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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재 님의 서재입니다.

대한조명기(大韓朝明記)

웹소설 > 작가연재 > 대체역사

수어재
작품등록일 :
2023.01.13 03:25
최근연재일 :
2023.02.08 15:45
연재수 :
3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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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61
추천수 :
443
글자수 :
176,916

작성
23.02.02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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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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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제22장 동창(東廠)을 치기 위함입니다!

DUMMY

장거정이 하림을 다시 부른 것은 보름이 지나서였다. 그동안 하림은 궁중 예절과 법도 등을 공부하며 조정에 출사할 준비를 했다.


보름 만에 다시 만난 장거정은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얼굴이 많이 상해서 광대뼈가 휑하니 드러났고 검댕을 칠한 것처럼 눈 밑이 거무스름했다.


‘예정보다 일찍 죽으면 곤란한데.’


하림이 자리를 잡기 전까지는 든든한 버팀목이 돼 줘야 했다.


“대사부께서 자네를 거둔 것은 예전에 나를 거둔 것과 같은 이유였겠지? 대사부는 늘 수십 년을 내다보고 준비하셨으니까. 솔직히 자네가 나타났을 때는 섭섭한 마음도 없지 않아 들더군. 대사부께서 나를 못 미더워하는 것 같아서 말이야.”

“······.


하림은 속으로 조소를 금치 못했다. 티엔 이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솔직히 이제는 티엔 이가 어떤 사람인지 하림도 혼란스러울 지경이었다.


“하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더군. 나도 늘 내 사후를 염려했네. 한데 정작 대비를 하려니 쉬운 일이 아니더군. 어느새 나도 권력에 중독됐던 거지. 눈곱만큼도 남과 권력을 나누고 싶지 않았던 게야.”


사실이었다. 그의 슬하에 아들 여섯을 뒀지만, 누구 하나 정치에 두각을 드러낸 자가 없다. 자질이 없다기보다는 아예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친자식도 그럴진대 남이야 오죽하겠는가.


‘이해한다. 권력은 자식과도 나누지 않는다고 했으니까.’

“대사부는 이러한 나를 정확히 꿰뚫어 본 걸세. 그래서 나와 전혀 인연이 없는 자네를 끌어들인 것이겠지.”

“······.”


장거정은 티엔 이가 그의 본성을 꿰뚫어 보고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오해하는 것 같았다. 티엔 이가 뛰어난 것은 맞지만 그 정도로 선견지명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계획에 하림이 포함된 것은 우연일 뿐이었다.


“대사부께서는 자네를 금의위에 천거하라고 하더군. 이유가 뭔가?”


금의위는 황제의 직속 감찰기관으로 동창과 함께 초법적인 권한을 가진 조직이었다. 하지만 사찰조직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정치적 한계가 뚜렷했다. 개혁의 연속성을 꾀하려면 금의위보다는 행정기관인 6부(部: 이, 호, 예, 병, 형, 공부)가 더 어울렸다.


“동창을 치기 위함입니다.”

“뭐라? 동창을 친다고?”

“예, 지금은 태악 대인의 치세로 군사와 정치가 균형을 이루었으나 후일 환관들이 득세하여 국정을 농단하고 백성들을 도탄에 빠트릴 것이라 하셨습니다. 이에 동창을 해체하여 환관들의 발호를 사전에 차단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나도 생각나는 것이 있구나. 언젠가 대사부께서 내게 말씀하시길, 궁에 진충이란 환관이 출현하면 이유를 불문하고 죽이라고 하셨다. 그자에 대해 들은 것이 있더냐?”


진충은 환관 위충현의 개명 전 이름이었다. 위충현은 천계제 때 악명을 떨쳤던 환관으로 15살에 황위에 오른 천계제를 대신해서 6년간 섭정을 펼친 자였다.


재밌는 것은 그가 일자무식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사례감의 병필태감이 됐다는 것은 희대의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병필태감은 오늘날의 대통령 비서실장과 유사한 자리로 각 부에서 올라온 공문을 선별하여 황제에게 알리고 반대로 황제의 어명을 대신들에게 전달하는 직책이었다.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무식쟁이가 그런 업무를 맡았으니 국정이 어찌 돌아갔겠는가?


위충현은 명나라를 망하게 한 일등공신이자 거대한 제국도 한 사람에 의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산 증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티엔 이는 회고록에서 위충현을 반드시 죽이라고 신신당부했다. 역사대로 위충현이 권력을 잡으면 그간 해왔던 개혁도 수포로 돌아가고 말 것이었다.


