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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치 님의 서재입니다.

변신한 짐승이 당신 옆사람이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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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치
작품등록일 :
2023.12.26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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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3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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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7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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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베타 테스트

DUMMY

잠입수사도 중요하고 악의 무리를 소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일 먼저 중요한 것은 미랑의 심신이 안정을 되찾는 것이었다.


일주일 후에 그린 플리즈에 가입하게 되면 나는 정말 바빠질 거다.

경찰서 강력팀원으로서 수사 업무를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멀더와 스컬리의 지시를 받아서 비밀 수사를 해야 하니까 미랑을 도울 여유가 없을 거다.

그래서 나는 경찰서 업무 후에는 번개같이 퇴근하고 최대한의 시간과 에너지를 집안과 미랑에게 쏟기로 했다.


다행히 미랑은 평소와 별다를 것 없게 생활했다.

힘든 티를 내지 않고 옥,희를 보살피고 놀아줬고 집안 일에도 전보다 공을 들였다. 퇴근할 때마다 달라지고 윤기가 더해진 집안 풍경에 놀라게 했다. 인테리어 소품이나 가구 배치 바꾸기 등을 하루에 한 가지 이상 해치우고 있었다.


“아빠씨! 맞춰 봐!”

“오늘은 뭐가 바뀌었게?”

“누가 멋지게 만들었게?”


집에 돌아오면 옥,희가 엄마의 업적을 소개했고 나는 아이들과 함께 박수치고 환호하는 역할을 했다.

미랑이 괴로운 심정을 지우려고 무리하는 게 아닌가 잠깐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나쁜 방법 같지 않아서 응원단 역할만 한 거였다.


미랑이 휴직중인 체조교실에는 일주일 뒤부터 다시 출근하기로 했다.

내가 그린 플리즈 비밀 수사를 시작할 시점과 맞아 떨어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다시 출근하는 게 좋겠다고 미랑이 말한 건 병원에서 돌아온 바로 다음 날이었다.


“그건 너무 빠르잖아요?”

나는 조금 쉬는 기간이 필요하다고 했고, 체조교실이 새로 사람을 뽑았으면 갑자기 돌아가는 게 민폐 아니겠냐는 얘기도 했다. 미랑은 그쪽은 걱정할 게 없다고 말했다.

원장 후배가 짬을 내서 겨우 공백을 메꾸고 있기 때문에 일찍 복귀하면 오히려 좋아할 거라는 얘기였다.

그래서 이번 주에 있는 초중학생들 체조대회 후에, 다음 주부터 출근하기로 한 거다.


잘 되고 있다고, 별 문제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중간자 감지기, 애니멘 센서가 내 생각이 잘못됐음을 알려줬다.


나는 멀더한테 감지기를 받은 다음에 외출할 때는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묘화가 집에 있으면 일층을 지나갈 때 감지기가 진동했고, 퇴근해서 미랑이 있는 집에 들어갈 때도 울렸다.

멀더와 둘이 카페에 있을 때와 같은 오작동은 없었다. 내가 참여해서 베타 테스트중인 물건에 별 이상은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자연스럽게 내 근무지부터 감지기를 통한 중간자 체크를 시작했다.

수사과 직원들, 피해자들과 용의자들 중에는 센서를 떨게 하는 중간자가 없었다. 공연히 민원실에 들어갔다 나오기도 했고 휴게실과 흡연장소도 돌아봤지만 진동반응은 없었다.


높은 분이 짐승일 수 있다는 생각에 서장 면담을 신청할까 하다가 서장실 문앞까지만 가봤다. 엿듣는 것처럼 문에 바짝 다가서니 안에서 간부 회의를 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애니맨 센서의 탐지 범위일 것 같았는데, 재미없게도 센서는 떨지 않았다.


칼퇴근을 하고 집안을 챙기느라 여유가 적었지만, 심부름을 자청하는 등 걸어다닐 짬을 내서 센서를 테스트했다.

제일 먼저 의심을 품고 접근했던 사람은 우리 동네 상가의 정육점 뼈와 살의 집 주인장. 이빨이 남들보다 크고 송곳니가 덧니로 튀어나온 아저씨. 눈꼬리도 치켜 올라가서 좀 무섭게 보이는 인상 때문인지 흉흉한 인물평이 따르는 사람이었다.


‘정육점 아저씨 생고기를 썰다 말고 막 집어먹는다. 지나가다 일하는 걸 보면 입에서 핏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그런 소문들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감지기의 평가대로라면 완벽한 오리지널 인간이었다. 그저 무섭게 생긴 탓에 생긴 헛소문이었다.


아는 사람이 아닌 거리에서 만난 무작위의 인물들 중에서 감지기 신호가 나온 건 딱 한 번이었다. 많은 사람이 오갔기 때문에 중간자가 누군지는 확인이 불가능했다. 여러 방향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을 다 따라가 볼 수 없었으니까.


