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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치 님의 서재입니다.

변신한 짐승이 당신 옆사람이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신성치
작품등록일 :
2023.12.26 13:10
최근연재일 :
2024.06.13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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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3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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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빛 바랜 컬러 사진

DUMMY

기철이 형은 스피커폰 스위치를 누르고 통화를 시작했다. 네고시에이터 스컬리와.

“이숙현 경감님.”

“백경위님?”

“네. 인질 내 보내겠습니다. 집 정면 담 위에 올려놓은 라이트 끄고, 특공대 담 넘어가서 대기하게 해주세요. 그럼 인질 내보냅니다.”


휴··· 인질을 내보낸다는 말에 붙잡혀 있는 중년 남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한테서도 한숨이 새나왔다. 계속 붙잡고 있을 수 없고 결국 내보내야 되지만, 저들이 나간 다음에는 우리도 거취를 정해야만 한다. 도망칠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면 결국은 제 발로 걸어나가게 되겠지···


“백경위님. 투항은요?”

“쫌 기다려요. 걱정 말고. 돈 달라, 차 달라, 도망갈 길 뚫어달라고 요구 안 할 거니까.”

“안 나오고 계시다가 그 안에서 위험한 사고라도 당하실까 봐 그러지요.”

스컬리의 음성은 정말 걱정하는 것처럼 들렸다. 저 여자도 나름 연기력이 뛰어나니까.


“우리도 좀 마음 가라앉히고 한 마디씩 마지막 대화라도 해야 될 거 아뇨. 그래야 손 들고 나가도 덜 허무하지.”

“이해가 되네요. 거기까지는.”

“현관 앞 마당에 모닥불 좀 피워놓을 건데 그거 한다고 총 쏘고 그러지 마쇼. 현관 앞 5미터까지도 안 나갈 거니까.”

“캠프 파이어를 하신다? 인질 내보내기 전에?”

“우리끼리 얘기할 시간에 막 들어오실까봐 그럽니다. 약속 지켜주면 모닥불 피우자마자 곧바로 인질 석방입니다.”

“알았습니다. 거기까지 동의.”


비교적 순조로운 합의와 함께 통화는 끝났다. 기철이 형은 위층을 수색중인 두더지 총각, 미랑, 묘화에게 다급하게 소리쳤다.

“빨리 뒤져봐! 뭐라도 찾아내야 돼! 벽이든 바닥이든 뚫고 들어가든 갉아먹든 빨리 찾아보란 말이야!”


힘이 장사인 강한우가 집안의 식탁과 의자 등 나무로 된 물건들을 부숴서 땔감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키친 타올에 식용유를 발라서 공처럼 뭉쳐 놨다. 그것들을 강한우가 나랑 같이 현관 앞 양쪽에 쌓아놓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조금 뒤쪽에 엘피 가스통을 굴려놨다.

졸지에 인질범 대장이 돼 버린 기철이 형은 초조하게 수색과 방어 작업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게 특공대 진입을 막는 데 도움이 될까요?”

내 질문에 기철이 형은 고개를 저었다.

“붙잡혀 가는 시간을 일분이라도 줄여 보자는 것뿐이야. 불 피우고 막을 수 있는 것처럼 겁을 주면 진입이 조금이라도 늦춰지겠지. 특공대나 우리나 다 같은 짭샌데 걔네 화상 입히자는 게 아니잖아.”


역시 그렇지. 내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총을 든 특공대원들이 사살할 마음까지 먹고 덤빈다면 가스통 따위는 소용이 없다. 오히려 우리가 불구덩이를 만드는 것일 뿐이다.


시간을 벌어서 저들이 진입하기 전까지 결과를 찾아내야 된다. 그래서 위층에서는 정신없이 가구들을 뒤집고 장판을 걷어내는 중이었다. 비장의 각오를 하고 결사항전 준비를 한 것처럼 세팅을 마친 다음, 기철이 형은 다시 전화를 걸었다.

“불 다 피웠습니다. 불장난 테스트 딱 한 번만 할게요.”


기철이 형이 신호를 보내서 내가 불길 속으로 부탄가스 통 하나를 던져봤다. 펑! 작은 통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폭발했다.

