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 국적자
이중 국적자의 정체는 베일에 싸여 있지만, 우리는 그 베일을 벗길 수도 있다. 혹시 당신은 주인공 라나의 바로 다음으로 등장한 인물이 기억나는가?
막시무스? 아니다.
이중 국적자. 그는 라나가 귀 옆으로 단도를 던진 바로 그 '행인'의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다.
라나 못지않게 괴팍한 성격인 그 행인. 길 가다가 난데없이 칼을 맞을뻔 한 행인.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려고 이러는 거여! 미친 새끼덜...'
울프 마을 게시판에 꽂힌 현상수배범들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리는 그의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임시로 그를 O라고 부르도록 하자.
O는 롬 플루셰의 아버지일 것 같기도 하지만, 안타깝게도 롬 플루셰의 아버지는 아니다.
그에게는 외아들인 이중 국적자 아들 하나 뿐이다.
'뻑ㅡ'
O는 자신의 아들의 뺨을 주먹으로 갈겼다. O가 라나에게서 칼을 맞을 뻔 하기 10일 전의 일이다.
"야이 미친노무 새끼야. 내가 니를 어떻게 키웠는데 이 쌍노무 자식..."
O의 아들ㅡ그러니까 이중 국적자, 그를 주니어 O라고 부르자. (이중 국적자 본인은 싫어하겠지만.) 주니어 O는 손에 이민 허가서를 쥐고 있었다.
주니어 O는 묵묵부답이었다. 주니어 O의 머릿속에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철없는 말대꾸, 브리엔카 시민은 외국에서 난민이나 다름 없다는 말이 떠올랐지만, 뺨을 맞은 자리가 얼얼해오는 것을 느끼고 격분하여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이 쌍노무 새끼. 우리가 응? 좌천당한 귀족이라 해도 인마, 우리도 음ㅡ여니 국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던 어? 브륀케이 어? 브륀케이의 귀족 가문 그 뭐시기였는데 이 새끼야, 아무리 여그서 우리가 형편이 어렵고 그래도 마. 이민 가면 뭐 다를 거 같아? 그 쿤델라 왕국 그 쌔끼덜은 속이 시ㅡ꺼멓다! 실컷 공부 시켜주고 으이? 대학까지 보내 놨드만 대가리가 이제 커지갖고 하는 말이 새꺄. 망며엉? 뭐 망명하며는 다를 거 같나!"
주니어 O의 입술이 씰룩였다.
'망명이 아니라 이민이라고요...'
주니어 O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O는 제 아들의 머리에 꿀밤을 먹이며 말을 이었다.
"야 쌍노무 새꺄. 망명이고 이민이고 이 새꺄. 이 오라질 놈의 새끼야. 이 씨펄놈아... 에라이 씨팔!"
O는 차마 말을 더 잇지 못하고 먼 산을 바라보며 눈물을 감췄다. O는 분개한 채로 자신의 아주 좁고 작은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았다.
주니어 O는 아버지의 어깨가 이상하게 아주 조그맣게 보인다고 생각했으나, 아버지가 눈물을 흘릴 뻔 한 것은 눈치채지 못했다.
주니어 O는 이민 허가서 뒷장을 꺼냈다. 거기에는 O의 이민 허가서에 찍힌 쿤델라 왕국의 도장이 있었다.
'...애국심...'
주니어 O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는 제 이민 허가서를 품에 넣은 뒤, 아버지 이름으로 대리 승인을 받은 이민 허가서 뒷면에 편지를 쓸 요량으로 깃펜을 잉크병에서 꺼냈다.
잠시 망설이던 그는 다시 깃펜을 잉크병에 또그랑, 넣었다.
주니어 O는 두 손으로 이마를 감쌌다. 아버지가 들어가신 문 너머는 잠잠했다.
행인이었던 O. 그는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아들에게 버림받았다는 절망감에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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