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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재 님의 서재입니다.

대한조명기(大韓朝明記)

웹소설 > 작가연재 > 대체역사

수어재
작품등록일 :
2023.01.13 03:25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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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20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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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제11장 일기의 정체는 회고록이었다

DUMMY

어느덧 한 달이란 시간이 지나갔다. 하림이 일기의 마지막 권을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내리깔린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티엔 이가 남긴 책자는 일기가 아니라 죽음을 목전에 두고 쓴 회고록이었다. 그것도 고작 3년 전에 말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티엔 이가 하림의 출현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와 관련해서 티엔 이는 회고록 19권에 다음과 같이 적어놓았다.


-나는 노년에 큰 병을 얻었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마지막으로 우주선에 갔다. 여우도 죽을 때가 되면 자기가 살던 굴을 향해 머리를 둔다고 했던가? 내게는 타이푼 1호가 그런 장소였다. 선내를 둘러보던 중에 마지막 배터리가 방전되려는 것을 보고 급히 태블릿을 충전시켰다. 아직까지 살아있는 배터리가 있다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정작 기적은 다른 곳에 있었다.


티엔 이는 21세기 지구를 추억하며 태블릿에 저장된 파일을 검색했다. 그러다 무심코 열은 파일에서 놀라운 내용을 발견했다.


티엔 이는 뛸 듯이 기뻐했고 늦기 전에 그것을 발견하게 해준 하늘에 감사했다.


티엔 이가 찾은 것은 명사(明史)에 나오는 두 대목이었다. 명사는 청나라 때 편찬된 명나라 역사서였다.


-嘉靖八年 北京府 知府 姜鸿 馳啓曰 北京府, 四月二十五日巳時, 白日中, 紅色如布長流去, 自南向北, 天動大作, 暫時而止.


뜻을 해석해 보면, 가정 8년 북경부 지부 강홍이 보고서를 올렸다. “북경부에서 4월 25일 사시(巳時: 오전 9시에서 11시 사이)에 붉은색으로 베처럼 생긴 것이 길게 흘러 남쪽에서 북쪽으로 갔는데, 천둥소리가 크게 나다가 잠시 뒤에 그쳤습니다.”


티엔 이는 강홍이 언급한 날짜와 장소를 확인하고 감전된 사람처럼 몸을 떨었다고 했다. 가정 8년(1529년) 4월 25일은 티엔 이가 이 시대에 도착한 날이었다. 또한, 대기권을 통과하여 링산에 불시착하기까지 북경부의 상공을 통과했었다.


놀라운 점은 그게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와 비슷한 보고가 만력 8년(1580년) 3월에도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나 북경부 지부가 그와 관련한 보고서를 올렸다.


-萬曆八年 北京府 知府 白鼎臣 馳啓曰, “北京府, 三月二十一日 五更, 東南天間微雲暫發, 有火光, 狀有大盆, 起自東南間, 向北方流行甚長. 其疾如矢, 良久火形漸消.


만력 8년 북경부 지부 백정신이 보고서를 올렸다. “북경부, 3월 21일 새벽 3시에서 5시경, 동남쪽 하늘에서 조그만 구름이 잠깐 나왔는데 화광이 있었습니다. 모양은 큰 동이와 같았고 동남쪽에서 생겨나 북쪽으로 흘러갔습니다. 매우 크고 빠르기가 화살 같았으며 한참 뒤에 불처럼 생긴 것이 점차 소멸하였습니다.”


보고서를 읽은 티엔 이는 당시의 감회를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나는 그것이 타이푼 우주선이라고 확신했다. 하나 그것에 네가 타고 있으리라고는 확신하지 못했다.


하림은 그때 깨달았다. 티엔 이가 중국어와 영어, 한국어를 섞어 회고록을 작성한 이유를 말이다. 3개 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우주비행사 중에 하림과 티엔 이가 유일했다.


-하림, 난 매일 천지신명께 빌었다. 두 번째로 도착한 우주선이 네가 탄 타이푼 3호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어쨌든 너와 다시 재회하려면 3년을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평생을 홀로 지낸 내게 3년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다만, 지병으로 하루가 다르게 기력이 쇠하니 네가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구나. 난 여태껏 한 번도 우연이나 요행에 기대어 산 적이 없다. 살아서 네 얼굴을 다시 본다면 원이 없겠지만 최악의 경우도 염두에 두어야 했다.