그 다음에 중간자를 발견한 건 우리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나에게 묘화네 집 옥탑을에 소개해 준 복덕방 옆집. 동네 사람 주거지 알선뿐 아니라 기획 부동산 회사들과 연관된 대규모 토지 거래에도 능하다고 알려진 베테랑 중개업자.

돈냄새를 무지무지 잘 맡으시며 산을 깎고 강과 바다를 메워서 고층 건물을 짓기를 바라는 아저씨. 남의 빌딩이 올라가더라도 보면 기분이 좋고 화폐와 자원들이 무진장 유통되기를 바라는 욕망가.


두바이 부동산 사장님과 마주쳤을 때 애니맨 센서가 강력하게 울렸다. 앞에 있는 사람이 조금 있으면 짐승으로 변신할 것 같은 격렬한 진동이었다.

밤하늘에 보름달이 떠서 그랬던 걸까···


‘저 사람 한 명은 확실하군.’

동네든 직장이든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새로 발견한 중간자로 볼 수 있는 사람은 그 한 명이었다.

두바이 사장은 과연 무슨 동물 출신일까? 직접 묻고 싶은 걸 꾹 참고 지나쳐 왔다. ‘자연 속에서 살다 온 중간자라고 해서 모두 자연보호를 바라는 건 아니구나’ 새삼 깨달으면서.


마트 심부름을 핑계로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돌아왔는데···

피곤해서 그랬나? 츄리닝 바지 주머니에 감지기를 넣은 채 잠이 들어버렸다.


미랑이 5미터 이내에 있다고 해서 감지기가 계속 진동하는 건 아니다.

감지기는 주변에 중간자가 있다고 계속 똑같이 진동하는 게 아니었다. 처음에 진동하다가 상황 변화가 없으면 진동이 꺼지고 불만 켜져 있었다. 그러다 중간자가 범위 내에서 사라지면 불빛도 사라졌다.

이미 감지한 중간자가 변신하거나 다른 중간자가 범위 내에 들어오는 것처럼 더하기 반응이 있으면 강하게 진동했다.


그래서, 주머니에 있는 게 불이 켜져 있든 꺼져 있든 느끼지 못 하니까 깜빡하고 그냥 잠이 든 거다.

그런데 한밤중에 몸이 떨려서 잠에서 깼다. ‘지진이 났나? 침대가 왜 흔들리지?’ 주머니에 감지기가 있다는 걸 의식 못하고 비몽사몽간에 눈을 비볐다.


그리고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헉! 나는 내 입을 틀어막았다. 놀란 신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옆에 있는 존재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뾰족하게 튀어나온 미랑의 송곳니가 보였다. 치솟은 귀와 튀어나온 주둥이, 털로 덮인 얼굴! 몽유병자가 잠꼬대를 하듯이 미랑은 자다 말고 변신을 하고 있었다.


“끼기기··· 드드드득···”

이가 갈리는 섬뜩한 소리에 솜털이 일어섰다. ‘크르르르’ 으르렁대는 소리와 함께 어둠 속에서 분노의 눈동자가 불타고 있었다.

하지만 옆에 누운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지금 미랑에게 보이는 건 뭘까?


“전부 다··· 하나도 빼지 않고··· 너희들··· 끄드드득···”

미랑은 분노의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너희들’이라는 어떤 존재 전부를 떠올리며 이를 갈고 있었다.

내가 듣지 못했지만 미랑이 마음 속에서 한 얘기는 아마도 복수와 저주일 거다. 잔뜩 힘준 미랑 몸의 경직이 옆에 누운 나한테까지 느껴져왔다. 분노로 으르렁대면서 이를 갈고 부들부들 몸을 떠는 시간이 10분 넘게 지속됐다.


한밤중의 어둠 속에서, 바로 옆에 누운 이가 의식이 혼미한 채로 짐승으로 변신한다. 옆사람도 못 알아보는 혼미한 의식상태로 살기 띤 야수성을 드러낸다···

이제는 중간자의 모습에 많이 익숙해졌지만 정말 식은땀이 나는 일이었다.


미랑이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와서 잠이 든 뒤에도 나는 잠들지 못했다.

감지기는 다시 울리지 않았지만 해가 떠서 방 안이 밝아올 때까지 꼼짝 않고 누워만 있었다.


미랑이 몽유병자처럼 자다 말고 변신한 건 그 밤만이 아니었다.

이후로 나는 츄리닝 바지주머니에 일부러 감지기를 넣은 채 잠자리에 들었는데 여러 차례 진동과 함께 얼어붙었다. 다행인 건 수면중의 첫 번째 변신에 비해 조금씩 짧아지는 변신 시간이었다.


‘이러다가 나아지겠지.’

나는 내가 견딜 수 있는 한 미랑에게 말하지 않고 버텨 보려고 했다.

