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의 시작
로스나 숲 가장 깊숙한 안쪽에는 세상 모든 어둠을 삼켜버릴 듯한 동굴이 있다.
브리엔카 왕궁의 출입구보다도 넓고 커다란 입구를 가진 이 동굴은, 그 안쪽도 마치 궁륭처럼 넓고 깊었다.
갈잎들은 난데없이 동굴 주위로 자라나있고, 동굴바위 위쪽에는 커튼발처럼 검갈색 덩굴식물들이 드리워져 있는.
ㅡ이름 없는 동굴.
이 동굴로 가장 신성한 새들만이 드나들 수 있다는 사실은 파올로와 라나만이 안다.
라나는 파올로와 함께 사냥에 필요한 권총, 장총, 주머니칼과 여행에 필요한 물건들이 들어있는 봇짐을 제외하고는 모든 걸 처분했다.
그들의 목표는 하나였다.
'꿈은 현실이다.'라는 포셀라 공주의 선언이 틀렸음을 증명할 수 있는
결정적이고 명백한 자료를 수집하는 것.
"수집해서 어떡할 건데?!"
라나가 소리쳤다.
"어떡하긴. 왕궁에 정식으로 탄원해야지."
파올로는 잠깐 먼 산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둘 사이에 오가는 침묵.
파올로는 다시 말했다. 마치 중얼거리듯이.
"지금도 꿈시녀들은 포셀라의 악몽으로 인해 말도 안 되는 일들을 겪고 있어. 우리는 그들 또한 구할 수 있어.
아니ㅡ... 어쩌면 그게 우리의 사명이야."
"솔직히 난 걔들 손톱만큼도 신경쓰지 않고 살아왔는데."
라나의 철딱서니 없는 말에 파올로가 그녀를 차갑게 노려보았다.
"뭐... 뭐 생각해보면 불쌍하긴 해."
라나는 얼버무렸다.
'아니, 근데 내가 왜 이자식 눈치를 보는 거야?! 꿈시녀가 될지도 모르는 건 난데!'
라나가 속으로 생각하며 화내는 것과는 상관없이 바람은 불었다.
바람은 라나와 파올로 사이의 동굴로 들어갔다. 휘파람 같은 미세하고 으스스한 소리가 났다.
파올로는 남성이기 때문에 꿈시녀가 될 가능성이 제로임에도, 명백한 꿈시녀 반대론자였다.
사냥밖에 모르는 라나와는 달리, 2년 전에는 브리엔카 수도까지 뜻이 맞는 이들과 말을 타고 올라가, 꿈시녀 반대 시위에 참여하기도 했다.
"악몽을 명분으로 자행하는 착취를 멈추어라! 멈추어라!"
"포셀라는 꿈시녀들을 해방시켜라! 해방시켜라!"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의 분노에 찬 눈동자.
파올로의 금빛 눈동자 역시 마찬가지로 태양처럼 이글거렸었을 것이다.
'그래도 포셀라 공주는 꿈쩍없었지. 꿈시녀가 없으면 나라의 평화가 유지되지 않는다고까지 말했어...'
"근데 파올로. 그 자료를 우리가 수집할 수 있을까? 만약 찾는다 하더라도, 포셀라 공주가 그 자료를 갖춘 탄원서를 승낙할까?
아니, 애초에 공주라는 자리가 뭐길래 나를 이렇게 괴롭혀? 공주의 공 자만 들어도 치가 떨리네. 젠장."
파올로는 라나의 말에 회상을 멈추고 현재로 돌아왔다.
파올로는 '네 전생도 공주였잖아.' 라고 대답하는 상상을 했지만 실언을 하지 않는 일류사냥꾼 답게 그 말을 내뱉지는 않았다.
그는 대신에 삐딱하고 장난스럽게 미소 지었다.
"어쨌든 이 동굴로 들어가면."
파올로가 말했다. 라나는 파올로를 쳐다보았다.
"해변가로 갈 수 있을거야.
말이 동굴이지... (파올로는 흑발의 머리카락을 커다란 한 손으로 쓸어넘겼다) 사실은 숨겨진 긴 터널이라고 샘 할아버지가 그랬으니까.
하지만 너도 들었지? 라나."
"당연하지. 똑똑히 기억해.
첫째, 동굴 속에 위험한 짐승들이 많으니까 조심해야 한다는 것.
또, 둘째..."
"됐어. 그거만 기억하면 된 거야."
파올로가 말했다.
"자, 들어가자."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라나와 파올로, 두 남녀는 드디어 동굴 속으로 첫 발을 내딛었다.
모험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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