티엔 이는 그때부터 회고록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그가 이 시대에 남긴 흔적을 지우는데, 평생을 바쳤다. 어떤 사서(史書)에도 그에 관한 기록이 없었고 심지어 그의 이름을 모르는 중신들도 허다했다.


그랬던 그가 하림을 위해 자신의 기록을 쓰기 시작했다. 하림도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회고록을 완독한 후에 깨달았다. 티엔 이는 하림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기록을 남겼다. 그가 못다 이룬 꿈을 하림에게 떠넘기기 위해서 말이다.


그는 오직 하림만을 원했다. 다른 자들은 오히려 명나라에 해를 끼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티엔 이는 하림에게 만약 다른 승무원이 살아있다면 그를 죽이라고까지 했다.


티엔 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몰랐다면 그 말을 듣고 몹시 당황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 깨달았다.


‘역시나 고든과 보리스는······.’


이제 더는 부정할 수 없었다. 그들은 티엔 이에게 살해당했다.


그날 저녁, 미츠키와 밥을 먹으면서 하림이 훈련소 시절에 있었던 얘기를 꺼냈다. 미츠키도 그때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수시로 미소를 지었다. 둘은 밤새도록 추억을 회상하며 웃고 떠들었다.


하지만 하림은 겉으로는 웃는 것처럼 보여도 속으로는 피눈물을 흘렸다. 이렇게나마 죽은 자들을 추억하며 티엔 이를 대신해 용서를 빌고 싶었다.


* * *


티엔 이가 남긴 회고록은 전부 22권이었다. 19권까지는 이곳에서의 그의 삶이 기록돼 있었고 나머지 두 권에는 앞으로 일어날 일과 그의 대처법이, 마지막 권에는 티엔 이가 남긴 안배에 관해 서술돼 있었다.


하림의 얼굴에 괴로운 듯 번민의 빛이 떠올랐다. 동료를 무참히 살해한 티엔 이를 용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그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것이 꼭두각시의 삶이라고 해도 말이다.


회고록의 후반부 3권은 앞으로 하림이 해야 할 일이 구체적으로 기술돼 있었다. 이변이 없는 한 안전한 정착은 물론이고 큰 권력까지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빌어먹을.”


하림은 티엔 이가 원망스러웠다. 그가 약간의 인간미만 보였어도 기쁘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 정도로 그가 이곳에서 이룬 일들은 지극히 매력적이었다. 어떻게 한 사람이 그렇게 다채로운 삶을 살 수 있었는지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젊어서는 개혁가로, 중년에는 정통 금융인으로 말년에는 세상을 움직이는 숨은 조율자로······.


“흠.”


하림이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제까지 이곳에 머물 수는 없다.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려야 했다.


하림이 미츠키의 방으로 갔다. 하림이 방으로 들어서자 미츠키가 퀭한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미츠키, 얘기 좀 할까?”

“마침, 잘 왔어.”


미츠키가 막 작업을 마친 도면 2장을 하림에게 보여줬다.


“이건······.”


한 장은 머스킷(musket)의 설계도였고 다른 한 장은 약실과 총신이 일체형으로 된 피스톨(pistol: 권총)의 설계 도면이었다.


도면을 살핀 하림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왜? 마음에 안 들어?”

“그 반대야. 아주 마음에 들어. 그런데 미츠키?”

“말해.”

“지금 시대에 이런 게 등장하면 난리가 나지 않을까?”

“이게 뭐가 어때서?”

“아직 이 시대에는 부싯돌 머스킷도 개발되지 않았어. 그런데 반자동소총이라니? M1 개런드보다 탄약 수만 적었지 방식은 똑같잖아. 그리고 6발짜리 피스톨은 뭐냐? 여기 기술로 이걸 만들 수나 있을 것 같아?”


미츠키가 설계한 무기는 머스킷을 가장한 20세기 총기였다. 화승식 머스킷이 주류를 이루는 이 시대에 볼트액션도 아니고 반자동소총이 등장한다면 전 세계가 발칵 뒤집힐 것이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차별은 둬야지? 세상의 이목이 두렵다고 죽을 수는 없잖아.”

“볼트액션까지는 수용할 수 있어. 하지만 반자동은 아닌 것 같다.”

“쳇, 피스톨은?”

“피스톨은······.”


세상의 이목이고 나발이고 피스톨은 호신용으로 정말 갖고 싶었다. 근거리에서 6발을 연사할 수 있다면 무림 고수 부럽지 않을 것이다.


