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임시서재

라나 에이블리아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로맨스

hildegard
작품등록일 :
2021.05.17 21:03
최근연재일 :
2022.03.10 22:56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967
추천수 :
29
글자수 :
42,532

작성
21.05.18 21:25
조회
63
추천
3
글자
8쪽

아우랭의 너도밤나무 2

DUMMY

"주문하시겠어요?"


페트로는 라나와 파올로 가까이 다가갔다. 라나가 말했다.


"뭐 있는데?"


"라나."


파올로가 라나를 저지했다.


'음... 미모랑 어울리지 않게 좀 싸가지가...'


페트로는 속으로 생각했다. 라나는 만사가 귀찮다는 듯이 귀를 후비며 팔꿈치를 테이블 위에 괴고 손바닥으로 턱을 받쳤다. 그녀는 한 번 흘겨보듯이 페트로의 앞치마에 시선을 두었다가, 창문 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쿠리에이리 출신의 여행자들이라서 이 도시에 익숙하지 않은데, 기력을 회복할 수 있는 메뉴를 추천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어... 기력을 회복할 만한 음식이라면."


페트로가 천장 가까이 걸린 주문표를 쳐다보았다.


"마젠타 물소찜은 어떨까요? 안주로도 좋지만 기력 회복에도 아주 그만이거든요."


"맞아요ㅡ. 에이미가 아플 때 페트로 오빠가 만들어 줬지~"


어느새 페트로 곁으로 다가온 에이미가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


"뭐야. 여긴 미성년자도 알바해?"


라나가 에이미를 쳐다보며 물었다. 페트로가 에이미의 팔짱을 슬며시 빼내며 어색하게 웃었다.


"하... 하하... 그게 아니라, 얘는 손님이에요."


"미성년자라니. 에이미 올해부터 성인이거드은? 한참 전에 유행 지난 달팽이머리나 하고 있는 주제에 되게 싸가지 없네."


"뭐? 이거 유행 지났어?"


라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에이미는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하며 내뱉었다.


"너 백치 아냐?"


"백치? 아닌데?"


라나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대답했다. 그런 라나를 보던 에이미가 폭소를 터뜨렸다.

배꼽을 잡고 웃는 에이미를 보며 한숨 쉬는 페트로와 라나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파올로. 두 남자의 시선이 또다시 마주쳤다. 페트로는 냉정하기 짝이 없던 파올로의 첫인상이 지쳐보이기 짝이 없는 표정으로 변한 것을 알았다. 그때 문득, 페트로는 깨달았다.


'저 녀석의 지쳐보이기의 짝이 없는 표정의 짝을, 굳이 굳이 찾는다면 그건 나일 거야.'


그 생각은 어쩐지 코믹했다. 페트로는 쿡, 하고 웃었다. 묘한 것은 파올로도 페트로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두 남자는 마주보며 쿡쿡거리고, 킬킬거리며 웃었다.


"뭐야. 왜 웃어. 술 처마신 사람들처럼."


자신만 빼놓고 웃어대고 있는 에이미, 페트로, 그리고 파올로까지. 라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들에게서 몸을 멀찍이 내뺐다.


"죄송, 죄송해요. 크흑... 아무튼 물소찜 주문하신 거죠? 알겠습니다. 큭큭..."


"아, 서버님, 맥주도 두 잔만 주세요."


파올로가 눈가를 비비며 말했다. 그때, 너도밤나무의 사장 에른하르트가 다가왔다. 그는 말했다.


"쿠리에이리에서 오셨다고요? 맥주는 서비스로 드리죠."


"에른 오빠! 에이미도 공짜 맥주 줘요오ㅡ"


에이미가 칭얼거렸다. '저럴 때만 에른하르트가 아니라 에른 오빠라고 하지.' 페트로는 생각했다. 페트로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에른하르트는 저도 모르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럴까? 음, 손님들도 많이 빠져나갔으니... 페트로, 그만 정리하고 마감 준비 하게. 나머지 손님들 서빙은 나랑 유타가 하겠네."