“저 또한 그자의 이름을 들었습니다. 반드시 찾아내어 척살할 것이니 대인께서는 심려 놓으십시오.”


하림은 장거정과 대화를 나누면서 티엔 이가 어떻게 장거정 같은 자의 마음을 얻었는지 엿볼 수 있었다.


장거정은 티엔 이의 예지력을 높이 평가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저리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실제로도 티엔 이는 미래의 크고 작은 일들을 예언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또한, 천지신명의 힘을 빌려 그에게 반 하는 자들을 한순간에 제거하는 신통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티엔 이의 비밀을 아는 하림에게는 그저 재밌는 쇼에 불과했지만,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경천동지할 사건이었다.


곁에서 티엔 이의 기행을 목격한 사람은 그가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었을 것이다. 장거정 같은 희대의 인물도 예외는 아니었다.


티엔 이가 구축한 인적 네트워크는 그의 초인적 능력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했기에 구성원들의 충성도가 매우 높았다.


“하나 사부께서는 진충을 제거해도 다른 환관이 그자를 대신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여 환관의 발호를 원천 봉쇄하려면 그들의 기반이 되는 동창을 없애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흠.”


장거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하림에게 영패 하나와 서책을 건넸다. 영패에는 금의위 북진무사사라고 새겨져 있었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공적이 없는 자네를 금의위지휘사(錦衣衛指揮使)에 천거할 수는 없네.”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금의위지휘사는 금의위의 수장으로 정3품 품계였다. 품계는 육부의 상서(尙書: 장관)보다 낮았으나 이는 형식에 불과했고 초법적 감찰기관의 수장으로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자리였다.


하림이 제수받은 북진무사사는 종4품 품계로 북진무사를 총괄하는 자리였다. 북진무사는 금의위 휘하의 남북진무사의 하나로 사법기관을 거치지 않고 직접 감찰과 체포, 행형(行刑: 형 집행)을 할 수 있는 조직이었다.


행형은 사형까지 포함하며 기존의 사법기관인 삼법사(三法司: 형부, 대리사, 도찰원)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한 마디로 법 위에 군림하는 깡패조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북진무사에서 운영하는 조옥(詔獄: 감옥)은 한번 들어가면 죽어서 나온다는 악명이 자자할 정도로 사람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금의위에는 북진무사 외에도 남진무사가 있었지만 군사적 업무에 치중되어 실질적인 권력기관인 북진무사에 비해 비중이 떨어졌다.


“책자는 현 금의위의 권력 관계와 부서별 업무를 기록한 것일세. 반드시 숙지하도록 하게.”

“예.”

“그리고 직무와 관련해서 알게 된 정보는 내게 먼저 보고해야 하네.”

“물론입니다.”


금의위와 동창은 황제의 직속 기관이었다. 오직 황제의 명에 의해서만 움직였고 보고도 황제에게만 해야 했다. 하나 지금은 어린 황제를 대신해서 장거정이 국정의 대부분을 독단으로 처리하고 있었다.


실제 역사에서도 만력제는 장거정이 죽기 전까지 허수아비 황제나 다름없었다.


“등청(登廳: 관청에 출근함)할 때 데려갈 자들이 있는가? 금의위가 상하 서열이 엄격하긴 해도 믿고 부릴 자가 필요할 거야. 내 몇 명 붙여 줄 테니 데리고 가게.”


언뜻 보면 하림을 생각해서 하는 말 같았지만, 실상은 감시를 붙이겠다는 의도였다. 하림도 예상했던 일이라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안 그래도 대인께 부탁하려고 했었습니다. 한데 이리 선처해 주시니 감읍할 따름입니다.”

“등청 일자가 정해지면 통보하겠네. 그때까지 신변을 정리하도록 하게.”

“예, 대인.”


태악당을 나선 하림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티엔 이, 보고 있냐?’


지금까지는 티엔 이의 구상대로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하나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춤 한번 춰 보련다. 못 추더라도 비웃지는 말고.’


갑자기 구름이 해를 가리면서 하림 주위에 그늘이 졌다. 하림이 피식 웃고는 별채로 향했다.


* * *


그날 저녁, 마병 대장인 하위천이 수하 몇을 대동하고 별채로 찾아왔다. 그는 수하들과 무릎을 꿇고 하림에게 예를 올렸다.


