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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치 님의 서재입니다.

변신한 짐승이 당신 옆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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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치
작품등록일 :
2023.12.26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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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8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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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는 선량한가?

DUMMY

아무리 바쁘고 힘든 직장도 살짝 심심하고 무료할 때가 있다.

고참들이 되도 않는 아재 개그로 후배들 괴롭히다가 간식 사오기 사다리 타기 같은 거 하는 타이밍.


격무에 시달리는 경찰들도 그런 타이밍이 있다.

내가 들어온 시경 미제 사건 담당팀 사무실도 그런 시점이었다. 그럴 수 있는 거지 뭐. 일선 서뿐만 아니라 경찰청 근무자들도 직장인인 건 마찬가지니까.


기철이 형과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여기 왔지만 이곳 근무자들은 심심하던 차에 뭐 재밌는 일 없냐는 시선으로 우릴 보고 있었다. 호기심과 장난기를 담뿍 담은 천진한 시선들로.


“이형사, 명형사 만나기로 했어요?”

“아뇨. 그건 아니고 뭐 좀 여쭤볼 게 있어서요.”

“우리도 그 팀한테 물어보고 싶은 거 겁나 많았는데.”


코 아래로 수염이 가득하고 눈에 피곤이 가득한 형사가 재밌다는 듯 미소지으면서 말했다.

털보 형사 옆자리의 이 사무실에서 제일 늙어 보이는 형사는 우리한테 질문을 던졌다. 일단 겉보기엔 이 팀 팀장보다 오래 산 것 같은 분의 질문.


“그 사람들이 두 분한테 뭘 시키는데요?”

“사회단체, 환경단체 관련 수사를 좀 하고 있어요.”

“삼각산 서 강력팀이면 사건도 많고 바쁠 텐데. 안 그래요?”


선배 어르신이 격무를 인정해주자 기철이 형이 격하게 끄덕이며 대답했다.

“바쁘죠. 안 바쁜 강력반 있겠습니까?”

“괜히 일하는 코스프레 하느라고 애먼 수사관들까지 괴롭히네.”

“그쪽 팀 인력이 빠져서 고생할 거 아냐.”


털보 형사, 어르신 형사, 팀장, 기타 등등 형사 모두 자리를 비운 두 사람에게 투덜대고 비웃는 분위기였다.

멀더와 스컬리는 우리를 대할 때 꽤 권위가 있어 보였고, 데리고 다니는 팀이나 사용하는 장비도 남달랐는데··· 여기서는 영 찬밥이었다. 시경에 근무하는 것도 일종의 위장인가?

내가 느낀 의문을 아마 기철이 형도 느꼈을 거다. 그러니까 입을 열었겠지.


“저··· 잠시만요.”

이 방 직원들은 모두 ‘왜? 뭐 묻고 싶은데? 뭘 말해 줄까?’ 우릴 안쓰러워 하는 동시에 재밌어 하는 눈빛들이었다. ‘질문 즉시 뭐든 얘기해 줄게. 입이 근질근질해.’ 씹고 싶고 깐죽거리고 싶고 뒷담화를 즐기고 싶은 그런 표정들.

그들을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고 기철이 형이 말을 이었다.


“저희는 지난 번 기도원 늑대 사건하고 북한산 사망 사건 같은 자연 환경 관련된 사건들을 해결해서 차출된 것 같은데요. 미제 사건 팀에 차출된 건 며칠 안 됐고요. 근데 여기 선배님들 뉘앙스가 저희 앞길에 지뢰를 좀 치워주고 싶어하시는 것 같네요.”

“아이고야, 과대평가다.”

털보 형사가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칭찬해 준 것도 없는데 웬 과대평가?


“지뢰는 못 치워드리지. 우리도 지뢰밭인지 꽃밭인지 잘 모르겠거든. 이명 커플 머릿속에서 뭐가 윙윙 울리는 건지.”

털보 형사의 겸손하게 대답하자, 어르신 형사가 보충 설명을 덧붙였다.

“아, 자리 비운 둘이 이씨랑 명씨라서 이명 커플이라고 불러요. 저 사람들은 전두엽이나 달팽이관 속에서 뭔가 우리랑 다른 소리가 울려퍼지고 있는 거 같아서.”

“평소에 그분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당사자한테 안 묻고 여기 선배님들한테 여쭤보면 결례일까요?”

기철이 형의 예의 바른 질문에 답하기 전에 털보 형사는 팀장님의 허락을 구했다.


“아이구 뭐 그렇게 디테일한 매너까지. 그냥 궁금하면 아무한테나 물어보는 거지 뭐. 팀장님 잠깐 손님들하고 담소 좀 해도 되겠습니까?”

