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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재 님의 서재입니다.

대한조명기(大韓朝明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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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재
작품등록일 :
2023.01.13 03:25
최근연재일 :
2023.02.08 15:45
연재수 :
3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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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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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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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07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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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제26장 분탕 종자로 가는 길 (1)

DUMMY

북진무사 회의실.


북진무사 휘하 5개 위소의 정천호와 부천호(副千戶) 50명이 참석한 가운데 회합이 열렸다. 하림은 오늘 회합이 장거정의 귀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위천도 호위 자격으로 참석시켰다.


상석에 자리한 하림은 지난 며칠간 과음을 해서 그런지 얼굴이 푸석푸석했다. 그런데도 눈빛은 어느 때보다 날카롭고 강렬했다.


“제군들도 알다시피 정천호(正天戶) 5자리가 공석이다. 나는 공석인 정천호 직을 조금 특별한 방법으로 채우려고 한다.”

“······.”


가까운 시일 내에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다만 예상보다 빠른 행보에 미처 하림에게 충성맹세를 못 한 자들은 후회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반면 하림에게 충성맹세를 한 자들은 들뜬 마음을 억누르지 못했다.


“방법은 간단하다. 뭐든지 사건이 될 만한 것을 물어와라. 대상은 제한이 없다. 황제 폐하와 황실의 권위에 누가 될 수 있다고 판단되는 것은 무엇이든 상관없다. 기한은 이달 그믐까지다. 그 기간에 가장 중한 사건을 발고(發告: 고발)한 부천호 중 한 명을 뽑아 정천호에 임명할 것이다.”

“대인, 건수의 제한이 있습니까?”

“없다. 본인이 제보한 사건이 정식으로 입건되면 부천호일 경우에는 정천호 승진이, 그 외에는 직무 평점과 별도의 포상금을 지급할 생각이다.”

“아아!”

“감찰을 위해 지원이 필요한 자는 언제라도 날 찾아와라. 질문 있나?”

“감찰 대상은 어디까지로 합니까?”

“부천호 위도상.”

“예, 대인!”

“난 두 번 말하는 걸 싫어한다. 분명 대상에 제한이 없다고 했을 텐데?”


하림이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말했다. 언성을 높이지 않았는데도 칼날이 가슴에 와닿는 것처럼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위도상이 얼른 일어나 포권을 했다.


“대인, 제가 실언했습니다. 다신 이런 일이 없을 것이니,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용서는 자신에게 빌어라. 이번에 공을 세우지 못하면 다음 회의에는 네 수하가 그 자리에 앉아 있을 것이다.”

“존명!”


회의를 마치고 나가는 장수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며칠 안 보이더니 사람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 * *


오랫동안 평화로웠던 금의위에 새로운 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그 근원지는 다름 아닌 북진무사였다. 다만, 내부적으로 뭔가 일을 벌이는 것 같은데 하도 은밀하게 이뤄져서 소문만 무성할 뿐이었다.


하림은 날마다 올라오는 보고서를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감찰 내용이 아주 구체적이고 사실 증명도 매우 양호한 수준이었다. 과연 금의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삼법사(三法司: 3대 사법기관 - 형부, 도찰원, 대리사)의 정보력도 상당하다고 들었지만, 금의위나 동창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보고서를 읽던 중에 한 가지 흥미로운 사건을 발견했다.


‘첫 사건으로 안성맞춤이군’


하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딱 하림이 원하는 만큼의 임팩트를 줄 수 있는 사건이었다.


* * *


명나라는 서로서로 감시하는 감찰 국가였다. 정통 사법기관인 형부, 도찰원, 대리사를 두고도 금의위를 설치하여 관원을 사찰하였고 다시 동창을 만들어 금의위를 감시하게 하고 또 대내행창이라는 기관을 만들어 동창을 사정하도록 했다.


티엔 이는 감찰 기관이 지나치게 비대해지는 것을 막고자 대내행창을 폐지하고 지속적으로 동창과 금의위의 규모를 축소시켰다.


마음 같아서는 아예 없애버리고 싶었지만, 역대 황제들이 그것만은 안 된다며 기를 쓰고 반대하는 바람에 축소하는 차원에서 만족해야 했다. 환락에 빠져 세월 가는 줄 모르면서도 동창과 금의위가 자신들의 생명줄이라는 것은 아는 모양이었다.


