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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치 님의 서재입니다.

변신한 짐승이 당신 옆사람이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신성치
작품등록일 :
2023.12.26 13:10
최근연재일 :
2024.06.13 11:35
연재수 :
1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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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97,391

작성
24.05.22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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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침입자의 밤

DUMMY

2층 거실 창문으로 보이는 마당은 환하게 밝아져 있었다.

정면에는 서치 라이트가 보이지 않았지만 옆 담장 쪽에서 강한 빛을 비추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맞은 편 담장 위로 검고 둥근 형체가 보였다. 헬멧, 헬멧을 쓴 사람들이 담을 넘으려는 거였다.


집안 수색은 즉시 중단됐다. 우리는 황급히 1층 거실로 뛰어 내려갔다. 집주인이라는 남녀가 있는 곳에 모여서 사태를 파악해야 될 것 같았다.


거실 통창으로 경찰 특공대원들이 담을 넘어 들어오는 게 보였다.

헬멧에 방탄조끼를 입은 특공대원들은 가볍게 담을 넘어 마당에 착지했다. 그들은 엽총이 아닌 기관단총을 메고 있었다. 대원들은 더 이상 전진은 하지 않고 일단 잔디밭에 무릎 쏴 자세로 앉았다. 우리가 있는 건물을 향해 총을 겨누면서.


헉, 마음 약한 두더지 총각과 들쥐 아저씨는 주저앉을 뻔했다. 집주인이라는 부부도 겁을 먹은 표정이었다. 미랑이 급하게 현관문을 잠갔다.


“뭐야, 저것들은!”

다혈질인 묘화는 폭발 직전, 곧바로 변신을 할 기세였다.

“씨발, 함정이었어. 기철 씨 친구 박경위라는 년이 배신한 거야!”


그럴 것 같았다. 묘화의 판단은 부정하기 힘들었다.

분명히 박경위가 멀더와 스컬리한테 얘기를 한 거다. ‘너네 본거지를 미행해서 추적했었다. 너네들 본거지를 백기철과 지주성이 알고 있으니까 그쪽으로 침입하려고 할 거다.’


그런 얘길 듣고서 본부를 철통 경비한 게 아니라, 번개같이 방을 뺀 거였다.

집이라는 껍데기만 남겨 놓고 알맹이는 다 빼내서 다른 데로 옮겨 놓고 허술한 경비망으로 침입자들을 초대한 거다.


“바보같이 멍청하게 유인하는 대로 끌려들어온 거야. 저 새끼들은 지금 짐승을 함정에 빠뜨렸다고 신난 거야!”

묘화는 분을 참지 못하고 몸을 뒤틀었다. 눈동자가 고양이 눈처럼 가늘어지고 있었다. 놔두면 곧 고양이 중간자로 변신할 판이었다. 함정에 빠진 짐승을


“묘화 씨. 안 돼.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야. 진짜 침착해야 돼.”

기철이 형이 묘화의 손을 잡고 간절하게 호소했다. 묘화는 뒤틀던 몸을 고정시키면서 진정하려고 했지만 불붙은 감정까지 가라앉지는 않았다.


“저 인간들, 부부라고 잠옷 입고 있는 저 자들. 엑스 판가 뭔가 그놈들 부하고 연기자일 거야.”

묘화는 찌를 듯이 손가락으로 중년 남녀를 가리켰다. 묘화 말대로 이들이 연기자라면 대단한 배우였다. 엄청난 메소드와 스킬을 지니고 피해자를 연기하는 거였다.


“아···아니에요. 우, 우린 신고한 적도 없어요.”

“방에서 나오자마자 붙잡혔잖아요. 전화 걸 틈도 없었어요.”

“신고 안 했으면 더 고급 연기를 한 거야. 꼼꼼하게 써준 예상 시나리오 외우고 대기한 거잖아. 자기들끼리 신호를 정했겠지.

