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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치 님의 서재입니다.

변신한 짐승이 당신 옆사람이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신성치
작품등록일 :
2023.12.26 13:10
최근연재일 :
2024.06.13 11:35
연재수 :
100 회
조회수 :
3,230
추천수 :
310
글자수 :
597,391

작성
24.05.24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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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돌아온 비구니

DUMMY

사팔 흥신소의 사소장은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부재중 전화가 찍혀 있었다. 발신자는 백기철 형사. 사소장은 살짝 부담을 느끼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전화를 못 받은 이유로 뭐 대단한 일이 있던 건 아니었다.

주성과 백형사는 사소장이 협박, 회유를 당해서 변심을 했거나 테러 또는 사고를 당했거나 여러 가능성이 있다고 잠깐 걱정했다. 하지만 사소장이 전화를 받지 않은 건 사소한 일이었다. 휴대폰을 책상에 둔 채 화장실에 가서 대장을 비우고 왔을 뿐이었다.


부재중 전화만 찍힌 게 아니었다.

백기철 형사한테서 사진도 전송돼 있었다. 중년 남녀의 주민등록증 사진 둘. 그리고 오래 돼 보이는 종이 사진을 다시 찍은 사진 두 장. 백형사는 종이 사진 쪽을 더 중시하고 있었다. 사진 속 인물들이 누군지 알아봐 달라는 요청.


‘아, 이거 만만찮은 일인데···’

부담스럽고 번거로웠지만 백형사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가 독한 마음을 먹으면 사소장의 사회적 위치에 중대한 변화가 생길 거니까. 게다가 가정의 평화가 깨지고, 중딩 딸내미한테 신뢰를 완전히 잃을 테니까.


사소장이 그렇게 고민스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또 전화가 걸려왔다. 백형사는 아니었다.

‘뭐지? 모르는 번혼데···’


게다가 영상통화였다. 친하게 지내던 동영상 제작자들이 장난을 치는 게 아닐까, 나름의 추측을 한 사소장은 영상통화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비구니, 여자 스님 코스프레를 하고 있었다. 삭발했던 머리가 살짝 방치돼서 까무잡잡하긴 했다. 하지만 이른바 반삭에 가까운 아주 짧은 머리에 화장기 전혀 없는 얼굴, 회색 승복을 입은 모습은 영락없는 비구니였다.


‘이건 또 뭔 시츄에이션이래?’ 희한한 상황극을 좋아하는 인간이 감히 성직자 코스프레를 하면서 까부는 건가, 잠시 추측을 해봤다.

하지만 휴대폰 영상 속의 여성은 아무리 봐도 50대 중반에서 60세 정도쯤 돼 보였다. 나이 들어 보이게 분장한 게 아니라 진짜 나이 든 분이었다.


“지주성 형사 아시죠?”

비구니가 사소장한테 물었다.

“아, 예··· 그렇습니다만···”

“저는··· 주성이 엄맙니다.”

“네에?”


지주성 형사는 당연히 알고 있다.

사소장은 다리 사이 급소의 고통이 다시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전기충격기로 선공을 하려던 사소장의 낭심을 걷어찼던 사람이 지주성이니까.

백형사의 후배. 세상이 흉악한 인질범이라고 부르는 자들을 사소장이 돕도록 만들었던 형사. 그런데 사소장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물었다.


“스님이 어떻게 엄마가 돼요?”

여승이 누군가의 엄마가 될 수 있는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있을 거다. 그러나 승복을 입은 여인, 자칭 주성 엄마는 더 말을 하지 않았다. 지금 그게 주제가 아니니까. 괜한 설명이 대화의 톤을 바꿔버리면 안 되니까.


“그대는···”

오잉, 사소장은 자신을 가리키는 뜻밖의 단어에 놀랐다. 이인칭 대명사 ‘그대’가 대화에서 사용되는 건 처음 겪는 일이었다.


“자식을 키우시나요?”

“네.”

“자식을 위해서는 목숨을 거실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러시죠?”

“그, 그렇겠죠.”


휴대폰 영상 속 여성의 눈빛과 말투에는 묘한 기운이 있었다. 사소장은 왜 그런지 모르지만 자신이 스멀스멀 여인의 기운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저는 걸음마하는 자식을 버리고 집을 나갔다가 28년만에 돌아온 몹쓸 어미입니다.”

“하아··· 예···”


그런데 내가 왜 한숨을 쉬고 있지, 사소장 뇌리에 의문이 스쳐갔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계속 대화의 물살에 빠져서 흘러갈 수밖에.


“그리고 지금 주성이가 겪고 있는 둔갑 짐승들 난리판에 깊이 발을 담근 사람입니다.”

“그러시군요···”

“그대는 주성이와 둔갑 짐승들의 간청을 외면할 수도··· 있습니다.”


