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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재 님의 서재입니다.

대한조명기(大韓朝明記)

웹소설 > 작가연재 > 대체역사

수어재
작품등록일 :
2023.01.13 03:25
최근연재일 :
2023.02.08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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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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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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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916

작성
23.01.19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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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제9장 명나라 역사를 공부하다

DUMMY

이튿날, 새벽같이 일어난 하림은 잡목으로 동굴 입구를 보강하고 내부에서 돌을 쌓아 아예 입구를 막아버렸다.


미츠키가 일어났을 때는 공사가 이미 끝나고 있었다.


“입구를 막은 걸 보니 이곳에서 오래 지낼 생각인가 보지?”

“그렇게 오래는 아닐 거야. 이리 와서 앉아 봐.”


하림이 미츠키를 거실 탁자에 앉히고 티엔 이가 겪은 일을 간략하게 얘기해줬다.


“그런 일이 있었다니······. 그런데 그게 우리가 이곳에 정착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지? 설마 하림 너도, 명나라 황실에 투신하겠다는 거야?”

“꼭 그렇다는 건 아니야. 하지만 티엔 이의 일기를 연구하다 보면 우리에게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우리가 이 시대에 관여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봐. 그냥 역사의 흐름 속에 조용히 묻혀 갔으면 좋겠어.”

“나도 같은 생각이야. 하지만 지금은 뭐든 단정 짓지 말고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생각하자. 우리의 생존이 가장 중요하니까.”

“알겠어.”


말은 그렇게 해도 하림은 자의든 타의든 자신이 티엔 이의 뒤를 쫓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티엔 이처럼 살고 싶다는 욕망이 영혼의 밑바닥에서부터 꿈틀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둘은 가볍게 아침 식사를 하고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서 하던 일에 열중했다. 뭔가 할 일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었다. 잠시나마 이 거지 같은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니까.


하림은 접어 두었던 책장을 펼치고 어제에 이어 다음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자식들이 줄지어 죽어 나가자 가정제는 매일 술만 마셔댔다. 천하를 호령하는 대명의 황제도 한 사람의 아버지였다. 생때같은 자식들을 잃고 멀쩡하다면 그게 더 이상하겠지. 난 그에게 애도할 시간을 주기로 했다. 그러던 와중에 서궁에 불이 나서 황후 방 씨가 죽었다. 난 사전에 그의 죽음을 알았지만, 결코, 개입하지 않았다.


티엔 이는 역사의 큰 틀을 유지한 채 작은 부분을 고쳐 명(明)을 개혁하려고 했다. 그 부분은 하림도 동감하는 바였다. 미래가 바뀌는 순간, 그가 가진 장점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야사에는 가정제가 방 황후를 미워한 것처럼 묘사했다. 심지어 서궁에 불이 났을 때 내감들이 불을 끄지 못하게 했다는 기록도 있다. 하나 야사는 야사일 뿐이었다. 방 씨 황후가 죽고 가정제는 어찌 그리 큰 사건을 예언하지 못했냐며 내게 원망을 퍼부었다. 그는 진심으로 황후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었다.


티엔 이의 말에 하림도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 역사에서 임인궁변(壬寅宮變: 궁녀들이 황제를 목 졸라 죽이려고 했던 사건)의 일등 공신은 황후 방씨였다. 황후 방씨가 조금만 늦었어도 가정제는 세계 최초로 궁녀에게 다굴당해 죽은 한심한 황제로 기억됐을 것이다.


황후 방씨는 남편을 살린 생명의 은인이었다. 그런데 야사에서는 왜 가정제가 그녀를 죽일 정도로 미워했다고 했을까?


그것은 단비 조 씨 때문이었다. 단비 조씨는 가정제가 가장 총애하던 후궁으로 황제의 암살 시도와 아무 관련이 없었다. 그런데도 공범으로 몰려 궁녀들과 함께 처형됐다.


황후 방씨의 작품이었다. 황제가 충격으로 몸져누운 사이에 단비 조씨가 역모에 연루됐다는 거짓 정보를 흘려 죽인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황제가 황후 방씨를 원망한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녀가 죽기를 바랄 정도로 미워했다는 얘기는 억측에 가까웠다.


