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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치 님의 서재입니다.

변신한 짐승이 당신 옆사람이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신성치
작품등록일 :
2023.12.26 13:10
최근연재일 :
2024.06.13 11:35
연재수 :
1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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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7,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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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9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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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너희가 스며든다면

DUMMY

사소장이 소개한 아파트를 기철이 형한테 알려주고 곧바로 미랑한테 전화를 걸었었다.

신호는 가지만 받지 않았다. 쫓기고 있으니까, 도망치고 있으니까 여유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십 분쯤 있다가 문자가 왔다.

백형사가 묘화한테 아파트 위치 알려줬다는 짧은 문자. 그리로 곧 오겠다는 얘기는 생략돼 있었다. 입으로 말을 하기 힘든 상황, 몇 문장 문자를 찍기도 어려운 상황일 거라고 짐작했다.


기철이 형이랑 내가 먼저 아파트에 도착해서 상태를 확인했다.

먼지가 조금 쌓이긴 했지만 생활에 지장은 없어 보였다. 통신 요금을 내지 않았을 테니까 인터넷 공유기와 TV는 없었다.

하지만 전기와 수도는 양호했다. 전기렌지가 있어서 도시가스를 신청할 필요도 없고, 냉장고와 세탁기도 있었다.


기철이 형과 나는 집안 상태를 대강 파악하고 곧장 집을 나섰다.

나는 식료품을 사러 갔고, 기철이 형은 구급약품을 산 다음 주변 지형 지물을 파악하겠다고 했다. 가까운 마트로 가서 먹을 걸 잔뜩 사서 돌아오다가 그릇이니 수저가 없다는 걸 뒤늦게 생각해냈다.

마트에 다시 갔다 오느라 시간을 보냈더니 기철이 형이 먼저 집에 와 있었고, 미랑 일행도 도착해 있었다. 그래서 감격의 상봉, 눈물 바다가 펼쳐진 거였다.


무지막지하게 기구한 운명의 마누라 미랑이 내 두 손을 잡고 울고 있었지만, 나는 휴대폰을 확인해야 했다.

아버지 폰을 내가 갖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극소수였으니까. 이 아파트에 모인 사람 말고는 산골집의 그랜파와 아버지뿐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산골집에는 옥,희가 머물고 있으니까 지체할 수가 없었다.


결투하는 서부 건맨이 총을 뽑듯 신속하게,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강원도 지역번호가 떠 있었다. 국번을 보니 산골집 동네의 번호였다.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다른 집 전화로 연락을 해온 거였다.


“시골집 동넨데.”

내 짧은 멘트에 미랑의 자세가 신속히 변했다. 아버지나 할아버지 전화일 거라고 짐작했기 때문이다. 옥,희 소식을 들을 수 있는 통화라고 기대도 했고.

미랑은 곧바로 눈물을 닦으면서 진정하려고 애썼고, 나는 통화를 시작했다.


“여보세요.”

“나다. 할애비.”

“아, 역시··· 그럴 줄 알았어요.”

“그럴 줄 알았으면 첨부터 그랜파한테 문안인사를 했어야지. 아니다. 그럴 줄 알았으면 니가 이리 걸지 그랬냐? 세상이 흉흉하니까 구라가 늘었구나.”


아이고, 이 어르신 역시 쌩쌩하시구먼. 이 와중에도 나름의 개그를 치시는 걸 들으니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애니웨이, 일단 우리집은 다 멀쩡히 잘 있다. 각설하고, 니 딸들 바꿔주마.”

전화에서 새나오는 소리를 들은 미랑의 표정이 다급해졌다. 새끼들 음성이 들리기도 전에 반응하는 어미의 본성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나는 스피커폰으로 대화 모드를 전환했다.


“옴마!”

“아빠씨!”

“옥,희야!”

“잘 있었어? 할아버지 말 잘 듣고?”

감격의 고성, 떨리는 인사말이 오갔다. 미랑은 겨우겨우 울음을 참아내고 있었다.


“우리는 다 잘 있다요. 그냥 할아버지는 소주도 안 먹는다요.”

