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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석 님의 서재입니다.

F급 무한재생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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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석
작품등록일 :
2023.11.26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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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1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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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2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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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115화

DUMMY

“읍⋯! 우에엑⋯!”


참으려고 했는데, 절대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나는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뜨거운 액체를 억누르지 못했고 결국 입으로 쏟아버렸다.

다행히 음식물이 들어있는 위장은 아까 김서연이 뜯어간 덕분에 토사물까지는 아니고 샛노란 위액만 조금 뱉어내고 말았다.


“허억⋯ 허억⋯.”


아린이는 훈련 중 바닥을 기며 구역질하는 나를 보며 혀를 찼다.


“너 요즘 훈련 안 했다고 체력 엄청 안 좋아졌네. 예전보다 더 약해진 것 같은데?”

“그, 그 정도야?”

“응, 심각해.”


아린이의 혹평에 나는 조금 충격을 받았다.

분명 수치상으로는 훨씬 강해졌는데 오히려 예전만 못하다니.

하지만 확실히 그간 많은 풍파를 맞았지만 아린이와의 대련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숨이 꽉 막히는 압박과 내가 가진 모든 걸 극한까지 끌어내야 하는 필사의 감각을 겪어본 지는 꽤 오래된 것 같았다.

어쩌면 나는 아린이의 말대로 하드웨어만 업그레이드되고 소프트웨어는 오히려 하향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 쉬었으면 이제 됐어, 일어나!”

“자, 잠시만⋯ 아직 속이 안 좋아서⋯.”

“적한테도 속 안 좋으니까 기다려달라고 할 거야?”


아린이는 내 상태가 어떻든 정말로 봐주지 않고 배를 뻥 차버렸다.

아무 대비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S급 헌터의 싸커킥을 맞은 나는 축구공처럼 데굴데굴 바닥을 구르다 벽에 부딪히고 나서야 겨우 멈출 수 있었다.

내가 죽지만 않으면 얼마든지 다쳐도 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아린이는 나를 발로 차고 집어 던지고 날려버리는 등 사적인 감정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아주 험하게 다뤘다.


“끄윽⋯!”


나는 한 번 더 올라올 것 같은 위액을 꾹 억누르고 힘을 쥐어 짜내 일어서 검을 들고 자세를 잡았다.

아린이는 절대 봐주지 않는다.

내가 나뒹굴고 있으면 일어설 때까지 팬다.

더 처맞기 싫으면 어금니 꽉 깨물고 일어나서 눈깔 똑바로 뜨고 방어하는 수밖에 없다.


다행히 내가 자세를 일어나려는 의지를 보이자 아린이는 그 정도는 기다려줬다.

물론 쉴 시간까지는 줄 생각이 없었는지 내가 자세를 잡는 동시에 검을 휘두르며 돌진했다.


- 쩌엉!!!


“윽!”


아린이의 공격을 받아 내자 감전이라도 당한 듯 손이 저릿했다.

신경계에도 약간 문제가 생겼는지 찌릿하면서 제멋대로 손이 펴져 검을 놓칠 뻔했다.

이런 속도와 위력의 공격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공격인가, 싶었지만 또 전력을 다 하면 어떻게 막히긴 막혔다.

시험에서 0점을 받으려면 모든 문제의 답을 알고 정답을 피해 가야 0점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아린이는 모든 것을 알기에 내가 막거나 피하지 못할 공격은 절대 하지 않았다.


- 스르릉!


“윽!”


나는 아린이에게 검술을 배우며 검이라는 게 휘두르고, 찌르기만 하는 무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아린이는 나와 검을 맞댄 상태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자신의 검으로 내 검을 휘감아 찍어 눌렸고 나는 그대로 자세가 무너지며 목과 어깨 사이를 베여 피가 주르륵 흘렀다.

날이 서지 않은 연습용 검이라 원래는 절대 베일 일이 없지만 이젠 딱히 놀랍지도 않았다.