“지금까진 안 떠들었냐. 바쁘신 분들 오래 붙잡지 말고 요약해서 썰 풀어 드려라.”

팀장님은 친절하게 허락하시더니 모니터 쪽으로 의자를 돌리면서 커다란 헤드폰을 썼다. 업무에 참조하기 위해서 섹시한 여형사가 나오는 미드를 보시는 것 같았다.


“자, 이 미제 사건 담당이라는 게 사실 미스터리를 푸는 거거든요. 근데 우리 팀에서 제일 미스터리는 저기 자리 비운 두 사람이야. ‘사건화 조사 판정팀.’ 그 명칭부터 미스터리였거든.

잠적, 자살, 원인 불분명한 돌연사 이런 것들 중에서 범죄 혐의점을 찾아낸다. 이건 자연 현상이나 사망자의 이상행동의 결과가 아니라 계획적인 범죄를 위장한 거다, 이런 걸 밝히는 거요.”

“만약 그렇게 잘 위장한 범죄를 식별해 낸다면 보람 있는 성과 아닌가요?”


일부러 얼빵하게, 순진한 척하면서 기철이 형이 말하는 걸 나는 알았다. 단순하고 기본적인 질문부터 시작하는 것. 자기를 낮춰서 상대가 경계를 풀고 입을 열게 하는 것. 그런 건 백형사 특기니까.


“브라보.”

어르신 형사가 박수를 쳤다. 그리고는 털보 형사의 바통을 이어받아서 멀더와 스컬리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의 말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런 거다.

멀더와 스컬 리가 맡은 임무는 최대한의 상상력과 자율성이 필요한 일로 인정받는단다. 이 팀 사람들은 안 그렇지만 어쨌든 누군가 매우 높은 사람이 그렇게 인정을 해 줬다는 거다.


상식으로는 들여다 볼 수 없게 감춰진 기이한 사건의 단서를 볼 수 있으려면 자유롭고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나. 멀더와 스컬리는 그래서 거의 무한한 업무상 자유를 누리고 있다.

미제 사건팀 팀장한테 보고할 의무도 없다고 했다. 그들의 보고체계, 그들을 뽑은 사람, 그들을 지원해 주는 사람 역시 미스터리. 이 팀 사람 누구도 모른다고 했다.


팀원들이 알 수 있는 건 이들이 여기 근무한 일년반 동안 낸 세 건의 보고서가 전부라고 했다. 삼류 추리소설과 도시 괴담의 중간쯤 되는 이야기들을 엮은 보고서. 재미마저 없어서 내용도 잘 생각 안 난다고 했다.


그런데 육개월에 한 건씩 허무맹랑한 보고서만 만들면서도 두 사람의 입지는 탄탄하다는 거였다.

도대체 누구 빽인지 모르겠다, 비트코인 수저라도 물고 태어난 것 같은 무지막지하게 잘나가는 집구석 남매들이 경찰놀이 시켜달라고 떼를 써서 여기 온 것 같다고.


가끔 보면 엄청 크고 비싼 독일산 밴에 정체불명의 수행원들을 데리고 청사에 들어오기도 한다고.

특수기관에서 지원을 받는다고 보기엔 두 남녀가 어리바리해 보인다고. 사비로 그런 것들을 마련해서 진짜 비싼 코스프레로 놀고 있는 건지, 어디 가서 사기치고 다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결정적으로 삼각산 경찰서 형사들 파견은 어떻게 받아냈는지, 이 사람들하고 뭘 하려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어르신 형사는 빠른 스피치 능력으로 쾌속 요약을 해 주셨다. 하지만 다 듣고 나자 허무감이 밀려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말씀 듣고 보니···”

“모르신다는 얘기네요.”


우리의 허무함을 확인하고도 이 팀 형사들의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나는 모니터 속 여형사의 활약에 초집중하신 팀장님 얼굴을 다시 봤다. 얼마나 뛰어난 분이면 멀더와 스컬리 같은 제멋대로 부하들을 데리고도 자기 팀을 이리 명랑하게 만들 수 있을까?


나의 존경어린 의문을 깨버린 건 휴대폰의 진동이었다.

발신자는 멀더였다. 나는 바로 받지 않고 폰을 들어서 기철이 형뿐만 아니라 이 방 팀원들에게도 보여줬다. 멀더와 스컬리의 빈 자리를 가리키면서.


“저 분들한테 온 건데···”

“봤구만, 봤어.”

“예?”

봤다는 게 무슨 뜻이냐고 물은 거였다. 그러자 어르신 형사가 손가락으로 멀더와 스컬리 자리 뒤에 있는 캐비닛을 가리켰다.


캐비닛 위에는 작고 둥근 CCTV 카메라가 설치돼 있었다.