"감사합니다." 페트로가 말했다. 파올로도 에른하르트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런데 서버님."


"페트로라고 불러요."


"네. 괜찮으시다면 에이미 씨랑 페트로 씨까지 다 같이 합석하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요. 사장님이 치워야 할 테이블 하나가 줄어들잖아요."


페트로는 파올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라나는 얼른 짐을 챙겨 파올로 곁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낯선 사람과 가까이 앉는 것보다야 파올로 곁에 앉는 게 편했기 때문이다. 에이미는 라나에 대한 호감, 이라기보단 호기심에 더 가까운 감정이 커진 상태였지만 라나는 에이미가 부담스러웠다. 라나는 여자와 친해져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으므로. 게다가 저렇게 어리고 애교 많은 스타일은 자신과 잘 맞는 성격이 아니라고 그녀는 생각하고 있었다.


"언니 이름이 뭐야?"


"니가 알 거 없잖아."


"싸가지. 파올로 오빠, 이 언니 이름이 뭐예요?"


"본인이 말하고 싶어질 때 듣는 게 좋을 듯 한데요."


"치..."


에이미가 시무룩하게 고개를 외로 꺾었다. 분위기가 다소 가라앉았다. 에이미는 맥주만 홀짝홀짝 들이켰다. 어색한 침묵을 깨기 위해 페트로가 말했다.


"그런데 이 마을까지는 어떻게 오신 거예요?"


"쿤델라 왕국으로 가려고 왔습니다."


파올로가 대답했다.


"어? 에이미도 내일 쿤델라 가는데!"


"에이미 씨는 왜 가시나요?"


"그게... 아무튼 그런 게 있어요."


에이미는 얼버무렸다.


에이미 아르부스.

그녀에게는 사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일이었다.

그날, 에이미는 언제나처럼 자신의 고양이 루샤의 털을 빗질하고 있었다. 집에는 에이미의 친언니인 메이와 자신밖에 없었다. 에이미와는 달리, 아버지를 닮아 푸른 머리에 침착한 성격인 메이는 죽은 수학자인 말론도의 난제를 풀고 있었다.


"언니, 나 크래커 먹고 싶어."


"응."


집중한 메이는 안경코를 올리며 무심결에 대답했다. 에이미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에이미는 2층 나무계단을 내려와 부엌 찬장을 열었다. 크래커는 남아있지 않았다. 에이미는 부엌 식탁에 놓인 1엔카를 집어들었다. 과자가게에 갈 생각이었다.


에이미가 대문을 열려고 했을 때,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에이미는 깜짝 놀라서 뒤로 넘어질 뻔 했다. 무장한 병사들이 집 앞에 서 있었다.


"푸른색 머리가 아닌데?"


병사 하나가 말했다. 에이미는 눈을 크게 떴다.


"누, 누, 누, 누구세요?"


"얘야. 너희 언니 어디있니?"


불길한 예감에 휩싸인 에이미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병사 둘이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막아서는 에이미를 밀치고 집 안으로 쳐들어왔다.


그 이후의 장면들은 에이미에게 기억이 흐릿했다. 기억나는 것은, 병사들이 집안을 샅샅이 뒤지다가 결국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쿵쾅거리면서 올라가던 모습. 2층에서 들려오던 언니가 울부짖던 소리.


"제발요, 제발요!"


오열과 애원에도 불구하고 메이를 포박해서 거칠게 끌고 내려오던 병사들.

그 순간 집에 도착한 부모님께, 에이미는 다급하게 상황을 보고했지만 아버지는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


메이가 개처럼 질질 끌려나오며 소리질렀다. 다니아 아르부스 부인은 메이를 외면했다.

메이는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어린 에이미에게는 이 모든 상황이 충격적일 뿐이어서 눈물도 나지 않았다. 에이미는 아버지를 올려디보았다.


'아버지... 제발요... 제발 멈추라고 해주세요.'


에이미는 마음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마을에서 가장 존경받는 의사이자 영성학자인 아버지, 닥터 그란 아르부스에게.


