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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치 님의 서재입니다.

변신한 짐승이 당신 옆사람이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신성치
작품등록일 :
2023.12.26 13:10
최근연재일 :
2024.06.13 11:35
연재수 :
100 회
조회수 :
2,674
추천수 :
307
글자수 :
597,391

작성
24.05.21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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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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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한 걸음 먼저

DUMMY

“아래, 아래, 오른쪽, 10센티만 더!”

드론이 천천히 내려왔다. 검정 색 마분지 판을 아래쪽에 단 드론이 저택의 담장 위쪽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기철이 형의 조종 솜씨는 놀라울 정도로 능숙했다.

수사를 하다 보면 드론을 활용할 필요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배운 거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수사보다 범죄로 판단되기 쉬운 활동에 드론을 사용하고 있었다. 물론 우리 쪽에서 볼 때는 진실을 밝힐 매우 중요한 수사지만.


“어, 거기. 스톱! 거기 그대로 떠 있으면 돼요!”

드론에 달아 놓은 까만 판이 CCTV를 가리고 있었다. 이제는 진입을 할 때였다.


중간자 동료들이 변신을 하고 점프를 하면 담장쯤 훌쩍 넘을 수 있겠지만, 안 그러기로 했다.

최대한 냉철 ․ 차분하게 행동할 필요가 있는데, 변신을 하면 아무래도 흥분하고 본능에 충실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은밀한 침투 작전을 펼치는데 처음부터 변신을 하면 주변 주민들이나 행인 눈에 띌 가능성도 컸다.


CCTV의 시선이 가려진 곳, 담장 위를 지나는 두 줄의 철선 위로 고무 요가 매트가 얹혔다. 그리고 고무장갑을 낀 묘화가 강한우의 어깨를 밟고 담을 넘었다.

사팔 흥신소 사소장은 저택 담장 위의 철선에 전기가 통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었다. 조금이라도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 어설픈 조치를 한 거였는데 다행히 감전 사고는 없었다.


묘화는 담을 넘으면서 고개를 저어 보였다. 전기선이 아니라는 신호였다.

묘화 다음으로는 몸집이 매우 작은 사내가 담을 넘었다. 중간자 중 매우 드문 들쥐 출신의 사내로 닫혀 있는 곳에 침투하는 데 능한 특기를 가졌다고 했다.


들쥐 아저씨가 넘어간 다음에는 담을 넘을 필요가 없었다.

그가 열어준 대문을 통해 우리는 조용히 집안으로 숨어들었다. 넓은 마당의 잔디밭 위에는 사냥개 두 마리가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정확한 위치에 투척된 수면제 묻은 고기를 포식하고 숙면을 취하는 중이었다.



지난밤, 뉴스를 보고 나서 새벽녘까지 우리는 논쟁을 벌였다.

그린 플리즈는 테러 집단으로 낙인 찍혔고, 선량한 중간자들에게 씌워진 누명은 벗기 힘들어 보였다. 믿었던 반장님과 박경위까지 우리를 범죄자로 몰아붙였다.


붙잡힌 중간자들을 고문하거나 약물을 투여해 심문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와도 반대 의견은 없었다. 인권단체도 동물 보호 단체도 나서지 않았다. 그들은 이 문제가 자기 분야인지 헷갈릴 수 있었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황대호와 염선생이 주사를 맞고 이상해지면 어떡하지? 정신이 나가서 멀더랑 스컬리 편을 드는 거 아냐? 우리 이대로 가만 있어도 되는 거야? 황대호가 구금돼 있는 경찰서에 쳐들어 가서 구출해?'


붙잡혀 간 같은 편을 걱정하고 구해낼 생각을 하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그들을 구하러 가는 건 날 붙잡아 가두슈하고 자수하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결론이 나왔다.

경찰이 미치지 않았다면 체포된 위장종들을 허술하게 지킬 리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역공을 계획한 거다.


“치고 나가야 돼. 그래서 사람들 생각을 바꿔야 돼.”

기철이 형이 먼저 결심을 밝혔다. 어떤 일을 마음 먹든 쉽지 않을 것 같아서 내가 물었다.

“어떻게 하자는 거예요?”

“민심이 바뀌면 수사 방향도 바뀌는 거야. 대중의 생각을 바꾸려면 잘 설명해야지. 옥,희한테 얘기했던 것처럼.”


그림책을 찾아내서 보여줘야 한다는 거였다.

진짜 악당이 누군지, 억울하게 이용당하는 이들이 누군지 증거를 찾아서 대중에게 들이밀어야 된다!

그래서 우리가 가야할 곳이 결정된 거다. 멀더와 스컬리의 본거지는 경찰청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음모를 꾸미고 정보와 자원을 얻어 오는 곳이 바로 여기 남산 아래 저택이었다.


“그 집으로 가면··· 뭔가 찾아내는 게 가능할까?”

