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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치 님의 서재입니다.

변신한 짐승이 당신 옆사람이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신성치
작품등록일 :
2023.12.26 13:10
최근연재일 :
2024.06.13 11:35
연재수 :
1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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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6
추천수 :
310
글자수 :
597,391

작성
24.06.04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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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앞발을 보아라

DUMMY

그들의 오른손 손등은 붉게 보였다.

자주색에 가까운 짙은 붉은 색이 손등을 덮고 있었다. 붉은 덮개는 엄지 손가락 아래를 둘러싸고 손등을 좌우로 감싸면서 손바닥에서 얇은 띠 모양으로 이어져 있었다.


연결된 띠 부분은 탄력 있는 고무 재질이 조각조각 이어진 철심을 감싸고 있어서 늘어날 수 있는 구조였다. 손이 갑자기 커지거나 손모양이 변형되더라도 끊어지거나 떨어지지 않도록 설계된 장치.


기본적으로 전자발찌의 원리를 따라 만들어진 위치 추적 장치였다.

성범죄자들이 발목에 부착해서 위치를 알 수 있게 하고, 절단하거나 파괴할 경우 곧바로 신고되게 만든 장치가 중간자용으로 변형된 것이었다.


오른손 손등에 추적 장치를 달게 한 건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성범죄자들의 전자 발찌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 바로 노출 여부였다.

전자 발찌는 바지나 양말로 덮어서 은폐할 수 있는 발목에 부착하게 돼 있다. 하지만 일명 전자 글러브인 중간자용 추적 장치는 자주 사용하는 오른손 손등에 눈에 띄는 색깔로 부착하도록 했다.

중간자인 것을 확연히 드러나게 해서 정상적인 시민들이 인지하고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게 개발 취지였다.


또 하나 전자 발찌와 다른 건 장치가 파손되지 않아도 경찰에 신호가 갈 수 있다는 점이었다. 글러브와 닿아 있는 피부의 재질이 바뀌는 경우 즉, 중간자가 변신하는 경우에 곧바로 신고 신호가 발신되는 기능이 있었다.


전자 글러브가 부랴부랴 개발된 원인도 결국 인호연의 기자회견이라 할 수 있었다.

인호연이 제시한 증거들이 속속 사실로 드러나자 여론은 크게 출렁였다. 경찰 수뇌부를 비롯한 위장종 사태 대응 라인이 대폭 교체됐다. 그리고 인호연이 문제 제기한 부분들에 대해서 광범위한 수사가 진행됐다.


각 지역, 직종 별로 위장종 색출 작업은 계속 이어졌지만 격리 수용에 대한 반대 의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엑스 장부파의 아지트 침투자들에 대한 구속영장 심사가 열렸다.

주성 일행의 선량한 의도를 인정한 법원이 영장을 발부하지 않았으므로 구속을 면하게 됐다. 하지만 주성과 백형사를 제외한 나머지 다섯은 중간자이므로 구속이 안 되더라도 ‘위장종 격리시설’에 구금돼야 했다.


법원은 유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고 풀어주라고 했는데 피의자들을 가둬야 하는 묘한 상황이 된 거였다.

그린 플리즈와 선량한 중간자들을 지지하는 쪽에서는 격리시설 구금이 부당한 처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불순한 의도를 가진 자들은 중간자들을 이용해서 큰 이익을 보면서 자유롭게 지내는데, 선량한 중간자들을 가둬서는 안 된다는 의견들이 늘어갔다.

하지만 주민등록 체제를 기만한 위험한 존재들을 사회에 풀어 놓으면 안 된다는 여론 역시 거셌다.


그래서 타협점 또는 보완책으로 나온 게 손등 덮개, 전자 글러브였다.

범죄 혐의가 없는 중간자들은 수용시설을 나가 원래 살던 집에서 살도록 했다. 그리고 별도의 국가적인 결정이 날 때까지는 24시간 내내 위치 추적 장치를 착용하도록 했다.


오른손 손등을 가리고 다니는 것도 불법 행위로 규정했다. 한겨울에 야외 작업을 하거나 고무 장갑을 끼고 일해야 되는 직종이더라도 전자 글러브를 덮어서 가리지 못하도록 했다.

결정이 난 후에 사람들은 타인의 오른손을 확인하는 게 버릇이 됐고, 의도야 어쨌든 손등이 뭔가로 가려진 사람들은 의심을 받았다.


주성 가족과 백형사는 미랑과 묘화가 수용된 공공기관 수련원 앞에 마중을 나와 있었다. 영장 실질 심사를 마치고 두 사람이 먼저 석방된 다음 일주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주성과 백형사는 출국이 금지됐고, 경찰 업무에서 배제됐으며, 경찰의 소환에 언제든 즉시 응해야 하는 상태였다.

하지만 둘은 그런 처지를 별로 답답해 하지 않았다. 열흘 전에 비하면 그들을 둘러싼 상황은 완전히 역전돼 있었다. 이제는 중범죄자로 몰려 쫓기면서 앞날이 캄캄한 신세가 아니었다.


