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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재 님의 서재입니다.

대한조명기(大韓朝明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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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재
작품등록일 :
2023.01.13 03:25
최근연재일 :
2023.02.08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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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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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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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22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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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제12장 세상 밖으로

DUMMY

한 달 만에 동굴을 나선 하림과 미츠키는 티엔 이의 무덤에 들려 헌화하고 산을 내려갔다.


둘은 봇짐을 하나씩 지고 있었다. 봇짐 안에는 명나라의 지리와 풍물을 필사한 책자와 은자 등이 들어있었다. 태블릿이나 회고록처럼 사람들의 이목을 끌만한 물건은 가져가지 않았다. 은자는 티엔 이의 소지품을 뒤지다가 발견한 것으로 금괴까지 포함하여 상당한 양이었다.


그 외에도 신분패로 보이는 영패와 철패가 있었고 서찰도 몇 장 보였다. 영패에는 검찰사(檢察使)라고 적혀 있었는데 태블릿으로 검색해도 나오지 않았다. 아마도 티엔 이가 새로 만든 직책으로 보였다. 나머지 철패에는 티엔 이의 성씨를 상징하는 ‘천(天)’자가 양각돼 있었다. 한자로 티엔 이는 ‘천익(天翊)’이었다.


* * *


링산 아래에 10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작은 마을이 있었다. 마을의 규모는 작았으나 북경으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어서인지 객잔과 식당이 여럿 보였다.


하림과 미츠키는 가장 먼저 포목점을 찾았다. 그들이 입은 유니폼은 몸에 착 달라붙어서 몸매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관음증 환자처럼 계속 힐끗거리는 사람들이 있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어서 옵······.”


포목점의 점원도 두 사람을 보고 입을 헤 벌렸다. 그런데 이 녀석은 취향이 남달랐는지 미츠키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하림의 우람한 하체에 시선이 고정돼 있었다.


“험험.”

“어서옵쇼!”

“옷 좀 봅시다.”

“아, 예. 기성품은 여기서 보시면 되고 원하는 게 없으시면 맞춤으로도 해 드립니다.”


하림과 미츠키는 가장 평범해 보이는 편복을 두 벌씩 구입했다. 하림은 점원에게 부탁하여 미츠키의 머리를 따줄 여인을 청했다.


“머리 만지는 기술은 옆집 노 소저가 최곱니다. 후딱 데려오겠습니다.”

“부탁합시다. 그리고 이건 수고비.”

“아이고 됐습니다.”


점원은 수고비도 받지 않고 하림의 부탁을 척척 들어줬다. 잠시 후, 점원이 한 여인을 데려왔는데 일하다 왔는지 가죽으로 된 앞치마를 쓰고 있었다. 앞치마에는 짐승의 살점과 핏물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여인은 손도 닦지 않고 곧장 미츠키의 머리를 만졌다. 미츠키가 울상을 짓고 하림을 쳐다봤지만, 하림은 못 본 척하고 이마에 건을 둘렀다.


* * *


포목점을 나서는 하림과 미츠키는 완벽하게 환골탈태하였다. 겉모습만 보면 영락없는 중국인이었다.


미츠키가 하림의 소매를 잡아끌며 연방 눈을 깜빡거렸다.


“알았어. 가자.”


미츠키는 이곳에서 가장 고급스러워 보이는 객잔으로 하림을 이끌었다. 보름이 넘게 곰팡이가 슨 육포만 먹었더니 하림도 밥 생각이 간절했다.


객잔은 손님으로 만원이었다. 빈자리가 없어서 나가려는데 점소이가 달려와서 그들을 붙잡았다.


“왜 그냥 가십니까?”

“자리가 없잖느냐?”

“자리야 만들면 되죠. 이쪽으로 오십시오.”


점소이가 하림의 등을 떠밀다시피 하며 구석진 탁자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다부져 보이는 사내가 혼자 탁자를 차지한 채 소면을 먹고 있었다.


“여기 앉으세요.”


점소이는 사내의 허락도 구하지 않고 하림과 미츠키를 맞은편 자리에 앉혔다.


하림이 사내에게 포권을 하며 양해를 구했다.


“실례하겠습니다.”

“저자는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어차피 알아듣지도 못합니다.”


점소이가 소면 그릇에 코를 박고 있는 사내를 힐끗거리며 말했다.


“귀가 먹었나?”

“아니요. 조선 방쯔(棒子)입니다.”

“······.”


방쯔는 북방 사투리로 가난뱅이라는 뜻을 갖고 있었다. 티엔 이의 개혁으로 명나라는 부국이 됐지만, 상대적으로 조선은 빈곤 국가로 전락했다. 언젠가부터 명나라 사람들은 조선을 거지의 나라로 부르며 조선인을 업신여겼다.


하림은 학창 시절을 떠올리고 피식 웃음을 흘렸다. 지금과는 사뭇 의미가 달랐으나 그 역시 ‘가오리 빵즈’로 놀림을 받곤 했었다.