나는 여전히 의심이 많았다. 그러자 기철이 형이 단호하게 주장했다. 최고의 수비는 공격이다, 라고.

“박경위가 그 집을 알아냈었는데, 지금 박경위는 저쪽 편이잖아요. 미리 대비하고 방어벽 치고 있는 거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다. 놈들이 철통 경비를 한다는 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하지만, 황대호가 잡혀가고 우리가 수배된 바로 다음날, 놈들 본거지로 쳐들어간다는 건 그놈들도 예측하기 힘들 거다. 망설이다 보면 얼마 안 남은 찬스마저 놓칠 수도 있다. 기철이 형은 단호했다.


그렇지만 나는 확신이 서지 않고 망설여져서 다른 이들의 눈치를 살폈다. 미랑도, 묘화도, 강선우도···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는 심정, 기철이 형 의견 쪽으로 기우는 눈치였다.


“달리 뭐 할 수 있는 것도 없잖아?”

기철이 형이 덧붙인 의문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해봐야 되는 거니까.


그래서 나와 기철이 형은 사팔 흥신소 사소장한테 전화해서 남산 아래 저택의 CCTV 등 보안체계 파악을 요청했고, 강한우와 묘화는 들쥐 아저씨와 두더지 총각한테 전화해서 달래고 빌어가며 겨우겨우 설득을 한 거였다.



현관이 잠긴 걸 확인한 들쥐 아저씨는 굳이 무리해서 현관문을 딸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오래 전에 지은 저택에는 주출입문인 현관 말고도 들어갈 구멍이 많고, 그 중에는 열려 있거나 잠금장치가 허술한 것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저택 뒤쪽으로 돌아간 그는 덜그럭거리지도 않으면서 창문 하나를 열었고, 역시 소리 없이 진입한 다음 우리에게 현관문을 열어줬다. 스무스하고 고요하게 열린 현관을 본 다음 기철이 형은 강한우와 나를 차례로 돌아봤다.


‘저 친구 뭐 하던 친구냐?’ 이게 아마 강한우에게 눈으로 한 질문이었을 거고, ‘너무 쉬운 침입은 수상한 거 아냐?’라고 나한테 물은 거라고 짐작했다.

그래서 나는 인상을 찌푸려 보였다. 내가 보기에도 이건 너무 쉬웠다. 이건 정말 엑스 장부파의 방심일까?


“누, 누구요?”

마냥 쉬운 건 아니었다. 저택 1층 거실의 불이 켜졌다. 그리고 잠옷 바람의 50대 남성이 침실에서 나왔다. 그의 어깨 너머로 겁을 집어먹은 중년 여인도 보였다.


뭐지? 우리는 야밤에 가정집을 침투한 도둑 꼴이 된 거였다. 뭔가 일이 꼬였음을 직감한 기철이 형, 어쩔 수 없이 가스총을 겨누면서 말했다.


“조용히 하세요. 두 분을 해치거나 금품을 바라는 게 아닙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남자에게 기철이 형은 물었다.

“이 집하고는 무슨 관계가 있는 겁니까?”

질문이 좀 특이하긴 했다. 남자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거실에 걸린 가족사진을 가리켰다. 50대 부부와 대학생으로 보이는 20대 남매의 화목한 사진.


“우리집이에요. 3년 됐어요. 애들은 올해 유학 갔고요.”

“3년 전에 이 집을 산 사람 주소지는 여기가 아니라고 하던데요?”

“그땐 내 사업지가 지방이라 집사람하고 애들만 여기 살았어요. 내가 주소지를 안 옮기긴 했지만 주말마다 올라왔고, 올해는 계속 여기 있었고요.”


제3자가 이 상황을 본다면 잠옷 입은 부부의 말을 믿을 것 같았다. 미친놈들이 침입해서 말같지도 않은 걸 따져 묻는 상황···

엑스 장부파를 미행해서 이 집을 알아냈다는 박경위의 말 자체가 함정이었나? 박경위 쪽에서 사소장까지 이미 포섭한 거였나? 답답하고 두려운 마음은 쓸데 없는 상상을 만들어냈다.


나는 귓속말로 기철이 형과 의견을 교환했다. ‘우리가 속아서 여기 온 건 아닐까? 그건 알 수 없다. 어쨌든 확인은 해 보자.’


“일단··· 집안을 좀 살펴볼게요. 우리가 오해한 거라면 사과하고 조용히 사라지겠습니다.”

“아니 가정집을 뭘로 오해하셨다는 건지··· 저희··· 신고 안 할게요. 나가 주시면···”


기철이 형은 고개를 저었다. 조용히 앉아 있으라고 손으로 신호했다. 전기 충격기를 든 묘화가 부부 앞에 마주 앉았다.

그리고 들쥐 아저씨와 두더지 총각까지 나머지 다섯은 집안을 둘러봤다.