“여기서 어떻게 하면 될 것 같아? 잘 생각해봐, 아직 반격할 방법이 있어.”


이대로 힘을 더 줘서 날을 깊이 박아넣으면 내 목과 몸이 분리될 상황에서 아린이는 내게 마지막 기회를 줬다.

위에서 아래로 찍어누르는 힘을 쳐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뒤로 빠지거나 몸을 숙여 피할 공간도 없다.

그렇다면⋯.


- 스르륵.


나는 자세는 그대로 유지한 채 힘만 쭉 뺐다.

그러자 아린이의 검이 힘이 빠져 흐물흐물해진 내 칼날의 면을 타고 스르륵 흘러 내려갔고 자연스럽게 아린이의 검은 바닥에, 내 검은 그대로 어깨 위에 위치하며 내가 아린이를 내려칠 수 있는 공격권을 쥐게 되었다.


“그렇지! 잘했어!”


이게 정답이 맞았는지 아린이는 웃으며 칭찬했다.


“항상 힘으로 부딪히려고만 할 게 아니라 유하게 넘길 줄도 알아야 해. 어떨 땐 흔들리는 갈대처럼 어떨 땐 우직한 나무처럼, 그게 검술의 미학이야.”


검술의 미학.

이 단어가 뭐라고 사나이 가슴을 울리는 멋이 있었다.


“그래서 어때? 슬슬 던전도 가야 하는데 오늘은 이쯤 할까?”


아린이의 말에 나는 퀘스트를 확인해봤다.


[일간 서브 퀘스트 – 12시간 동안 무기술을 연마하시오.]

- 12 : 00 : 00 / 12 : 00 : 00

[보상 – 특전 포인트 1]

[퀘스트 완료]


사실 퀘스트는 진작에 클리어가 돼 있었다.

그냥 오랜만에 무기술 1타 강사의 가르침을 받으니 너무 재밌고 유익해서 나도 모르게 열중했을 뿐이었다.


“응, 고마워, 훈련 봐줘서.”


나는 아린이에게 감사를 전하며 퀘스트 완료 버튼을 눌렀고.


[박준호 (24)]

[Lv. 60]


보유 특전 포인트 : 9


정말로 퀘스트 보상으로 특전 포인트 1을 받았다.

시스템 메시지이니 당연히 진짜였겠지만 그냥 신기했다.


“그런데 오늘 훈련하면서 조금 놀랐어, 언제 그렇게 강해진 거야?”

“응? 아까는 약해진 것 같다면서.”

“그거는 실력적인 이야기였고, 힘이나 반응속도 같은 건 훨씬 좋아진 것 같은데? 예전엔 C급 중위권이었다면 지금은 거의 C급 상위권에서 B급 하위권 정도?”


아, 그런 이야기였나.

훈련 내내 아린이에게 뚜까맞은 데미지로 한계 돌파 특전의 효과를 계속 최대치로 유지하고 있었으니 그런 부분에선 당연히 압도적인 향상이 있었을 것이다.


“요즘에 특성 성장을 많이 시켜서 확실히 피지컬은 좋아지긴 했어, 그런데 너 정도 수준이면 도토리 키재기라 모를 줄 알았는데 잘 알아차렸네?”

“오히려 더 잘 느껴지지, 전이랑 느낌이 달라.”

“어떻게 다른데?”

“전에는 손가락만 올려도 죽을 것 같았는데 지금은 꾹 누르는 것까지는 버티는 느낌?”


아⋯ 작은 벌레에서 큰 벌레가 됐다는 말이구나⋯.


“⋯딱밤 정도는 버틸 수 있을 때까지 힘내볼게.”

“노, 농담이야, 농담! 상승세가 엄청 가파르니까 이대로만 가자! 계속 이 정도 성장 속도면 금방 준혁 오빠보다 더 강해질 수 있을지도 몰라!”