“음식은 뭐로 올릴까요?”

“이 집에서 제일 잘하는 걸로 몇 개 내오거라.”

“우리 객잔은 까오야(烤鴨: 오리 통구이)가 일품입죠.”


하림은 오리구이와 산양육을 시키고 미츠키를 위해 백건아 한 병을 주문했다.


잠시 후, 음식을 가져온 점소이는 음식을 놓을 자리가 부족해 보이자 사내가 먹고 있는 소면 그릇을 치우고 그곳에 술과 음식을 놓았다.


황당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사내를 향해 점소이가 말했다.


“다 먹었으면 그만 꺼져.”

“······.”

“그럼 식사 맛있게 하십쇼!”


점소이는 사내의 소면 그릇을 들고 주방으로 사라졌다. 사내가 입맛을 다시고 일어나려는데 하림이 그를 불렀다.


“우리 때문에 제대로 식사를 못 한 것 같은데 함께 드시겠소?”


하림이 유창한 조선어로 묻자 사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조선말을 아시오?”

“뭐, 조금. 많이 시켰으니 같이 듭시다.”

“······.”


사내가 하림의 눈치를 보다가 엉거주춤 앉았다. 하림이 음식 접시를 그의 앞으로 밀어놓자 입을 넓적대며 허겁지겁 먹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오리 한 마리가 사내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하림은 점소이를 불러 요리를 더 주문하고 사내에게 술을 권했다.


사내는 하림이 술을 따르는 모습을 보며 침을 꼴깍 삼키다가 그가 술잔을 내밀자 곧바로 입으로 가져갔다.


“캬아! 이제야 좀 살겠네. 공자도 한잔하시겠소?”

“난 술을 안 좋아합니다.”


하림의 말에 사내가 하림과 미츠키를 번갈아 보고는 웃음을 흘렸다. 남자인 하림은 찻잔을 홀짝거리고 있었고 미츠키는 독한 술을 연신 들이켜고 있었다.


“사내가 여인보다도 술을 못 마셔서 어디 사내라고 할 수 있겠소?”

“여인도 여인 나름이겠죠.”

“예? 내가 여걸을 못 알아보고 실언을 했군요. 죄송하오, 낭자.”

“······.”


사내가 포권을 하자 미츠키가 고개를 까닥해 보이고 하림을 쳐다봤다. 말을 하고 싶어서 입이 간질간질한 모양이었다.


하림은 그녀가 일본 억양을 지우기 전까지 사람들 앞에서는 침묵하자고 했다. 이 시대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왜구의 침략이 도를 넘어서 이곳 사람들이 왜인이라면 이를 갈았다.


“인사가 늦었소이다. 이대승이라고 하오.”

“장하림입니다.”

“한데 조선말이 어찌 그리 능숙하시오?”

“소싯적에 조선인 친구에게 배웠습니다. 그나저나 이 형은 왜 혼자 이런 곳에 있는 겁니까?”

“이런, 내 급한 용무가 있는 걸 깜빡했군요. 오늘 덕분에 잘 먹었소이다.”


사내가 도망치듯 객잔을 나갔다.


“저 사람, 왜 꽁지가 빠지게 도망가는 거야?”

“그러게.”


미츠키의 눈에도 그리 보였나 보다. 하림은 사내에게 가졌던 관심을 접었다. 조선인이고 중국인이고 간에 비밀이 있는 자는 사절이었다.


* * *


오랜만에 뜨거운 물에 몸을 지졌더니 심신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하림은 점소이를 불러 숙박비를 지불하고 팁으로 은자 한 냥을 줬다. 점소이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머리가 땅에 닿도록 인사를 했다.


은자 한 냥이면 쌀 두 섬을 살 수 있었다. 쌀 한 섬의 무게가 약 94kg이었으니 은자 한 냥으로 쌀 188kg을 살 수 있다는 얘기였다.


은자의 단위는 한 냥, 두 냥 하는 식으로 따졌는데 냥은 개수가 아니라 무게를 뜻했다. 티엔 이는 가정제 때 새로운 도량법을 실시하여 한 냥의 무게를 40g으로 정했고 그것이 만력제에 이르러 표준이 되었다.


“산시(山西)에 갈 일이 있는데 호위를 구할 수 있겠느냐? 비용은 얼마를 불러도 좋으니 실력 있는 자들이었으면 좋겠구나.”


식사할 때 보니 무기를 소지한 사람이 많았다. 안전을 확보하기 전까지는 여행은 삼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새로 개정된 대명률(大明律)을 봐도 법으로 금한 것은 화기와 갑옷뿐이었고 냉병기(冷兵器: 화약을 사용하지 않는 무기)의 규제는 없었다.


“그게, 보시다시피 작은 마을이라 표국은커녕, 요즘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무술 도장도 없습니다.”

“허허, 이거 낭패로구나.”

