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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한 짐승이 당신 옆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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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치
작품등록일 :
2023.12.26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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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02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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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족 색출

DUMMY

두 시간 조금 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깊은 잠에 빠졌다가 깨어났다. 꿈도 없이 세상 모르게 곯아떨어졌던 숙면이었다. 내

가 눈을 뜨고 몇 초 지나지 않아서 미랑도 눈을 떴다. 그리고 잘 잤다면서 미소를 보였다. 나를 안심시키려고 꾸민 미소는 아닌 것 같았다.


다행이었다. 나야 원래부터 뭔 큰 일이 닥쳐도 잘 먹고 잘 자는 놈이었다. 세상 편한 내 체질이 이런 상황에선 쓸모가 있는데 마누라도 남편을 닮아가는 모양이었다.

그건 마음에 드는, 마음이 놓이게 하는 현상이었다.


피로가 완전히 풀릴 수야 없었지만 한결 개운해진 컨디션으로 우리는 오늘 할 일을 논의했다.

미랑은 저녁에 염선생 집에서 기도원 파이터스 중심으로 중간자 모임이 있을 거라고 했다. 그전까지는 일단 체조교실 스케줄을 지키고 있겠다고 했다.


엑스 장부 패거리가 경찰 체포조를 보낼 수도 있다고 내가 말했지만 미랑의 결심은 바뀌지 않았다. 그런 상황이 오면 그때 적절하게 대처하겠다고, 미리 도망가기 시작하면 이 거대한 쓰나미에 맞설 용기를 잃을 것 같다는 게 미랑의 생각이었다.

맞다고, 그러라고, 나는 동의했다.


그리고 나도 출근하기로 했다.

내가 잠수를 타버리면 근무 이탈도 문제겠지만, 황대호 편을 들어서 업무를 방해한 피의자로 신분이 곧장 바뀌어버릴 거다.

그렇다고 내 입장에서 멀더와 스컬리의 지시를 무작정 따르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살짝 타협적인 결정을 했다.


경찰청으론 출근하지 않는다. 원래 소속인 삼각산 경찰서 내 컴퓨터 앞으로 가서 휴가를 신청하고 대기하겠다.

휴가 승인은 나지 않을 확률이 99.999퍼센트였지만 나도 저들이 어떻게 나오는지 지켜보기로 한 거다. 일단은.



왜 여기로 출근했냐는 선배들 질문에 무지하게 아픈 표정을 지어보였다.

병가를 신청하려고 원 소속처로 출근했다고, 전자 결재를 올리고 승인이 떨어지면 병원에 가 볼까 한다고 둘러댔다.


강력팀 선배들은 늘 건강하게 보였던 내 꾀병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하지만 내가 계속, 격렬하게, 적극적으로 기침하고 떨고 휘청거리면서 메소드 꾀병 증세를 보이자 더 묻지는 않았다.

다들 어제부터 터지기 시작한 괴생명체 이슈 때문에 사소한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는 탓이었다.


그래서 신속하게 병가 기안을 올렸다.

파견으로 일시적으로 내 결재 라인은 변경돼 있었다. 명덕 경감, 멀더가 먼저 승인을 해야 병가 신청이 윗선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아마··· 그는 승인하는 대신 나를 호출하겠지만···

내 주머니에는 세 개의 휴대폰이 있었고 그 중 아버지한테 받은 폴더폰만 켜진 상태였다.


병가 신청을 마친 순간 사무실 안이 시끄러워졌다. 물론 내 병가 때문은 아니고, 경찰청장 중심의 괴생명체 대책본부의 기자회견이 시작됐기 때문이었다.


“지주성, 너도 저기 가서 뒤에 서 있어야 되는 거 아냐?”

“쿨럭, 쿨럭, 캑캑··· 커어억···”

대꾸하기 곤란하면서 대답하기도 싫은 농담이었다. 그래서 조금 더 과장된 연기를 했다. 선배들의 표정에 아까보다 더 짙은 의심이 스쳐갔지만, 기자회견을 보느라 따지지는 않았다.


근엄하게 인상을 찌푸린 경찰청장 뒤로 실무 담당자인 스컬리가 보였다. 행정안전부 담당자와 군복을 입은 국방부 고위 관료도 경찰청장 뒤에 배석해 있었다.


“어제 서울시내 복수의 장소에 출현한 괴생명체에 대응하기 위해 범정부적인 치안 담당자들로 구성된 대책본부가 발족했습니다. 경찰청을 중심으로 행정안전부, 국방부, 국정원 등이 협력해서 국민들의 안전을 위해 신속하고 적절하게 대응할 것입니다.”