주성 엄마는 꽤 오래 말을 멈췄다가 힘들게 마무리했다. 사소장은 말 중간의 그 침묵이 묵직하게 자신을 누르는 것처럼 느꼈다.


“그러면 불행하게도, 수천 수만의 원한이··· 그대의 업보로 쌓일 겁니다.”

협박같이 들리지는 않았다. 왜 자꾸 나는 저 여자한테 동의하는 거냐, 사소장은 스스로가 의아했다.


“반대로 주성이를 도우신다면··· 수천 수만의 축원이 그대와 집안을 감쌀 겁니다.”

‘아, 그렇게 되면 좋지. 정말 그러면 행운일 것 같아.’ 쉽게 믿을 수 없는 인간들 틈에서 사회생활을 하느라 의심과 추리가 생활화된 사소장이 전에 없이 마구마구 긍정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제발, 부탁드려요.”

여인은 어느새 흐느끼고 있었다.

“자식을 키우시잖아요.”

“그, 그렇죠···”

“도와주시는 게 제 아들 살려주시는 거예요. 선생님밖에 없어요.”


알았다고, 그렇게 하겠다고 사소장은 대답했다.

느닷없이 가슴이 아파 왔으므로, 그는 자신이 주성 엄마에게 진심으로 동의하고 있음을 확연히 느꼈다.


주성 엄마는 그제서야 사소장이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일하는 곳이 어딘지 물었다. 사소장은 솔직하게 알려줬다. 간략한 대답을 위해 자기 직업의 어두운 측면은 살짝 생략했지만.

알았다고, 곧 다시 연락드리고 찾아뵙겠다면서 주성 엄마는 정중하게 끝인사를 했다.


* * * * * * * * * * * * * * * * * * *


승복을 입은 여인은 전화를 끊었다.

그녀를 네 명과 한 마리, 열 개의 땡그란 눈동자가 빛을 내며 주목하고 있었다. 네 명은 옥,희와 주성의 그랜파와 아버지, 한 마리는 그 집 멍멍이.


“아버님···”

옥,희의 왕할아버지 주성의 그랜파는 대답을 못하고 있었다. 놀라서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도 못한 채. 다행히 아직 침은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그렇게 입을 다물지 않고 계시면···, 제가 몸 둘 바 모르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하악에 이상 있으신가 두려워집니다.”

하악하악, 이 무지막지한 사건 전개를 따라잡는다는 건 극도로 숨찬 일이었다. 극심한 호흡곤란으로 핵핵거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알았다. 시애비 턱 안 빠졌다. 사연이야 다채롭겠지만 어쨌든 가출했던 며느리가 28년만에 돌아왔으니 경사다. 경사야.”

주성 엄마의 눈에서 눈물이 연신 떨어지고 있었다. 주성 아버지의 눈에서도 뚝뚝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옥,희는 꿈뻑꿈뻑 눈꺼풀 운동을 반복했다. 상당히 어색한 장면을 목격중이니까. 왕할아버지가 아이들에게 할 일을 일러줬다.

“일단··· 인사드려라. 할머니시다.”


주성 엄마는 눈물을 훔치면서 손녀가 되는 두 아이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옥,희 소식은 들었어요. 미랑이 딸들이지.”

“네. 재옥!”

“재희여요!”

씩씩하면서도 정중하게! 배꼽손 꾸벅 90도 인사! 그리고,

“왕할아버지.”

“왜?”

“나가 놀아도 돼요?”


대단히 어색한 분위기에서 빠져나가고 싶은 거였다. 다들 흔쾌히 허락을 했다.

두 아이가 개까지 끌고 나가자 환속 비구니께서 남편과 시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사람이랑 살면서··· 음식과 사냥 때문에 자주 다퉜었죠. 사냥을 해서 산짐승을 끓여먹고 보신탕을 즐겨 먹는 것 때문에··· 닭 돼지 소는 되고 개는 안 되는 건 또 뭐냐는 주성 아빠 말도 맞는 말이었죠. 그래서, 아예 육식을 끊어버리는 게 출가를 한 큰 이유였어요.”

“비건이 되려고 비구니가 됐다?”

뭔가 라임이 느껴지는 시아버지의 질문에 비구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 자신도 사실 육식을 하고 싶어서 참기가 힘들었죠.”

“다른 짐승보다 개를 먹는 것에 특히 민감했던 건 이유가···”


주성 그랜파가 조심스럽게 질문하려고 하자 주성 엄마는 확실하게 고백했다.

“요즘 위장종이라고 세상을 시끄럽게 만든 친구들처럼··· 저도 실은 여우 출신이에요.”


아아··· 그랬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구나!

주성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다시금 입이 떡 벌어졌다. 그렇게 놀라는 동시에 왠지 자신들이 이 사태를 예측하고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뭣이냐 무의식이라고 하나, 저 밑바닥 깊고 깊은 속마음에선··· 이런 걸 예감한 게 아니었을까?


