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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나 에이블리아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로맨스

hildegard
작품등록일 :
2021.05.17 21:03
최근연재일 :
2022.03.10 22:56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959
추천수 :
29
글자수 :
42,532

작성
21.05.17 21:26
조회
62
추천
3
글자
7쪽

꿈시녀 반대론자들

DUMMY

"더럽게 질기네."


라나는 권총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크림슨 표범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라나는 쓰러진 크림슨 표범의 배를 갈라, 그 속에서 흑적색 마노석을 꺼냈다.


그녀는 피를 바지에 슥슥 닦고, 마노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정도면 90엔카는 받겠지."


라나의 머릿속에서 주판알이 굴러갔다.


가짜 성수를 팔아서 모아 둔 돈 950엔카,

어머니가 물려주신 민트색 드레스 200엔카,

로스나목으로 만든 침대와 협탁, 150엔카,

울프목 식탁, 의자 세트 300엔카,


그리고, 쿠리에이리의 오두막집이 팔린다면ㅡ,


5000엔카.


...


총 6690엔카.


'여비로 충분하려나...'


...


'너무 적은가?'


라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그래도 물건과 집처리를 뒤탈없이 해줄 수 있는 건 샘 할아버지 뿐이야. 집을 내놓는 벽보라도 붙였다간 바로 행정국장에게 의심을 사고 말 테지.'


크림슨 토끼 한 마리가 풀숲에서 뛰쳐나왔다.

라나는 망설임없이 토끼를 권총으로 쏘았다. 토끼는 맥없이 쓰러졌다.


라나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도망쳐야 돼. 절대 <꿈시녀>는 될 수 없어."


꿈시녀.


꿈시녀라는 직종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국가적으로도 의견이 분분했고, 악명 또한 그만큼이나 높았다.


꿈시녀란, 브리엔카 왕궁의 공주, 포셀라의 악몽을 현실에서 겪어주는 시녀를 뜻한다.


외국인에 대해서 아주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나라인 브리엔카는 꿈해석학이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왕국으로 유명했다.


이것은 포셀라 공주의 정치적 업적이기도 했다.


브리엔카의 점성술사, 마녀, 마법사, 심리학자, 영성학자, 종교인들, 의사 등등ㅡ,


그들이 공동연구를 바탕으로 포셀라가 선언한 명제는


'꿈은 현실이다.' 였다.


이 말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설명할 날이 오겠지만.


아무튼 말이 좋아서 <꿈시녀>지, 실제로는 온갖 하드코어한 일을 포셀라의 악몽을 핑계로 대신 겪어주는 배우ㅡ


아니, 노예나 다름없었다.


브리엔카 왕궁의 공주, 포셀라는 꿈해석학의 연구 결과에 따라


전생, 즉 '아주 깊은 차원의 꿈'이


자신과 같은 '공주'였던 성인 여성들을 10년에 한 번씩 왕궁으로 불러들였다.

물론, 꿈시녀 일을 시키기 위해서.


그리고ㅡ...


바로 3일 후가 10년차가 되는 날이었다.


라나는 원래 특별히 '꿈시녀 반대론자'는 아니었다.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10일 전, 그러니까 쿠리에이리 마을의 점성술사에게서 자신의 전생이 '공주'였다는 말을 들은 후로는,


그리고 막시무스에게서도 같은 말을 들은 이 시점에는 더더욱...


"꿈시녀 반대론자가 안 되는 게 이상하지!"


라나는 소리를 질렀다.


숲의 짙푸른 녹음 사이로 신성한 새 한마리가 오오라처럼 날아올랐다.



* * *



흑요석을 새긴 듯한 검은 눈동자, 금빛으로 빛나는 엷은 눈썹.


쿠리에이리에서, 아니, 얀델을 통틀어서 가장 흰 피부.

라나 에이블리아는 달팽이 모양으로 묶은 머리를 풀어헤쳤다. 금발머리가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며 어깨와 가슴께에서 물결쳤다.


흔치 않았다. '금발의 검은 눈동자'는.


라나 에이블리아는 침대로 몸을 던졌다. 흐느낌이 터져 나왔다.

라나는 자신이 왜 우는지 몰랐다. 그저... 서러울 뿐이었다.


그때였다. 파올로가 찾아온 것은.


열려있는 문 앞에서, 문턱에 조심스럽게 한쪽 발코를 올린 채 파올로는 서 있었다.


그는 조용히 라나의 이름을 불렀다.


"라나."


파올로의 생김새는 정확히 라나와 반대였다.


가장 짙은 흑청을 칠한 듯, 검은 밤까마귀같은 중단발 머리카락.

묘안석을 박아 넣은 듯, 빛나는 금빛의 눈동자.


그 또한 흔치 않았다. '흑발의 금빛 눈동자'는.