-총애하던 단비가 죽고 방 씨 황후까지 그렇게 되자 가정제는 향락에 빠져 살았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 말도 듣지 않았다. 나와 가정제 사이가 벌어졌다고 여긴 정적들이 들불처럼 일어나서 나를 탄핵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정도에 당할 내가 아니었지만 말이야.

‘그 점은 나도 인정한다. 이 시대에 누가 너를 감당할 수 있었겠냐?’


미래를 아는 자가 황제에 버금가는 권력까지 가졌다면 세상에 누가 있어 그의 적수가 될 수 있겠는가?


-나는 비밀리에 양성한 사조직을 이용해서 저들의 비리를 밝히고 금의위와 동창을 이용하여 내게 대적한 자들을 모두 쓸어버렸다.

“사조직을 키웠다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금의위와 동창은 황제의 직속 기관이었다. 이용할 순 있어도 소유할 수는 없다. 그들과 공유하는 정보는 당연히 황제에게 보고됐을 것이고 티엔 이는 자신만의 정보조직이 필요했을 것이다.


-내가 정적을 일소하는 것을 본 가정제는 두려움을 느꼈는지 어느 순간부터 나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하나 난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땐 이미 내각은 물론이고 육부와 도찰원, 오호도독부의 요직을 내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었으니까. 금의위도 어느 정도 포섭작업이 끝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동창은 그들의 특수성 때문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차피 정사에서 배제하면 그만인 자들이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도 내 세상이나 다름없고 미래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나의 적은 오직 시간뿐이었다.


티엔 이가 무서운 점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까지 대비한다는 점이었다. 그는 현재의 권력뿐 아니라 미래의 권력까지 독점할 생각이었다. 미래의 권력자들을 포섭하여 후견인이 되는 한편, 이런저런 굴레를 씌워 자기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장거정이었다. 명나라 13대 황제인 만력제 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장거정도 이제 겨우 약관을 넘어 한림원 말단 관원으로 재직 중이었다.


장거정은 티엔 이가 가장 신경 써서 영입했던 인물로 이미 10여 년 전부터 그와 교류를 하고 있었다.


-나는 가정제의 마음을 돌리기보단 그를 버리는 쪽을 선택했다. 이미 중앙조직의 6할이 내 손에 떨어진 터라 더는 그의 도움이 필요 없었다. 나는 가정제 대신 차기 황제인 주재후에게 공을 들였다.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 바른 인성과 국가관을 심어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나를 겁내고 내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팥으로 메주를 쑨다는 말에 하림이 피식 웃었다. 언제가 하림이 그에게 했던 말이었다. 그 말의 의미를 알려줬더니 티엔 이가 무릎을 치며 감탄했었다.


-그 후로 나는 가정제에게 향락을 제공하고 그의 건강을 위해 복용을 금지했던 선약을 다시 제공했다.


티엔 이에게 버림받은 가정제의 운명은 가혹하기 그지없었다. 티엔 이가 말한 선약은 주원료가 수은이었다. 티엔 이는 역사보다 빨리 가정제를 죽게 하고 어린 태자를 보위에 앉히려고 했다.


-가정제는 내 의도대로 정치를 돌보지 않고 주지육림(酒池肉林: 술잔치)에 빠져서 술과 계집으로 세월을 보냈다. 한 가지 내 예상을 벗어난 것은 그의 건강이었다. 밤낮없이 여자를 탐하고 내가 준 선약을 꼬박꼬박 먹으면서도 좀처럼 죽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건강 하나는 타고난 작자였다.


티엔 이의 표현이 점점 과격해지고 있었다. 그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뜻이었다. 하림이 쓴웃음을 짓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쯧,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고 했다. 불가능한 일에 매달리니까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지.”


티엔 이는 개혁을 통해 실리뿐 아니라 명나라의 도덕성까지 선진제국의 반열에 올리려고 했던 것 같다. 노력은 가상했으나 천하의 암군(暗君: 어리석은 임금)을 성군으로 만들려고 했다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었다.


-어차피 정사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에 따로 손을 쓰지는 않았다. 한데, 고맙게도 스스로 미약(媚藥: 성욕을 일으키는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명을 재촉하든 말든 내 알 바 아니었지만, 그 일로 내 사람 하나를 죽여야 했다.


성욕에 노예가 된 가정제는 미약을 과용하며 하룻밤에도 열 명 이상의 여인과 성관계를 가졌다. 이에 중신 중 한 명이 당장 미약의 복용을 멈추라고 간언을 했다가 죽임을 당한 사건이 있었다.


