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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치 님의 서재입니다.

변신한 짐승이 당신 옆사람이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신성치
작품등록일 :
2023.12.26 13:10
최근연재일 :
2024.06.13 11:35
연재수 :
1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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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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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97,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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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6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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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Before & After

DUMMY

엘비스 프레슬리와 프레디 머큐리가 BTS의 다이너마이트를 부른다.

한 소절씩 번갈아 가면서 박력 있는 음성을 선보이는 록의 전설들! 어둠을 뚫고 솟아오르는 보랏빛 안개에 싸인 것 같은 조명 효과가 더해지면서 홀로그램 영상들은 시각을 현혹시킨다.

세상을 떠난 두 스타가 천국에서 돌아와 육신을 새로 얻은 것만 같다.


음성 역시 마찬가지다. 2020년대 글로벌 아이돌의 히트곡을 세상을 떠난 레전드들이 자신만의 컬러가 분명한 음성으로 소화하고 있다.

청중은 박수와 환호를 보내지는 않는다. 조용히 지켜볼 뿐이다. 하지만 각자 자기 분야에서 아성을 구축하고 있는 실력자 청중들은 영상을 구현해 낸 기술력에 감탄하고 있었다.


엘비스와 프레디가 한국 아이돌 가수처럼 허리 굽혀 정중하게 감사 인사를 하면서 판타지를 현실로 구현해 낸 영상이 끝난다.

짝짝짝짝 요란하지 않지만 진심을 담은 박수 소리가 길게 이어진다.


장내가 살짝 밝아지면서 강단 구석의 진행자에게 핀 조명이 집중된다.

판교의 신축빌딩에 위치한 아이티 기업 주식회사 아이덴바이오 IdenBio의 회의실에서 프레젠테이션이 진행중이다.


음악과 박수가 모두 끝난 회의실 안, 진행자도 시작 타이밍을 보느라 침묵을 지키느라 조용한 가운데 딱, 딱, 딱, 껌 씹는 소리가 들려온다.

회의실 뒤쪽에 앉은 백발 신사가 껌을 씹고 있다. 남산 아래 저택에서 멀더와 스컬리를 조종하던 바로 그 남자다.


그를 잘 모르는 서너 명의 참석자가 눈살을 찌푸리며 돌아보다가 머쓱해서 다시 고개를 돌린다. 나머지 참석자들이 껌 씹는 남자에 대해서 아무런 불만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고, 껌 씹는 남자가 너무도 여유 있고 당당해서다.


진행자도 껌 씹는 남자를 몇몇 참석자가 불편하게 느끼는 걸 인식하지만 미소를 지을 뿐이다. 그가 자기네 회사의 대주주이고, 과거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무시무시한 힘을 행사해 왔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행자는 오히려 껌 씹는 신사의 심기를 살폈다. 몇 사람의 불편한 시선에도 신사의 표정이 편안해 보이자 진행자는 멘트를 시작했다.


“방금 보신 건 매우 고급진 바람잡이 영상이었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분위기를 살짝 띄우는 효과를 노렸고요. 저희 회사의 기술력이 이 정도다 살짝 자랑도 한 겁니다. 그리고, 발달한 테크놀로지가 크나큰 위험이 될 수 있음을 알려주는 티저 영상이기도 했습니다.”


진행자가 리모컨을 누르자 두 번째 영상이 스크린에 떴다. 성형외과의 수술 전 후 사진 같은 일종의 before after 영상이었다.

광대뼈가 두드러지고 얼굴이 커보이는 뚱뚱한 여자가 몇 차례의 변신을 거쳐서 갸름한 얼굴의 미인으로 변신한다. 그 다음에는 체구가 조금 작은 남자가 나온다. 그는 트랜스젠더 수술로 여성의 몸이 된 다음 성형수술을 통해 역시 얼굴 갸름한 미녀가 된다.

두 사람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이 두 사람을 외모만 보고 쉽게 구분하실 수 있겠습니까?”

참석자 대부분이 고개를 저었다. 진행자는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람들 이마에 블랙박스라도 붙여 놓아야 변신과정을 확인해서 아이덴티티를 분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성형 관광 때문에 공항 검색대 직원들이 여권 사진과 실물을 맞춰보느라 쩔쩔맨다는 게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성형뿐 아니라 성전환 수술까지 성행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비포와 애프터가 연결이 안 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진행자는 또 다른 영상을 보여준다. 영화 ‘리플리’에서 주인공이 자기가 죽인 친구의 사인을 모사하고 신분증을 위조하는 장면이 나온다.