오히려 수배가 된 건 아이덴 인포의 최대 주주 장철환과 그의 부하들이었다. 중간자 중 무력 최강자 아무르 표범출신 안문표, 위장종 대책본부의 핵심 경찰관이었던 멀더와 스컬리. 인호연이 고발한 자들은 모두 종적을 감추고 도주중이었다.



“어? 누나··· 형도··· 웬 일이셔?”


백형사는 갑자기 나타난 형과 누나를 보고 놀랐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막내라서 손위 형제들과 살갑게 지내는 편이 아니었다. 부모님 돌아가신 다음엔 제사 때, 명절 때나 보는 사이였는데···

묘화 출소에 맞춰서 찾아오다니! 주성이네 집처럼 우리집도 이해를 해주는 건가? 백형사는 잠시 들떴다. 잠시, 잠시···


“안 그래도 다음 주 엄마 제사 때 가려고 그랬는데···”

“괜히 시간 버릴까 봐 미리 알려주려고 왔다. 공연히 쓸데없는 기대해서 힘빠지는 일도 없게 해주고.”

이건 뭔 소리지? 누나 멘트의 목적은 아직 불분명했지만··· 안 좋은 분위기인 건 확실했다.


“대학 때 교환학생 왔던 스잔이랑 친해서 아버지한테 국제결혼도 괜찮냐고 여쭤봤었다. 농담이었는데 그렇게 노발대발하시는 거 처음 봤다. 눈에 흙이 들어가도 안 된다고··· 지금쯤이면 흙 많이 들어가긴 했을 거다.”

형의 발언은 색깔이 뚜렷했다. 형과 누나 방문의 의도가 드러나고 있었다.


“아니··· 그런 얘길 하려고 여기까지 찾아와서···”

어이가 없어서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백형사를 더 어이없게 하는 멘트가 이어졌다.

“니가 계속 지금처럼 행동하면 가문의 일원으로 인정 못 한다. 시골집이랑 밭 권리에서도 뺄 거다.”


부모님이 사시던 시골집과 밭은 귀농인에게 임시로 임대해준 상태였다. 아직 팔아서 분배하지 않은 걸 이제 형님과 누님께서 반띵해 드시겠다는 선언이었다.

대꾸할 말도 찾지 못하는 백형사한테 누나는 자식까지 팔아서 말펀치를 날렸다.


“명석이도 너 때문에 괴롭대. 친구들이 위장종 애인 삼촌 땜에 따돌린다잖아. 유명한 삼촌 둬서 좋겠다고 놀리고.”


초딩 때부터 학원이 바빠서 얼굴 보기 힘들었던 조카. 의사가 될까 법관이 될까 고민하다가 의료전문 변호사가 되겠다고 의사 먼저, 그담엔 변호사 자격을 따겠다는 목표를 세웠다는 애.

앞날 창창한 아이 앞을 희한한 삼촌과 괴기스런 삼촌 여친이 가로막고 있다는 얘기였다.


“저거 봐. 저 오른손, 아니 앞발에 시뻘건 거. 저거 주홍 글씨보다 더 무서운 거잖아.”

누나가 지적한 전자 글러브를 낀 손은··· 하필이면 그게 때마침 정문을 빠져나온 묘화 것이었다.

마중 나온 기철을 보고 환하게 웃다가 곁의 사람들을 보고 직감적으로 긴장하는 묘화. 왼손으로 오른손 손등을 덮는 묘화···


* * * * * * * * * * * * * * * * * * *


“인호연 얘기만 물어본 거예요?”

아버지 어머니는 인호연 기자회견 이후로 시골집에 내려가 계시다가 오늘 다시 올라오셨다. 미랑의 출소도 있지만 오전에 경찰청 대책본부에 참고인 조사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두 분이 조사를 마칠 무렵 그랜파가 수련원으로 오셨다. 산골 생활을 나름 즐겼지만 엄마와 재회한다는 기대감이 더 컸으므로 신이 나 있는 옥,희를 데리고.


“그래. 그 사람들은 인호연을 찾고 싶은 거니까.”

“있는 그대로 말해줬지. 관심 있어서 기자회견장 갔다가 일찍 내려와서 가려는데 그 사람이 나왔다고. 우리 아들 도와줘서 고맙다 인사하고 차 태워줬다고. 인호연 씨는 톨게이트 가기 전에 내렸고 우리는 옛날에 여행 갔던 산에 다녀 왔고 다음날 아들 면회갔다고.”

“맞어. 늬 엄마가 말한 게 있는 그대로다.”


28년만에 재결합한 부부는 손발이 잘 맞았다. 두 분이 방금 밝힌 데까지는 있는 그대로가 맞을 거다. 그 뒤에 진술 안 한 부분이 있는 게 문제겠지만.


“여행 가셨었다는 산이 마이산?”

중간자들과 아주아주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신비한 산 이름을 여쭤봤다.

두 분은 대답 대신 끄덕끄덕 고개를 흔들었다. 나도 더 이상 그 산에 관해 묻지 않았다. 그 산에서 뭘 하셨던 잘못된 일은 아니었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굳이 여기서 질문하지 않아도 곧 알게 될 거라는 예감 또한 강력했다.

