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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나 에이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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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ldegard
작품등록일 :
2021.05.17 21:03
최근연재일 :
2022.03.10 22:56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973
추천수 :
29
글자수 :
42,532

작성
21.05.17 21:32
조회
43
추천
2
글자
6쪽

그들은 결코 스킨쉽을 하지 않는다

DUMMY

라나는 풀색 점퍼를 훌렁 벗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등이 깊이 패인 검은 나시. 희디흰 등에는 세 줄로 갈겨진 짐승의 발톱자국이 선명하게 보였다.


라나는 유행 지난 달팽이모양 머리(그녀가 꿋꿋하게 고수하고 있는)를 풀어헤치며 검정색 머리끈을 입에 물었다.


머리끈에는 그 흔한 검은 리본이라도 달려있을 만 하건만, 라나의 소지품들은 여성스러움과 거리가 멀었다.


그녀의 풀어헤쳐진 금발머리가 허리춤에서 넘실거렸다. 라나가 아무렇게나 가위로 자른 바람에 다소 삐죽거리는 머리가닥들은 가슴께로 떨어졌다.


라나는 머리끈을 손날에 걸친 뒤 손목에 욱여넣었다. 머리를 고쳐서 단단히 묶을 심산이었다.

그때, 솔기가 닳고 닳은 라나의 머리끈이 터져버렸다.


그녀가 수명이 다한 머리끈을 호수에 집어던졌다.


"뭐해."


라나는 동굴 벽면을 응시하는 파올로에게 말을 던졌다.


사실, 파올로는 라나를 쳐다보는 게 조심스러웠다. 파올로는 저도 모르게 생각에 잠겨들었다.


파올로의 머릿속에 마리가 떠오른 것은 왜였을까.


마리는 파올로의 옆집에 살던 마을 처녀였다.

마리는 착하고 좋은 여자였다.

아니, 그런 줄 알았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겉보기에 마리는 평범한 아가씨였다. 갈색 치마에 앞치마를 두르고, 빨랫줄에 빨래를 널다가 사냥을 마친 뒤 귀가하는 파올로와 눈이 마주치면 밝은 미소로 화답하는 평범하고 상냥한 아가씨.


파올로는 이미 오래전부터 더없이 훌륭한 사냥 동료인 라나와 곧잘 어울려다녔다. 마을 처녀들이 얼마나 그들에게 관심이 많았는지.

아니, 많다 못해 지나쳤다.


파올로는 마리를 비롯한 여자들의 험담에 라나가 난도질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는 꿈에도 몰랐다.


라나 또한 우연히 마주치는 마을의 여자들이 그녀에게 빈정거리면서 웃고 적대시하는 이유가,


그저 자신이 평범한 여자들과는 다른 길 ㅡ사냥꾼의 길ㅡ을 걷기 때문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파올로는 쿠리에이리 여자들, 사실은 울프 마을의 여자들 사이에서도 선망의 대상이었다.

마을 여자들은 파올로를 선망하고 그와 사귀고 싶어하면서도 감히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마을 여자들의 눈에는 라나가 파올로와 어울리기 위한 핑계로 사냥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처녀들은 날이 갈수록 심하게 라나를 미워했다.


"그 숲 속에서 둘이서 무슨 짓을 할지 누가 알아?"


마을 처녀 대여섯명이 모인 빨래터. 녹색의 푸석푸석한 긴 머리에 얼굴에 가벼운 곰보기가 있는 여성ㅡ에멘탈ㅡ이 한 말이었다.


그녀는 파올로를 열렬히 짝사랑하는 마을 처녀 중 하나였는데, 얼굴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 감히 파올로에게 말을 건네지도 못했다.


"야아, 쟤 듣잖아."


마리는 에멘탈을 말리는 척 했지만 비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혼자서 빨래방망이로 미친듯이 옷을 두드리고 있는 라나를 쳐다보았다.


"저 계집애 백치 아냐?"


마을 처녀 중 한명이 라나에게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말했다. 라나는 빨래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사냥한 짐승의 피를 지우려면 정말이지 '미친듯이' 빨래를 두드려야 했으니까.


라나와는 반대로 다른 마을 처녀들은 빨래를 하고 있지 않았다. 그녀들은 험담하기 위해 모인 처녀들이었다.


마을 처녀들의 망상은 부풀어갔다. 마침, 그 무렵은 도색잡지가 쿠리에이리 마을의 처녀들 사이에서 비밀리에 유행이었다.


그녀들은 라나와 파올로를 가지고 온갖 음란한 장면들을 상상하고 그리고 이야기하며 종국에는 마치 그것이 사실이라도 되는 양 라나와 파올로를 바라보았다.


어릴때부터 원하는 것을 가져보지 않은 적이 없는 마리.


질투심이 심하고 승부욕이 강한 마리.


마리가 결국 일을 저지르게 된 것은 필연적이었다.


마을 축제날, 마리는 파올로에게 약을 탄 독한 술을 먹였다. 그녀는 마을 외곽의 고목나무 아래에서 쓰러진 파올로의 옷을 강제로 벗겼다.


"그만... 그만해..."


마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릇된 욕동에 휩싸인 채 결국 목적을 달성하고야 말았다.


축제 장소로 돌아온 마리는 의기양양해져서 에멘탈에게 그 사실을 자랑했지만, 곧 자신이 실수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에멘탈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으니까.


불안해진 마리는 어리석은 전략을 세웠다.


축제날 이후로 그녀는 다른 마을 처녀들에게 파올로가 자신을 겁탈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일이 커지는 바람에 파올로는 마을에서 쫓겨날 뻔 했으나, 에멘탈의 고발로 상황은 해결되었다.


그 일로 마리와 에멘탈의 사이는 완전히 틀어지고 말았다. 마리와 파올로의 사이는 말할 것도 없었다.


마리네 가족이 사라진 후, 파올로는 울프 마을 장터에서 마리를 마주쳤다.


마리는 그의 시선을 피했다. 파올로는 마리를 스쳐지나갔다.



파올로가 회상에 잠겨있다가 깨어난 것은, 풍덩, 하는 물소리 때문이었다.


라나가 호수에 뛰어들었다. 빛나는 금발 머리카락이 수면에 금잔화 꽃처럼 퍼졌다.



그의 눈에 라나는 마치 인어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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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롬 플루셰 (외전) 22.02.06 28 0 5쪽
15 쿤델라 왕국으로 4 (完) 22.02.04 31 1 4쪽
14 쿤델라 왕국으로 3 22.01.12 34 0 4쪽
13 쿤델라 왕국으로 2 21.05.27 40 1 7쪽
12 쿤델라 왕국으로 1 21.05.25 46 1 8쪽
11 아우랭의 너도밤나무 3 (完) 21.05.20 43 1 3쪽
10 아우랭의 너도밤나무 2 +3 21.05.18 64 3 8쪽
9 아우랭의 너도밤나무 1 +5 21.05.17 65 3 4쪽
8 꿈의 논리 +2 21.05.17 57 3 5쪽
» 그들은 결코 스킨쉽을 하지 않는다 21.05.17 43 2 6쪽
6 마녀에 대한 편견 21.05.17 40 2 4쪽
5 첫 번째 몬스터 21.05.17 41 2 3쪽
4 콜리나들과 성수 21.05.17 51 2 4쪽
3 모험의 시작 21.05.17 57 2 4쪽
2 꿈시녀 반대론자들 21.05.17 63 3 7쪽
1 내가 공주였다고? +2 21.05.17 156 3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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