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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한 짐승이 당신 옆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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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치
작품등록일 :
2023.12.26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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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3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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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30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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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잠들지 않는 밤

DUMMY

서울 한복판인 남산 아랫동네, 20세기에 수도 경비를 책임졌던 사령부가 있던 산기슭으로 오르는 초입. 지하철 역이 있는 대로변에서 몇백 미터 안 떨어져 있지만 의외로 통행인이 적은 거리.


오래 전에 지어진 웅장한 저택이 어둠에 싸여 있었다.

가로등도 없이 어두운 저택의 담장 옆에 검은 색 소형차가 서 있었다. 역시 불이 꺼진 채로.


삼각산 경찰서 지능범죄팀의 브레인이자 지주성과 백기철 형사의 고마운 협력자인 박인숙 경위가 소형차 안에서 어두운 저택 안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백형사는 시경의 미제 사건 팀 사무실에서 그린 플리즈로 이동하면서 박경위에게 전화로 부탁했었다. 멀더와 스컬리의 휴대폰 위치 추적뿐만 아니라, 그들의 본거지를 알 수 있게 미행까지 해 달라고. 가능하면 주성과 자신이 뒤쫓아 보겠지만, 자신들은 사건에 투입되면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른다고.


그래서 박경위는 퇴근 후에 그린 플리즈 앞으로 이동했고 결국 멀더와 스컬리를 미행하는 데 성공해서 이 저택 앞까지 온 거였다.

그들이 커다란 밴을 타고 저택으로 들어간지도 한 시간이 돼 가고 있었다. 담장 밖에서 알아챌 수 있는 저택 안의 어떤 기미는 없었다. 도감청 장비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박경위가 무작정 잠복해 봤자 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황이었다.


백형사나 주성과 통화를 할 수도 없었다. 둘 다 전화가 꺼져 있었다.

밴이 들어간 저택을 확인한 것만 해도 성과가 있으니 이제 그만 철수할까? 거의 결심할 즈음에 저택의 커다란 철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그리고 밴이 아니라 승용차가 나왔다. 짙은 썬팅 탓에 차 안이 잘 안 보였지만 운전석과 조수석에 두 사람이 타고 있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


박경위는 거리를 두고 무리하지 않으면서 승용차를 따라갔다.

멀더와 스컬리 휴대폰의 대략적인 실시간 위치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바짝 따라붙으면 눈치챌 가능성도 컸으니까. 백형사가 그들을 좀 이상한 형사들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그래도 형사니까 만만히 볼 수는 없었다.


* * * * * * * * * * * * * * * * * * *


침착하고 느긋한 백형사지만 점점 신경이 곤두서고 있었다.

‘지주성 경사가 황대호를 도망치게 하자고 제안했습니까?’ 똑같은 질문을 스무 번은 듣는 것 같았다.


반복 질문도 심문의 한 기법인 걸 백형사도 알고 있었다.

무작정 똑같은 걸 계속 묻기도 하고, 다른 질문 틈에 섞어서 툭툭 던지기도 한다. 수사관은 그때그때 나오는 답변의 차이를 기록하고 따져본다. 묵비권을 쓴다면 표정이나 태도의 차이라도 확인한다.


이 수사관이 가진 정보가 많지 않으니까 이런 전략을 쓰나보다, 생각은 했지만 답답하고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게다가 늘 물어보는 입장이었지 대답하는 편인 쪽은 없었으니까.


‘그만 처물어라. 식상하다.’

목구멍을 넘어 오려는 격한 발언을 억지로 삼켰다.

수사관은 아무 감정 없는 얼굴로 백형사를 직시하고 있었다. 하나, 둘, 셋, 삼 초쯤 지나면 똑같은 질문을 또 할 것 같았다. 백형사는 자기 머리카락 사이로 스팀이 새나오는 걸 느꼈다. 이제 한 번만 더 질문을 들으면 폭발하는 압력솥처럼 두개골 뚜껑이 날아갈 거라고 판단한 순간,


조사실 문이 열렸다. 꽉 막혔던 조사실 안의 공기가 쉬익 빠져나가는 느낌. 조금은 머리와 가슴 속에 바람이 통하는 기분이 들었다.


“여기까지 하지.”

들어온 사람은 스컬리였다. 이 타이밍에 스컬리가 반가운 존재는 아니었다.

그래도 백형사는 일단 숨이 좀 쉬어지는 것 같았다. 수사관은 노트북을 챙겨들고 조사실을 나갔다. 심문이 중단된 게 기쁜지 불만인지 여전히 표정이 없어 알 수 없었다.


“나갑시다.”

스컬리의 음성은 착 가라앉아 있었다. 맞은 편에 앉아 있는 백형사를 바라보는 시선은 부하를 대하는 것도 용의자를 대하는 것도 아니었다.



잠시 후 백형사와 스컬리는 오뎅바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자신을 여기 앉혀 놓은 이유가 뭔지 궁금해 하면서 백형사는 경계를 풀지 않고 있었다. 스컬리는 백형사의 글라스에 얼음을 넣은 다음 25도 고급 소주를 따라줬다. 그리고 자신의 잔에는 얼음 없이 소주를 채웠다.


