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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재 님의 서재입니다.

대한조명기(大韓朝明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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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재
작품등록일 :
2023.01.13 03:25
최근연재일 :
2023.02.08 15:45
연재수 :
33 회
조회수 :
20,355
추천수 :
443
글자수 :
176,916

작성
23.01.26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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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제16장 석가촌 학살

DUMMY

북경 장부(張府: 장거정의 사택) 태악당(太岳堂).


몸이 안 좋아서 일찍 퇴청한 장거정에게 창두(蒼頭: 노복) 유칠이 다가와 서찰을 건넸다.


“웬 서찰이냐?”

“상산 석가촌의 석문이란 자가 보낸 것이온데 대인의 사제를 칭하는 자가 지니고 있었다고 합니다.”

“사제?”


장거정이 코웃음을 치고 서신을 펼쳤다. 그에게 스승은 한 분뿐이었고 그가 다른 제자를 거뒀다는 소리는 금시초문이었다.


첫 문장을 읽기도 전에 장거정의 안색이 돌변했다.


‘대사부?’


어찌 이 악필을 못 알아보겠는가? 장거정의 스승이었던 운범 도사는 천하에 다시 없을 악필이었다.


‘대체 어디서 뭘 하시다가 이제 기별을 주시는 겁니까?’


3년 전에 갑자기 사라진 후로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 사람을 풀어 팔방으로 찾아봤으나 소용없었다.


반가움에 정신없이 서신을 읽어 내려가던 장거정이 얼굴을 찡그렸다.


“허허, 양자라. 또 뭘 꾸미시는 겁니까? 유칠!”

“예, 대인.”

“서찰을 가져온 자를 데려오너라.”

“예.”


잠시 후, 사우택이 장거정 앞에 나아와 땅에 머리가 닿도록 절을 했다.


“이 서찰의 주인은 지금 어디 있느냐?”

“상산 석가촌이란 곳에 잡아두었습니다.”

“잡아뒀다고? 왜?”

“저는 그저 전령인지라 자세한 내막은 모르옵니다.”


사우택은 어려서부터 전쟁터를 전전하며 전령 노릇을 했다. 패전 소식을 전할 때면 죄도 없이 목이 잘리는 전령이 수두룩했다. 그때 배운 것이 있다면 패전 소식은 절대 전하지 말 것이며 아는 것도 모르는 척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흠, 알겠다. 물러가거라.”

“천세! 천세!”


사우택이 물러가자 장거정이 유칠에게 명을 내렸다.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석가촌에 가서 장하림이란 자를 데려와라. 그리고 석가촌에 있는 것들은 개 한 마리 남기지 말고 모두 죽여라.”

“예, 대인.”


하림의 추측대로 장거정은 하림의 존재를 아는 자들을 모두 죽이려고 했다. 하림의 존재가 태감(太監: 환관의 우두머리) 풍보의 귀에 들어가면 좋을 게 없었다.


대외적으로 장거정과 풍보는 협력관계로 알려져 있다. 하나 두 사람 사이에는 남들이 모르는 미묘한 갈등이 존재했다. 그리고 둘 사이에 갈등을 조장한 사람이 바로 티엔 이였다.


* * *


이튿날, 유칠은 마병(馬兵: 기병) 오백 기를 이끌고 역참에서 말을 갈아타며 쉬지 않고 달렸다. 길 안내를 하는 사우택도 군대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었으나 유칠이 대동한 마병들 앞에서는 오금이 저릴 지경이었다.


‘장부(張府)의 사병이 금의위 못지않다고 하더니 사실이었구나. 대체 뭘 처먹고 살아야 저렇게 흉흉한 기운을 풍길 수 있는 걸까? 거참.’


옆에서 보고만 있어도 부르르 치가 떨렸다.


그들이 석가촌에 당도한 시각은 정오가 가까울 무렵이었다. 마을에 들어선 유칠이 주위를 돌아보고 얼굴을 찡그렸다.


유령마을처럼 마을이 텅 비어 있었다. 다급하게 떠난 것처럼 미처 가져가지 못한 가재도구가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유칠이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그게······저도 잘······.”


그때 늙은 병사 하나가 그들을 발견하고 허겁지겁 달려왔다.


“우택아, 지금 오는 거냐?”

“명위 형님, 다른 사람들은 어디 간 거요?”

“그것보다 장 공자께서 태악 대인께 전하라는 서신이 있었다.”


진명위가 유칠에게 나아가 군례를 올리고 하림의 서신을 전했다.


“장 공자께서 급한 용무가 있으셔서 지금은 함께 가지 못하고 한 달 뒤에 직접 태악 대인을 찾아뵙는다고 하셨습니다.”