“오케이. 내보내겠습니다. 대문 열기 싫으니까 맞은 편 담장으로 보낼 겁니다. 그쪽에서 넘어가게 도와주세요.”


우리는 ‘인질 부부’의 신분증 사진을 찍은 다음, 지갑과 휴대폰을 놓아두고 빈 주머니로 나가게 했다.

그들이 마당을 가로질러 담장 앞까지 가자 경찰 특공대원들이 사다리를 내려보내 담장을 넘게 도왔다. 그리고 마당에 있다가 다시 담장을 넘어갔던 특공대원들이 우리를 향해 총을 겨눴다. 차 지붕을 밟고 있거나 소형 사다리차에라도 올라탄 것 같았다.


그뿐이 아니었다.

맞은 편 건물 옥상에 저격수들이 배치된 게 보였다. 총신이 긴 저격용 라이플을 설치한 저격수와 옆에서 야간용 망원경으로 우리 쪽을 보고 있는 부사수가 보였다.

저격수들은 한 조만 있는 게 아니었다. 정면에 더 조, 비스듬한 각도로 현관을 바라보고 있는 그 옆 건물 유리창에도 한 조가 더 있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충분히 우리를 사살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실력도 충분했다. 저들이 명분을 만들고 결심만 한다면 우린 죽은 목숨이란 얘기였다. 한 시가 급했다. 그런데,

“형사님들.”


강한우가 휴대폰 문자를 들여다 보면서 말을 걸었다.

“그린 플리즈 변호사들이 뉴스 보고 이쪽으로 출발했대요. 어쩔 수 없이 투항해야 된다면 정상적인 변호인 입회 허용하라고 요구하죠.”


변호사가 와준다는 건 좋은 얘기였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지만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럽시다. 그 정도 제안은 가능성 있을 거예요.”


작지만 긍정적인 신호가 나온 타이밍에 또 하나! 어쩌면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실마리가 돌출했다.

“형사님! 형사님!”

이번엔 위층의 고함, 두더지 총각이었다.


“뭐가 나왔어요!”

이층, 아들 방으로 꾸며진 방의 장판 밑에 늘어붙은 사진 두 장을 찾아낸 거였다. 찍은 지 십 년이 넘어 보이는 빛 바랜 컬러 사진들!


미소 짓는 백발 노신사를 가운데 두고 그보다 젊어 보이는 두 남자가 경직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티끌 하나 없이 온통 하얀 색인 과학 실험실 같은 곳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노신사의 왼쪽에 있는 자는 우리가 아는 자, 전투력 최강의 중간자인 표범인간이었다.


‘와우! 이건 진짜야! 뭔가 건진 거야!’

장담할 순 없지만 월척을 낚은 거라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일곱 명이 모두 둘러서서 사진을 내려다 봤다.

백발 신사 오른쪽의 또 한 남자는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군살이 전혀 없어 보이는 날씬한 체형에 눈매가 날카로운 중년 사내. 작업복 같은 검은 점퍼에 검은 바지를 입고 있는 남자.


“이 자들을 찾아야 돼. 분명 이 집하고, 중간자 이용해온 테러범들하고 분명히 관계가 있을 거야.”

모두 같은 심정이었다. 겨우 붙잡은 지푸라기가 우리를 구해낼 동앗줄이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심정.


우리는 두 번째, 조금 더 바랜 사진을 들여다 봤다.

이번에는 건물 앞, 길가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건물에는 ‘아이덴바이오IdenBio’라는 회사 간판이 걸려 있었다. 창업 기념식 같은 날 찍은 사진 같았다.


여기도 역시 백발 신사와 같이 검은 옷의 중년 사내가 찍혀 있었다. 멀리 뒤쪽에서 옆모습을 보이고 있는 여자는 작게 찍혀 있었지만 분명 스컬리였다. 그렇다면 이 사진들은 멀더가 찍은 것일 수도 있었다.

‘확실히 관련이 있어. 그리고 이 집에 우리가 온 것도 분명 헛짚은 건 아니었어.’


탕! 타탕!

느닷없는 총성과 함께 우리는 기겁을 하면서 바닥에 엎드렸다.