“⋯그냥 띄워주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진심으로!”


형제의 존재는 아주 좋은 자극제였다.

물론 선의의 경쟁은 아니고 저 새끼보다는 내가 낫지, 라는 느낌으로.

내 그동안 F급따리라는, 그래서 님 각성 등급 어디? 라는 수모를 얼마나 긴 시간 참아왔던가.

박준혁, 딱 기다려라.

아린이에게서 그런 말을 들으니 갑자기 더 높은 곳을 향한 의지가 확 솟구쳤다.




***




“어휴⋯.”


퇴근 시간대의 저녁.

매우 지친 퀭한 얼굴의 남성 한 명이 넥타이를 풀어 헤치며 치킨집으로 향했다.

그는 미리 포장 주문해둔 치킨과 캔맥주가 담긴 봉투를 받아들고 밖으로 나와서 봉투에 코를 박고 치킨 냄새를 크게 들이켰다.


“스읍~ 하아~.”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직장이 뒤집히는 바람에 지난 며칠간 비상근무에 돌입해 퇴근도 못 하다가 사건이 일단락돼 겨우 집에 갈 수 있게 된 그는 참고 참아온 이 순간은 즐겼다.

집 가서 보고 싶었던 영화에 치킨과 맥주를 곁들일 생각을 하니 벌써 기분이 좋았다.


“⋯⋯아, 시발.”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 골목 맞은편 한가운데에 서서 길목을 막고 서 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는 나지막이 욕을 내뱉었다.

그는 딱히 얼굴을 가리고 있지도 않았고 어두운 곳에 서 있지도 않았지만 이상하게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얼굴이 잘 보이지 않으니 누군지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얼굴이 잘 보이지 않기에 누군지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야 이 미친놈아.”


그는 골목 맞은 편 남자를 향해 다짜고짜 욕을 박았다.

그러자 남자는 성큼성큼 그를 향해 걸어와 손을 내밀었고.


“하⋯ 돌겠네.”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애써 흘러나오는 미소를 참으며 남자의 손을 맞잡았다.


“김현일, 오래간만이다.”

“재밌냐? 오주한 등신 새끼야? 너 대체 뭔 짓거리를 하고 다니는 거야?”


헌터관리국 부산 지부에서 일하는 김현일 요원을 찾은 건 다름아닌 오주한이었다.

둘은 아카데미 동창이자 헌터관리국 동기이기도 한 친구이자 동료였다.

김현일은 오랜 친구가 아직 무사하다는 데서 기쁨을, 이제 좀 쉬려는 데 골칫덩이가 굴러왔다는 데서 짜증을 동시에 느꼈다.


“밥은 먹고 다니냐?”

“요즘 배달 음식 맛있더라고, 맛집도 몇 군데 찾았어.”

“자랑이다.”


둘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나란히 골목을 걷기 시작했다.


“일단 얼굴은 인지 왜곡 마법 걸어놓은 거 알겠는데 CCTV는 괜찮아?”

“그것도 신경 써 뒀어.”

“마력 추적은?”

“물론 해놨지.”

“그래, 철저해서 좋네.”


그가 추적을 완벽히 방지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김현일은 그제야 오주한을 자신의 집으로 들였다.


“자, 그래서? 너랑 같이 있다가 걸리면 나도 사이좋게 쇠고랑 차는 거 알지? 신고할지 말지 정하게 일목요연하게 상황 정리해서 날 설득해봐.”

“제목 헌터관리국장 살해 혐의에 대한 해명, 작성자 오주한, 사건개요 헌터관리국 내 테러 조직에 협력하는 변절자 수색 보고를 위한 헌터관리국장 면담 후 국장께서 돌연 사망하였고 즉시 보안과의 수사를 받던 중 돌연 체포당함, 이에 내부 변절자의 사건 개입을 확신, 또한 현 헌터관리국장 정우진 부국장의 개입을 확인함. 해당 조직의 목적은 쿠데타를 통한 정권 장악, 조치사항 적법한 절차로는 문제 해결이 불가하다 판단, 도주를 시도 및 성공 또한 사건 해결을 위한 조력자 모색 중에 있음.”