“보안의 역사는 동시에 복제와 위조의 역사입니다. 유사 이래 사기꾼들과 위조범들의 욕망은 잦아든 적이 없습니다. 지금은 확실하고 안전한 것으로 믿고 있지만 지문과 홍채의 유일성은 영원 불변일까요? 언제까지나 그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진행자는 이번에는 딥페이크 기술로 만들어낸 영상을 보여줬다.

“지금 얘기하고 있는 저 사람 영상은 가짜입니다. 음성도 당연히 딥페이크 기술로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대로 간다면 얼마 되지 않아서 CCTV 동영상도 음성 녹음도 범죄 증거가 못 될 수 있습니다. 뭐가 진짠지 구별을 못 할 테니까요.”


연기력이 뛰어난 진행자는 잔뜩 미간을 찌푸리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스크린에 다른 영상을 띄웠다.

‘아이비IB 인포 칩’이라는 상품명의 인체 삽입칩 소개 영상이었다.


“가칭 아이비 인포 칩, 저희 회사명 ‘아이덴바이오’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쉽게 설명드린다면 통신이 가능한 블랙박스, 복사 절대 불가능의 NFT가 인간의 뇌에 새겨진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이비 인포가 대뇌에 장착되면 해당 생명체의 성장과 변화가 기록되는 겁니다. 그리고 아이비 인포와의 통신을 통해서 누구도 위장할 수 없는 진짜 정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진행자는 아이비 인포의 임상실험 참여자의 영상을 보여줬다.

그가 말하는 영상을 보여주면서 아이비 인포 확인 기능을 클릭하자, 그의 이름과 성별 나이가 화면 하단에 자막으로 떴다.

똑같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AI가 만들어낸 딥페이크 영상을 틀고 아이비 인포 확인 클릭을 하자, 페이크 영상이라는 자막이 곧바로 나왔다.


“이것은 딥페이크 영상으로 만들어낸 가짜 모습입니다. 그리고 가짜 음성입니다. 음성에서도 영상에서도 신원 정보 추출이 가능합니다. 추출된 아이비 인포가 없다면 그건 가짜라는 얘기가 됩니다.

아까 보셨던 프레디나 엘비스의 노래에서는 아이비 인포 반응이 나오지 않습니다. 만들어진 것, 페이크란 게 표시되는 겁니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위장종, 즉 인간 위장 짐승 사태에도 아이비 인포 기능을 도입하면 당당하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껌을 씹는 남자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가 계획하고 준비한 일이 이제 성공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진행자는 껌 씹는 신사를 비롯한 청중들의 얼굴에서 만족과 기대감을 확인한 다음, 멘트를 이어갔다. 조금 더 들떠서, 조금 더 큰 목소리로.


“지금은 인간이 아닌 존재들의 변신 때문에 우리 사회가 곤란을 겪고 있지만 아이비 인포 기능이 상용화되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어떤 희한한 존재가 변신을 하더라도, 생명 공학과 AI 기술로 인간과 똑같은 걸 만들어 내더라도, 우리 회사는 가짜를 구분해낼 수 있습니다. 아이비 인포가 혼돈의 세상을 구원하는 겁니다!”


할렐루야, 아멘!

몇몇 사람이 장난스런 추임새를 넣었다. 웃음과 박수가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진행자는 그 분위기에 탄력을 얻어서 신나게 떠들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아이비 인포의 은총을 원할 겁니다. 내가 나라는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아이비 인포!”

짜고 하는 것처럼 회사 임원진이 큰 소리로 대답하자 다시 한 번 웃음이 터졌다.


“맞습니다. 정부보다 먼저 국민들이 아이비 인포 도입을 외쳐댈 겁니다. 믿슘니다!”

사업의 성공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열기가 오른 프레젠테이션은 이제 부흥회를 닮아가고 있었다.


“저는 절대 믿음을 강요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 회사가 부여한 존재증명 정보가 있으면 진짜 인간으로 확인이 되고 진짜 자기 자신이라는 게 증명 가능해집니다. 그런데도 아이비 인포의 수요가 안 생긴다면 그게 이상하겠죠?

그리고 아주 단기간의 연구만 더해진다면 아이비 인포는 존재 증명 기능과 더불어 수신기로 활용이 가능해집니다. 이 칩을 통해서 망각해서는 안 될 필수 정보, 필수적인 기억 사항들이 전달되는 겁니다.