“딱돌이 딱순이도 잘 있고, 가이도 잘 있어요! 근데 어떤 사람들이 옴마랑 옴마 친구들을 괴물이라고 그런대요!”


어이쿠! 올 것이 온 건가? 뭐라고 대답해야 될지 막막했다.

미랑은 가슴을 움켜쥐고 있었다. 심장이 아프고 덜컥댈 만도 했다. 스피커폰으로 옥,희 얘기를 들은 모두가 미랑을 걱정스레 지켜봤는데···


다행히도 미랑은 아이들을 돌보고 달래야 하는 엄마의 자세를 지켜냈다. 휴~ 길게 숨을 내쉰 다음 차근차근 멀리 떨어져 있는 딸들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거야. 여러 사람이 오해를 하면, 잘못 알고 서로 이야기하면 거짓말도 믿게 될 때가 있어.”

“안 돼요.”

“그러면 나쁜 건데!”

“잘못 아는 걸 믿고 있으면 설명해 줘야 되는데, 설명하는 게 어려워. 그러니까 쉽게 가르쳐줄 수 있는 걸 찾아야 돼. 조금만 보여줘도 아 그렇구나 알게 되는 거. 그런 걸 찾아서 잘 모르는 사람들한테 설명해 줘야 되는 거야.”

“그림책이나 동요 같은 거?”

“그림책 보면서 알려주면 쉽다요!”

“응. 어린이들은 그림책이나 동요를 보면 무슨 얘긴지 잘 알잖아. 어른들한테 잘 알게 하려면 어떤 게 좋을지 찾고 있는 거야.”


나도 뭔가 힘을 보태고 싶었다. 믿음을 더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외쳤다.

“아빠씨도 같이 찾고 있어!”

“땡구 아빠랑!”

“묘화 이모도!”

“우와! 모두모두 다 있다!”

친한 어른들 목소리를 한꺼번에 들은 옥,희는 신이 나는 것 같았다.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거 찾아서 보여주면 사람들이 미안하다고 할 거야. 잘 모르고 욕하고 화내서 미안해요. 그러겠지. 그니까 쫌만 기다리면 돼. 걱정하지 말고.”

“걱정 안 한다요.”

“걱정 필요없댔어. 왕할아버지가. 개뿔도 쓸데없대.”

와하하하! 말해놓고 재미있는지 아이들끼리 웃었다. 그러다가 또 질문.


“근데 아빠씨, 뿔 난 개도 있어?”

“어? 아직 못 봤는데···”

“뿔 난 개가 없으니까 쓸데없는 거야.”

뭔가 깨달음을 주는 것 같은 명언이었다. 재옥인지 재흰지는 헷갈렸다. 아무려면 어떤가?


“우와! 무지무지 똑똑하다!”

미랑과 묘화, 강한우까지 감탄하면서 웃었는데, 미랑은 소리 안 나게 입을 막고 눈물을 흘렸다. 그렇지. 이렇게 스마트한 딸들이 있는데 어찌 감격의 눈물이 나오지 않겠는가?

나까지 눈물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았다. 그리고 험험, 차분하게 목소리를 가다듬고 요청했다.

“왕할아버지 다시 바꿔줄래?”


옥,희의 왕할아버지, 그랜파는 먼저 부정할 수 없는 현실부터 말씀하셨다.

“나도 니 애비도 다 짐작했다. 네 처가 둔갑한 사람이라는 걸 말이다.”


둔갑이라. 잘 안 쓰는 표현이다. 옛날 얘기에서는 변신이란 말보다 둔갑이란 말을 더 많이 썼던 것 같다.

휴··· 어차피 알 수밖에 없는 일. 짐작하셨으리라 예상도 했지만 마음이 무거운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스피커폰 모드를 끄고 일대일 통화로 전환한 다음, 아주 짧게 긍정의 말씀을 드렸다.


“네.”

“네 애비도 다 안다. 테레비에서 북한산 국립 공원에서 심정지로 죽은 사건이 위장종이 한 짓이라는 얘기가 나온 다음에 네 애비랑 얘기를 했다. 사실을 외면할래야 할 수 없으니까. 주성이 댁이 위장종인 게 확실하다. 그래서 아이를 우리한테 보내고 지금 숨어다니는 거다.”