잠깐의 희망을 덮어버리듯이 어둠이 우리를 덮었다. 저격수들이 저격수들이 이층과 일층 거실의 전등을 정확히 저격해서 박살낸 거였다. 일층 거실의 샹들리에가 한 순간 빛을 흩뿌리며 박살났다. 그리고 곧바로 실내가 암흑에 덮인 거다.


요구조건을 들어줬으니 이제 그만 나오라는 말을 저들은 총탄으로 표현한 거였다.

“나가야겠구만···”

기철이 형이 어둠 속을 더듬어 수화기를 들었다.


“이게 뭐 하는 겁니까?”

“안 나오시고 너무 오래 기별이 없으시길래···”

“나가면? 마당에 나가면 안 쏩니까? 조준사격 하는 거 아니에요?”

“아니요. 방금은 가벼운 경고를 보낸 거라고 이해하세요.”

“좋아. 그럼 우리도 못 나가지. 가 보자고. 씨발, 같이 죽읍시다.”

어지간해서는 욕설을 뱉지 않는 기철이 형도 독기가 올라 있었다.


“진정하세요. 서로 죽이자고 그러는 거 아닙니다. 현실이 어떤지만 알려드린 거예요.”

“여기 만만찮은 거 알잖아. 막바지에 몰려서 악이 받치면 얌전히 있을까? 우리도 날뛰면 경찰 몇은 보낼 수 있잖아. 어떻게 될지 각자 꼴리는 대로 해봅시다.”

“알았어요. 알았어. 총 치울게, 안 쏴요.”

“일단, 저격수들 뺍니다. 그리고 지금쯤 그린 플리즈 변호사들 왔을 거예요. 그 사람들하고 우리, 같이 경찰서 갑니다. 어차피 체포 장면 생방송할 거잖아요. 변호사들 뭉개버리면 그림 안 좋잖아.”


변호사가 정말 왔는지 알아보는 말들, 수화기 저편에서 경찰들끼리 확인하는 문답들이 어렴풋하게 들려왔다.

“맞네. 변호사 왔네요. 좋아요. 인간 피의자 대접합니다. 변호 권리 보장하고요. 그런데, 저격수들 뺀 다음 1분 내에 일곱 마리 전부 안 나오면 집 전체를 벌집으로 만듭니다.”


‘일곱 마리? 저 쌍년이···’

말하는 꼬라지로 봐서 인간 대접 같진 않았다. 하지만 이 정도면 할 수 있는 건 다 한 거였다. 수백만 달러와 헬리콥터를 보내라. 뭐 이런 영화적인 요구는 우리한테 안 맞았으니까.

“오케이. 딜.”


기철이 형은 통화를 마치고서 두더지 총각이 발굴해낸 종이 사진을 휴대폰으로 촬영했다. 사팔 흥신소 소장한테 보내서 사진 속 인물을 찾게 할 거라고 했다.

그 말대로 되면 좋을 거다. 그런데···


“사소장 믿을 수 있을까요?”

“걔 말고 지금 누구한테 보내?”

그 말도 맞았다. 사소장을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했다.


“걔가 마음 약한 데가 있어. 일찍 장가가서 낳은 중딩 딸이 모범생이래.”

모범생?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 와중에 모범생이라니. 아빠의 그늘진 직장생활과는 많이 다르구나.


“사소장이 성범죄 같은 쪽으로는 결백한 친구야.”

“그러면 찔릴 게 별로 없을 텐데···”

“자발적 연기자들의 헐벗은 동영상들은 무지 많이 소장했거든. 그 배우들하고도 매우 친해. 배우들이랑 같이 찍은 사진들도 있어. 근데 그런 취미와 인간관계를 딸한테 알리고 싶진 않은가 봐.”

“그렇겠죠. 그걸로 치사하게 협박을 했단 말이에요?”

“꼭 그것만 있는 건 아니고. 다른 쪽으로는 도청, 감청, 미행 등등 찔릴 만한 불법들이 많은 친구잖아.”


저쪽에서 저격수들을 철수시키고, 그린플리즈 변호사들과 몇 마디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랑 기철이 형은 실없는 소리를 나눴다.

