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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석 님의 서재입니다.

F급 무한재생 헌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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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석
작품등록일 :
2023.11.26 04:32
최근연재일 :
2024.05.17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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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4.04.16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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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25화

DUMMY

“어,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거지.”


나는 덜덜 떨리는 손을 감추기 위해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뭘 그렇게 떨어. 가자.”


그러자 옆에 서 있던 아린이가 주머니에 넣은 내 손을 도로 빼 긴장 풀라는 듯 손을 한 번 꾹 쥐어주었다.

그 따뜻한 체온과 얼얼함에 쪼그라들어있던 혈관이 열려 피가 확 돌며 떨림이 조금은 잦아들었다.


“엇, 헌터님. 죄송하지만 무기는 이쪽에 보관해주십시오.”


우리가 호텔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직원 한 명이 허리에 검을 차고 있는 아린이를 막아섰다.

평소 같으면 순순히 검을 내줬겠거니와 애초에 검을 들고 오지도 않았겠지만 오늘은 반드시 이 검을 착용하고 있어야 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예?”

“이 검, 500억 정도 하는데 손상되거나 분실되면 피해보상은 당연히 되는 거겠죠?”

“예? 아니, 그게⋯ 아닙니다, 그냥 들어가십시오.”

“고마워요.”


직원은 아린이가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묻자 그냥 통과시켜주었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




“소은 언니랑 석혁 아저씨랑 싸우라니 대체 그런 말은 왜 한 거야?”


전화로 나눌 이야기는 아니기에 나는 아린이와 형을 따로 불러내 내가 보고 들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자 아린이와 형은 곧바로 내 말의 요지를 파악했다.


“그러니까 준호 네 말을 정리하자면 그 이상한 약물을 개발하고 생산한 게 엘릭시르 길드고.”

“엘릭시르 길드의 마스터인 강국선과 안석혁 헌터가 호형호제하는 사이인데다 또 그 안석혁 헌터와 친한 사이인 이소은 헌터까지도 이번 일과 연관이 있을 수 있다. 이 말이잖아?”

“그렇지.”


상황을 이해한 아린이는 별 반응 없이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지만 형은 동공이 흔들리는 게 보였다.


“우와~ 진짜 골 때리네. 그냥 유럽에 있을 걸 그랬나?”

“언제는 라이트 형제처럼 역사 교과서에 이름 한 번 박아보자더니 이제 와서?”

“S급 헌터까지 줄줄이 소시지로 엮여 있을 줄은 몰랐지!”

“아직 엮였다고 확실하게 판명된 건 아니잖아.”

“그건 그런데 엮인 게 맞으면 우린 죽은 목숨이야! S급 헌터 둘이 엮인 거면 거기서 끝나겠어? S급 길드의 헌터들이며 그 밑으로 또 얼마나 많은 길드가 엮여 있겠어?!”


형은 조금 흥분했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그래도 죽진 않겠지. 얘가 있잖아.”

“그러게, 죽진 않겠구나.”


내가 별생각 없는 듯 평소처럼 눈을 깜빡이고 있는 아린이를 가리키자 형은 아린이와 한 번 눈을 마주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도로 자리에 앉았다.

흥분 가라앉히는 거 되게 빠르네.


- 우우웅!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걸려 왔다.

발신인은 다름 아닌.


“⋯바, 받아?”


석혁 형님.

이걸 참 시의적절하다고 해야 할지 꺼림칙하다고 해야 할지.

나는 전화를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스스로 판단을 내리길 주저했지만 받아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형과 아린이의 의견에 용기를 냈다.


“⋯예, 형님.”

“어! 준호 동생! 별일 없지?”


아니요, 있는데요.

갑자기 전화해 별일 없냐고 묻다니.

큰 의미 없는 예사로운 인사말이지만 하필 이런 때에 그런 말을 들으니 참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네, 별일 없습니다.”

“하하! 다행이구만! 지금 통화 괜찮나?”

“예, 괜찮습니다. 무슨 일이시죠?”

“어~ 별 건 아니고 오늘 저녁에 시간 어때?”

“⋯예?”

“오늘 소은이가 다 같이 모여서 밥 한번 먹자고 하더군!”


분명 얼마 전 소은 누나의 별장에 갔을 때 그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게 하필 오늘이라니, 많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타이밍이었다.


“⋯예, 알겠습니다.”

“오~ 좋아! 간만에 넷이 다 같이 모이겠군! 시간과 장소는 톡으로 보내주지!”


나는 석혁 형님과 약속을 잡고 전화를 끊었다.