“인간이 되고 싶었지만 인간 사회도 견디기가 힘들었죠. 그래서 야생 세계든 문명 세계든 절에 들어가서 다 잊고 싶었어요. 해탈이나 득도가 가능하다면 그것도 희망했죠.

그런데 그건 너무 먼 길이었어요. 인간사회도 못 견디면서 어떻게 인간사회를 초월한 존재가 되겠어요?”

“그래서?”

“그래서 둔갑한 동물 출신 인간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 즉 원래 동물로 돌아가는 법을 연구했어요. 절에 있으면서. 생물학 박사 출신 비구니가 도반이어서 도움이 많이 됐죠.

바로 얼마 전에 돌아가는 방법을 찾아냈죠. 이제 저 같은 존재들에게 선택지를 줄 수 있겠구나, 기뻐 했는데 위장종 사태가 터진 거예요.”


아이고··· 주성 그랜파는 기나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아들에게,

“주성이가 너를 닮았구나. 신부 선택 기준이 아주 흡사했어.”

“저는 아버지를 닮았는데요.”

“그만. 나는 다르다고 항변하고 싶지만 안 할란다. 일단··· 간단한 설명은 들었으니 나머지 얘기는 조금 있다가 하자. 먼저··· 근 삼십 년만의 부부 상봉이니 둘이서 시간을 좀 보내야지.”


그리고 주성 그랜파는 집을 나와서 동네 언덕에 서서 저 멀리 하늘을 떠가는 구름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성 엄마가 좀 남다른 여자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손주며느리에 이어 며느리까지 이리도 특이했다니··· 80년이 넘게 살았지만 제대로 아는 게 없었구나, 배철수 씨 노래처럼 정말 세상 모르고 살았구나. 그때 개를 끌고 증손녀 둘이 한숨 쉬는 노인에게 접근해 왔다.


“왕할아버지.”

“응.”

“고민하는 거죠?”

“비슷하다. 무슨 답을 찾으려는 건 아닌데···”

“왜 고민해요?”

“솔직히 얘기해요.”

“솔직해야 튼튼하대요.”


애들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듣는 사람이 이핼 하든 못 하든 답답한 걸 털어놓아야 건강에 지장이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왕할아버지는 나름대로 이야기했다.


“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이 논리 따위는 개무시하고, 개연성 같은 건 말아 처먹은 판타스틱 막장이라서 그런단다. 이러다 도를 깨닫겠어. 해탈하겠어.”

“왕할아버지.”

“그게 도대체 무슨 얘기예요?”

“허탈하다고. 허탈해.”


옥,희는 왕할아버지를 토닥토닥해 줬다. 아이들은 이유는 잘 모르지만 뭔가 돕고 싶어서 토닥거렸고, 그랜파도 이유는 잘 모르지만 조금은 위로가 되는 느낌이었다.


* * * * * * * * * * * * * * * * * * *


‘맞아! 저 남자! 오케이!’

엉덩이를 들썩이면서 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영상 통화 속 처음 본 비구니의 호소에 감동해 버린 사소장! 왠지 모르게 향상된 집중력으로 싸이버 수사에 돌입했던 사소장. 백형사가 일찍이 알려줬던 명덕 경감, 멀더의 SNS를 뒤지다가 멀더와 가까운 팔로워들의 SNS까지 살펴보던 사소장!


세면대에 찬물을 받아 말 그대로 눈을 씻어가며 모니터를 주시하던 흥신소장이 멀더 팔로워의 팔로워 사진에서 한 남자를 찾아낸 거였다. 껌을 씹는 남자, 백발 신사 옆에 서 있던 검은 점퍼의 사나이!


그가 직장으로 보이는 건물 간판 아래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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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비명을 질러서 혼란이 왔다고? 24.05.30 12 1 12쪽
90 심마니 & 비구니 +2 24.05.28 11 1 13쪽
» 돌아온 비구니 24.05.24 12 1 12쪽
88 빛 바랜 컬러 사진 24.05.23 11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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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Before & After +2 24.05.16 15 1 12쪽
83 머리카락이 보이면 24.05.15 11 1 14쪽
82 공개 난투 24.05.13 9 1 12쪽
81 손톱을 먹은 쥐처럼 24.05.11 13 1 15쪽
80 덫과 구렁 +2 24.05.08 12 1 13쪽
79 숨거나 덤비거나 24.05.07 14 1 12쪽
78 광풍의 시작 24.05.03 13 1 14쪽
77 이종족 색출 24.05.02 15 1 12쪽
76 멸종된 그늘 +2 24.05.01 17 1 13쪽
75 잠들지 않는 밤 24.04.30 15 1 12쪽
74 씹다 멈춘 껌 24.04.26 16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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