실제 역사에서는 가정제가 격분하여 그 자리에서 죽여버렸다고 하는데 바뀐 역사에서는 티엔 이에게 죽임을 당한 모양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하림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직 완벽하게 장악하지 못했구나.’


티엔 이는 그를 죽이기 전에 나서지 말라고 경고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죽여야 하는 상황까지 갔다는 것은 그가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녀석의 말대로 시간이 가장 큰 적이었어.’


그가 황제의 최측근이 되어 무소불위의 권력자가 된 것은 불과 몇 년 전이었다. 아무리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다고 해도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면 시간이 걸렸다. 티엔 이도 그것을 알기에 가차 없이 그를 끊어냈을 것이다.


-국내 상황이 어느 정도 안정됐다고 판단하고 난 외교와 군사로 눈을 돌렸다. 당시 명(明)은 북쪽의 몽골과 남쪽의 왜구들로 골치를 썩이고 있었다. 나는 왜(倭)의 무로마치 막부에게 조공무역을 허락하고 해적질을 하는 왜구를 단속할 것을 명했다. 물론 명의 군사로 왜구를 토벌할 수 있겠으나 군사들의 훈련 정도나 전쟁 비용을 감안할 때 그것이 싸게 먹힌다고 생각했다.


당시 명나라군이 얼마나 오합지졸이었는가 하면 왜구 72명을 상대로 한 명도 죽이고 못 하고 되레 9백여 명이 전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나는 숨 돌린 틈도 없이 북방의 알탄 칸을 상대해야 했다. 경술의 변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경술의 변은 몽고의 알탄 칸이 명나라 수도인 북경을 포위한 사건을 말한다. 알탄 칸은 명나라와 무역 재개를 원했지만, 명이 이를 거절하자 국경을 침입하여 노략질을 일삼다가 급기야 북경을 포위하기까지 했다.


-나는 알탄 칸에게 특사를 보내 일부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고 조공무역을 제안했다. 알탄 칸은 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고 덕분에 나는 시간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밖에서 번 시간을 내부에서 까먹어야 했다. 그동안 잠잠하던 정적들이 알탄 칸과 맺은 협정을 빌미로 다시 준동했기 때문이다. 놈들은 중앙에서는 나를 대적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지방에서 세를 결집했다. 매일 같이 각지에서 나를 탄핵하는 상소가 올라왔다. 심지어 어떤 자는 내가 알탄 칸과 내통했다고 모함을 하기도 했다.


티엔 이가 명 조정에 출사한 이래로 최대의 위기였다. 하림은 그가 이 난국을 어떻게 타개해 나가는지 흥미를 갖고 책장을 넘겼다.


-원의 통치 기간, 몽골인들의 강인함을 목격한 한족(漢族)은 원이 멸망한 후에도 몽골의 발호를 극도로 경계했다. 정치에 무관심했던 가정제도 몽골과 관련된 일에는 쌍심지를 켜고 달려들었으니 말해 뭐하겠는가. 나도 많이 망설였다. 하나 몇 번을 생각해도 경술의 변이 일어나는 것은 막아야 했다.


제국의 수도가 오랑캐에게 포위되는 사건은 치욕이 아닐 수 없다. 실제 역사에서 가정제는 알탄 칸의 요구조건을 모두 수용하는 조건으로 북경이 함락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생각보다 반발이 심했다.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난징으로 도읍을 옮기는 것까지 생각했었다. 하지만 쓸데없는 짓이었다. 간단한 해결책이 있는데 국고를 낭비해가며 그런 짓을 벌일 수는 없었다. 나는 내 소신대로 알탄 칸과 협약을 마무리 지었다.


티엔 이로써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결정은 한족의 역린을 건드리는 것과 진배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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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제11장 일기의 정체는 회고록이었다 +7 23.01.20 782 18 11쪽
10 제10장 일그러진 개혁가 +2 23.01.20 784 17 11쪽
» 제9장 명나라 역사를 공부하다 23.01.19 847 20 12쪽
8 제8장 약초꾼 오철산을 죽이다 23.01.18 928 20 12쪽
7 제7장 티엔 이의 일기 +4 23.01.17 959 23 12쪽
6 제6장 티엔 이의 흔적을 발견하다 23.01.16 1,045 2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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