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임시서재

라나 에이블리아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로맨스

hildegard
작품등록일 :
2021.05.17 21:03
최근연재일 :
2022.03.10 22:56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958
추천수 :
29
글자수 :
42,532

작성
22.02.14 16:45
조회
34
추천
0
글자
6쪽

페어딘 카녹의 분노

DUMMY

"...해서 자신의 앞에 나타난 것을 피하면 안 됩니다."



프로페세 그란 아르부스는 녹색 칠판에 필기체로 글을 쓴 뒤 점을 찍으며 말을 마쳤다.



닥터 그란 아르부스는 일주일 전 저녁, 브리엔카 왕국의 수도, 브륀.K에 인접한 얀델 시의 코즈마 대학 교수로 초빙받았다.



그는 묵묵히 짐을 정리하고 그의 아내 다니엘라 아르부스의 뺨에 키스한 뒤 얀델 시로 향하는 마차에 올라탔다. 그는 그의 사랑하는 아내가 집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오래토록 바라보았다. 벌써부터 그는 다니엘라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천사 같던 아내의 푸른색 머리카락은 기억 속에 뚜렷했다.



그는 그의 아내를 부르던 애칭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다니아, 다니엘라, 대니, 다이아넬, 다르아. 달.



닥터 그란 아르부스의 눈앞에 잃어버린 딸, 메이 아르부스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쿤델라 왕국으로 떠나버린 에이미 아르부스의 귀여운 분홍색 머리카락도. 닥터 그란 아르부스는 눈을 감았다. 그는 동그란 외알 코안경을 벗어 손수건에 쌌다. 마차가 빠르게 달렸다. 바깥 풍경이 반죽처럼 뒤섞일 정도로.



아무도 자신을 보지 않는다는 확신이 생겼을 때, 그제서야 닥터 그란 아르부스는 눈에 괸 눈물을 떨어뜨렸다. 그의 왼쪽 눈에서 단 한방울의 눈물이 떨어졌다.



* * *



"교수님, 질문 있습니다."



가장 앞자리에 앉아 있는 검은 스틸 테 안경을 쓴 학생이 손을 들었다. 교수님이라는 말은 들어도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무슨 질문이지요, 학생?"



프로페세 그란 아르부스는 교탁을 양 손으로 짚은 채 몰래 기지개를 켜며 물었다. 그는 학생의 이름을 기억했다.



아직은 닥터 그란 아르부스라고 불리우는 것이 더 익숙할 때, 그는 학생식당을 지나쳐 걷다가 몰락한 귀족 가문인 카이노크 가문의 외아들에 대한 대화를 들었다.



갈색 머리 여학생과 대화를 나누던 에멘탈이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페어딘이라고?!'

'쉿!'



갈색 머리 여학생이 에멘탈의 팔뚝을 때렸다. 그란 아르부스는 그제야 그들을 돌아보았다.



'어, 교수님 안녕하세요!'



갈색 머리 여학생, 마륀이 반갑게 인사했다. 그란 아르부스는 미소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미쳤다 교수님 졸라 멋있어!' 마륀이 에멘탈에게 숨 넘어가는 목소리로 말하는 것을 닥터 그란 아르부스는 희미하게 들었다. 그는 약간 빠른 걸음으로 도망쳤다.



"자신의 앞에 나타난 것을 피하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닥터 그란 아르부스는 교탁 끝을 바라보았다. '농담을 할까? 저처럼 됩니다... 라고?' 그는 머리를 흔들었다. 그건 지금 학구열에 불타는 페어딘 카녹 학생을 모욕하는, 재미 없는 농담이 될 것 같았다.



그란 아르부스는 코로 숨을 조용히 몰아쉰 뒤 말했다.



"일종의 긴 농담이 될 것 같습니다만, 듣고 싶으신가요?"



페어딘을 비롯한 몇몇 학생들이 세차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 때, 수업을 마치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쉽지만 그건 다음 수업 시간에 이야기하도록 하지요."



프로페세 그란 아르부스는 두꺼운 책을 덮으며 말했다. 아쉬워하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교실 가득 울려 퍼졌다. 잠에서 깨어난 학생들의 하품소리와 함께.


/


"죽여버릴거다."



젊은 남작, 페어딘 카녹은 중얼거렸다. 그는 검술 상대인 시종의 어깨 옷자락을 절묘하게 베어냈다.



"라나 에이블리아."