황궁 남문 밖 전문대가(前門大街: 도성 번화가)에 때아닌 기마 부대가 나타나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기마가 지나가는 통에 사람들은 그런 광경에 무덤덤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못했다. 기마 부대의 정체가 바로 죽음의 바람을 몰고 다니는 금의위였기 때문이다.


기마 부대의 선두에는 신임 북진무사사 장하림이 있었다. 하림은 티엔 이의 계획을 근본부터 흔들기 위해 장거정부터 제거하기로 했다. 장거정을 밟고 올라가는 것은 티엔 이의 뜻이기도 했다. 다만, 그 과정이 티엔 이의 안배와는 전혀 다르게 전개될 것이었다.


‘나보고 명의 암세포를 제거하라고? 후후, 그럴 수야 없지.’


하림은 거꾸로 명을 지탱하는 충신들을 잡아 죽이고 명나라를 뿌리부터 흔들 생각이었다.


“위 부천, 아직 멀었는가?”

“다 왔습니다. 앞에 보이는 빨간 대문이 도어사 원치술의 원부(元傅: 원 씨의 집)입니다.”


장거정을 잡기 위한 첫 제물로 현 도찰원 좌도어사인 원치술을 선택했다. 좌도어사는 정2품 장관급으로 육부의 상서(尙書: 장관)와 같은 품계였다. 재상제가 폐지되면서 실질적인 최고위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당대의 권세가답게 원치술의 저택은 으리으리했다. 위도상이 신호하자 위사들이 달려가 문을 두드렸다.


쾅! 쾅! 쾅!

“웬 놈이냐!”


그 집 개를 보면 주인의 권세를 안다고, 안쪽에서 대뜸 욕설이 들렸다. 잠시 후, 육중한 대문이 열리고 집사로 보이는 자와 관원 복장을 한 자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기세가 등등했던 집사가 금의위의 복장을 보고 안색이 확 달라졌다. 그 옆에 있던 관원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위도상이 그들을 체포하려는 순간, 하림이 제지하고 관원 복장을 한 자들을 불렀다.


“부, 부르셨습니까. 대인?”

“어디 소속이냐?”

“저희는 도찰원 감찰어사들입니다.”

“감찰어사?”


감찰어사는 조선의 암행어사와 비슷한 직책으로 각 성(省)을 돌며 지방관의 비리를 탐문하는 벼슬이었다. 동창과 금의위에 밀려 기능이 많이 축소되긴 해도 도찰원 역시 감찰기관이었다.


“감찰어사가 여기서 무엇 하는 게냐?”

“······.”

“어허! 대인께서 묻지 않느냐?”


어사들이 머뭇거리자 부천호 위도상이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그, 그게 임무가 없는 달에는 돌아가면서 도어사 대인의 집을 수직 하옵니다.”

“뭐라? 아무리 정7품 어사라고 해도 조정의 관원이거늘 황제 폐하의 윤허도 없이 집 지키는 개로 부렸단 말이냐?”

“······.”


하림이 호통을 치자 어사들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바닥에 엎드려 죄를 빌었다.


“잘못했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그놈의 용서 타령. 용서받을 행동을 하지 않으면 될 것 아닌가?”

“······.”


하림의 말에 감찰어사보다 옆에 있던 위도상이 더 움찔했다.


“위 부천.”

“예, 대인.”

“모두 조옥으로 압송하라.”


조옥이란 말에 감찰어사들이 자지러지게 놀라서 하림의 바짓가랑이를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을 두고 볼 금의위가 아니었다.


퍽! 퍼퍽!


감찰어사들은 복날 개 잡듯 두들겨 맞고 정신을 잃고 축 늘어졌다.


“치워라.”


위도상이 수하들에게 지시하고 한쪽에 얼어붙어 있는 집사의 목덜미를 잡아끌며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안에서 병장기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하림은 밖에서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면서 하위천이 대령한 차를 홀짝거렸다.


하위천은 장거정이 호위로 붙여 준 무사였다. 그 역시 말단이긴 해도 어엿한 금의위의 교위였다. 하나 하림은 철저하게 잡일만 시켰다.


“×발, 차 맛이 왜 이래?”

“죄, 죄송합니다. 다시 올리겠습니다.”