“한 명, 떠오르는 자가 있긴 한데 공자님의 눈에 찰지 모르겠습니다.”

“한 명? 그리 사람이 없나? 아까 보니 무기를 지닌 손님이 많이 보이던데 말이다.”

“어이구, 큰일 날 소리 하십니다. 그런 자들을 믿었다간 객사하기 딱입니다요.”

“그런가?”


팁을 준 보람이 있었는지 점소이가 신경을 많이 써줬다. 남이야 죽든 말든 소개비만 받고 나 몰라라 할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아까 말한 자는 믿을 만하냐?”

“내가 아는 한도에서는 그나마 제일 낫습니다요. 아, 공자님도 아는 잡니다.”

“설마, 낮에 만났던 조선인 사내를 말함이냐?”

“예. 꼴은 그래도 조선에서 군관을 지냈다고 합니다.”

“그으래?”


뭔가 사연이 있는 것처럼 보여서 께름칙했으나 그자밖에 없다니 하는 수 없었다.


“할 수 없지. 그자라도 데려오너라.”

“그런데 문제가 좀 있습니다요.”

“조선인이라는 것 말고 또?”

“그자에게 놀음 빚이 있어서 그것을 갚기 전에는 이곳을 떠나지 못합니다.”

“하아. 도박까지 한단 말이냐?”


최악이었다. 그래도 다른 대안이 없으니 그자라도 데리고 가야 했다.


“가서 그자를 데려오너라. 그리고 올 때 당과하고 만두 좀 사 오거라.”

“예!”


은자를 받아 든 점소이가 신이 나서 뛰어나갔다. 오늘 점괘에 재물복이 있다고 하더니 운수 대통한 날이었다.


* * *


늦은 밤, 누군가 하림의 방문을 똑똑 두드렸다. 점소이였다. 점소이 뒤에는 다부진 체격에 돌덩이 같은 인상을 풍기는 사내가 서 있었다. 낮에 본 조선인 사내였다.


“공자님, 데려왔습니다요.”

“수고했다. 너는 가서 일 보거라.”

“예.”


점소이가 사라지자 하림이 조선말로 말했다.


“이 형, 또 봅니다.”

“나를 보자고 한 사람이 장 공자셨소? 귀찮게 붓은 괜히 갖고 왔구려.”

‘글을 안다고?’


물론 한자를 의미했다. 훈민정음이 창제되고 100년이 지났음에도 조선의 지식인들은 아녀자들이나 쓰는 글자라며 업신여겼다.


이대승을 안으로 들이려던 하림은 그에게서 고약한 냄새를 맡고 얼굴을 찡그렸다.


“이게 무슨 냄새야? 당신, 아편도 하는 거요?”


노름은 몰라도 아편은 용납할 수 없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금단현상이라도 오면 큰일이었기 때문이다.


“아니오. 노름판에서 밴 것이오.”

“······.”


하림이 이대승의 눈을 살폈다. 눈곱이 잔뜩 낀 것을 제외하곤 흰자위에 충혈도 없었고 동공도 정상이었다.


“흠, 들어 오세요.”

“거 참, 까다로운 양반일세.”


이대승이 툴툴거리며 걸어들어왔다. 그는 탁자 위에 놓인 술병을 발견하자 허락도 없이 덥석 집어 병째 들이켰다.


“캬아! 되놈들이 딴 건 몰라도 술 하나는 잘 빚는단 말이야.”

“······.”


이대승의 뻔뻔한 태도에 하림이 헛웃음을 쳤다. 그런 그를 이대승이 날카로운 눈으로 쏘아보았다. 이대승은 일부러 ‘되놈’이란 말을 내뱉고 하림의 반응을 살폈던 것이다.


“조선에서 군관을 지낸 적이 있소. 내 소개는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고 산서까지 가신다고 하였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목적지가 평요현(平遥縣)이겠구료.”

“······.”


하림은 겉으로 내색은 안 했지만, 적잖이 놀랐다. 평요현에 간다는 말은 점소이에게도 하지 않았다.


“내가 평요현에 가는 것을 어찌 알았습니까?”

“병진년(丙辰年: 가정 35년)에 산서에서 대지진이 일어나 수십만 명이 죽은 것을 모르시오? 그런 저주받은 땅에 가는 이유가 돈밖에 더 있겠소?”


정확했다. 하림이 평요현에 가려는 이유는 그곳에 있는 표호(票號)의 본점을 방문하기 위함이었다.


표호는 지금으로 치면 은행을 말한다. 원래 역사에서는 청나라 도광(道光) 즉, 1823년에나 등장한다. 그런 것을 티엔 이가 250년이나 앞당겨서 시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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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제17장 아파비사(阿波菲斯)의 비밀암호 +2 23.01.27 522 1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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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제15장 석문을 거두다 23.01.25 590 1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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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제6장 티엔 이의 흔적을 발견하다 23.01.16 1,045 23 11쪽
5 제5장 A.D 1580년 +6 23.01.16 1,084 2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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