오늘의 저녁 약속에 아무 의미도 의도도 없다면 그건 최선이고 만약 의미와 의도가 있는 일이라면⋯ 매도 일찍 맞는 게 낫다고 이렇게 된 거 그냥 오늘 밤 승부를 봐버려야겠다.

내 생각에 최악은 과연 석혁 형님과 소은 누나가 헌터관리국의 계획에 가담을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는 채 의심과 불안 속에서 이도저도 아닌 포지션을 잡는 것이었다.


“야, 준호야.”

“응?”


전화를 끊자 형이 드물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이런 느낌으로 날 부른 건 처음이라 듣자마자 소름이 돋았다.


“매장으로 해줄까 화장으로 해줄까?”

“닥쳐.”


형은 말은 그렇게 해도 표정은 평소 농 칠 때 짓는 병신같은 얼굴이 아니었다.

나름대로 여러 생각을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야, 그런데 만약에. 정말로 만약에 그 사람들이 가담한 게 맞으면⋯ 넌 싸울 거냐?”

“내 성격 알잖아.”

“⋯하!”


내가 그렇게 대답하자 형은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웃었다.




***




“너 밖에 살림 차렸더라?”

“응?”


나는 오래간만에 본가로 돌아가 부모님 얼굴을 봤다.

엄마는 날 보자마자 그런 말을 했다.


“요즘 손님들이 맨날 네 얘기만 해. 곧 경사 나겠네, 젊잖은 놈인 줄 알았는데 선수가 따로 없네, 하고.”

“다 그냥 길드 동료들이야.”


무슨 사이냐며 꼬치꼬치 캐물을 것 같은 기운을 느낀 나는 도망치듯 아까부터 뭘 하는지 집에 오자마자 나오지를 않는 형을 찾아 방으로 들어갔다.


“형, 나 갔다 올⋯.”

“어, 어어⋯! 잘 가, 잘 갔다와.”


⋯?

진짜 뭘 하고 있던 건지 형은 내가 방에 들어가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손에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거의 침대에 집어 던졌다.

어쨌든 나갈 준비를 마친 내가 현관으로 향하자 평소처럼 티비를 보던 아빠가 한마디 거들었다.


“근데 넌 오래간만에 집 와서 밥도 안 먹고 바로 가냐?”

“저녁 약속 있어서. 다음에 또 들를게.”


집을 나서는 기분이 영 좋지 못했다.

이 기분 뭔가 익숙하다 싶었는데 그라고스의 던전으로 향할 때의 딱 그 기분이었다.




***




“미안, 미안~ 회의가 길어져서~.”


호텔에 마지막으로 소은 누나까지 도착하며 세 명의 S급 헌터와 내가 한자리에 모이게 됐다.

석혁 형님과 소은 누나의 분위기는⋯ 너무나 평범했다.


“응? 아린이는 불편하게 검은 왜 차고 있어?”


소은 누나는 자리에 도착하자마자 그것부터 물었다.

석혁 형님도 따로 묻지는 않았지만 만났을 때 시선이 아린이의 검으로 가는 게 느껴지긴 했다.


“하하⋯ 늦을 것 같아서 던전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왔거든요.”

“아~ 그래? 좀 늦을 줄 알았으면 두고 오라고 하는 건데 더 미안하네.”


아린이는 그렇게 적당히 둘러댔고 소은 누나가 자리에 앉으며 식사가 시작됐다.


“그나저나 다들 요즘 경기는 어떤가? 던전 생성 빈도에 따라 갈리는 업계라곤 하지만 요즘은 좀 심하군.”

“그러게 말이에요. 한국만 그러는 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침체인가 봐요.”


식사를 하며 오가는 말은 별것 없었다.

석혁 형님과 소은 누나는 업계 경기를 한탄했다.


“왜요? 무슨 일 있나요?”


나는 긴장해 분위기를 살피는 와중에도 둘이 나누는 대화가 무슨 말인가 궁금하긴 해 물어봤다.


“요즘 던전 생성 빈도가 엄청나게 떨어졌거든. B나 A급 던전이 거의 안 나오니까. 시기에 따라 던전이 좀 뜸할 때가 있긴 한데 이번이 역대급인 것 같아.”

“그 탓에 중소길드는 파산도 꽤 많이 해서 아예 헌터를 그만두고 일반인이 하기 힘든 고위험 직업군 쪽으로 빠지는 각성자도 많은 모양이야.”

“길드가 돈 좀 벌면 바로 다른 사업 벌이는 이유가 이래서 그래. 던전이 뭐 우리가 노력한다고 더 많이 생성되는 것도 아니고 침체 한번 맞으면 그냥 다 같이 손가락 빠는 수밖에 없으니까.”


