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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재 님의 서재입니다.

대한조명기(大韓朝明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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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재
작품등록일 :
2023.01.13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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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23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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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제13장 조선 갑사 이대승

DUMMY

무역을 통해 서구에서 대량의 은이 유입되기 시작하자 티엔 이는 국가에서 은자와 은원보를 만들어 유통시키고 민간에서 중구난방으로 찍어내는 것을 금하여 금융 질서를 안정시켰다. 이른바 은본위제의 시작이었다.


티엔 이의 은본위제 시행은 대성공이었다. 국내의 은 보유량의 증가와 맞물려 기축통화로써 훌륭한 역할을 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은자의 부피가 너무 커서 결제 대금으로 가져가는 은자를 수송하기 위해 별도의 물류비와 호위 비용이 들어갔던 것이다. 나중에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운임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화폐로써 은자의 가치는 높았다. 그러나 폐해 또한 적지 않아서 개선의 여지가 있었다. 티엔 이는 고심 끝에 역사의 큰 줄기는 바꾸지 않겠다는 자신의 원칙까지 어겨가며 은행제도를 실시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표호(票號)였고 그 수혜는 산시 상방인 진상(晉商)이 고스란히 가져갔다. 진상에 독점권을 주고 다른 상방은 표호를 열지 못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티엔 이가 진상에게만 특혜를 준 이면에는 큰 비밀이 존재했다. 하림이 산시로 가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정작 하림은 그 이유를 몰랐지만 말이다.


“명나라 말도 못 하는 사람이 어찌 그리 명의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겁니까?”

“말을 못 한다고 해서 글까지 모르는 것은 아니오.”


한마디도 안 지고 꼬박꼬박 대꾸하는 것이 얄밉기는 해도 사물을 꿰뚫어 보는 안목은 칭찬할 만했다.


“사담(私談: 사적인 대화)은 이쯤 하고, 나와 계약하겠소, 말겠소?”

“······.”


어느 순간부터 이대승이 목을 뻣뻣이 세웠다. 그의 돌변한 태도에 하림도 차갑게 응수했다.


“이 형이 명나라 말을 못 하는 것이 어찌 보면 다행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조선인 따위가 그리 건방을 떨고 다니다가는 언제 목이 잘려도 이상할 게 없으니까요.”


하림이 이대승을 노려보며 말했다. 이대승도 지지 않고 하림을 쏘아보며 대꾸했다.


“조선인이 명나라 사람 행세를 하는 것도 목이 잘릴 일이 아니겠소?”

“······.”


이대승은 하림을 조선인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정답은 아니어도 반은 맞췄다고 할 수 있었다.


이대승의 말에 하림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이 자식 봐라? 내 앞에서 되놈이니 뭐네 막말을 한 것이 나를 떠보려는 수작이었어?’


싸구려 소면이나 먹는다고 우습게 봤다가 한 방 제대로 먹었다.


“좋습니다. 계약하죠. 대신 이 형은 북경까지 가는 거로 합시다.”


하림은 이대승이 께름칙해서 경로를 바꾸기로 했다. 가까운 북경에서 호위를 새로 구하고 이대승은 버릴 생각이었다. 한데 이대승이 난색을 하며 불가를 외쳤다.


“북경은 안 되오.”

“돈을 더 달라는 겁니까?”

“그런 게 아니라 실은······내가 아패(牙牌)가 없소.”

‘아패? 신분증인가?’


신분증이 없기는 하림도 매한가지였다. 티엔 이가 남긴 영패가 있긴 했지만, 그것이 아패인지도 모르겠고 괜히 잘 못 보였다가 사달이 날까 두려웠다.


“다른 곳은 몰라도 북경은 검문이 엄격해서 아패 없이는 통과할 수가 없소.”

“어떻게, 이 마을에서 구할 수는 없겠습니까?”

“그런 방법이 있었다면 벌써 이곳을 떠났을 거요.”


그깟 노름빚이야 떼어먹으면 그만이었다.


“흠.”


이대승도 문제였지만 하림과 미츠키도 걱정이었다.


“아패를 본 적이 있습니까?”


이대승이 고개를 끄덕이자 하림이 티엔 이의 영패를 보여줬다.


“검찰사? 이게 뭐요? 장 공자, 관원이셨소?”

“······.”


이대승의 표정을 보니 그도 모르는 눈치였다. 하림은 점소이를 불러 그에게도 영패를 보여줬다.


“이게 뭡니까?”

“이런 걸 보거나 들어 본 적이 없느냐?”


점소이가 고개를 저었다.


“혹, 네 아패를 볼 수 있겠느냐?”

“예? 여기 있습다요.”