저 앞집 몇 번째 창문이 켜지고 꺼지거나, 옆집에서 피아노 소리, 바이올린 소리가 들리면 침입자가 온 거다. 그런 신호를 정했을 수도 있잖아. 우리가 오기를 미리 기다리면서! 솔직히 고백하란 말이야!”


묘화가 남녀를 몰아 붙일 때, 맞은 편 담장 위에 강력한 서치 라이트가 얹혔다.

펑펑! 곧장 우리가 있는 거실을 향해서 강력한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거실 안 사람들은 눈이 부셔서 마당 쪽을 내다볼 수가 없었다. 미랑이 커튼을 닫았지만 통창을 덮은 커튼도 부옇게 밝아오는 빛은 막지 못할 정도였다.


고양이가 쥐를 잡을 때도 이렇게 몰아붙이지는 않는다고 들었는데, 우리는 고양이 앞의 쥐보다 더 확실하게 압박을 당하고 있었다.

분노와 두려움이 섞여서 심장이 방망이질해댔다. 감정이 극도로 고조되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강한우도 묘랑도 미화도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변신해서 폭발할 것 같았다.

겁을 먹은 들쥐 아저씨와 두더지 총각은 조금 다른 이유에서, 겁을 먹은 나머지 본성을 드러내고 변신할 것만 같았다.


“씨발. 저것들이 우릴 뭘로 보는 거야? 우리가 꼼짝 못할 거라 이거지?”

묘화는 화를 참지 못했고, 두더지 총각은 두려운 티를 팍팍 냈다.

“어, 어쩌죠··· 여기서 꼼짝 못하다가 붙잡히면 안 되는데···”


묘화의 의견에 동의하는 황소 청년 강한우는 집주인이라는 남자의 어깨를 꽉 움켜쥐었다. 솔직히 정체를 밝히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미랑이 강한우의 팔을 잡아 만류하며 말했다.


“지금 저 쪽에선 우리가 인질극을 하라고 유도하는 거예요. 이 사람들을 해치면 좋아할 놈들이 많다구요!”

미랑의 의견도 일리가 있었다.


‘이렇게 몰리다간 우리가 진짜 인질범이 될 것 같어. 그리고··· 인질범들 심정을 이해하게 될지도 몰라.’

그러긴 싫었다. 세상 모든 사람을 다 이해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리고 망가진 이들의 안 좋은 경험들을 따라서 체험할 필요도 없으니까.


위기를 벗어나려면 뭔가 빨리 판단하고 빨리 움직여야 했다.

초조감에만 빠져 있던 나보다는 역시 선배 형사가 나았다. 기철이 형은 들쥐 아저씨와 두더지 총각이 창밖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걸 보고 소리쳤다.


“두 사람은 계속 찾아요! 가만 있지 말고. 진입하는 거 막고 시간 벌고 버티는 데 도움 될만한 것들도 보이면 무조건 챙겨요. 빨리 온 집안을 다 털어!”


수색을 맡은 둘이 위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그 때, 맞은 편 담장 위에서 경찰 특공대장으로 보이는 사내가 스피커를 들고 말했다.


“위장종과 수배자들은 들어라. 지금 주택 내에 세대주 부부를 감금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즉시 두 사람을 풀어 주고 투항하라. 인질극을 벌이는 것은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다시 말한다. 먼저 집주인 두 사람을 내보내고 즉시 투항하라.”


내가 경찰인데··· 피의자 입장이 돼서 투항하라는 경찰의 얘기를 들으니 눈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었다.

나보다 여유가 있을 것 같았던 기철이 형 표정도 막막해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언제까지 문을 걸어 잠그고 버틸 수 있을까? 이대로 있다가는 진짜 인질범이 돼서 어처구니 없는 비극에 휩싸이는 거 아닐까? 특공대는 압박하고, 열 받고 불안한 우리는 저항할 방법이 없어서 결국 인질들을 이용하고, 그러다가 특공대의 자극이 거세지면 인질도 피를 보고 우리도 총알받이가 될 수도 있어.’