“네가 말한 장 공자가 장하림이란 자였더냐?”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저는 그냥 서신만 전하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진명위도 산전수전 다 겪은 몸이라 눈치가 보통이 아니었다. 괜히 돈푼이라도 얻을 생각에, 있는 얘기 없는 얘기 주절거렸다가는 목이 날아갈 수도 있었다.


유칠은 뜻밖의 상황에 어찌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이거야 원. 대인께서 내린 명을 모두 거스르게 생겼구나.’


장하림이란 자는 차치하고라도 석가촌의 촌민을 죽이라는 명도 수행할 수 없게 됐다. 진명위와 사우택이 있었으나 촌민 대부분이 도망간 상황에서 둘을 죽여봐야 의미가 없었다.


유칠이 진명위에게 물었다.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어디로 간 것이냐?”

“그것이 장 공자께서 도움이 필요하시다며 모두 데려가셨습니다.”

“도움? 무슨 도움?”

“그건 저도 모릅니다. 지체 높은 분들이 저같이 미천한 놈에게 사정 얘기를 해주실 리가 만무하지 않겠습니까?”


옆에서 지켜보던 사우택이 속으로 ‘역시 진 형님이다’라며 감탄했다. 저렇게 능청스럽게 잡아떼면 누구든지 다시 한번 생각하기 마련이다.


“유칠,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마병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유칠에게 말했다. 그의 표정을 보니 피를 보고 싶어서 손이 근질근질한 것 같았다.


“돌아간다.”

“쳇.”


유칠 일행이 떠나고 둘만 남게 되자 진명위가 사우택에게 귓속말을 했다.


“그게 정말이우?”

“쉿, 조용히 하고 따라와.”


진명위를 따라갔더니 그곳에 말 두 마리가 있었다. 진명위와 사우택은 한 마리씩 골라 타고 마을 뒤로 난 좁은 길을 따라 달렸다.


* * *


한 시진(時辰: 약 2시간)을 달려 태황산 초입에 도착한 진명위와 사우택은 그곳에 모여 있는 마을 주민들을 발견하고 반색했다.


“석 대형은 어디 가셨소?”


사우택이 진명위에게 물었다. 석문과 사내들 몇이 보이지 않았다.


“장 공자를 모시고 평요현으로 가셨다. 촌민들은 이곳에 피신해 있으라고 하셨고.”

“역시 대형이시우.”


장거정이 단순히 하림을 데려갈 목적이었다면 그리 많은 사병을 동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우택은 석문의 선견지명(先見之明: 앞을 내다보는 지혜)에 매우 흡족해하며 사람들과 어울렸다.


하지만 사우택의 생각만큼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말처럼 사람들의 예상을 벗어나는 자들이 있었다. 유칠도 그중 하나였다.


히이잉.


갑자기 말발굽 소리와 말 울음소리가 사방에 진동하더니 다수의 마병이 나타나 그들을 포위했다.


“형님, 이게 어떻게 된 일이우?”

“우리가 속은 것 같다.”

“이런 제길!”


마병과 함께 나타난 유칠이 말을 몰아 앞으로 나왔다.


“장하림이란 자는 앞으로 나서라!”

“······.”


마을 사람들이 침묵하자 유칠이 사우택에게 말했다.


“우리에게 협조한다면 너와 네 가족은 살려주겠다. 저들 중에 장하림이 있느냐?”

“······없습니다. 장 공자는 산시성 평요현으로 가셨습니다.”

“평요현? 거긴 왜?”

“그건 저희도 모릅니다. 정말입니다!”

“사실입니다. 산시성에 볼일이 있으시다면서 군사 몇을 빌려 가셨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그게 다입니다.”


진명위까지 나서서 해명했다. 이렇게 된 마당에 굳이 하림을 옹호할 생각이 없었다.


유칠이 피식 웃고는 진명위를 향해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진명위가 사우택을 돌아보며 떨어지지 않는 발을 간신히 떼어 유칠에게 걸어갔다.


유칠은 말안장에서 붓과 먹통을 꺼내 들고 대뜸 장하림의 인상착의를 말하라고 했다. 진명위가 기억나는 대로 알려주자 즉석에서 쓱쓱 장하림의 초상을 그리기 시작했다.


힐끔 그림을 쳐다본 진명위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어찌 말만 듣고 저리 정확하게 그려낼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유칠이 완성된 그림을 진명위와 사람들에게 보이며 말했다.


“어떻게 비슷한가?”


하림을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 연방 고개를 끄덕였다. 유칠은 그제야 만족한 듯 얼굴을 풀고 말에 올랐다.


유칠이 천천히 말을 몰아 마병 대장의 곁을 지나며 말했다.


“위천, 내 볼일은 끝났네. 마음껏 즐기게.”

“으하하하!”


마병 대장 하위천이 미친 듯이 웃어 재끼고는 검을 뽑아 주민들을 가리켰다.


“전부 죽여라!”