요즘 헌터 업계에 그런 불황이 있었구나.

우리는 저등급 던전 여러 개를 배정받아 빠른 회전율로 수익을 내니 잘 느끼지 못한 모양이다.


“뭐, 이런 이야기는 해봤자 소용도 없으니 됐고! 사실 내가 오늘 이 자리를 만든 이유는 따로 있어.”

“그래, 동생, 우리에게 할 말 있지?”


그때 소은 누나와 석혁 형님의 분위기가 삭 바뀌었다.

둘은 식사를 멈추고 동시에 나와 아린이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드디어 올 것이 온 건가?

나는 긴장감에 기절하지 않도록 정신을 꽉 붙잡고 다음에 나올 말을 기다렸다.


“너희 대체 신재현 헌터랑은 왜 싸운 거야?! 아주 동네 하나를 쑥대밭을 만들어놨던데? 피해액이 얼마더라? 170억?”

“그러니까 말이야! 나도 그 이야기 듣고 싶어서 근질근질했어!”


하지만 둘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나는 긴장감이 팍 사그라들며 허탈함을 느끼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날의 이야기를 풀어주었다.


“아~ 그래서 싸웠었구나~. S급 서열정리 제대로 했네!”

“주택가 한복판에서 S급 둘이 붙었는데 민간인 피해는 전혀 없었다는 것도 놀랍구만. 적당히 손봐준 것도 아니고 정말 죽이려 싸운 건데 역시 힘과 기술의 정교함이 남달라!”


이야기를 들은 둘은 재밌게 들었다는 듯 웃으며 디저트로 나온 아이스크림을 마저 먹었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아, 재밌었다! 다들 아무리 바빠도 가끔 이렇게 얼굴 보고 살자고!”

“그래, 그래. 그게 사람 사는 재미 아니겠나!”

“어어⋯?”


그런 둘의 반응에 나도 모르게 입에서 그런 소리가 흘러나왔다.

뭐야, 진짜로 같이 밥이나 먹자고 부른 거였어?


“왜 그래? 집에 안 가?”

“혹시 양이 부족했나? 20대의 먹성은 무시무시하니까 우리 같은 늙은이들은 이해 못하지!”

“아저씨만 늙은인데요? 저도 20대예요.”

“그⋯ 너는⋯ 양심이 있으면 20대라고 하긴 좀⋯.”

“근처 훈련장 알아볼게요. 우리도 서열 정리하죠.”

“에헤이, 기껏 먹은 거 꺼지게 뭐 하러 달밤에 체조를 하나.”


심지어 둘은 평소와 전혀 다를 것 없이 장난을 치며 놀았다.


“저⋯ 석혁 형님?”

“응, 왜 그러나?”

“혹시 강국선 마스터는 잘 지내시나요?”

“응? 그 뒤로 연락해본 적 없어서 지금은 뭐 하나 모르겠지만 별 소식 없는 것 보니 잘 지내는 것 아니겠나? 그런데 그 친구 이야기는 갑자기 왜?”

“실은 얼마 전에 엘릭시르 길드에 들렀다가 이상한 걸 봤거든요.”

“하하하! 그 친구가 워낙 괴짜 같은 면이 있긴 하지! 뭘 봤는가?”

“정우진 헌터관리국장이랑 같이 일을 하나 보던데요.”

“오, 그래? 무슨 일을?”


결국 참지 못한 나는 먼저 떡밥을 던지며 석혁 형님의 반응을 살폈다.

하지만 형님은 이 정도로 찔렀음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다 알면서 저런 반응, 저런 표정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는 거라면 이 형님은 헌터가 아니라 배우를 해야 한다.


“⋯소은 누나, 석혁 형님. 실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목소리를 깔고 사뭇 진지하게 말하자 둘은 도로 자리에 앉아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오늘 밤 안에 확실하게 승부를 치겠다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나왔다.

여기서 그냥 흐지부지 넘어가면 상황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할 거라면 지금 똑바로 해야 한다.

각오를 다진 나는 입을 열었다.


“정우진 헌터관리국장와 헌터관리국은 쿠데타를 꾸미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에 강국선 마스터가 협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전에 일어난 테러사건에 사용한 약물을 만든 게 엘릭시르 길드입니다.”


내가 순식간에 이야기를 쏟아내자 석혁 형님은 자기가 말을 잘 들었나 의심하듯 미간을 팍 구겼고 소은 누나는⋯ 재밌는 걸 들었다는 듯 입꼬리가 피식 올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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