경찰청장은 간단하게 기자회견의 성격을 알린 다음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인간과 야생동물의 중간적인 형태와 성향을 가진 괴생명체의 존재가 확인됐습니다. 경찰은 그간 괴생명체에 대한 첩보를 입수하고 정보 수집과 비공개 내사를 진행해 왔습니다.”


강력팀 사무실 안의 모든 형사들은 숨 죽이며 뉴스 영상에 집중하고 있었다. 일찍이 볼 수 없었던 막강한 몰입이었다. 아마, 다른 TV 앞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중간자 문제를 말하는 기자회견은 블랙홀처럼 전국민의 관심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의하면 이 괴생명체들은 야생동물의 정체성을 감추고 생활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인간과 구분이 안 되는 단계로 진화합니다. 이들은 20세기 후반부터 한반도에 존재해 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들은 그린 플리즈 등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조직화되어 암약하면서 우리 사회를 흔드는 많은 범죄를 저질러 왔습니다.”


멀더와 스컬리 등등의 엑스 장부파이 만들어 놓은 논리였다.

그자들이 중간자들을 연구해 왔고 그자들이 이 난리를 꾸몄으니까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마 경찰청장은 멀더와 스컬리 쪽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곧이곧대로 믿고 있을 거다. 혹시··· 청장도 그들과 한패라면 믿는 게 아니라 같이 정보를 만들었을 수도 있고.


어쨌거나··· 큰일이었다.

죄 없는 중간자들한테 의문의 미제 사건들을 다 뒤집어 씌우다니···

동시에, 내 눈에는 악당들이 누군지가 분명해지고 있었다. 엑스 장부파, 멀더 ․ 스컬리와 그들의 뒷배들.


“통일과 사회적 약자 보호 등을 위해 애써온 인사들이 실종되고 의문사한 사건의 배후에 이들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자신들의 정체를 감추고, 자신들이 이익을 얻기 위해서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려는 사람들을 공격한 겁니다.

저희는 빠른 시간내에 이들의 범죄를 밝혀내고 각지역 각계각층에 암약하는 이들의 정체를 공개함으로써 선량한 시민을 보호할 것입니다.”


경찰청장이 한바탕 거짓 정보를 쏟아낸 다음 기자의 질문이 있었다.

괴생명체들은 어떤 식으로 범죄를 저질렀느냐, 그리고 이들이 어떤 질환에 의해서 병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면 보호와 치료가 필요한 대상이 아니냐는 질문이었다.


경찰청장이 실무책임자에게 답변을 넘기겠다면서 스컬리를 지목했다.

스컬리는 기다렸다는 듯 마이크 앞에 섰다. 그리고 차분하면서도 단호하게 경찰의 견해를 밝혔다.


“어제 검거 직전에 도주했던 황대호는 그린벨트 개발업자인 박진모를 살해해서 시체를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그가 체포 직전에 정체를 드러내고 날뛰는 것을 보셨을 겁니다. 무서운 괴존재인 그는 평화적인 환경운동가의 탈을 쓰고 암약하다가 녹지대 개발업자를 살해한 것으로 보입니다.”


영상을 본 대중의 입장에서는 사냥개의 목을 잘라버린 괴물이 황대호였다.

스컬리의 말을 의심하는 이들은 거의 없을 거다. 나와 내 지인들, 그리고 황대호를 아는 중간자들을 제외하고는.


“그리고 저희가 보기에 괴생명체의 최근 소행으로 의심되는 사건은 또 있습니다. 삼각산 경찰서에서 수사했던 사건. 약 3개월 전에 한 총포상이 북한산 숲속에서 급성 심정지로 사망한 사건이 있습니다.

그는 야생동물의 발톱과 이빨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 상처를 입고 있었습니다. 피해자는 괴생명체의 변신한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아 심근경색을 일으킨 것으로 보입니다. 괴생명체들은 그런 식으로 죄를 저질러서 자기들의 악행을 완전범죄에 가깝게 은폐해 왔다고 봅니다.”


이··· 이런··· 스컬리는 노골적으로 나와 미랑을 공격하고 있었다.

죽은 미랑의 전남편 신호진을 ‘총포상’이라고 언급한 것도 교묘한 언론 플레이였다. 신호진은 스포츠 용품 도매가 주업종이었다. 사격 선수용, 수렵용 총기 판매를 하기도 했지만 그게 전문 분야는 아니었다.