기철이 형네 집에도 있는 카메라였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밖에 나가서도 집에 있는 동물을 확인하기 위해 달아놓는 펫케어 카메라.


아이고··· 한숨이 나왔다. 아무리 엑스 장부팀이 동물 출신 중간자를 담당한다고 하지만··· 아무리 사무실 내 왕따라서 (자기들이 나머지 모두를 따시키는 자발적 왕따 같지만) 자기들 없을 때 팀원들 행동이 걱정되더라도 저런 것까지···


“저것도 이명 커플이 사적으로 달아놓은 거라네.”

“우리를 귀엽게 본다는 거지. 댕댕이들처럼.”

이번 투덜과 비아냥 뒷담화에는 팀장님까지 참전하셨다.

“팀장도 제거를 명령할 수 없다네. 위에서 그들의 심리 안정에 필요하다면 그냥 놔두라고 지시가 왔다네.”


어르신 형사가 나한테 전화를 받으라는 손짓을 했다. 그리고는 다들 업무에 집중하는 것처럼 자기 모니터를 향해 자세를 틀었다.

휴~ 나는 한숨을 내쉰 다음, 전화를 받았다. 스피커폰으로 받을까 잠시 생각했지만, 그건 전화를 걸어 온 왕따에게 너무 실례가 되는 행동 같아서 참았다.


“예, 지주성입니다.”

“우리 자리에서 전화를 받으시네요. 지시한 일은 수행하지 않고.”

역시 이명 커플은 우리가 사무실에 온 걸 펫 케어 카메라를 통해 목격하고 전화를 건 거였다.


“황대호 신병 확보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인 지시를 받으려고 왔던 겁니다.”

“지형사는 거짓 진술 실력이 백형사에 비해 부족한 느낌이에요.”

멀더의 음성은 삐진 티가 확연했다. 토라진 아이가 친구더러 못났다고 시비를 거는 것 같은 어조였다.


“폰 하나로 할 수 있는 다양한 소통 방식들. 문자, 톡, 디엠, 통화, 확실한 느낌까지 알고 싶으면 영상통화도 가능하다는 걸 초등학생도 인식하고 있는 세상이에요.”

“아, 미리 전화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됐어요. 내가 없는 내 사무실에서 나 따돌리는 동료들하고 내 뒷담 깔 수도 있죠. 각설하고, 업무 얘기합니다.”


기철이 형은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휴대폰을 들여다 보는 척하면서 멀더 음성을 듣고 있었다. 나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기철이 형도 귀가 밝은 편이니까.


“황대호 체포 싸인 나오기 직전이에요. 그린 플리즈 앞으로 와서 체포 팀에 합류해요. 곧바로 도착하지 않으면 불순한 중간자들에게 포섭된 걸로 간주합니다. 시경에서 여기까지 30분이 넘지는 않을 겁니다.”

권위 있는 상사 코스프레 중인지 멀더는 내 대답을 듣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휴대폰을 들여다 보고 있던 기철이 형이 말했다.

“이명 커플 지금 그린 플리즈 앞에 있대.”


내가 미랑의 전화를 받고 멀더와 스컬리에 대해 심증을 굳혔을 때, 기철이 형은 삼각산 서의 브레인 지능범죄팀 박경위한테 연락을 했었다.

멀더와 스컬리 폰 번호를 알려주면서 위치 추적을 해 달라고.


“갑시다.”

“오케이.”

우리는 사무실 안의 팀원들에게 꾸벅 고개를 숙인 다음 급하게 빠져나왔다. 몇몇은 손을 흔들고 몇몇은 박수를 쳐줬다.

안쓰러워 하는 것도 같고, 재밌어 하는 것도 같은 표정들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내가 기철이 형한테 물었다.

“황대호··· 어떡하죠? 그냥 같이 잡아야 되는 건가요?”

“우리가 도망가라고 연락해 줄 순 없잖아. 상관 지시 어기고 용의자랑 편 먹는 꼴이 되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황대호가 억울해질 것 같아서요.”

“그건 그렇지. 일단 빨리 가보자고. 황대호 붙잡더라도 우리가 옆에 있는 게 나을 거야. 상황 이상해지면 스라소니 사체가 될 수도 있잖아.”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직 불분명한 게 많지만, 멀더와 스컬리가 믿기 어려운 자들인 것 맞았다. 그리고 아까 형사들 얘기처럼 그들 머릿속에서 뭐가 울리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아직 상상 못한 무서운 일 같은 것을···

충분히 벌일 수 있는 자들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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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따는 선량한가? 24.04.18 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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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밴이 찾아왔다. +1 24.04.03 12 3 12쪽
60 아내가 있는 방 +3 24.04.01 12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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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베타 테스트 +4 24.03.27 14 3 12쪽
57 두 개의 그린Green +2 24.03.26 11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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