‘술로 기를 죽이겠다면 그건 오산인데···’

백형사는 스컬리의 의도를 추측하면서 간에게 전투 준비 신호를 보냈다. 휴우, 결전의 각오를 다지며 백형사가 심호흡을 할 때 스컬리가 잔을 내밀었다. 짠, 그리고 동시에 원샷.


스컬리는 다시 술병을 들었고 백형사는 자기 잔의 얼음들을 쓰레기통에 부어 버렸다. 끄덕끄덕. 스컬리가 알았다, 인정한다는 신호를 보냈다.

짠, 두 잔째 신속하게 원샷. 그리고 이야기 시작.


“전남편이 중간자였음. 늑대인간.”

최대한 감정을 배제한 짧은 문장이 스컬리 입에서 나왔다. 백형사는 여전히 스컬리의 의도를 의심하고 있었지만, 감정에 막을 수 없는 파문이 일었다. 심각한 사연을 핵심만 단도직입, 찔러넣었기 때문이다.


“결혼하고서 내 경찰 업무에 관심을 많이 보였음. 실종 사건, 신분 도용 사건, 괴물을 봤다는 이상한 신고 같은 거··· 아마 중간자 커뮤니티 같은 데 경찰 정보를 물어다 주는 역할을 했는 듯.”

“중간자인 걸 모르고 결혼하셨던 겁니까?”

“그래요.”


스컬리는 잠시 말이 없었다. 이번엔 백형사가 스컬리의 잔을 채워줬다.


“삼년 좀 넘게 같이 살았는데 끝무렵에 봤어요. 늑대인간.”

스컬리는 이번에는 원샷을 하지 않았다. 백형사도 술잔을 반만 비운 다음 스컬리의 얘기를 들었다.


“정신과에 가진 않았어요. 내 감각과 판단에 대한 확신이 있었으니까. 들킨 다음에는 거의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그 문제와 관련해서는 묵비권. 그러다가 곧 미션을 완수하고 완전한 인간이 됐죠. 그리곤 해외로 출국. 감감 무소식.”

“그 후에 이혼하게 된 건가요?”

“가정을 버리고 나가서 연락두절이니까 사유가 되잖아요.”

“네···”

“아이가 안 생긴 게 다행이었어요.”


‘정말일까? 나를 자기들 편으로 확실히 끌어들이려고 지어낸 얘기 아닐까?’

백형사의 의구심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술잔을 만지작거리며 한숨을 쉬는 옆에 앉은 여자는 거짓을 전하는 것 같지 않았다.


“아무에게도 말을 못 하고 미치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았어요. 그런데 알아주는 사람이 있더군요. 이미 알고 지켜봐 온 사람.”

“저희 팀에 있던 김반장님 같은 분인가요?”

“더 위에 있던 사람. 경찰 고위직 출신인 숨은 실력자. 그 사람은 아마 김반장님을 알고 있을 거예요. 역으로도 아는 사인지는 모르겠고.”

“그 사람 지시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신 건가요?”

“권유쯤으로 해 두죠.”


그리고 다시 짠. 두 사람은 잔을 비웠다. 백형사는 뱃속에 후끈 열기가 퍼지는 걸 느꼈다. 평소보다 빠른 알코올 반응이었다.


“중간자들과 가깝게 지내는 것. 특히 남녀관계로 얽히는 건 위험해요.”

스컬리는 한 손으로 자기 가슴을 짚으면서 말했다. 이 순간 그녀가 말하는 위험은 신체적인 것이나 사회적 지위 문제가 아니었다.


“다치기 쉬우니까.”

“그렇겠죠.”


그리고 스컬리는 백형사를 스카웃한 이유를 말했다.

지주성 형사가 중간자들을 잘 알고 있지만 지형사만의 도움을 받는 것보다 백형사가 같이 있는 게 나을 거라고 주장했다고. 지형사보다 백형사가 중간자 문제를 객관적으로 보고, 진짜 도와야 할 사람들이 누군지 현명하게 판단할 수 있을 거라 봤다는 거였다.


“지주성 형사가 감정적으로 움직이는 걸 막을 수 있을 테니까.”

백형사는 상관들이 자기네를, 특히 주성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자신이 선택하고 결단해야 할 타이밍이 머지 않았음도 느꼈다.

옆에 앉은 이 여자 상관의 말이 진심이든, 감성의 MSG를 잔뜩 첨가한 뻥이든 간에.


“선량한 중간자와 악한 중간자는 정확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어요. 그걸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한테 필요하고요. 나는 백형사가 흔들리지 않고 판단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본 거예요.”

백형사는 고맙다는 듯이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하지만 그의 속은 매우 답답해지고 있었다.


“우리한텐 조용한 믿음이 필요해요.”

