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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재 님의 서재입니다.

대한조명기(大韓朝明記)

웹소설 > 작가연재 > 대체역사

수어재
작품등록일 :
2023.01.13 03:25
최근연재일 :
2023.02.08 15:45
연재수 :
3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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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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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3
글자수 :
176,916

작성
23.01.30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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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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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글자
11쪽

제19장 천하제일 악필(惡筆)!

DUMMY

석문이 굳은 얼굴로 하림에게 말했다.


“장 공자, 장 공자를 모시는 것은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어딜 가려고요? 복수라고 할 생각입니까?”

“······.”

“굳이 개죽음하겠다면 말리진 않겠습니다.”

“그 입 닥치지 못할까!”


사우택이 그를 잡고 있는 동료를 뿌리치고 소리쳤다.


“너만 아니었으면 내 아내와 6살 먹은 아들이 죽지 않았을 거야. 네놈 때문에 우린 가족을 잃었어!”

“······.”


백연이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 사우택과 석가촌 병사들을 찬찬히 돌아봤다. 모두 말을 아꼈으나 복수심에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미안합니다. 모두 내 탓입니다. 내가 죽어 그분들이 살아올 수 있다면 당장에라도 그러고 싶은 심정입니다.”

“흥, 그딴 소리로 이 상황을 모면할 생각이라면 집어치워라. 내 네놈의 멱을 따고 그길로 북경으로 가서 장거정 그 개백정 놈을 죽일 거니까.”

“사우택, 그만해라!”


보다 못한 석문이 나서서 그를 꾸짖었다.


“대형, 대형도 잘한 것 없소. 우리 중에 그 서찰을 읽은 사람은 대형이 유일하오. 그리 위험한 서찰이었으면 모른 척할 것이지 왜 나를 북경으로 보내 이 사달을 만드셨소.”

“······.”

“대형, 말 좀 해보시오!”


사우택의 조리 있는 말에 석문은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사람이 흥분하면 이성이 마비되기에 십상이다. 그런데도 사우택은 적절히 감정을 제어하며 논리로 상대를 굴복시켰다. 한낱 병사로 쓰기에는 아까운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림이 잠시 생각을 하다 입을 뗐다.


“모두 내 얘기를 들어 주십시오.”

“저······.”


사우택이 뭐라고 하려는 걸 옆에 있던 진명위가 말렸다.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나 보자.”

“흥, 들으나 마나요. 자기는 잘못이 없다고 발뺌하려는 수작이겠지.”

“어허, 우택아!”

“······.”


진명위가 눈을 부라리자 사우택이 곧장 꼬리를 내렸다.


소음이 잦아들자 하림이 다시 말문을 열었다.


“지금 여러분이 분을 못 참고 북경으로 간다면 십중팔구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헛된 피만 흘릴 것입니다. 하지만 내게 맡겨 준다면 2년 안에 장거정과 그 수족들의 목을 베어 석가촌의 무덤에 바치겠습니다.”

“그 말을 어떻게 믿으라는 거야!”


사우택이었다. 말투는 여전했으나 기세는 조금 전보다 부드러워져 있었다.


“지금은 내 말밖에 내놓을 증거가 없습니다. 하나 눈이 있다면 보고 판단하길 바랍니다.”

“······.”


엊그제까지만 해도 석가촌의 인질이었던 하림이 지금은 대 진상의 귀빈으로 극진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


“그래도 못 믿겠다면 내 곁에 머물면서 지켜봐도 좋습니다. 그것이 감시든 협력이든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2년 후에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그때 여러분의 뜻대로 하십시오.”

“······.”


사실 하림의 말은 크게 와 닿지 않았다. 장거정이 누구인가? 현 황제인 만력제뿐 아니라 태후(太后: 황제의 어미)와 태감 풍보까지 그를 지지하고 있었다. 백성들은 또 어떤가? 세상에 다시 없을 명재상이라며 그를 칭송하고 있었다.


석가촌의 일이 있기 전까지는 석문과 병사들도 장거정을 존경했다. 그랬기에 석문이 두 번 생각하지 않고 곧장 서신을 보냈던 것이다.


황제 대신이라고 할 수 있는 아니, 어떻게 보면 황제보다 더한 권력을 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자를 2년 안에 잡겠다고 하면 누가 믿겠는가?