파올로는 호기심 많은 고양이처럼 커다란 눈동자에 커다란 동공을 가지고 있었으나, 눈꼬리는 고양이라면 흔히 그렇듯이, 마냥 쳐져있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독수리처럼 눈매가 매섭게 올라간 것도 아니었다.


"라나... 들었어. 네가..."


파올로는 잠깐 망설였다.


"막시무스에게 다녀왔다는 말을."


라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아니, 그 전에 막시무스를 네가 어떻게 알아?"


"바보."


파올로가 다정하게 말하며, 겨우 흐느낌을 그친, 그러나 검은 두 눈에서 여전히 눈물이 쏟아지고 있는 라나 옆에 앉았다.


침대는 딱딱했다.


'안쓰럽게도ㅡ,' 파올로는 속으로 생각했다.


금발의 검은 눈동자가 불길하다는 속설이 지배적일 때, 라나는 부모로부터 버림받았다.


라나의 부모는 라나가 조금 자랐을 때, 그러니까 라나가 8살이 되던 해, 라나를 바로 이 쿠리에이리 마을에 버렸다.


ㅡ라나는 몰랐다. 부모가 자신을 버린 것이라는 걸.


그녀는 아직까지도 라나의 부모가 그녀를 버리면서 했던 말, '사냥꾼 훈련'이라는 말을 믿고 있다.


그 말을 믿은 덕분에 라나가 쿠리에이리 마을에서 두 번째로 손꼽히는 사냥꾼이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ㅡ,


그러나 모든 사실들을 알고 있는 동갑내기 파올로는 라나가 안쓰러울 뿐이었다.


파올로, 그는 마을에서 첫 번째로 손꼽히는 사냥꾼이다.


파올로는 일류 사냥꾼 중에서도 제일 가는 사냥꾼 답게 입이 무거웠다.

그는 모든 것을 보고 듣고 생각했지만, 결코 수다를 떨다가 말 실수를 하는 일이 없었다.


라나는 그와 반대였다. 라나는 종종 파올로에게 시비를 걸었다.


"내가 진심으로 사냥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첫 번째로 손꼽히는 사냥꾼은 나야." 라거나

(그녀는 누구보다도 사냥에 대해서 진심이었다)

"쿠리에이리 사냥꾼 협회에서 인정한 1등 사냥꾼이라니. 협회도 썩었네." 라거나.


라나가 온갖 억지를 쓰고 시비를 걸어도 조용히 웃으며 들어주던 파올로였다.


흑발의 파올로.


금안의 파올로.


...라나는 몰랐다.

파올로에 대한 열등감은, 그녀가 파올로를 좋아한다는 뜻이라는 것을.


"사냥 외에는 그 무엇에도 관심 없는 건 여전하구나.

막시무스는 내 친형이잖아. 라나."


"뭐? 그럼 내 전생에 대해서도... 막시무스가 말했어?"


"넌 정말 바보구나."


파올로가 미소지었다.


라나는 눈물을 닦고 벽을 보며 팔꿈치를 괸 채 모로 누웠다.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겠다는 듯이.


파올로는 평소대로 돌아온 라나의 모습을 보며 그녀가 마음이 편해졌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는 라나를 달래는 법을 알았다.


라나에게는 그 어떤 다독임도 많은 말도 필요없다.


가까이 있어주는 것. 조금 가까이에 앉아있는 것. 다만 그 뿐.


라나를 달래는 임무를 마친 파올로는 그녀에게서 떨어진 곳ㅡ, 침대에서 의자로 자리를 옮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파올로의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라나의 체취, 살 냄새가 불현듯 그의 코끝을 붙잡았기 때문일까?

라나의 물결치는 금발머리가 그의 두 눈을 붙들었기 때문일까.


그러나 파올로는 언제나처럼 침대에서 일어섰다.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을 말했다.


"나랑 떠나자."


라나가 놀란 눈으로 뒤돌아 파올로를 쳐다보았다.


파올로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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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쿤델라 왕국으로 4 (完) 22.02.04 31 1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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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쿤델라 왕국으로 2 21.05.27 39 1 7쪽
12 쿤델라 왕국으로 1 21.05.25 45 1 8쪽
11 아우랭의 너도밤나무 3 (完) 21.05.20 42 1 3쪽
10 아우랭의 너도밤나무 2 +3 21.05.18 63 3 8쪽
9 아우랭의 너도밤나무 1 +5 21.05.17 64 3 4쪽
8 꿈의 논리 +2 21.05.17 56 3 5쪽
7 그들은 결코 스킨쉽을 하지 않는다 21.05.17 43 2 6쪽
6 마녀에 대한 편견 21.05.17 39 2 4쪽
5 첫 번째 몬스터 21.05.17 41 2 3쪽
4 콜리나들과 성수 21.05.17 50 2 4쪽
3 모험의 시작 21.05.17 56 2 4쪽
» 꿈시녀 반대론자들 21.05.17 63 3 7쪽
1 내가 공주였다고? +2 21.05.17 154 3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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