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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재 님의 서재입니다.

대한조명기(大韓朝明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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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재
작품등록일 :
2023.01.13 03:25
최근연재일 :
2023.02.08 15:45
연재수 :
3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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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62
추천수 :
443
글자수 :
176,916

작성
23.01.29 12:29
조회
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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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글자
12쪽

제18장 진중 상방(晋中 商幇)의 제2대 산주

DUMMY

티엔 이는 세계 금융의 중심인 월스트리트를 능가하는 금융공동체를 꿈꾸며 산시성 평요현에 중국 최초의 은행인 표호를 개점하고 이어 북경과 양주(扬州: 양저우)에 분점을 개설하여 영역을 넓혀갔다.


막대한 자금과 선진 경영기법을 바탕으로 진상과 표호는 하루가 다르게 변모했다.


북경과 산시성을 오가며 표호 사업을 진행하던 티엔 이는 양주에 3호점이 개설되는 것을 끝으로 일선에서 물러났다. 어느 정도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겠지만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고 믿었다.


그 뒤로 티엔 이는 상방에 나타나지 않았다. 사업 배당도 현금으로 받지 않고 지분으로 수령했다. 처음 5할에 불과했던 그의 지분이 30년이 지나 8할이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당시에 티엔 이의 배당금을 차지하려고 자신의 지분을 내놓았던 자들은 후일, 가슴을 치고 한탄했다. 표호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일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왕수인이 내놓은 서류들은 진상의 지배 관계와 경영 실적 등을 기록한 대외비 문서였다. 진상 내에서도 극소수만 열람할 수 있는 자료들이었다. 누락된 내용은 그때그때 왕수인이 보충해줬다.


“작년 진상 전체의 매출액이 은 1천2백만 냥을 넘었고 순이익은 4백팔십만 냥가량 됩니다.”

“······.”


아직은 이곳의 경제 규모를 알지 못해 그것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것은 산주님이 지니고 계십시오.”


왕수인이 작은 책자를 건넸다.


“이게 뭡니까?”

“매년 발생한 이익금에서 산주님의 몫을 떼어 모아둔 것입니다. 전대 산주께서는 자신의 몫을 재투자하거나 지분을 매입하는 데 쓰셨습니다. 한데 어느 순간부터 지분을 파는 자가 없어서 현금으로 모아두었습니다.”

“그들도 생각이란 걸 할 줄 안다면 당연히 그랬겠죠. 그래, 지금까지 모인 돈이 얼마나 됩니까?”

“은 2천6백만 냥이 조금 넘습니다.”

“제법 많군요.”


담담히 말하는 하림을 보며 왕수인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뭐라? 제법 많아? 황제도 그만한 돈은 없을 것이다. 허허, 통이 큰 건지 무지한 건지······.’


하림의 반응은 왕수인의 자존심에 생채기를 냈다. 이에 살짝 흥분한 왕수인이 침을 튀겨가며 표호뿐 아니라 진상 소유의 여러 사업을 소개했다. 왕수인은 진상의 규모와 진상이 명나라 경제에 끼치는 영향력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진이 빠질 정도로 진상 자랑에 열을 올렸건만 하림의 반응은 여전했다.


“그렇군요.”

‘이런 빌어먹을 작자를 보았나!’


명나라 제일의 상방을 시골의 구멍가게쯤으로 여기는 듯한 태도에 왕수인은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하림에게 이 시대는 아직 모든 것이 낯설었다. 돈에 대한 개념도 희박해서 왕수인이 말한 숫자들이 크게 와 닿지 않았다.


좀처럼 흥미를 보이지 않던 하림이 사업체 하나에 관심을 보였다.


“여기 진무관은 뭐하는 곳인데 수입은 없고 지출만 있는 것입니까?”

“저희 표국에서 운영하는 무관입니다. 고아나 진상 상인들의 자녀들을 데려다가 무예를 가르치는 곳입니다. 수료 후에는 표국의 표사가 되거나 진상이 운영하는 사업체의 호위무사로 나갑니다.”

“규모는 얼마나 됩니까? 지금까지 졸업한 자들의 수는 얼마나 되고요?”

“그게······저도 자세한 것은 모릅니다. 표국주에게 들은 바로는 매년 150명에서 200명가량의 아이들이 입관한다고 합니다. 그중 몇 명이 수료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궁금하시면 표국주를 불러 물어보시겠습니까?”

“······.”


티엔 이가 사조직을 운영한 것은 회고록을 통해 알고 있었다. 하나 어디에도 기록이 없어서 의아해하던 중이었다.


