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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치 님의 서재입니다.

변신한 짐승이 당신 옆사람이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신성치
작품등록일 :
2023.12.26 13:10
최근연재일 :
2024.05.11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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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3,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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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9 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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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아이 없는 숨바꼭질

DUMMY

“아니, 나도 이 지구에서 나아가 우주 안에서 호흡하는 생명체이자 일부인 동시에 소우주인데··· 이 광대한 공간이 맑고 투명하기를 바라는 것이···”


순수한 관심이 아닌데 갖다 붙이려다가 말을 너무 키우고 있었다.

미랑을 실망시키기 싫어서···라기보다는, 우쭐한 거다. 남편의 뜻밖의 결심에 마누라가 감탄하는 것 같으니까 금방 들뜬 건데··· 이토록 거창해지면 어찌 수습하겠다는 거냐? 지주성아···


“주성 씨가 중간자들 도우려는 건 알지만 환경에까지 관심이 많은 줄은 몰랐어. 놀랐어요.”

“아니···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는 거야말로 자연스러운 일이고요. 그린 플리즈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완벽하게 순수한 건 아니에요.”


너무 친환경적으로 오버하는 건 의심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겸손 모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좀 현실적인 이유를 대는 게 설득력 있다고 판단했다.


“어떤 건데요? 또 다른 이유는?”

“사회 단체 경험이 도움이 될 수도 있어요. 강력범죄라고 해서 다 조폭, 주정뱅이, 약쟁이들이 저지르는 게 아니니까. 각계 각층의 생각 차이, 갈등, 그리고 경찰서 말고 다른 조직체계 같은 것도 경험하면 좋죠.”

“주성 씨. 고위직을 목표로 인생의 큰 그림을 그리는 거야?”

또 의외의 면을 봤다는 표정으로 미랑이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얼마 전에 해제된 그린벨트 구역 건설 자격을 따낸 사업자가 실종된 사건이 있었어요.”

“어머, 그런 게 있었나···”

미랑은 모를 만도 했다. 지난 몇 달 동안 너무나 엄청난 사건들에 휘말렸으니까.


“환경 관련해서도 갈등들이 많이 생기니까 환경 단체에 있어보면 문제 파악이 잘 되겠죠. 그리고 그린 플리즈 같은 좋은 취지의 단체에 불순한 놈들이 침입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 건 또 내가 잘 알아 보니까.”

마지막 말은 조만간 미랑에게 할 말들의 복선 같은 거였다. 노보형 등 악당 중간자들의 그린 플리즈 활동 실태를 파악하면 미랑에게 알려줘야 할 테니까.


미랑은 내가 둘러댄 그린 플리즈 가입 목적을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절실한 환경 사랑 하나만으로 환경 운동에 뛰어든 게 아니라고 실망한 건 절대 아니었다.


남편의 선택을 좋게 본 덕인지 그 밤에는 내 츄리닝 바지 안의 감지기가 울리지 않았다. 버릇처럼 내가 새벽에 깨긴 했지만, 이를 가는 털북숭이를 목격하지는 않았다.

오랜만에 깊이 잠든 여인의 모습만을 확인했다.



“바빴을 텐데. 주변을 꼼꼼히 체크했네요.”

일주일이 지나 만난 멀더는 나를 칭찬했다.


“그냥 산책 삼아 좀 돌아다녔습니다.”

내가 머쓱해 하자 스컬리는 감지기의 성능을 칭찬했다.

“작동이 잘 됐네요. 지형사 주변 상가에 우리가 파악하고 있던 중간자는 하나였어요. 두바이 부동산.”

“아··· 그럼 얘가 진짜 확실한 거네요.”


나는 테이블에 올려놓은 감지기를 기특한 자식인 것처럼 내려다 보며 말했다.

“그런데, 그 부동산 아저씨는 뭐 출신인 거죠?”

“애니맨 센서가 아직 거기까진 못 알려주죠.”

“곧 가능해질 겁니다. 우리 연구팀 수준은 세계 최고 수준인데 미국쪽하고 합동 연구까지 하거든요.”


멀더와 스컬리는 탁구 복식조처럼 번갈아 가며 내용을 나누어 말했다. 우리집에서 옥,희가 하는 것처럼.

“두바이 사장은 멧돼지 출신이었어요.”

“식욕이 무지하게 강한 놈이었죠.”

“원 없이 먹을 수 있는 게 부러워서 인간으로 변신했죠.”


음··· 이들의 정보력은 김반장님보다 훨씬 뛰어난 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멀더가 기술력까지 발휘하려고 했다. 그는 가져 온 가방에서 드라이버와 닮은 작은 공구를 꺼내서 땀을 삘삘 흘리면서 감지기의 뚜껑을 열었다.