좀 더 디벨롭된다면 스마트폰을 머리에 심는 효과까지 가능하겠죠. 지금의 예측으로는 향후 3년 내에 치매나 기억상실 문제에 도움을 주는 기능까지는 개발될 겁니다. 현재 의과학, 특히 뇌과학 분야와의 협력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니까요.”


진행자는 자신 있게 두 주먹을 쥐어 보였다. 참석자들은 그 자신감에 반응하면서 격렬한 박수를 보냈다. 휘파람과 환호성도 곳곳에서 들려왔다.


“상용화는 코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이제 곧 각국 정부에서 우리 회사와 제휴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말할 것도 없고요.

전국민을 기록해서 확인할 수 있다고 믿어온 주민등록 체제의 근간이 흔들리지 않았습니까? 안보상의 이유로 다른 국가보다 훨씬 세밀하게 주민등록 시스템을 개발하고 유지해온 대한민국입니다.

하지만 이번 위장종 사태로 그 시스템을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된 겁니다. 그러나 언제나 위기를 극복해 온 민족. 그중에서도 뛰어난 두뇌가 저희 아이덴바이오입니다. 정체성이 흔들리는 가장 큰 문제가 발생했지만 가장 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술과 두뇌를 갖춘 게 우리 아닙니까?

이제 세계에 자랑할 두 번째 한강의 기적이 탄생하는 겁니다.”


흥분한 진행자는 연단을 내리치고, 주먹 쥔 두 손을 뻗쳐 들었다. 참석자들은 진행자의 퍼포먼스에 만족하며 웃음을 보였다. 프레젠테이션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서 달아올랐던 열기가 가라앉으려 할 때, 노신사의 음성이 들려왔다.


“한강이 아니지. 이번엔 탄천의 기적이 되는 겁니다.”


하하하. 지리를 소재로 한 별로 재미없는 멘트였는데도 많은 참석자가 맞장구를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말을 던진 사람이 힘이 있다는 증거였다. 어쨌거나 좌중을 웃긴 신사는 딱, 딱, 다시 껌을 씹기 시작했다.


* * * * * * * * * * * * * * * * * * *


묘화와 기철이 형은 부둥켜 안고 있었다.

감정이 북받친 묘화는 거의 통곡을 하듯 울고 있었다. 기철이 형도 여친의 슬픔을 달래주려 애쓰면서 같이 울먹거렸다. 미랑도 나를 보자마자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나는 들고 있던 비닐봉지를 떨구고 미랑의 두 손을 잡았다. 저 커플은 애인이고 이쪽은 부부니까. 행동양식은 좀 달랐다.

하지만 우리도 역시 마주 보며 눈물을 떨굴 수밖에 없었다. 눈물을 감추려고 돌아앉아 있는 강한우의 어깨 역시 들썩이고 있었다.


황소 덩치의 청년이 아무리 힘이 세더라도 슬픔을 억누르기는 힘든 상황이었으니까. 우리의 친구 종대가 죽었고, 양박사도 죽었고, 양박사의 절친 염선생은 체포됐으며, 그린플리즈를 비롯한 중간자들의 리더 황대호까지 온몸에 부상을 입고 경찰에 끌려갔으니까···


막막하고 슬프고 억울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나는··· 다행이라고 여겼다. 미랑이 돌아왔으니까. 큰 부상 없이 살아 있으니까. 그러니까 다시 힘을 내자고 말하고 싶었는데··· 말할 틈을 찾기 어려울 것 같았다.

좀처럼 눈물들이 그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내 주머니에 있는, 원래 아버지 것인 휴대전화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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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fore & After +2 24.05.16 14 1 12쪽
83 머리카락이 보이면 24.05.15 8 1 14쪽
82 공개 난투 24.05.13 8 1 12쪽
81 손톱을 먹은 쥐처럼 24.05.11 11 1 15쪽
80 덫과 구렁 +2 24.05.08 10 1 13쪽
79 숨거나 덤비거나 24.05.07 11 1 12쪽
78 광풍의 시작 24.05.03 11 1 14쪽
77 이종족 색출 24.05.02 11 1 12쪽
76 멸종된 그늘 +2 24.05.01 14 1 13쪽
75 잠들지 않는 밤 24.04.30 12 1 12쪽
74 씹다 멈춘 껌 24.04.26 12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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