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랭의 너도밤나무 1
♬ 당신이 떠난다면 못 말려요
내가 당신을 어쩔 수 있나요? 내가 그럴 수 있나요?
제발 그런 표정으로 바라보진 말아줘
서툰 연기는 그만둬요 당신, 서툰 연기는 이제 그만둬 ♪
이른 저녁, 주점에는 흥겨운 음악이 한창 흐르고 있었다. 손님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소리, 코가 빨간 취객이 거칠게 일어나는 바람에 의자가 쿠당탕탕 넘어지는 소리.
붉은 머리 청년 페트로는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닦아가며 맥주잔들을 담은 쟁반을 나르고 있었다.
"페트로!"
♪ 사랑했다는 그따위 말일랑 집어치워요, 몬 아무르 ♬
"뭐라고요? 아 사장님, 음악 소리 좀 줄여요!"
페트로가 맥주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크게 소리쳤다.
아우랭 마을의 유일한 주점인 이곳, <너도밤나무>에는 언제나 손님들로 북적였다.
검은 긴 머리를 꽁지머리로 묶고, 은테 안경을 쓴 채로 책을 읽고 있는 사장은 페트로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사장님!"
그제야 너도밤나무의 사장, 에른하르트는 가볍게 인상을 찡그리며 음악 볼륨을 낮췄다.
"저렇게 시끄럽게 음악을 틀어놓고 책은 어떻게 읽는 거야?"
"페트로 오빠아ㅡ"
투덜거리던 페트로에게 옅은 분홍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한 여자가 뒤에서 몰래 다가가 팔짱을 꼈다. 놀란 페트로는 쟁반을 놓치고 말았다.
'쿠당탕탕!'
맥주가 바닥에 쏟아지고 깨진 유리조각이 나뒹굴었다. 페트로는 벌컥 화를 내며 뒤를 돌아보았다.
"에이미!"
에이미라고 불린 분홍머리 소녀, 아니, 여자는 금세 눈망울이 그렁그렁해졌다.
"에이미가, 에이미가 미안해 페트로 오빠아ㅡ"
페트로는 한숨을 쉬었다.
"그치마안ㅡ 에이미는 내일 쿤델라로 떠나니까아, 페트로 오빠가 용서해줘어!"
"뭐라구?"
사장 에른하르트가 읽던 책을 덮고 일어섰다. '에이미 때문에 책을 읽는 척 하던 거였군.' 페트로가 한심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에른하르트를 바라보았다.
'40살 남자와 19살 여자아이라...'
"에른하르트는 몰라도 돼요~"
에이미가 혀를 낼름 내밀었다. 사장은 에이미의 눈을 피하면서 말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페트로도 쿤델라로 휴가를 보낼까 싶었는데..."
"정말?! 꺄아ㅡ 페트로 오빠!"
에이미가 방방 뛰면서 유리조각을 줍고 있는 페트로를 얼싸안았다.
"그런데 우리 가게는 페트로 없으면 일을 못하니까... 그 참에 나도 쿤델라로... 다 같이 휴가를..."
뒤이어 중얼거린 에른하르트의 말은 아무도 듣지 못했다.
페트로는 자신의 허리를 껴안고 있는 에이미에도 불구하고 묵묵하게(그러나 짜증나는 표정으로) 유리조각들을 치웠다.
그가 마지막 유리조각을 주워들었을 때였다.
'딸랑ㅡ'
페트로가 쥔 유리조각 너머로 비쳐보이는 아주 새까만 중단발 머리.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 보는 눈부신 금발머리.
라나를 본 페트로는 저도 모르게 들고 있던 유리조각을 떨어뜨렸다. 그는 넋나간 표정으로 여자를 바라보았다.
'세상에, 저렇게 아름다운 여자가 있다고?'
페트로의 머릿속을 스친 한 마디 말이었다.
자세히 보니 새까만 중단발 머리의 남자도, 대단한 미남자였다. 비록 냉정하기 그지없는 인상이긴 했지만.
시크한 표정의 미남자와, 아름다운 금발머리의 여자. 페트로는 그들이 아우랭 마을 사람이 아님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파올로와 라나는 자리에 앉았다. 등받이가 벽면에 붙은 쪽은 파올로가 앉고, 라나는 페트로와 등진 채 간이의자에 앉았다.
♬ 하지만 기억해요. 나는 당신만을 사랑했다는 것을ㅡ ♪
페트로와 파올로가 눈이 마주치는 순간, 페트로는 퍼뜩 놀라 정신을 차렸다.
"에이미가 유리조각 버릴게. 페트로 오빠는 주문 받아!"
유리조각들이 올려진 쟁반을 냉큼 빼앗는 에이미.
에이미는 라나의 뒷모습을 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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