스컬리는 중간자들에게 최대한 위험하고 악한 이미지를 씌우고 있었다.


“그리고 괴생명체가 보호와 치료 대상이 아니냐고 물으셨는데요. 일단은 이들이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불법이라고 봅니다.

법전에 등장하는 우리 이웃들을 가리키는 단어 시민, 국민, 한국인, 모두 사람임을 전제로 합니다. 일차적으로 호모 사피엔스여야 권리를 갖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이종족, 호모 사피엔스가 아닌 존재이면서 행정당국을 속여서 주민등록을 했습니다.”


스컬리는 중간자들의 약점을 파고들고 있었다. 중간자의 존재 자체가 불법이라는 논리를 반박해줄 사람이 있을까···?

저절로 내 고개가 돌아갔다. 절레절레···


“괴생명체들은 국적과 시민권을 불법으로 취득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연구된 바에 의하면 이들은 평범한 인간으로 생활하다가 특정 질환 등에 의해서 심신이 변화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인간과는 다른 괴존재임을 인지한 상태에서, 즉 불법임을 인지하고 고의적으로 대한민국의 주민등록을 취득한 자들입니다.”


스컬리의 답변이 끝나자 경찰청장은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경찰은 정보 당국과 협력해서 괴존재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작전에 들어갈 것이며 괴존재 격리를 위한 대규모 수용 공간을 확보중에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중간자들의 자수와 시민들의 신고를 당부하는 이야기로 기자회견을 마쳤다.


기자회견을 보고 내가 멘붕에 빠져 있을 때 기철이 형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너도 아프냐, 너네 무슨 향수병 걸린 거냐, 선배들 질문에 기철이 형은 간단히 답했다.


“얘 데리러 왔어요. 얘가 어디가 아픈지 본청에서 관심이 대단해.”

그리고는 나를 끌고 나갔다.


“병가 신청, 꾀병이지?”

복도로 나가자마자 기철이 형은 작은 소리로 물었다. 끄덕끄덕.

“멀더가 그거 올라온 거 보자마자 나보고 너 잡아오래더라.”

“감찰에 넘긴대요?”

“일단 그건 아냐. 일손이 모자라는지 아직은 이용가치가 있는 건지··· 너랑 나랑 졸라 바쁘게 됐다.”


바빠질 거라는 건 당연히 예상하고 있었다. 누구를 위해 누구에 맞서 바빠지느냐가 중요한 문제였다.


“지금 중간자들 구분해낼 수 있는 건 멀더네가 만든 감지기밖에 없나 봐. 너랑 나랑 갖고 있는 거.”

그럴 수도 있었다. 만들기 쉬운 물건은 당연히 아닐 거고, 대량 생산되는 상품도 아닐 거다.


기철이 형 말에 의하면 대책 본부에서 주도하는 최우선 업무는 민감한 분야에서의 중간자 확인 및 색출이었다.

경찰, 군부대, 병원, 학교 순으로 구성원들의 중간자 여부를 확인해 나간다는 계획이었다.


최대한 감지기를 빨리 생산해서 각 기관에 내려 보내면 좋겠지만 일단은 있는 감지기를 활용해야 한다. 중간자들에 대해 알고 있는 인력도 최대한 활용해야 되고.

그래서 나와 기철이 형 같은 사람들이 요긴한 존재가 된 거였다.


“경찰청 인력은 멀더랑 스컬리가 직접 검사한대. 우리는 군대 쪽을 맡는 거야.”

“군인이 50만이 훌쩍 넘는데 그걸 어떻게 검사를 해요?”

“감지기가 충분히 지급되면 군인들이 직접 검사하겠지. 그 전에 우리가 필수 병력 먼저 검사하는 거야.”

“필수 병력?”

“헌병들 중심일 거야. 중간자 검사를 맡을 애들. 검사하는 애들 중에 중간자가 섞여 있으면 안 될 거 아냐.”

“일단 핵심만 우리가 검증해 주고, 검사 방법 알려주고, 그러다가 감지기 양산되면 우리한테 검사받은 헌병 애들이 나머지 군인들 검사한다?”

“어. 그런 방식. 뭐 상명하달식 피라미드라고나 할까?”


휴··· 당장 우리가 붙잡혀 가거나, 곧바로 엑스장부파와 정면대결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일단은···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게 전개될 중간자 색출과 체포격리 작전에서··· 기철이 형과 내가 선봉대가 된 거다.

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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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특이한 부부싸움 24.04.12 13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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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두 가지 대답 24.04.10 11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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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축소된 말의 귀 +2 24.04.05 12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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