하위천이 기겁을 해서 하림의 찻잔을 받았다. 하위천도 요즘은 하림이 무서웠다. 상한 술이라도 마셨는지 술독을 끼고 살다 나오더니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의 애첩인 앵앵이를 배려해준 사람은 어디 가고 지금은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날 것 같은 냉혈한이 되었다.


하위천이 찻잔에 새로 차를 담아 올리려는데 위도상이 밖으로 나왔다. 그의 검은 피로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대인, 정리됐습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가자.”


하림이 안으로 들어가자 하위천이 미간을 찌푸리고 들고 있던 차를 마셔 버렸다.


“×발, 진짜 맛이 왜 이래?”


하위천이 차를 뱉어내고 하림을 쫓아갔다. 요즘 금의위 내에서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었다. 그중 ‘암세포’와 더불어 ‘×발’은 가장 핫한 유행어였다.


대문 안쪽 마당에는 십여 명의 사병이 상처를 입고 쓰러져 있었다. 죽은 자는 없었으나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사병들은 상대가 누구든 검을 뽑아야 했다. 그래야 약속된 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공무를 집행하는 관원일 경우에는 싸우는 시늉만 하고 자진해서 칼을 맞았다. 관원들도 그들의 사정을 알았기에 적당히 상처만 내고 끝냈다.


하림이 짐짝처럼 치워지는 자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칼 밥을 먹고 산다는 게 저런 의미였나? 참, 밥 먹고 살기 힘들다. 이놈의 사병제도, 빨리 없애야 할 텐데.”


이 시대의 명은 말단 관원까지 사병을 거느리는 것이 유행처럼 되었다.


“위 부천.”

“예, 대인!”

“증거인멸을 시도할 수 있으니 식솔들을 한데 모으고 위 부천은 물증을 찾아라.”

“존명!”


위도상이 수하들을 데리고 안채로 향했다. 이번 사건을 발고한 자가 바로 위도상이었다.


“이게 무슨 짓이냐? 당장 그 손 놓지 못할까!”


원치술의 아내와 희첩들이 끌려 나오면서 아우성을 쳤다. 마침 사내들은 모두 외출하고 집에는 여자와 노복들만 있었다.


끝도 없이 잡혀 나오는 사람들을 보며 하림이 헛웃음을 쳤다. 족히 이백 명은 될 것 같았다. 그중 원치술의 첩실로 보이는 여인들만 수십 명이 넘었다.


넓은 마당이 금방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하림이 손짓하자 하위천이 그의 전용 의자를 대령했다.


하림이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서 말했다.


“하위천, 차를 가져와라. 이번에도 맛이 지랄 같으면 차 대신 네놈의 손가락을 달여 마실 것이다.”

“예, 대인!”


하위천이 부리나케 부엌으로 달려갔다.


“이것 보시오! 영문이나 알고 당합시다. 금의위에서 이러는 이유가 무엇이오?”


원치술의 부인이 따지듯 물었다. 믿는 구석이 있는지 금의위의 위사들 앞에서도 당당했다.


“발고가 들어왔습니다. 발고가 들어 온 이상 확인해야 하는 것이 규정이라 무례를 범하였습니다.”

“발고라니요? 누가 무엇을 발고했다는 겁니까?”

“그건 말씀드릴 수가 없군요. 하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별일이야 있겠습니까? 다른 분도 아니고 도어사 대인이신데 말입니다.”

“······.”


하림의 말투는 겉으로는 정중해 보여도 말속에 기사가 박혀 있어서 듣기에 거북했다.


원치술의 부인이 두고 보자는 투로 하림의 이름을 물었다.


“대인의 성함을 물어도 되겠소?”

“북진무사사 장하림이라고 합니다.”

“북······진무사사 장하림!”


원치술의 부인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조금 전과 달리 안색이 창백해져서 허둥거렸다.


장거정의 눈치를 보고 사는 자들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장거정이 수양아들을 거뒀고 그가 금의위 북진무사사라는 것은 이제 소문 거리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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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제11장 일기의 정체는 회고록이었다 +7 23.01.20 782 1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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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제6장 티엔 이의 흔적을 발견하다 23.01.16 1,045 23 11쪽
5 제5장 A.D 1580년 +6 23.01.16 1,084 2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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