하림을 보는 석문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계획대로라면 하림은 장거정의 양자로 들어간다. 양부도 부모다. 자식이 부모를 배신하는 것은 천륜을 저 버리는 금수만도 못한 짓이었다.


그런 이유로 석문은 하림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부하들이 미쳐 날뛸 것을 우려하여 지금은 참기로 했다.


* * *


그날 밤, 복면을 한 자가 하림의 방으로 스며들었다. 하림은 목에 서늘한 감촉을 느끼고 눈을 떴다.


“석 장군, 생각보다 늦으셨습니다. 기다리다가 깜빡 잠이 들었군요.”


하림이 손가락으로 칼날을 밀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림은 불청객을 앞에 두고 태연하게 탁자에 앉아 자리를 권했다.


하나 석문은 들은 척도 않고 검을 겨눈 채 하림을 노려봤다.


“내가 올 것을 알았다면 그 이유도 알고 있겠군요.”

“물론입니다. 나라도 석 장군처럼 행동했을 겁니요.”

“왜입니까? 왜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한 겁니까?”

“나도 묻겠습니다. 석 장군은 왜 내가 약속을 못 지킬 거로 생각합니까?”

“그거야······.”

“내가 장거정의 양자로 들어가기 때문입니까?”

“······.”

“분명히 말해두지만 내가 장거정의 양자가 되는 것은 내 뜻이 아니라 사부님의 명에 의한 것입니다.”

“내 말이 그것입니다. 사부의 명으로 양자가 된 자가 어찌 양부를 죽일 수 있단 말입니까?”

“그것도 내 뜻이 아닌 사부님의 명이었습니다. 지금은 내 뜻이기도 하고요.”

“예?”


장거정의 양자로 들어가서 그를 죽인다고? 자다가 봉창을 두드려도 유분수지 이게 무슨 개소리란 말인가? 석문은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어서 도무지 생각이란 게 떠오르지 않았다.


“믿을지 모르겠으나 장거정은 내가 밟고 올라가야 할 계단에 불과합니다. 목적을 이룬 후에 그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습니다. 나는 내 입으로 뱉은 말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는 사람입니다. 2년 안에 장거정의 목을 취하실 수 있을 겁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얘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이제 어떡하겠습니까?”

“······.”


실내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하림은 차갑게 식은 차를 마시며 석문에게 생각할 시간을 줬다.


‘석 장군, 나를 믿고 따르시오. 그것이 당신과 당신 수하들이 살길이오.’


하림이 찻잔을 떨어트리는 순간, 천장에 매복하고 있는 진무관의 무사들이 석문의 목을 벨 것이고 동시에 그의 수하들 또한 이승을 하직하게 될 것이었다.


하림은 무슨 일을 하든 두 번, 세 번 생각하고 하라는 티엔 이의 충고를 충실히 따랐다. 앞에서는 석문과 그의 수하들을 회유하면서도 뒤로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흠.”


석문이 검을 검집에 넣고 무너지듯 털썩 의자에 앉았다.


“당장은 장 공자의 말을 믿겠습니다. 하나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내 죽는 한이 있어도 장 공자와 결판을 낼 것입니다.”


석문이 천장을 흘끗 보며 말했다. 매복이 있는지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긴 그의 실력이면 모르는 것이 더 이상했다.


“현명한 판단을 하셨습니다. 결코, 석 장군을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대신 석 장군도 내게 한 약속을 지켜주기 바랍니다.”

“물론입니다. 장 공자가 약속을 지키는 한, 장 공자를 따르겠다는 나의 약속도 변함이 없을 겁니다.”

“좋습니다. 나는 이곳 일이 마무리되는 대로 북경으로 갈 생각입니다.”

“저도 가겠습니다.”

“아니요. 석 장군은 이곳에 남아 할 일이 있습니다.”


하림이 품에서 서신을 하나 꺼내 내밀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서찰 때문에 된통 당한 기억이 있어서인지 하림이 내민 서찰을 보고 석문이 움찔했다.


“아침에 석 장군과 수하들을 데리러 사람이 갈 겁니다. 그가 여러분을 진무관이란 곳으로 안내할 겁니다.”

“진무관?”

“자세한 내용은 서신에 적어놓았습니다.”

“······.”


서신을 펼쳐 본 석문이 못 볼 것을 본 사람처럼 오만상을 찌푸렸다.