페어딘은 이를 갈며 시종 풀리만의 가슴팍으로 검을 찔렀다.

시종 풀리만은 뒤로 나자빠졌다. 흙먼지에 뒤덮인 풀리만은 여기저기 베여서 누더기가 된 블라우스를 손가락으로 감쌌다.



"주인님, 이제, 이제, 그만하시면 안 될까요?"



"일어나라."



"제발 자비를 베풀어 주십쇼, 주인님..."



페어딘이 검을 내팽개친 뒤 시종 풀리만의 턱을 손가락으로 살짝 들어올렸다. 풀리만은 겁에 질린 눈빛으로 찢어진 옷자락 사이 사이의 살들을 손가락으로 더듬거리며 가렸다. 그의 옆에 두 개의 검이 나뒹굴었다.



페어딘 남작은 아랑곳하지 않고 거칠게 시종의 두 손목을 붙잡고 양 옆으로 벌렸다. 그는 이곳저곳 찢어진 시종 풀리만의 옷자락 사이의 살을 들여다보았다.



"피 난 곳도 없지 않느냐?"



"너무 무섭습니다요, 주인님. 오늘은 진짜 다칠 것 같단 말입니다요."



"천박한 녀석이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냐?"



젊은 남작 페어딘은 격분해서 시종 풀리만의 옷을 붙잡고 양 옆으로 찢어버렸다.

시종 풀리만의 얼굴이 붉어져 찢어진 옷을 얼싸안고 거의 엉금엉금 기었다. 시종의 처참한 모습을 본 페어딘 남작은 화가 조금 누그러지는 것을 느꼈다.



페어딘 남작은 자신의 흰 술이 달린 남색 재킷을 벗어서 시종 풀리만에게 던져주듯이 덮어주었다. 시종은 납작 엎드렸다.



"천박하게 굴지 마라. 그 계집애처럼."



"알겠습니다요. 알겠습니다요."



시종 풀리만은 굽실거리며 페어딘 남작의 옷을 꼬옥 쥐었다.

젊은 남작 페어딘은 검은색 가죽 서스펜더로 갈색 코듀로이 바지를 고정시킨 화려한 블라우스 차림이었다.



그는 손등으로 머리 위의 땀을 닦았다.



그의 머릿속엔 온통 포셀라 공주의 아름다운 얼굴, 그 차갑고 처연하고 슬픈 얼굴 뿐이었다.

그리고 차마 생각조차도 하기 싫은.

그 새하얗고 고결한 손바닥에 잔뜩 박힌 유리 조각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페어딘 남작은 격분해서 짚으로 만들어진 정원의 허수아비를 주먹으로 내질렀다.



허수아비의 목이 뚝 꺾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라나 에이블리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를 성실하게 못하는 이유에 대하여 22.02.18 20 0 -
공지 팬아트(?)를 지인에게 받았습니다. 22.02.18 16 0 -
공지 100화까지 달려보겠습니다. 21.12.30 29 0 -
20 생존자들 1 22.03.10 21 0 8쪽
19 이중 국적자 22.02.23 23 0 4쪽
» 페어딘 카녹의 분노 22.02.14 35 0 6쪽
17 브륀.K에서 22.02.13 27 0 2쪽
16 롬 플루셰 (외전) 22.02.06 27 0 5쪽
15 쿤델라 왕국으로 4 (完) 22.02.04 31 1 4쪽
14 쿤델라 왕국으로 3 22.01.12 33 0 4쪽
13 쿤델라 왕국으로 2 21.05.27 39 1 7쪽
12 쿤델라 왕국으로 1 21.05.25 45 1 8쪽
11 아우랭의 너도밤나무 3 (完) 21.05.20 42 1 3쪽
10 아우랭의 너도밤나무 2 +3 21.05.18 63 3 8쪽
9 아우랭의 너도밤나무 1 +5 21.05.17 64 3 4쪽
8 꿈의 논리 +2 21.05.17 56 3 5쪽
7 그들은 결코 스킨쉽을 하지 않는다 21.05.17 43 2 6쪽
6 마녀에 대한 편견 21.05.17 39 2 4쪽
5 첫 번째 몬스터 21.05.17 41 2 3쪽
4 콜리나들과 성수 21.05.17 50 2 4쪽
3 모험의 시작 21.05.17 56 2 4쪽
2 꿈시녀 반대론자들 21.05.17 62 3 7쪽
1 내가 공주였다고? +2 21.05.17 154 3 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