스컬리와 나는 잔뜩 긴장해서 어설픈 기술력을 발휘하는 멀더를 한참 동안 지켜봤다. 저러다 눈물이라도 흘리는 거 아냐, 걱정할 즈음에 뚜껑이 열린 거였다.

그리고 멀더는 손톱의 4분의 1크기쯤 되는 칩을 교체했다.


“아예 새 기계로 교체해 주면 피차 편하긴 할 텐데···”

“지금은 테스트 중인 애니맨 센서 자체가 워낙 귀한 거여서요.”

“그렇군요. 그런데 뭘 하신 거죠?”

“탐지 범위를 넓힐 수 있는 칩을 넣었어요. 갓 개발된 따끈따근한 놈이죠.”

“기존 칩이 5미터 거리까지 인식했지만 이건 10미터까지 가능해요. 콘크리트 벽으로 막혀 있는 경우에도 5미터 인식은 가능하고요.”

“와우! 대단한 업그레이드네요.”


내가 인정해주자 멀더는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다. 마치 자기가 칩을 개발이라도 한 것처럼. 그 미소가 채 사라지기 전에 스컬리가 내 할 일을 말했다.

“지형사는 이제 업그레이드된 감지기를 가지고 그린 플리즈에 들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토요일에 나는 그린 플리즈 본부에 온 거다.

환경을 사랑하는 시민으로서 회원 가입을 하기 위해서. 주중에 열심히 일하고 주말에 환경 운동을 하는 부지런하게 깨어있는 사회인으로 변신한 거다.


“경찰이시네요. 형사신가요?”

“네.”

가입 원서를 받은 담당자는 호기심어린 눈으로 나를 봤다.


“회원 중에 형사분은 드문데··· 실례지만 어디 근무하세요?”

“삼각산 경찰섭니다.”

“어, 거기 알아요. 지난번 기도원 납치 사건 해결한 분들이잖아요.”

솔직히 그 순간 좀 으쓱했다. 누가 알아주는 게 좋긴 좋은가 보다.


“예··· 뭐 우리 서에서 하긴 했죠. 경찰이 다 하는 일이지만···”

“늑대를 훈련시켜서 사람을 공격하다니··· 참 나쁜 쪽으로 대단한 놈들이었어요.”


뉴스를 접한 사람이라면 잊기 힘든 사건이었다. 환경 단체 사람들은 특히 그렇겠지.

그리고 이 담당자는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였을 거다. 왜 그렇게 생각했냐고? 내 주머니에서 감지기가 확실하게 진동했기 때문이지. 이 그린 플리즈 아저씨가 나타나자마자.


“그 늑대 밀매한 놈들 수사한다고 뉴스에서 본 거 같은데 어떻게 됐죠?”

녹지 보존팀장을 맡고 있다는 중년 사내 황대호는 궁금한 게 많았다. 그렇지만 나는 사실을 말해줄 수 없었다.

정체가 불분명한 중간자에게 말하는 건 특히 위험할 수 있었다.


“지금 수사중입니다. 아직은 확실하지가 않아서요.”

“아··· 예···”

황대호는 아쉬움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듣기 좋은 빈말로 이야기를 얼버무렸다.


“확실한 결론이 나면 어떻게 된 건지 알려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경찰분들하고 우리 단체가 콜라보가 되면 시너지가 많이 날 거라 기대가 되네요.”


그리고 그는 자연환경이 인간의 정서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 자연 체험이 불량 청소년들의 교화에 얼마나 효과적인지 조근조근 설명했다. 환경을 해치는 범죄의 폐해에 대한 경찰의 인식이 깊어진다면 환경 운동에 큰 도움이 될 거라는 희망도 밝혔다.


“삼각산 경찰서는 국립공원이랑 가까우니까 진짜 서로 도움 될 게 많을 거예요.”

환하게 웃으며 말하는 그는 환경 운동에 진심인 것 같았다.

큰 덩치와 우락부락한 인상에 비해 음성은 나긋나긋하고 성품도 매우 친절해 보였다. 하지만··· 경계를 풀 수는 없었다. 나는 일종의 언더커버니까.


황대호는 나를 데리고 다니면서 그린 플리즈 건물 내부를 견학시켜 줬다.

그를 따라다니면서 느낀 첫 번째는··· 이 안에 중간자들이 겁나 많다는 거였다. 삐딱하게 말한다면 환경 지키미로 위장한 짐승들의 소굴이었다.