백형사에겐 그 말이 다르게 들렸다. 주성이나 미랑, 묘화에게 말하지 말고 비밀리에 스컬리의 명령을 따르라는 지시로 들린 거다.


“진짜 우리 편이 돼 줘요. 선택의 기회가 여러 번 오진 않을 거예요.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 * * * * * * * * * * * * * * * * * *


“할아버지! 가이 데리고 나가 놀게요!”

“얘도 나가고 싶대요. 막 짖잖아요!”

옥,희는 한밤중임에도 왕할아버지네 시고르자브 개를 끌고 나가겠다고 우기고 있었다. 주성의 그랜파는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그놈 짖는 건 여기 마당에서 놀고 싶어요, 그러는 건데?”

“아닌데요.”

“멍멍나가 멍멍빨리 멍멍가자 그랬어요.”


미랑은 아이들의 창의력을 존중하지만 거짓부렁은 용납하지 않았다.

“엄마가 옆에서 다 들었는데 나가자, 빨리 가자, 그런 말은 안 했어. 한 번도.”

“멍멍이가 아직 그런 말까지는 못 배웠단다.”

“근데 나가면 왜 안 돼요?”


그랜파는 개를 끌고 집밖으로 나가면 안 되는 이유를 최대한 알아듣기 쉽게 설명했다.

밤에는 동물들도 잠을 자기 때문에 딱돌이 딱순이도 안 날아오고 있다. 개랑 같이 뛰어다니면 산골 동물들이 잠을 설칠 거고 화가 많이 날 거다. 게다가 멍멍이도 밤에 밖을 돌아다닌 적이 별로 없기 때문에, 목줄 잡은 아이들을 끌고 안 좋은 길로 뛰어갈 수도 있다. 밤에는 잘 안 보이니까. 그래서 아이들이 넘어져서 다치면 내일 환할 때 잘 놀 수가 없다.


내일 잘 못 논다는 데서 옥,희는 설득이 돼 버렸다. 그래서 마당에서 개와 같이 날뛰는 것으로 타협을 봤다.

옥,희는 이제 아빠씨 걱정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밤중에 강원도를 향해 달리는 차 안에서 아빠씨랑 영상 통화를 했으니까. 경찰청에서 풀려난 주성도 늦더라도 산골 집에 왔다 가기로 했으니까.


옥,희가 월등한 체력으로 개를 지치게 만들 즈음, 미랑은 집안으로 들어갔다. 안방에서 시아버지와 시할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몸은 괜찮은 거냐?”

시아버지가 여전히 어색한 말투로 물었다. 유산 사실을 주성이 전화로 알렸었다.

“네. 다른 이상은 없다고 그랬어요.”

“야심한 밤에, 주성이랑 따로, 갑자기 연락하고 달려온 건··· 특이한 일이다. 그렇지?”

시할아버지의 질문은 시아버지보다 좀 더 섬세했다. 시할아버지가 뭔가 심각한 사태가 있는 걸 짐작했음을··· 미랑은 눈치챘다.


“네. 좀 어려운 일이 있어요.”

“그게 주성이랑 네 부부 문제 같은 거냐?”

이번에는 시아버지의 질문. 아까보다는 아주 살짝 부드러워진 말투였다.


“그건 아닙니다.”

시아버지와 시할아버지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됐다. 다른 일은 어찌 됐건 문제될 게 없다는 의미같았다. 역적 모의를 했든, 외계인과 편을 먹었든, 아직 우리편이면 됐다는 의미.


“오늘 한반도는 물론이고 전지구적으로 시끄러워진 사건들하고 관련성은 좀 있는 게냐?”

인자한 미소를 머금은 채 시할아버지가 심각한 질문을 던졌다. 피할 수 없는 질문.

미랑은 대답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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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공개 난투 24.05.13 6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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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덫과 구렁 +2 24.05.08 8 1 13쪽
79 숨거나 덤비거나 24.05.07 8 1 12쪽
78 광풍의 시작 24.05.03 9 1 14쪽
77 이종족 색출 24.05.02 9 1 12쪽
76 멸종된 그늘 +2 24.05.01 10 1 13쪽
» 잠들지 않는 밤 24.04.30 10 1 12쪽
74 씹다 멈춘 껌 24.04.26 11 1 14쪽
73 공무집행 방해 24.04.25 9 1 12쪽
72 사냥 중계방송 24.04.24 8 1 12쪽
71 사냥개들 24.04.23 8 1 12쪽
70 왕따는 선량한가? 24.04.18 9 1 12쪽
69 빈 책상들 24.04.18 12 2 12쪽
68 슴과 소를 지우면 +2 24.04.17 16 2 14쪽
67 다가오는 용의자 24.04.16 13 2 12쪽
66 특이한 부부싸움 24.04.12 13 2 13쪽
65 당신이 왜 그자와 +2 24.04.11 13 2 13쪽
64 두 가지 대답 24.04.10 11 2 12쪽
63 개를 데리고 걷는 여자 24.04.05 10 2 13쪽
62 축소된 말의 귀 +2 24.04.05 12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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