“그러셨군요···”

“첨엔 네 애비가 그러더라. 주성이가 여우한테 홀린 거라고. 그런데··· 여우란 게 들통났는데도 둘이 여전히 한편이라는 거죠? 남의 편이 아니라. 그렇게 질문을 하더라. 맞다고 그랬지.”

에휴··· 장가 잘못 간 불효자식이라고 유교 아저씨께서 얼마나 원망하실까? 걱정이 됐다.


“그리고는 점잖게 소주 세 병을 처마시더라. 글라스에 따라서 여섯 잔을 쉬지 않고 원샷. 그리고 선언하더라. 술 끊었다고. 판타지가 눈 앞에 벌어지는데 뭐 하러 술을 마시겠습니까? 역시 내 아들이다, 그랬지. 워딩이 마음에 들었거든.”

“진짤까요? 술을 끊는다는 게···”

“진짜라고 믿는다. 그 다음에 열심히 뉴스들을 보고 있다. 지나간 뉴스까지 유튜브로 다 찾아보면서 필기까지 한다. 노트 사서 거기 뭐 적는 건 고등학교 졸업하고 처음일 거다. 웬 안 하던 짓이냐고 물어보니까 그러더라.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될까···”


술을 끊는다는 것만큼 놀라운 소식이었다. 나나 미랑한테 도움이 되고 싶어한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하여간 그렇게 안부 전화는 훈훈하게 마무리 됐는데···



마트에서 사온 것들로 간단하게 식사를 할 때까지는 훈훈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렇지만 식사 후에 휴대폰으로 세상 소식을 접하자 더 이상 훈훈할 수가 없었다. ‘그린플리즈 앞 위장종’이 모든 뉴스 채널을 도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난투극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바뀌어 있었다.


표범인간과 사녀 등 시위자들이 휘두르는 폭력을 우리 친구들이 막으려 애썼다고 제대로 보도한 언론은 전무했다.

도심에서 다수의 사상자를 내면서 흉악한 폭력을 행사한 위장종들의 난동. 그 난동의 주동자로 체포된 황대호와 염소준. 그리고 도주한 위장종들의 신상까지 공개되고 있었다.


여우를 닮은 체조 코치 구미랑, 고양이 형상의 스턴트 우먼 황묘화, 악의 소굴 그린 플리즈의 차세대 리더로 꼽히는 황소 청년 강한우. 그들이 사람으로 위장한 모습과 본색을 드러낸 모습이라면서 두 가지 영상이 전면 공개됐다.


우리 중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각자 말없이 뉴스 영상을 들여다 볼 뿐이었다.

우리가 잘 아는 사람의 인터뷰까지 이어졌다. 삼각산 경찰서 강력 1팀장이었다가 얼마 전 퇴직한 선배 형사. 김형석 경감.

기철이 형과 나의 상사, 반장님이었던 너구리 출신 중간자의 아들. 그는 나와 기철이 형의 실명을 공개하면서 우리가 위장종들의 범죄를 은폐해 왔다고 주장했다.


‘특히 지주성 경사는 위장종 구미랑과 결혼해서 구미랑의 전남편 살해 혐의를 없애는 데 성공했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구미랑의 전남편 사망에 지주성이 처음부터 관련이 있었을 것도 같다.’


끔찍한 인터뷰였다.

나와 미랑은 말할 것도 없고, 기철이 형도 못지 않게 멘붕에 빠졌다. 나야 김반장을 알고 지낸 게 몇 달밖에 안 됐지만, 기철이 형은 오랫동안 믿어왔던 선배였으니까. 그리고···


기철이 형을 멘붕에 빠뜨린 건 선배뿐이 아니었다. 가까이 지내면서 도움을 주고 받아온 동료 지능범죄팀 박인숙 경위까지 인터뷰에 나선 거였다.

백기철 경위는 위장종 황묘화와 사귀면서 사건들을 조작해 왔다고. 기도원에서 늑대 사체가 나왔던 사건도 실은 그린 플리즈 앞 폭력 사건처럼 위장종들끼리 벌인 살상 사건이었을 거라고.