황대호를 따라다니면서 진동이 울린 것만 열 번이 넘었다. 최소 열 명 이상의 중간자와 이 건물 안에서 마주쳤다는 얘기다.

들여다 본 방 중에 중간자 신호가 없었던 곳이 드물 정도였다.


‘노보형 같은 놈들일 수도 있어.’

그린 플리즈를 악당 중간자 아지트로 보고 있는 멀더와 스컬리의 견해가 맞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당장 이 건물의 감춰진 곳을 수색해 보고 싶었다.


황대호를 따라 실험실을 구경할 때 강한 진동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수질과 토양 등을 분석하고 환경 평가를 위한 다양한 실험을 하는 공간 안에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도 다른 장소에서보다 훨씬 세게 감지기가 떨어댔다. 이러다 바지 주머니를 뚫고 진동벨 닮은 물건이 튀어나오는 게 아닐까 걱정할 정도였다.


‘이 근처에 분명 뭔가 있어. 나한테 소개하지 않은, 중간자들이 모여 있는 비밀 공간이 있을 거야.’

꼭 오늘 찾아내야 하는 건 아닌데 한시가 급한 것처럼 초조해졌다. 용솟음치는 궁금증이 얼른 수색하라고 나를 재촉하고 있었다.


‘어떻게 황대호를 따돌리고 혼자서 건물을 뒤지지?’

나는 조바심을 내면서 황대호의 눈치를 봤다. 그 마음을 알았는지 그는 나에게 기회를 제공했다. 시청각실로 나를 데려가서 그린 플리즈의 역사와 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다큐멘터리를 시청하게 한 거다.


어두운 시청각실 안에는 나 같은 신규 회원 서너 명이 먼저 와 있었다. 그들은 중간자는 아니었다. 내 바지 주머니가 진동하지 않았으니까.


황대호가 자리를 뜨고 다른 회원들이 화면에 집중하기 시작할 때 소리 없이 시청각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아래층으로 내려와 실험실로 들어갔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감지기는 진동하고 있었다.


나는 감지기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진동의 강약 변화를 헤아리면서 신호가 오는 방향을 찾았다.

그리고 창고처럼 쓰이는 실험 준비실로 들어갔다. 한쪽 벽의 책꽂이 뒤쪽에서 중간자 신호가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주변을 살폈다. 아지트를 발견하는 것보다 내가 들키지 않는 게 우선이니까.


‘책장 뒤 벽 너머에 지금 중간자들이 모여 있다. 책장이 출입문으로 쓰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딘가 문을 여는 스위치가 있을 거다.’

책들을 조심스럽게 치우면서 개폐장치를 찾았다.


10초쯤 지났을까, 벽 뒤에서 말소리와 발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황급히 주변을 둘러봤다.

학생 시절에 교실 뒤에 있던 청소도구함 비슷한 커다란 나무박스가 있었다.


미랑의 방에서 옥,희를 피해 옷장에 숨었을 때처럼 신속하게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그리고 문틈으로 대여섯 명의 중간자가 미닫이 문처럼 옆으로 열린 책장 뒤에서 나오는 것을 확인했다.


‘우우웅~’ 주머니에서 감지기가 미친 듯이 진동했다. 바로 앞을 여러 중간자가 지나가니까.

나는 나무문이 열릴까 조심하면서 손으로 바지 주머니를 덮었다. 소리가 새나가는 걸 막아야 하니까. 감지기 자체가 튀어 나갈 것만 같이 긴장되니까.


“뭔 소리 안나?”

“누구 핸드폰이야?”

“밖에서 나는 소리 같은데···”


잔뜩 긴장한 몸은 딱딱하게 굳는 것 같았고, 이마와 뒷목에는 식은 땀이 흘렀다.

다행히도 중간자들은 잔뜩 긴장한 사내가 옆에 있는 걸 몰랐다. 그들이 실험 준비실 밖으로 나가 발소리가 멀어질 즈음에 굽은 허리를 펴고 웅크린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잦아들던 진동이 다시 강해졌다. 빠른 발걸음이 준비실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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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개를 데리고 걷는 여자 24.04.05 9 2 13쪽
62 축소된 말의 귀 +2 24.04.05 11 3 12쪽
61 밴이 찾아왔다. +1 24.04.03 12 3 12쪽
60 아내가 있는 방 +3 24.04.01 12 3 12쪽
» 아이 없는 숨바꼭질 +2 24.03.29 16 3 12쪽
58 베타 테스트 +4 24.03.27 13 3 12쪽
57 두 개의 그린Green +2 24.03.26 11 4 13쪽
56 아빠의 눈물 +2 24.03.22 18 4 14쪽
55 멀더와 스컬리 +2 24.03.20 12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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