‘그래서 산시성을 먼저 방문하라고 했던 거구나.’


티엔 이는 단순히 재력을 물려주려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가졌던 힘을 주려고 했던 것이다. 진상은 돈과 무력은 물론이고 명나라 정·재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조직력을 갖추고 있었다.


아무리 티엔 이가 황제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는다고 해도 혼자 힘으로 이 거대한 나라를 운영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대외적으로 티엔 이는 어떤 파당에도 속하지 않았고 재산도 없었으며 사병도 운영하지 않았다.


그것은 역사에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는 티엔 이의 결단이었고 정적들로 하여금 그를 과소평가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대단하구나. 티엔 이.’


하림은 다시 한번 감탄을 금치 못했다.


* * *


하림은 왕수인이 마련해 준 저택에서 하루를 쉬고 다음 날, 상방의 주요 인사들을 소집하여 상견례를 했다.


진상은 오늘날의 거대 그룹과 유사한 형태를 보였다. 차이가 있다면 본사 없이 계열사 간의 연합체 성격을 띤다는 점이었다.


진상은 대표 사업인 표호를 비롯하여 총 22개 업종으로 나뉘어 개별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요즘으로 치면 22개의 계열사로 이루어진 셈이었다.


각 사업을 대표하는 상방의 주인들이 하림을 보기 위해 앞다퉈 모여들었다. 그동안 서류상으로만 존재했던 산주를 실제로 볼 수 있는 기회였으니 놓칠 수 없었다.


하림이 대청에 나타나자 상방주들이 일제히 일어나 예를 표했다.


“모두 앉으세요.”


이 자리에 참석한 상방주들 중에 티엔 이의 얼굴을 본 원년 멤버는 극소수에 불과했고 대부분이 세대교체를 이룬 상태였다.


“초대 산주이신 운범 사부님을 이어 막중한 책임을 맡게 된 장하림이라고 합니다.”


하림은 공식적으로 티엔 이를 사부로 공표하여 모두에게 정통성을 인정받으려고 했다. 왕수인을 통해 하림이 비밀암호를 풀었다는 사실은 모두에게 전해졌다. 서류상으로 진상의 총수가 됐음은 의심할 바 없다. 하나 하림은 더 많은 것을 원했다.


“여러분 모두는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이 자리에 오셨을 겁니다. 먼저 여러분의 우려를 불식시켜드리겠습니다. 저는 초대 산주님이 그러했듯, 경영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림의 말에 상방주들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30년 만에 갑자기 나타나서 콩 놔라 대추 놔라, 참견하면 그것도 꼴불견이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해 오던 대로 상방을 운영하시면 됩니다. 그럼, 다음으로 여러분의 기대를 충족시켜드리겠습니다. 3년에 한 번씩 경영 실적을 판단하여 최고의 실적을 올린 상방주에게는 보상으로 제가 가진 지분의 일부를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막연하게 느껴지실 것 같아서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하겠습니다. 최고의 실적을 올린 상방주에게 제 지분의 3푼(分: 3%)을 보상으로 드릴 생각입니다.”


하림의 말에 장내가 소란스러워졌다. 고작 3%라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니었다. 미국 구글이나 애플사의 주식을 3% 양도한다고 하면 적다고 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


진상의 상방주들도 마찬가지였다. 하림이 경영일선에 나서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짧게는 6년, 길게는 9년 정도면 진상의 지배구조가 바뀔 수 있는 파격적인 포상이었다.


“산주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중년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왕수인이 귓속말로 그의 신분을 알려줬다. 중년 사내의 이름은 뇌이문으로 전국에 안료를 유통하는 일승 상방의 상방주라고 했다.


“말씀하세요.”

“실적에 따라 순위를 매기신다고 하셨는데 그 기준을 알고 싶습니다. 단순히 매출액이나 순이익으로 평가를 한다면 해보나 마나 매번 표호가 뽑힐 것입니다.”


대다수의 상방주들이 그의 말에 동의했다. 규모나 매출만 놓고 따졌을 때 현재 진상에서 표호를 따를 상방이 없었다.


“뇌 방주님이 뭘 걱정하는지 압니다. 우리 진상에는 총 22개의 상방이 존재합니다. 상방마다 업종과 규모가 다르므로 일률적인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해서 3년 치 매출과 이익의 평균을 내서 첫 연도에 비해 몇 할이나 증가했는지로 평가할 생각입니다.”