배신의 강펀치에 연타당한 기철이 형은 휴대폰을 꺼버렸다.

거실 벽에 기댄 채 눈을 감고, 겉으로는 조는 것 같지만··· 절망 속으로 잠겨들고 있었다.


모두들 말이 없고, 모두들 암울해진 상황. 뉴스 꼬라지를 보는 게 미치게 힘이 들었지만, 안 볼 수도 없었다.

평소에 여당과 야당으로 편을 나누어서 말싸움 놀이를 하던 이른바 시사평론가들이 체포된 위장종 수사 방식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다.


'지금 경찰에 붙잡힌 위장종을 취조할 때는 구타해도 된다. 고문해도 된다. 놈들은 인간이 아니니까 인권이 없다. 인간의 법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 동물 보호법으로 보호받을 필요도 없다. 평범한 동물 역시 아니다.

위장종은 정체를 숨기고 변신하는 흉악한 존재, 위험한 괴물들이다. 사람을 공격한 동물들은 안락사시키지 않나? 저놈들은 안락사도 필요없다. 올바른 답을 하지 않으면 고문하고, 그래도 안 되면 도살해도 된다.'


선량한 시민을 보호하는 게 최우선이라는 평론가는 살벌한 언어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어댔다. 마주 앉아서 떠드는 사람은 반대편 역할을 맡은 것 같았다.

취조에 물리력을 사용하려면 공론화된 논의가 필요하고, 사회적 합의와 일정 정도 입법도 필요하다고 본다는 의견을 펼쳤다. ‘그렇다면 지금은 위장종들을 평범한 인간 대하듯 심문하고, 그들이 묵비권을 행사하면 지켜보기만 해야 되나?’ 사회자가 물었다.


온건한 발언을 했던 평론가는 고개를 저었다.

‘그들이 인간과 똑같다는 건 아니다. 인간 피의자들과 완전히 동등할 수는 없다. 언제든 괴존재로 변신할 위험이 있는 피의자들이니까 진정제 등 필요한 약물을 투여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인간으로 볼 때 심각한 정신이상 상태로 빠지는 것이기 때문에 질문시에 선별적으로 정신과적 약물이 추가 투입될 수 있다.’


결국 마찬가지였다.

여기 숨어 있는 우리가 듣기에는 두 평론가의 말 모두 끔찍할 뿐이었다. 온건한 척 그럴싸하게 포장한 의견도 결국··· 강제 투여한 약물로 정신의 주체성을 제거한다는 얘기. 약물로 조종해서 자백을 받아내고, 진술을 끄집어 내겠다는 거였다.


이렇게··· 이대로··· 추락할 수밖에 없는 건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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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뒤집히는 여기저기 24.06.01 10 1 14쪽
92 맹수(였던) 고발자 24.06.01 9 1 14쪽
91 비명을 질러서 혼란이 왔다고? 24.05.30 10 1 12쪽
90 심마니 & 비구니 +2 24.05.28 9 1 13쪽
89 돌아온 비구니 24.05.24 10 1 12쪽
88 빛 바랜 컬러 사진 24.05.23 8 1 14쪽
87 침입자의 밤 24.05.22 8 1 13쪽
86 한 걸음 먼저 24.05.21 8 1 12쪽
» 너희가 스며든다면 24.05.19 9 1 13쪽
84 Before & After +2 24.05.16 14 1 12쪽
83 머리카락이 보이면 24.05.15 8 1 14쪽
82 공개 난투 24.05.13 8 1 12쪽
81 손톱을 먹은 쥐처럼 24.05.11 11 1 15쪽
80 덫과 구렁 +2 24.05.08 10 1 13쪽
79 숨거나 덤비거나 24.05.07 11 1 12쪽
78 광풍의 시작 24.05.03 11 1 14쪽
77 이종족 색출 24.05.02 11 1 12쪽
76 멸종된 그늘 +2 24.05.01 14 1 13쪽
75 잠들지 않는 밤 24.04.30 12 1 12쪽
74 씹다 멈춘 껌 24.04.26 12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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