하지만, 그란 아르부스는 병사들에게 가볍게 목례하며 길을 비켰다.


그 모든 것들은, 에이미가 성인이 된 후 브리엔카 수도의 꿈시녀 수용소로 찾아갔을 때 받은 충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꿈시녀 수용소는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으므로, 에이미는 식량 조달사로 변장하여 수용소에 잠입했다. 미친듯이 메이를 찾아 복도를 두리번거리던 에이미는 27이라고 문패에 적힌 철문 앞에 섰다.

에이미는 누가 쫓아올세라 황급하게 훔친 열쇠꾸러미를 꺼내어 철문을 열었다.


철창으로 만든 문이 한 번 더 쳐진, 감옥 같은 방 안.

바짝 마른, 해골이 아니라는 게 믿기지 않는 여자가 앉아 있었다.


빡빡 밀어버린 머리와 촛점 없는 눈빛.

멍하게 벌어진 입.

수프를 떠먹는, 아주 느리게 움직이는 손.


"메이... 언니..."


철창 너머로, 에이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아주 느리게 고개를 들어 자신을 바라보는 눈동자에는 아무런 빛이 없었다.

하물며 누구시냐는. 그 흔한 질문도 없었다.

숟가락 위의 수프만이 메이의 삼베옷으로 천천히 흘러내리고 있었다.


꿈시녀 27호, 메이 아르부스.


그녀는 사실상 이제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작가의말

갑자기 한 편의 호흡을 길게 하려니까 적응이 안되네요. ㅠ 차츰 분량을 늘려나가보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 작성자
    Lv.66 룬블레이드
    작성일
    21.05.19 02:17
    No. 1

    잘 읽었습니당~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37 다큐인생
    작성일
    21.05.19 09:16
    No. 2

    한 화 분량을 늘려 적으려 애쓰기 보다는, 두 화를 하나로 합쳐 올리는 정도가 좋을듯.
    물 흐르듯 1화부터 한 번에 달린 정도로 흡입력이 좋은 글입니다. 알려지면 많은 독자들이 좋아할 글이네요.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9 hildegar..
    작성일
    21.05.19 09:53
    No. 3

    조언 감사합니다. 말씀대로라면 호흡 조절도 어렵지 않겠네요.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라나 에이블리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를 성실하게 못하는 이유에 대하여 22.02.18 20 0 -
공지 팬아트(?)를 지인에게 받았습니다. 22.02.18 16 0 -
공지 100화까지 달려보겠습니다. 21.12.30 29 0 -
20 생존자들 1 22.03.10 21 0 8쪽
19 이중 국적자 22.02.23 23 0 4쪽
18 페어딘 카녹의 분노 22.02.14 35 0 6쪽
17 브륀.K에서 22.02.13 27 0 2쪽
16 롬 플루셰 (외전) 22.02.06 27 0 5쪽
15 쿤델라 왕국으로 4 (完) 22.02.04 31 1 4쪽
14 쿤델라 왕국으로 3 22.01.12 34 0 4쪽
13 쿤델라 왕국으로 2 21.05.27 40 1 7쪽
12 쿤델라 왕국으로 1 21.05.25 46 1 8쪽
11 아우랭의 너도밤나무 3 (完) 21.05.20 43 1 3쪽
» 아우랭의 너도밤나무 2 +3 21.05.18 64 3 8쪽
9 아우랭의 너도밤나무 1 +5 21.05.17 65 3 4쪽
8 꿈의 논리 +2 21.05.17 56 3 5쪽
7 그들은 결코 스킨쉽을 하지 않는다 21.05.17 43 2 6쪽
6 마녀에 대한 편견 21.05.17 40 2 4쪽
5 첫 번째 몬스터 21.05.17 41 2 3쪽
4 콜리나들과 성수 21.05.17 50 2 4쪽
3 모험의 시작 21.05.17 57 2 4쪽
2 꿈시녀 반대론자들 21.05.17 63 3 7쪽
1 내가 공주였다고? +2 21.05.17 154 3 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