그리고 기철이 형은 사진을 전송한 다음 사소장과 통화를 시도했다. 왠지는 모르지만 받지 않아서 문자를 남겼고.

「사진 속 사람들 누군지 찾아주고 만나서 물어봐줘. 위장종들 어떻게 관리해 왔냐고. 사소장이 나 구해줄 차례야.」


우연히도, 묘하게도, 공교롭게도 그 타이밍에 내 폰이 울렸다.

아버지한테 받아서 갖고 있던 폰으로 전화가 온 거다. 발신 번호는 모르는 휴대폰 번호였다.


“여보세요?”

“바쁘지?”

음성의 주인공은 폰 주인. 아버지였다. 절대 먼저 전화 걸지 않는 가부장께서 친히 아들에게 전화를 하다니···


“네. 존나.”

바쁘니까, 최소한의 음절로 상황을 간결하게 표현하려는 거였는데. 말이 나오는 순간··· 듣는 분과 이런 말을 나눌 사이가 아니란 게 뇌리를 스치긴 했다. 할 수 없지. 뱉었으니.


“뉴스 봤다. 이 번호 외워둬라. 가능할 때 연락해.”

아버지의 대응도 의외였다. 바빠서 그런지 역시 매우 간결했다. 나는 그 폰번을 외웠다. 그리고,


“아, 잠깐요. 기철이 형!”

나는 금방 기철이 형이 문자를 보낸 사소장 폰번을 찍어 보냈다. 우리가 붙잡혀 있을 때 도와줄 사람은 극소수였다. 아버지는 믿을 수 있겠지. 레알 패밀리니까···


“이 번호로 연락해 보세요. 저희 도와주는 친구예요. 그런데···”

인질범 여섯은 다들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나를 봤다. 이 긴급한 순간에 웬 수다냐? 그런 표정. 그래도 꺼낸 말은 끝내야지.


“왜 결심하신 거예요? 술도 끊고.”

“계시다. 꿈에서 너를 도우라더라. 니 엄마가. 그리고··· 나중에 설명하마. 바쁘니까.”

“네. 끊습니다.”


쿨하게 양쪽 전화가 동시에 끊겼다.

뭔지 내용을 잘 모르면서도 조금 우스꽝스러웠나 보다. 기철이 형이 날 보고 피식 웃었다. 나도 공연히 웃음을 흘렸다. 세상 무서울 게 없는 히어로라서가 아니라 웃기라도 해야 될 것 같았다.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희한하게 웃음이 번졌다. 미랑이 미소를 짓자, 묘화도 콧바람을 뿜으며 웃었다. 두더지 총각과 들쥐 아저씨, 강한우까지 어처구니 없어서 슬쩍 웃었다. 서로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그렇게 잠시 웃음을 나눈 다음 우리는 걸어나갔다.


마당에 나서자 마자 탕탕, 총소리가 아니라 라이트가 다시 켜지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캠프 파이어 불길 속에 각자 휴대폰을 던져 넣고 천천히 걸어갔다. 담장 위로 어느새 올라온 텔레비전 카메라도 보였다. 우리는 전국에, 그리고 몇몇 해외 국가에 생중계되면서 체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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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비명을 질러서 혼란이 왔다고? 24.05.30 10 1 12쪽
90 심마니 & 비구니 +2 24.05.28 9 1 13쪽
89 돌아온 비구니 24.05.24 10 1 12쪽
» 빛 바랜 컬러 사진 24.05.23 9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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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너희가 스며든다면 24.05.19 9 1 13쪽
84 Before & After +2 24.05.16 14 1 12쪽
83 머리카락이 보이면 24.05.15 9 1 14쪽
82 공개 난투 24.05.13 8 1 12쪽
81 손톱을 먹은 쥐처럼 24.05.11 11 1 15쪽
80 덫과 구렁 +2 24.05.08 10 1 13쪽
79 숨거나 덤비거나 24.05.07 11 1 12쪽
78 광풍의 시작 24.05.03 11 1 14쪽
77 이종족 색출 24.05.02 11 1 12쪽
76 멸종된 그늘 +2 24.05.01 14 1 13쪽
75 잠들지 않는 밤 24.04.30 12 1 12쪽
74 씹다 멈춘 껌 24.04.26 12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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