말을 하면 미랑이 미안해서 더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았다. 다행히 감지기가 있으니 위험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내 신경이 너무 곤두서거나 수면 부족으로 견디기 힘들게 되면 말을 하자. 그게 아니라면 미랑이 나아진 다음에 이런 일도 있었다고 주의 차원에서 말해주자.’



걱정스러운 게 집안일뿐만은 아니었다.

중간자를 지켜본 경력이 오래된 선배, 조언을 구할 수 있는 든든한 빽이었던 반장님이 사라져 버렸다. 반장님은 사직서를 제출하고 사무실에 사람들이 없을 때 짐을 챙겨갔다고 했다. 사표는 곧 수리될 거라고 했다.


기철이 형과 내가 연락을 해봤지만 무소득, 전화도 문자도 받지 않았다.

우리 팀 전체에게 보낸 단체 문자로 ‘그간 고마웠다. 다른 일을 찾아볼 계획이다. 나중에 연락할 테니 굳이 연락하지 마라.’라는 짧은 메시지만 남긴 채였다.


당사자가 사라지길 바라는 눈치라 우리가 어디 있는지 찾아 보기도 뭐했다.

우리 팀에서 반장님 다음으로 고참이었던 양선배가 일단 팀장 역할을 대리하기로 했다.


그리고, 또 한 명 중간자들을 아는 형사 기철이 형도 전과 달라져 있었다.

백형사는 늘 피곤한 모습으로 충혈된 눈가 까치집을 한 머리로 출근했다. 거칠고 바쁜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혼자 사는 총각이지만, 단정하고 깔끔한 사람이었는데···

형은 출근 때가 아니라 오히려 퇴근할 무렵이 되면 깔끔해졌다. 생활의 중심이 아마도 고양이였던 여인에게 맞춰진 탓일 거다.


나는 기철이 형에게 멀더와 스컬리 얘기를 하고 싶었다.

같이 일을 한다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중간자 관련 업무는 함부로 떠들 수 없는 비밀 임무니까···

멀더와 스컬리에게 조용히 문의를 해본 다음에 말을 해야될 일이었다.


이렇게 저렇게 신기하고 놀라고 걱정스러운 한 주가 거의 지나갔다.

하루만 지나면 멀더와 스컬리가 말한 일주일이 되는데, 나는 미랑을 도와 집안 청소를 하다가 눈에 띄는 걸 발견했다.

공교로운 우연이랄까? 미랑의 화장대에 그린 플리즈 팜플렛이 있는 거였다!


“미랑 씨··· 여기, 그린 플리즈. 아는 데에요?”

“알죠.”

당연하다는 말투였다. 질문이 잘못된 거였나? 유명한 데를 아느냐고 물은 거니까···


“거기 멤버들도 알아요?”

“몇 명 알아요. 봉사활동 따라가 본 적도 있어요.”


‘어이쿠, 당신 속는 거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일단 참았다. 노보형이 거기 회원이었다는 말도 지금은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이제 조금씩 안정돼 가는데 굳이 안 좋은 얘기를 할 필욘는 없다고 봤다. 그린 플리즈를 내가 충분히 들여다 본 다음에 정리해서 말해 줘야지.


“아이 보고 체조 교실 가고 바쁜데 환경 운동할 시간까지 있었나?”

“그냥 시간 날 때 몇 번 참여한 거예요. 환경운동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으니까··· 중간자 입장에서는.”

그건 그랬다. 고향을 살리고픈 마음이야 당연한 거니까.


“그린 플리즈에 중간자 회원도 꽤 돼요. 세상 일에 끼어드는 게 조심스럽지만 환경 파괴는 남 일 같지 않으니까. 나도 정식회원은 아니지만 취지에는 동의해요.”

이런 순수하고 갸륵한 마음을 이용해서 악행을 저지르는 놈들은 용서할 수 없다. 속으로 다시 투지를 다지는데 미랑이 물었다.


“근데 왜? 당신도 환경 단체에 관심 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

미랑 입에서 감탄사가 나왔다.

작은 음성이지만. 나를 올려다 보는 눈빛이 뭔가 달라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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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당신이 왜 그자와 +2 24.04.11 11 2 13쪽
64 두 가지 대답 24.04.10 9 2 12쪽
63 개를 데리고 걷는 여자 24.04.05 9 2 13쪽
62 축소된 말의 귀 +2 24.04.05 11 3 12쪽
61 밴이 찾아왔다. +1 24.04.03 12 3 12쪽
60 아내가 있는 방 +3 24.04.01 12 3 12쪽
59 아이 없는 숨바꼭질 +2 24.03.29 16 3 12쪽
» 베타 테스트 +4 24.03.27 14 3 12쪽
57 두 개의 그린Green +2 24.03.26 11 4 13쪽
56 아빠의 눈물 +2 24.03.22 18 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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