둘을 비교해본 결과 티엔 이의 영패는 아패와는 거리가 멀었다. 아패는 소지자의 이름과 주소, 그리고 외형적 특징이 간단하게 기술돼 있었다. 그에 반해 티엔 이의 영패는 ‘검찰사’ 세 글자만 양각돼 있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듣고 대답하거라. 대답만 잘하면 한몫 단단히 챙겨 줄 테니까.”

“말씀하십시오.”

“아패, 3개만 구해 줄 수 있겠느냐?”

“예?”

“위조품이 아니라 진품이어야 한다. 하나는 여인의 것이어야 하고.”

“아이고, 큰일 날 소릴 하시네. 관아에서 알았다가는 경을 치는 거로 끝나지 않습니다요.”

“원래 인생이라는 게 도박 아니겠느냐? 큰돈을 벌려면 배팅 아니, 판돈을 크게 걸어야 하는 법이다.”


하림이 점소이가 보는 앞에서 은자 10개를 꺼내 새 주머니에 담아 흔들었다. 점소이가 목젖이 출렁거릴 정도로 마른침을 삼켰다.


한 고을(현)의 수령인 지현(知縣: 정7품)의 1년 녹봉이 은자 45냥에 불과했다. 서민들에게 은자 10냥은 절대 적은 돈이 아니었다.


“언제까지 필요하십니까?”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너도 우리가 빨리 떠나야 안심할 것 아니냐?”

“그건 그렇죠.”


점소이가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자 하림이 쐐기를 박았다.


“약속대로 아패 3개를 구해 오면 은자 열 냥을 더 주겠다.”

“예?”

“가서 잘 생각해 보고 내일까지 답을 주거라.”

“······.”


점소이가 인사를 꾸벅하고 나갔다.


“아패 문제는 해결이 됐으니까 우리 계약도 마무리를 지어 볼까요?”

“나 참. 아패가 없는 걸 보면 명나라 백성은 아닌 거 같고······. 장 공자 정체가 뭐요?”

“이 형이 명에 오게 된 사연을 말해 주면 나도 알려드리죠.”

“······.”


무슨 사연이 그리 깊은지 이대승은 끝까지 자신의 얘기를 해주지 않았다.


“서로 비밀을 하나씩 가진 거로 하죠.”

“그게 좋겠소.”

“북경까지 얼마면 되겠습니까?”

“은자 서른 냥! 식대와 숙박비는 별도요. 그리고 평요현까지 함께 간다는 조건이오. 싫다면 다른 사람 찾아보시오.”

‘아놔, 진짜. 콱 죽여버릴까?’


돈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약점을 이용하려는 태도가 눈에 거슬렸다. 그렇다고 해도 이제는 한배를 탄 것이나 진배없었다.


“그리고 북경은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소. 급조한 아패 따위로 통과할 수 있는 곳이 아니오.”

“꼭 가본 사람처럼 말합니다. 그건 내가 결정할 일이고. 은자 서른 냥이라고 했습니까?”

“운임은 물건의 가치에 따라 달라진다고 들었소. 장 공자, 그대의 가치가 은자 서른 냥도 안 된다고 보시오?”

“······.”


하림은 이대승이 얄미워서 속으로 비명을 지르고 싶을 지경이었다.


‘이 자식, 한번 해보자는 거냐?’

“내 잠시 이 형의 안목을 높게 보았습니다만, 조금 실망스럽군요.”

“······.”


이대승이 살짝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이런 반응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하림이 탁자 위에 ‘탕’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뭔가를 내려놓았다. 점소이의 이빨보다도 누런 금덩이였다.


“고, 공자······.”


하림이 꺼내놓은 금덩이는 자그마치 50냥짜리 금원보였다. 금자 한 냥이 은자 20냥의 값어치를 가졌으니 금원보의 가치는 은자 1천 냥과 맘먹었다.


“물론 나의 가치는 그것보다 더 큽니다. 하나 이 형이 나를 담을 그릇이 되지 않으니 그것으로 만족해야겠습니다.”

“······.”


이대승은 뜻밖의 상황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볼그스레하게 좋았던 안색도 어느새 파리하게 질려있었다.


“내일 진시 정각(辰時 正刻: 오전 7시 30분)까지 쓸만한 말 3필을 구해 오십시오. 이 형의 그릇을 살필 수 있는 첫 시험이 되겠군요.”


지금 시각이 밤 11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렇게 작은 마을에 마시(馬市: 말 시장)가 있을 리 없다. 있다 하더라도 문을 닫아서 내일 아침까지 말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하림은 아패가 있든 없든 내일 아침에 떠나기로 결심했다. 점소이가 그들의 사정을 알았으니 길게 머물 수 없었다.


“늦었습니다. 그만 나가보세요. 그리고 내일부터는 이 형을 손님이 아닌 피고용인으로 대할 겁니다.”

“······.”