나는 아주 간단한 질문을 하나만 덧붙였다.


“인호연 씨. 그 사람 어땠어요? 두 분이랑 헤어져서 갈 때?”

“고마워했지. 약속 지켜줬다고.”

“신이 오른 것 같았다. 생생하게 살아 있는 걸 느끼는 거야. 펄쩍펄쩍 뛰면서.”


어머니 아버지는 나름 보안을 지키기 위해서 나한테도 두 분의 활약을 자세히 알려주지 않고 계셨다. 하지만 두 분의 얘기를 들으니 내가 상상했던 게 얼추 들어맞았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


“옴마다!”

“엄마!”

“옥,희야!”


모녀가 서로를 알아봤다.

누구도 뒤쫓을 수 없는 스피드로 중간지점을 향해 질주하는 세 모녀! 미랑과 옥,희가 부둥켜 안았다. 미랑이 두 딸을 한꺼번에 안아 올렸다. 그리고 뭐라 말도 못하고 흐느껴 울었다.


나와 그랜파와 아버지 어머니가 다가가자 미랑은 연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면서도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그러다가··· 28년만에 가정으로 컴백한 시어머니, 자신과 같은 여우 출신 중간자 대선배와 눈이 마주쳤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치고 있었다.


두 시선들이 만나는 지점, 어머니와 미랑이 서 있는 한가운데의 공기 가운데에서··· 파바밧! 불꽃이 일어 빛나는 것 같았다. 물론 내 기분상 그랬다는 거다.


* * * * * * * * * * * * * * * * * * *


거실 유리창 앞 마당의 후박나무 넓은 잎들 사이로 반짝이며 흐르는 강물이 내려다 보였다.

껌 씹는 백발 신사 장철환은 남산 아래 저택을 빼닮은 북한강변 별장에 있었다. 물론 장철환 명의로 된 별장은 아니었지만 그에게는 익숙한 장소였다. 수배된 몸이지만 그는 전혀 도피자로 보이지 않았다. 잠시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있는 부유한 기업가처럼, 여전히 여유가 있었다.


“리스트에 없던 자가 하나 나타났습니다. 비구니입니다.”

“비구니?”

잠시 껌 씹는 걸 멈추고 장철환이 뒤를 돌아봤다. 표범 인간 안문표가 열중쉬어 자세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기자회견장에서 빠져나온 인호연과도 만난 게 드러났습니다. 비구니가 탄 트럭으로 인호연이 같이 이동했습니다.”

“어디로?”

“서울을 빠져나오고 나서 인호연은 곧 하차했습니다. 트럭은 인호연을 내려준 다음 고속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간 것까지 경찰 CCTV로 확인했습니다.”

“거기까지 안다?”

“네.”

“비구니··· 뭐 하던 여잔지는 모르고?”

“중간자들이 돌아가는 법을 연구한 여자, 비법을 알아냈다는 루머도 있습니다.”

“그런 걸 우리가 모르면···”

“안 됩니다. 알아내겠습니다. 현 위치는 파악이 됩니다.”


장철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동자세로 서 있는 안문표가 보스의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선생님께서는··· 국외로 나가셔야 되지 않습니까?”


드득, 이를 가는 것처럼 장철환은 잠시 껌을 씹었다. 그리고 앞에 서 있는 부하가 긴장하자 미소를 지었다.

“언제든 갈 수 있어. 걱정하지 않는다.”

“네··· 알겠습니다.”


끄덕끄덕 자신을 걱정해 준 부하가 기특하다는 듯 고갯짓을 한 다음에 장철환은 다시 일 얘기를 물었다.

“데려 갈 애들은 있나?”

“중간자 후배들은 거의 다 흩어졌습니다. 당장 동행 가능한 건 윤제 하납니다.”

“돼지?”

“네.”


장철환은 눈을 감더니 다시 껌을 씹기 시작했다. 딱, 딱, 딱···

안문표는 시야를 닫아버린 보스에게 구십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는 거실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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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비명을 질러서 혼란이 왔다고? 24.05.30 12 1 12쪽
90 심마니 & 비구니 +2 24.05.28 11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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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빛 바랜 컬러 사진 24.05.23 11 1 14쪽
87 침입자의 밤 24.05.22 9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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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Before & After +2 24.05.16 15 1 12쪽
83 머리카락이 보이면 24.05.15 11 1 14쪽
82 공개 난투 24.05.13 9 1 12쪽
81 손톱을 먹은 쥐처럼 24.05.11 13 1 15쪽
80 덫과 구렁 +2 24.05.08 12 1 13쪽
79 숨거나 덤비거나 24.05.07 14 1 12쪽
78 광풍의 시작 24.05.03 13 1 14쪽
77 이종족 색출 24.05.02 15 1 12쪽
76 멸종된 그늘 +2 24.05.01 17 1 13쪽
75 잠들지 않는 밤 24.04.30 15 1 12쪽
74 씹다 멈춘 껌 24.04.26 16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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