“뭘 그렇게 고민해? 남의 눈치 보다가 죽으면 우리만 손해야. 까짓것, 역사보다 조금 일찍 등장하면 어때?”

“그건 그렇긴 한데······. 이곳 장인들이 만들 수 있을까?”

“내가 만들면 되지.”

“가능하겠어?”

“날 뭐로 보고.”


미츠키는 핵물리학과 화학공학, 기계공학 박사학위를 갖고 있었다. 소행성용 핵미사일 제작에도 참여했던 그녀에게 다소 무례한 질문이었다.


“알겠어. 딴 건 몰라도 피스톨은 필요할 것 같다. 미끈하게 뽑아봐.”

“좋아. 입이 떡 벌어질 만한 녀석으로 만들어 줄게. 근데 우리 이제 떠나는 거야?”

“응, 그 문제로 너와 상의할 일이 있어.”


하림은 티엔 이가 그를 위해 안배를 남겼다는 것을 털어놓았다. 물론 그가 고든과 보리스를 죽였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이미 벌어진 일, 그녀에게까지 짐을 지우고 싶지 않았다.


미츠키는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녀가 가장 놀라워했던 것은 역사서에 둘의 기록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다른 시간대의 하림과 미츠키가 과거로 갔었다는 얘기였다.


“그럼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도 왜곡된 것일 수도 있겠네.”

“그럴지도 모르지.”

“하림, 나 지금 소름 돋았어.”

“내가 알아낸 것은 여기까지야. 미츠키, 네 생각은 어때? 우리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고민할 게 뭐 있어? 고맙게도 티엔 이가 레드 카펫을 쫙 깔아 줬는데 딴 길로 가는 것도 예의가 아니지.”

“······.”


티엔 이가 동료를 죽인 것을 몰랐다면 하림도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미츠키에게 그 사실을 숨기기로 한순간, 이미 결론은 내려져 있었다. 하림도 그걸 알았지만, 죄책감을 덜기 위해 미츠키에게 결정을 떠넘겼던 것이다.


둘은 머리를 맞대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상의했다. 큰 가닥은 이미 티엔 이가 잡아놓았기에 소소한 것들만 결정하면 됐다. 한데 이곳 지식이 없다시피 한 두 사람에게는 그마저도 싶지 않았다.


숲에 사는 원숭이 두 마리가 머리를 짜낸다고 해서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인간 세상을 정의할 수는 없다. 직접 맞닥뜨리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이었다.


“오늘은 푹 쉬고 내일 아침에 출발하자.”

“그렇게 빨리?”


미츠키가 겁먹은 얼굴로 말했다. 동굴 생활이 지긋지긋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정작 떠날 때가 되자 겁이 났던 모양이다.


“바로 북경으로 가는 거야?”

“아니, 먼저 산서(山西)에 들려서 처리할 일이 있어. 북경은 그 후에 갈 거야.”

“하림, 나 왜 이렇게 떨리지? 넌 괜찮아?”

“나도 긴장돼. 그래도 가야겠지.”

“아, 오줌 마렵다.”


미츠키가 바지춤을 잡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오줌을 지릴 정도로 겁이 났던 걸까? 하림도 말은 안 했지만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작가의말

2023년 1월도 중순이 훌쩍 지났군요. 요즘같이 세월이 빨리 흐른다고 느낀적도 없는 것 같습니다. 


설 잘 지내시고 계묘년 토끼에 해를 맞아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행운이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힘든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다들 힘내시고 푸시킨의 시로 응원해 봅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머지않아 기쁨의 날이 오리니.


화이팅! 


수어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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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제13장 조선 갑사 이대승 +1 23.01.23 733 16 12쪽
12 제12장 세상 밖으로 23.01.22 722 16 12쪽
» 제11장 일기의 정체는 회고록이었다 +7 23.01.20 778 18 11쪽
10 제10장 일그러진 개혁가 +2 23.01.20 780 17 11쪽
9 제9장 명나라 역사를 공부하다 23.01.19 842 20 12쪽
8 제8장 약초꾼 오철산을 죽이다 23.01.18 923 20 12쪽
7 제7장 티엔 이의 일기 +4 23.01.17 954 23 12쪽
6 제6장 티엔 이의 흔적을 발견하다 23.01.16 1,037 23 11쪽
5 제5장 A.D 1580년 +6 23.01.16 1,077 2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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