“암어(暗語: 암호)입니까?”

“그럴 리가요.”


하림이 민망한 듯 얼굴을 붉혔다.


“도대체 어떤 작자가 이따위로 글을 쓴 것입니까?”

“······접니다.”

“······.”


석문이 황당하다는 듯 입을 헤 벌렸다. 글자를 하도 개발새발 써 놓아서 처음에는 그림을 그려 놓은 줄 알았다. 그것을 글자라고 하면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었다.


북경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하림의 서신을 받고 장거정이 지붕이 들썩일 만큼 박장대소했다.


“하하하, 대사부가 거둔 제자가 맞구나! 어찌 이리 필체가 닮았는고? 북경에서 제일가는 위서 전문가도 절대 흉내 내지 못하겠구나.”


기쁘다기보다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터졌다. 그 사부에 그 제자라고 이런 악필을 물려줄 수 있는 사람은 천하의 운범뿐이었다. 그에게 글을 배웠다면 이래야 또 정상이었고······.


“대사부가 제자를 거두다니, 정말 의외로구나.”


참으로 의외였다. 티엔 이는 장거정뿐 아니라 주환, 유대유, 척계광 등 많은 자들의 후견인을 자처하며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입 밖으로 내진 않았어도 티엔 이는 그들을 제자로 여겼고 장거정 등도 티엔 이를 스승으로 생각했다.


하나 정식으로 제자를 거둔 것은 하림이 유일했다. 게다가 좀처럼 쓰지 않던 ‘제자’라는 말을 서신에 남발한 것으로 봐서 그가 하림을 각별히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장하림이라고 했던가? 어떤 자인지 궁금하구나. 너의 어떤 면이 대사부의 흥미를 끌었는지 정말 궁금해.”


장거정이 서신을 태우고 물끄러미 밖을 내다봤다. 얼마 전부터 이유 없이 가슴이 뛰고 주변에서 인기척만 들려도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한 달이라고 했던가?”


그에게 보낸 서신에서 볼일을 보고 한 달 뒤에 찾아온다고 했다. 장거정은 하루라도 빨리 하림을 만나고 싶었다. 그래야 이 원인불명의 불안증이 가실 것 같았다.


* * *


산서성 평요현 표호 안가(安家: 비밀 가옥).


얼마 전까지 평범한 안가에 불과했던 이곳이 요 며칠 사이에 평요현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로 변모했다. 겉으로 드러난 경호 인력보다 모습을 감춘 호위가 더 많을 정도로 은밀하면서도 빈틈없이 경계가 이뤄졌다.


안가의 경비가 강화된 것은 석문의 침입이 있고 난 뒤부터였다. 왕수인은 그가 하림의 일행인 줄 알고 방심했다가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셈이었다.


암살이 미수로 그친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진상과 왕수인의 체면이었다. 표호의 안가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애꿎은 미츠키와 이대승까지 다른 건물로 쫓겨났다. 하림이 괜찮다고 곁에 두려고 했으나 절대 양보 못 한다고 왕수인이 고집을 부렸다.


하림을 만나기 위해 몸수색을 두 번이나 받은 미츠키가 심술이 잔뜩 나서 하림의 방문을 열었다. 그녀의 뒤로 이대승이 머쓱한 얼굴로 쭈뼛쭈뼛 눈치를 보며 서 있었다.


“어서들 와.”

“하림, 계속 이렇게 지내야 해?”

“조금만 참아. 곧 괜찮아질 거야. 식사는 어때? 입에 맞아?”

“대우는 좋아. 답답해서 그렇지.”

“안 그래도 너 좀 바쁘게 해주려고 불렀어.”

“그 촌놈들처럼 내게도 심부름을 시킬 거면 말도 꺼내지 마.”


미츠키는 석문 일행이 표행을 간 줄로 알고 있었다.


“그럴 리가. 전에 내게 보여줬던 도면 가지고 있지?”

“응, 석문인지 돌문인지 하는 자가 찾아와서 주고 갔어. 근데 그건 왜 묻는 거야? 설마!”

“왕 대인이 비밀 공방을 만들어 줄 거야. 그곳에서 제대로 연구해 봐.”

“헤헤.”


미츠키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지면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천생 그녀는 작업장에서 지내야 할 팔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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