오주한은 보고서 형식으로 있었던 일을 요약해 전했다.

요원 생활을 오래하다 보니 대화로 풀어서 설명하는 것보다 이렇게 형식에 맞게 보고를 듣고 하는 것이 더 익숙하고 편할 지경이었다.


“⋯⋯⋯⋯.”


한편 오주한의 이야기를 들은 김현일은 국장 정우진의 개입을 확인했다는 대목에서부터 표정이 딱딱하게 굳기 시작했다.


“증거는.”

“목격자 및 증인 외 물증은 전무.”

“하!”


김현일은 허리에 손을 짚은 채 헛웃음만 픽픽 흘리며 집 안을 빙글빙글 돌았다.


“아니, 근데 왜 날 찾아온 거야? 그 정도 건이면 감사실에⋯!”

“감사실까지 동조하고 있어.”

“와~ 미쳐버리겠네.”

“⋯도와줄 수 있겠어?”

“돕고 자시고의 문제가 아니라 안 끼어들 수가 없는 문제잖아!”

“날 믿겠다는 거야?”


오주한의 물음에 김현일은 빙글빙글 돌던 걸음을 멈추고 오주한을 응시하며 말했다.


“그럼 너는?”

“뭐?”

“너는 내 뭘 믿고 찾아왔냐? 미안한데 사실 나도 국장편이야, 진작에 너 신고했고 이미 체포조가 여기 포위했어, 다 끝났다 주한아.”


그의 말에 오주한의 표정이 차갑게 식었다.

그 상태로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던 오주한은 무거운 입을 뗐다.


“븅신.”


오주한의 반응에 김현일은 실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 사이에 믿고 말고 할 게 뭐가 있어, 그냥 네가 그렇다면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 아, 그런데 나 딱 하나만 묻자. 동주⋯ 그렇게 만든 새끼들이 그 새끼들이냐?”


김동주 요원.

얼마 전 작전 중 순직한 둘의 친구이자 동료였다.

그 질문에 오주한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김현일의 눈이 반짝였다.


“⋯내가 뭘 해줄까.”

“지금 당장 구체적인 지시사항을 주기엔 정보가 너무 부족하지만 우선은 부산 지부의 분위기를 살펴줘. 서울본부는 거의 대부분의 요원이 국장의 편에 선 분위기야. 그들을 저지하려면 물리적인 충돌이⋯ 사실상 필수로 보여.”

“믿을 만한 놈들 선별해봐라, 그거네?”

“맞아.”

“후우~ 재밌겠네. 또 다른 건? 돈이나 숨을 곳은 괜찮아?” “그건 괜찮아. 일단은 그것만 좀 부탁한다.”

“그래.”

“특이사항 있으면 연락할게.”

“몸조심하고.”


- 스르륵.


대화를 마친 오주한은 마치 그림자처럼 김현일의 앞에서 사라졌다.


“⋯⋯⋯⋯.”


오주한이 사라지고 집 안에 혼자 남은 김현일은 심란한 마음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문뜩 자신이 사온 치킨 봉투를 발견했다.

오주한 때문에 맥주는 미지근해졌고 치킨은 수분기를 머금어 차갑고 눅눅해져 있었다.


“하~ 저 새끼 저거, 왔으면 맥주나 한잔하고 가지.”


- 치익!


그의 완벽한 휴일 계획은 시작부터 뒤틀어졌지만 원래 작전계획이란 작전 개시 후 몇 초 이상 가는 법이 없는 것이다.

수많은 작전 수행 경험으로 그것을 몸소 알고 있는 김현일은 그럼에도 최대한 작전에 맞추려 노력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도 알고 있기에 계획대로 미지근해진 캔맥주를 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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