요즘 시내 중심가 근처에서 보기 힘든 커다란 3층집이란 건 특이했지만, 집안의 모습은 그냥 잘 사는 가정집이었다.

비밀 기지, 특수 정보 기관, 악당의 본거지 그런 이미지와는 전혀 연결되지 않는 분위기···


이거 아무래도 엉뚱한 델 헛짚은 거 같은데··· 허탈함이 밀려올 때 두더지 총각이 나섰다. 도수가 매우 높은, 두꺼운 유리가 허예 보이는 안경을 쓴 작고 통통하고 소심해 보이는 청년이 조심스럽게 얘기를 했다.


“이··· 이리 와 보, 보세요.”

두더지 총각은 더듬더듬 벽을 더듬으면서 걸어갔다. 눈 대신 손으로 더듬어서 길을 찾는 것처럼. 말까지 더듬으면서.


“여, 여기··· 보시면··· 벼, 벽지가 찢어졌잖아요.”

그는 찢어진 벽지를 급한 이사의 흔적으로 보고 있었다.

“이··· 이게 서, 선명하게 색깔이 확 두드러져요. 찌··· 찢어진 데가···”


찢어진 지 오래 되면 색이 바래서 멀쩡한 부분과의 색깔 차이가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그 다음에 그는 2층 거실의 소파 아래로 우리를 이끌었다.


“이 아, 아래··· 먼지가 없어요. 소파 밑하고 그 바, 바깥쪽하고 차이가··· 거의 없어요.”

“청소를 겁나 깨끗이 하면 그럴 수도 있지 않나?”


들쥐 아저씨가 반론을 제기했다. 그러자 두더지 총각은 다른 쪽을 보여줬다.

소파 앞에 깔려 있는 양탄자 옆 마루 색깔을 지적한 거다. 양탄자 옆으로 3,4센티미터 정도의 마루가 다른 곳보다 조금 색이 흐렸다. 자를 대고 직선으로 뽀얀 색을 살짝 입힌 것 같았다.


두더지 총각은 손가락으로 선을 그어 보인 다음에 양탄자를 들췄다. 들춰진 양탄자 아래 마루 색깔과 양탄자 옆 3, 4센티미터 정도의 색깔은 같았다.


“워, 원래 이 카페트가··· 깔린 게 아니라 조, 조금 더 넓은 게 깔려 있던 거예요.”

“이사 가느라고 깔렸던 걸 걷어내서 저 색깔이 나온 거다?”

“네.”


‘급하게 이사를 간 거다? 그리고 급하게 가정집으로 꾸며 놓은 거다?’ 불길한 생각이 몰려 들었다. 그 생각들이 맞다면 우리는 함정에 빠진 거다. 놈들이 우리가 올 줄 알고 대비했다는 거다.


“진짤까요?”

“이사?”

기철이 형도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두운 얼굴만 봐도 알 수 있는 걸 굳이 질문으로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어떻게 확인해야 되지?”

“저 아래, 부부라는 사람들한테 물어보는 건 별 효과가 없을 것 같고요.”

“사팔이한테 시키면 이삿짐 나간 거 확인 가능할까?”

“할 수야 있겠지만 시간이 걸리겠죠. 지금 당장은 힘들고.”


그래서 뭔가 뾰족한 수를 떠올려 보려고 머리를 굴렸다. 그 순간, 한 가지를 분명하게 확인시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가 함정에 빠졌다는 것, 사냥꾼이 던져 놓은 올가미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는 것을.


펑, 펑! 강렬한 빛이 저택을 향해 발사됐다. 그리고 스피커를 통해서 거친 목소리가 우리에게 쏟아졌다.

“위장종 침입자들은 들어라! 너희는 완벽하게 포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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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비명을 질러서 혼란이 왔다고? 24.05.30 10 1 12쪽
90 심마니 & 비구니 +2 24.05.28 9 1 13쪽
89 돌아온 비구니 24.05.24 10 1 12쪽
88 빛 바랜 컬러 사진 24.05.23 8 1 14쪽
87 침입자의 밤 24.05.22 7 1 13쪽
» 한 걸음 먼저 24.05.21 8 1 12쪽
85 너희가 스며든다면 24.05.19 8 1 13쪽
84 Before & After +2 24.05.16 13 1 12쪽
83 머리카락이 보이면 24.05.15 8 1 14쪽
82 공개 난투 24.05.13 8 1 12쪽
81 손톱을 먹은 쥐처럼 24.05.11 11 1 15쪽
80 덫과 구렁 +2 24.05.08 10 1 13쪽
79 숨거나 덤비거나 24.05.07 11 1 12쪽
78 광풍의 시작 24.05.03 11 1 14쪽
77 이종족 색출 24.05.02 11 1 12쪽
76 멸종된 그늘 +2 24.05.01 14 1 13쪽
75 잠들지 않는 밤 24.04.30 12 1 12쪽
74 씹다 멈춘 껌 24.04.26 12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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