“하위천이라고 합니다. 수족처럼 부려주십시오!”


호위로 붙여준 자가 하필 석가촌 학살의 흉수라니! 석가촌 식구들이 알았다면 피를 토할 일이었다. 하나 하림은 아직 그 사실을 몰랐다.


“금의위는 황상을 최측근에서 보위하는 조직이다. 황제 폐하와 태악 대인께 누가 되지 않도록 언행에 각별히 신경써야 한다.”

“명심하겠습니다.”

“돌아가서 명을 기다려라.”

“예!”


하림은 인사만 받고 그를 내보냈다. 잠깐 쓰고 버릴 자였기에 교분을 나눌 생각이 없었다.


* * *


평요현 표호 안가.


미츠키는 왕수인이 만들어준 공방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뭔가를 열심히 만들었다. 처음에는 그곳 장인들과 말이 통하지 않아서 손짓, 발짓으로 의사소통을 했으나 지금은 중국어로 작업을 지시할 정도로 일취월장하였다.


하나 미치키의 성취도 이대승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한자를 알고 있었기에 병음만 익히면 되었다. 명에 체류한 기간도 적지 않아서 배움의 속도가 남달랐다.


공방 장인들은 매일 같이 비지땀을 흘리면서도 정작 자신들이 뭘 만드는지는 몰랐다. 작업이 세부 단위로 이뤄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눈썰미가 좋은 자들은 간혹 눈치챈 자도 있었다.


공방 장인의 보고를 받은 왕수인이 얼굴을 찡그렸다.


“총포를 만드는 것 같다고?”

“예, 못 보던 방식이라 생소하긴 해도 틀림없는 총포였습니다.”

“알았다. 그만 나가보거라. 아랫것들 입단속 하는 것 잊지 말고.”

“예, 대인.”


사내가 나가자 왕수인이 탁자를 손가락으로 토드락 두드렸다. 뭔가 답답한 일이 있을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화약이 필요하다고 할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산주께서는 무슨 생각으로 저러시는지 모르겠구나.’


화약은 관에서 엄격히 통제하여 사사로이 보유할 수 없었다. 다만, 관에서 시행하는 토목 공사를 맡은 상방에 한해서는 예외적으로 허가했다. 그렇다고 해서 화기 제작까지 허락한 것은 아니었다.


표호에서 화기(火器)를 만든다는 얘기가 새 나가면 안팎으로 곤란해질 수 있었다.


“왜 연락이 없으신 거지?”


하림이 떠난 지도 벌써 두 달이 넘었다. 금방 사람을 보낼 것처럼 말해 놓고 여태껏 서신 한 장 없었다.


왕수인은 누구에게 말도 못 하고 혼자서 끙끙 앓았다. 원광중(진상 표국의 국주)과 상의해볼까도 생각했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런 일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았다.


“밖에 염호 있는가?”

“예!”


눈매가 날카로운 사내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객청에 공방의 장인들이 묵을 숙소를 마련해주고 외부인과 접촉하는 자가 있는지 철저히 감시하거라.”

“감시만 합니까?”

“죽여라.”

“예!”


염호가 나가자 왕수인이 이마를 손으로 감싸고 앓는 소리를 냈다.


“복덩이인 줄 알았는데 화근덩어리였어. 아이고 내 팔자야.”


하림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가 표호에 둥지를 틀 때만 해도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하루하루가 외줄을 타는 것처럼 조마조마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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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45 [탈퇴계정]
    작성일
    23.02.02 01:51
    No. 1

    과연 명을 어떻게 휘어잡을까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8 수어재
    작성일
    23.02.02 16:00
    No. 2

    큰 돈을 따려면 배팅도 크게 해야 합니다. 하림은 편안한 길을 버리고 일생일대의 모험을 하게 됩니다. 그런 결정을 할 수밖에 없는 큰 변수가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2권 부터는 스토리가 빠르게 전개될 예정입니다. 전투 씬도 많고요. ^^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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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제11장 일기의 정체는 회고록이었다 +7 23.01.20 782 1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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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제9장 명나라 역사를 공부하다 23.01.19 847 20 12쪽
8 제8장 약초꾼 오철산을 죽이다 23.01.18 928 20 12쪽
7 제7장 티엔 이의 일기 +4 23.01.17 959 23 12쪽
6 제6장 티엔 이의 흔적을 발견하다 23.01.16 1,045 2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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