매출이 아닌 매출 증가율로 순위를 따지겠다는 얘기였다. 그리되면 규모와 상관없이 공정하게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참으로 현명하신 판단이십니다. 소인 뇌 모는 산주님의 결정을 적극 지지하는 바입니다.”


뇌이문이 자리에 앉자 다른 상방주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하림은 어떤 질문도 소홀히 하지 않고 성실하게 답을 줬다. 그의 예의 바르고 합리적인 답변에 하림에 대한 호감이 대폭 높아졌다.


2대 산주 취임식을 겸한 상견례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끝이 났다. 이어진 만찬에서도 하림이 보여 준 언행은 단연 돋보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고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해박한 지식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나이가 많은 상방주들은 마치 왕년의 운범 산주를 보는 것 같다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진중 표국의 국주인 원광중이 왕수인에게 다가와 은근한 소리로 말했다.


“자네 기별을 받고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네. 운범 산주의 제자라니? 그분이 어디 제자를 키울 성정이셨는가?”

“저도 조금 의외였습니다. 하나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였습니다. 30년이면 사람의 성정도 바뀔 수 있는 세월이지요.”

“그나저나 닮았어. 그것도 아주 많이.”

“이제는 믿으신다는 말로 들립니다.”

“믿다 뿐인가? 저리 쏙 빼닮았는데 어찌 의심하겠는가?”


외모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고방식이나 태도가 젊은 날의 운범을 보는 듯했다. 각 시대의 사람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적 특징과 가치관을 갖는다. 같은 시대에 태어나고 자란 하림과 티엔 이가 비슷한 특징을 보이는 것은 당연했다.


“산주께서 진무관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조만간에 원 국주님을 찾으실 것 같습니다.”

“······.”


왕수인의 말에 원광중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지금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혔으나 원광중 역시 진무관을 수료한 인물이었다. 진무관 시절, 원광중은 운범의 명으로 몇 차례 비밀임무를 수행한 적이 있었다.


‘허허, 운범 산주. 그때 우리와 한 약속을 저버릴 생각이시오?’


원광중이 마지막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왔을 때 운범은 다시는 진무관과 진상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한데 세월이 흘러 그의 제자가 나타나서 제일 먼저 진무관에 대해 물었다고 한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원광중이 모를 리 없었다.


원광중은 진상이 다시금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것은 아닌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 * *


밤늦게 처소로 돌아온 하림을 미츠키가 심각한 얼굴로 맞았다. 방안에는 미츠키 외에도 이대승과 석문 등 석가촌의 병사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 중에는 석가촌에 남겨뒀던 진명위와 사우택의 모습도 보였다.


하림이 방으로 들어서자 갑자기 사우택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중간에서 석문이 그를 제지해서 망정이지 하마터면 험한 꼴을 당할뻔했다.


하림이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있을 때 석문이 자초지종을 밝혔다.


“뭐요? 어떻게 그런 일이!”


사람 목숨을 우습게 알아도 유분수지 60명이 넘는 촌민을, 그것도 여자와 아이를 가리지 않고 모두 죽였다고 한다.


하림은 분노로 치를 떨었다. 그리고 그 순간, 오랫동안 고민했던 문제에 마침표를 찍었다. 티엔 이의 바람대로 장거정을 숙청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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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45 [탈퇴계정]
    작성일
    23.01.30 13:47
    No. 1

    역시... 중국 ㅋㅋ
    물론 조선이라고 뭐 좋은 건 없다만...
    장거정이 티앤 이에게 뭘 배웠겠음?
    살해 = 정치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 수어재
    작성일
    23.01.30 13:58
    No. 2

    맞습니다. 조선이나 명이나 오십보백보이겠으나 명은 인구가 많은 만큼 음모의 스케일도 크겠죠. ㅡㅡㅋ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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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제16장 석가촌 학살 23.01.26 561 1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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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제12장 세상 밖으로 23.01.22 728 16 12쪽
11 제11장 일기의 정체는 회고록이었다 +7 23.01.20 782 18 11쪽
10 제10장 일그러진 개혁가 +2 23.01.20 784 17 11쪽
9 제9장 명나라 역사를 공부하다 23.01.19 847 20 12쪽
8 제8장 약초꾼 오철산을 죽이다 23.01.18 928 20 12쪽
7 제7장 티엔 이의 일기 +4 23.01.17 959 23 12쪽
6 제6장 티엔 이의 흔적을 발견하다 23.01.16 1,045 23 11쪽
5 제5장 A.D 1580년 +6 23.01.16 1,084 2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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