국으로 2 21.05.27 40 1 7쪽
12 쿤델라 왕국으로 1 21.05.25 46 1 8쪽
11 아우랭의 너도밤나무 3 (完) 21.05.20 43 1 3쪽
10 아우랭의 너도밤나무 2 +3 21.05.18 64 3 8쪽
9 아우랭의 너도밤나무 1 +5 21.05.17 65 3 4쪽
8 꿈의 논리 +2 21.05.17 57 3 5쪽
7 그들은 결코 스킨쉽을 하지 않는다 21.05.17 44 2 6쪽
6 마녀에 대한 편견 21.05.17 40 2 4쪽
5 첫 번째 몬스터 21.05.17 41 2 3쪽
4 콜리나들과 성수 21.05.17 51 2 4쪽
3 모험의 시작 21.05.17 57 2 4쪽
2 꿈시녀 반대론자들 21.05.17 63 3 7쪽
1 내가 공주였다고? +2 21.05.17 156 3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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