불길하게 떠오른 상상이 합리적인 예측일 수도 있어··· 그렇게 여기자 초조감이 확 치솟았다. 정서가 불안한 건 나뿐이 아니었다. 묘화는 ‘인질’이 돼 버린 남녀에게 고함을 질렀다.


“말해! 너희들 저것들이랑 한패잖아! 다 짜고서 여기 들어와 있는 거잖아!”

“아, 아니에요. 저희 여기 살던 거 맞아요.”

“저것들한테 꺼지라고 말해! 너희가 연극한 거 들통났다고, 빨리 안 가면 위험하다고 말하라고!”


 기철이 형이 급하게 묘화를 붙잡았다. 묘화는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털이 돋고 귀가 커지고 있었다. 흥분을 가라앉히기가 힘들어 보였다.

미랑이 묘화를 달래려고 백허그를 하면서 토닥거렸다. 미랑이 묘화를 가라앉혀 변신 이전으로 되돌려 놓을 때, 나는 ‘인질’들을 회유해 봤다.


“솔직히 말해 보세요. 우리 해칠 생각 없어요. 그래 봤자 우리한테 불리하니까.”

“우리 부부 맞아요. 쟤네도 자식 맞고. 여기 우리집인 것도 맞아요.”


거기까지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핵심은 아니다.

집의 명의만 갖고 있다가 어제 갑자기 이 집으로 들어온 게 아니냐. 그렇게 하도록 시킨 자가 있고, 그들과 모종의 거래가 있지 않느냐. 이런 걸 물어야 했다.

시간과 여유가 있었다면 나나 기철이 형이 자백을 받아낼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이 때는 시간도 여유도 우리에게 허용되지 않았다.


“우, 우리는 신고한 적도 없어요. 바, 방에서 나오자마자 붙잡혔잖아요.”

“휴대폰 보여줘 봐요.”

기철이 형이 얘기했다. ‘인질’이 대답하려고 할 때 들쥐 아저씨의 고함이 들려왔다.

“부엌 뒷문 앞에 LP가스통이 있어요! 부탄 가스들도 있고요.”

“이리 가져와요.”


‘인질’ 부부는 LP와 부탄 가스통들의 위치를 알고 있었던 걸까? 내 의심의 눈빛을 느꼈는지 남자 ‘인질’이 급하게 말했다.

“휴대폰 방에, 침실에 있어요.”


기철이 형이 침실로 같이 들어가서 두 사람이 휴대폰을 가져 오는 걸 지켜봤다. 그리고 통화, 문자, SNS를 신속히 확인했다. 나도 옆에서 두 사람의 휴대폰을 확인했다.

별 게 없었다. 가족 친지, 남자의 직장과 거래처로 보이는 통화 기록들이 대부분이었다. 오늘의 통화 기록은 100퍼센트 가족간 통화뿐이었다.

이 휴대폰들로는 알아낼 게 별로 없어 보였다. 이것도 미리 설정해서 준비한 폰인가? 의심이 들었다.


“이 폰들 일단 우리가 갖고 있을게요.”

이런 멘트는 이 상황에서 요청이 아니라 명령이었다. 돌아가는 꼴이 점점 인질극을 닮아 가는구나···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그때 거실의 집 전화가 울렸다. 내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라서, 전화기를 내려다 봤다. 표시된 발신자 번호는 웬지 낯이 익었다.


“여보세요.”

“지주성 형사?”

익숙한 음성, 스컬리였다.

“네고도 하시나요?”


네고시에이터, 인질극의 협상가까지 하느냐는 얘기, 동시에 너는 남들 모르게 여러 역할을 하지 않냐는 얘기였다. 악당 역할까지 몰래 맡고 있는 게 너라는 야유.

스컬리도 내 기분을 이해한 것 같았다. 정체를 숨긴 경찰의 대답에는 비웃음이 묻어 있었다.