말없이 방문을 나서던 이대승이 문밖에서 고개를 까딱이며 건성으로 인사했다. 다소 건방져 보였으나 저 정도 오기도 없으면 꺾는 재미가 없었다.


방문이 닫히고 그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지자 하림이 참았던 웃음을 터트렸다.


“아이고 속이 다 시원하다.”


조금 과하다 싶었지만, 누가 주인인지는 알려 줄 필요가 있었다. 그까짓 돈이야 평요현에 가면 산더미같이 쌓여 있었다.


* * *


이튿날 아침.


객잔의 문을 여는 하림의 얼굴에 기대감이 어렸다. 과연 이대승은 하림이 내준 숙제를 풀고 객잔 앞에서 대기하고 있을까? 아니면 금원보를 갖고 줄행랑을 쳤을까?


문을 반쯤 열었을 때였다. 히힝 거리는 말 울음소리가 들렸다. 객잔 앞에는 안장까지 얹은 말 세 마리가 대기하고 있었고 그 앞에 이대승이 말고삐를 쥐고 석상처럼 서 있었다. 밤새 한숨도 못 잤는지 눈알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하림은 이대승을 무심히 한번 보고는 말에 올랐다. 반면 미츠키는 이대승을 요리조리 뜯어보고는 하림에게 물었다.


“어제 그 아저씨 아니야? 우리랑 같이 가는 거야?”

“응. 보디가드.”

“근데 다시 보니 진짜 잘 생겼다.”

“성격은 까칠해.”

“원래 상남자는 까칠해.”

“이 무사, 광 소저와 인사하지.”


하림의 말투가 변해있었다. 미리 언질을 줘서 그런지 이대승도 수긍하는 눈치였다.


하림은 이대승에게 미츠키를 광희(光熙)로 소개했다. 광희는 미츠키의 한자였다. 이대승은 그녀가 양이(洋夷: 서양 오랑캐)의 말을 하는 것을 보고 몹시 놀랐다.


* * *


중국의 영토는 예나 지금이나 광대했다. 어느 곳이든 마을을 조금만 벗어나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광활한 벌판이 나왔다.


하림은 호위무사를 더 고용하고 싶었다. 하나 그러려면 경성(京城: 북경)으로 가야 했는데 아무래도 도성은 검문이 심할 것 같아서 포기했다. 점소이에게 아패를 구하긴 했어도 그것이 진짜인지도 알 수 없었다.


“하림, 평요현까지 얼마나 걸려?”

“200km 정도 되니까 부지런히 가면 오늘 중으로 도착할 수 있을 거야.”


중간에 말을 갈아탈 수 있으면 더 빨리 갈 수 있었다. 마시(馬市:)를 만나면 말을 바꾸기로 하고 일행은 말을 달렸다.


도성과 가까워서 그런지 도로도 잘 정비되어 있었고 검문소가 많아서 산적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굳이 호위무사를 보충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아패가 잘 먹히고 있었다.


일행이 북직예성(北直隸省: 하북성의 옛 이름) 상산을 지날 때였다. 하림이 말을 멈추고 옛 도시가 자리했던 터를 응시했다.


미츠키가 말을 몰아 그에게 다가왔다.


“하림, 왜?”

“티엔 이와 이곳에 온 적이 있어. 그때는 이곳의 지명이 상산이 아니라 석가장이었어. 저기 촌락 보이지?”

“응.”

“아마 저곳에 군인들이 살고 있을 거야.”

“군영같이 안 보이는데?”

“그럴 거야. 주둔이 아니라 아예 살라고 보낸 거니까. 저들 중 우두머리의 성씨가 아마도 석 씨일걸?”

“그걸 어떻게 알아? 회고록에 그런 것도 적혀 있어?”


미츠키의 말에 하림이 씩 웃었다. 설마 그런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적었을까?


“도시의 흥망성쇠를 보면 인생이 참 덧없이 느껴져.”


한(漢) 나라 때에는 인구가 60만이 넘었던 도시가 지금은 쇠퇴하여 잡초만 무성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21세기에는 인구 천만이 넘는 대도시로 변모할 것이다.


“천하의 조자룡이 태어난 상산이 명나라의 어느 군인의 성씨를 따서 석가장으로 불리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어머, 조자룡이 실존 인물이었어?”

“실존 인물 맞아.”

“세상에!”

“······.”


알면 알수록 미츠키는 놀라웠다. 박사학위를 3개가 갖고 있으면서 어쩜 저렇게 엉뚱할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한번은 호위무사를 구하겠다고 했더니 하북팽가가 가깝다고 그곳으로 가자고 했다. 공학박사들은 다 저 모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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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제11장 일기의 정체는 회고록이었다 +7 23.01.20 778 1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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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제6장 티엔 이의 흔적을 발견하다 23.01.16 1,037 2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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