“여러 역할을 해온 건 지형사랑 백형사죠. 박애정신이 투철하니까.”

“자기네 아지트에 함정을 파서 빠뜨리니까 통쾌합니까? 우리가 못 파헤칠 거 같아요? 우린 지금 바닥까지 본 상태야. 그냥 끝내지 않을 거라고.”

“네고시에이터는 범인들을 흥분시키면 안 되는데. 내가 잘못했네요. 내 목소리 때문에 화가 난다면 미안해요. 잠깐 TV좀 켜봐요. 보면서 마음 가라앉히시라고.”


스컬리가 전화를 끊자마자 기철이 형이 TV를 켰다. 공중파 방송에서 뉴스 속보가 나오고 있었다.

우리가 있는 바로 이 집이 뉴스가 주목하는 공간이었다. 마이크를 든 기자는 환한 조명이 비추고 있는 저택을 뒤로 하고 서서 위기감이 팍팍 묻어나는 다급한 멘트를 날리고 있었다.


“위장종 사태의 핵심에 있는 수배자들이 서울 중구의 한 가정집에 침입했습니다. 서울 삼각산 경찰서 형사 백기철과 지주성, 그리고 지주성의 부인인 위장종 체조 코치 구미랑, 위장종 스턴트맨 황묘화, 위장종 그린플리즈 직원 강한우. 이들 외에 위장종 둘이 더 침입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수배된 형사 두 명과 위장종 다섯이 오십대 부부가 거주하는 집에 침입한 상황인데요. 현재 주민 신고를 받은 경찰이 해당 주택을 에워싸고 있습니다. 수배자들은 집주인 부부를 인질로 삼아 경찰과 대치하는 상태이고요.

경찰은 인질의 피해를 막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있으나, 문제의 수배자들은 극심한 폭력성을 보여왔던 위장종들이 중심이기 때문에 유혈 사태를 우려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인질로 잡힌 부부의 안전을 최우선시하면서 일단 위장종 수배자들과의 대화를 적극적으로 시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머리끝까지 화가 난 묘화가 리모컨으로 TV를 꺼버렸다. 누구도 묘화를 말리지 못했다. 지금 변신해서 날뛰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니까.

기철이 형의 걱정스런 시선이 내 시선과 마주쳤다. 그 눈빛은 소리 없이 내게 묻고 있었다.

‘어떻게 하지?’


나는 기철이 형을 잡아 끌어서 ‘인질’들에게서 멀어지게 한 다음 귓속말을 했다.

“아직은 안 돼요. 시간을 조금이라도 끌어야 돼요.”

기철이 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미랑과 묘화에게 두더지 총각의 집안 수색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두 여자가 두더지 총각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갈 때, 들쥐 아저씨가 비스듬히 세운 무거운 가스통을 조심스레 굴려서 가져왔다.

그리고 기철이 형이 거실 전화의 수화기를 들었다. 최근 통화, 좀 전에 나와 얘기했던 스컬리의 번호가 전화기 액정에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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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돌아온 비구니 24.05.24 10 1 12쪽
88 빛 바랜 컬러 사진 24.05.23 8 1 14쪽
» 침입자의 밤 24.05.22 8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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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너희가 스며든다면 24.05.19 8 1 13쪽
84 Before & After +2 24.05.16 13 1 12쪽
83 머리카락이 보이면 24.05.15 8 1 14쪽
82 공개 난투 24.05.13 8 1 12쪽
81 손톱을 먹은 쥐처럼 24.05.11 11 1 15쪽
80 덫과 구렁 +2 24.05.08 10 1 13쪽
79 숨거나 덤비거나 24.05.07 11 1 12쪽
78 광풍의 시작 24.05.03 11 1 14쪽
77 이종족 색출 24.05.02 11 1 12쪽
76 멸종된 그늘 +2 24.05.01 14 1 13쪽
75 잠들지 않는 밤 24.04.30 12 1 12쪽
74 씹다 멈춘 껌 24.04.26 12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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