하위천의 명이 떨어지자 주민들을 포위하고 있던 마병들이 일제히 말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마병들의 힘찬 함성과 병장기 소리가 지축을 뒤흔드는 듯했다.


“으아아악!”


장거정의 사병들은 여자와 아이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죽였다. 석가촌의 병사들이 장창을 들고 대항해 보지만 수가 너무 적었다.


사우택이 죽은 아들을 안고 울부짖을 때 진명위가 달려와서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우택아, 가자.”

“싫소. 형님이나 가시우.”

“이놈아, 대형께 이곳 소식을 알려야 할 것 아니냐?”


진명위의 말에 사우택이 울음을 뚝 그치고 일어났다.


‘이게 다, 장 공자 그놈 때문이야. 그놈만 아니었으면 이런 사달이 나지 않았을 거야.’


사우택이 죽은 아내와 아들을 내려다보며 이를 갈았다.


“형님 갑시다! 내가 시간을 끌어볼 테니 형님은 말을 구해 오시오.”

“알겠네.”

“이놈들! 내 이름은 상산의 사우택이다! 죽기 전에 내 이름 석 자나 알아 두거라!”


사우택이 자신의 애창을 들고 달려오는 군마를 향해 쇄도했다. 말과 충돌하기 직전, 사우택이 자세를 낮추고 제자리에서 빙글 돌면서 창대로 말의 다리를 강타했다.


히이잉!


창대에 맞은 말이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말에 타고 있던 마병이 바닥을 굴렀다. 사우택이 분을 토하고 달려가서는 막 몸을 일으키려는 마병의 목에 창날을 쑤셔 넣었다.


“컥!”


그 광경을 목격한 마병들이 고함을 치며 떼로 몰려왔다. 그때 말을 타고 나타난 진명위가 그를 낚아채 뒤에 태우고 그대로 달아났다.


* * *


그 시각, 하림과 석문 등은 상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꿈에도 모른 채 산서성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석문과 그의 수하들이 호위를 맡으면서 검문을 수월하게 통과할 수 있었다. 이대승은 첫날밤에 소박맞은 여자처럼 처량한 얼굴을 하고 뒤를 따랐다.


“장 공자, 저곳이 평요성입니다.”

“아!”


높이 12m의 웅장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고대도시가 일행을 맞았다. 평요현의 고대도시는 한(漢)나라의 전통 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어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도 등재됐다.


“굉장하구나.”


평요현은 명나라 북부의 중심 상업 도시였다. 이제는 표호(票號)의 본점까지 입점하여 국내뿐 아니라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상업과 금융의 메카로 자리 잡았다. 실제로도 명•청 시기에 민가가 4천여 가구가 넘었을 정도로 상업이 융성한 도시였다.


평요성에는 총 6개의 성문이 있었는데 성내로 들어가려는 상인과 행인들로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차례를 기다렸다간 몇 시간을 대기해도 부족할 것 같았다.


수문장에게 뇌물을 주려고 갔던 석문이 얼굴이 뻘게져서 돌아왔다.


“망할 놈들이 은자 한 냥을 내놓으라고 합니다. 날강도 같은 놈들!”


하림이 씩 웃으며 은자를 내주었다.


“장 공자, 어찌 이리 큰돈을 가치 없이 쓰시려 합니까? 기다렸다가 차례가 되면 가시지요.”

“돈의 가치는 사람에 따라 다른 것입니다. 내게는 시간이 돈보다 중요합니다.”

“······.”


말은 그럴싸했으나 실상은 기다리기 지겨워서 내뱉은 말이었다. 명분과 체면을 중시하는 이 시대에는 어느 정도의 겉치레와 가식이 필요했다.


티엔 이도 회고록을 통해 그와 같은 내용을 강조하였다.


-사소한 언행에도 명분이 있어야 한다. 위선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두 번, 세 번 생각한 후에 행동하도록 해.


이 시대는 솔직담백한 성격보다 위선자가 군자 소리를 들었다. 하림도 처음에는 남의 옷을 입은 것처럼 거북하게 느껴졌지만, 몇 번 해보니 이처럼 좋은 방패막이가 없었다. 뭔 짓을 해도 이유만 잘 갖다 붙이면 행실이 점잖다는 소리를 들었으니 말이다.


일행은 급행료를 주고 빠르게 검문을 마친 후에 성문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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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제17장 아파비사(阿波菲斯)의 비밀암호 +2 23.01.27 522 11 11쪽
» 제16장 석가촌 학살 23.01.26 561 14 12쪽
15 제15장 석문을 거두다 23.01.25 590 13 13쪽
14 제14장 상산 석가촌 +2 23.01.24 635 16 12쪽
13 제13장 조선 갑사 이대승 +1 23.01.23 739 16 12쪽
12 제12장 세상 밖으로 23.01.22 727 16 12쪽
11 제11장 일기의 정체는 회고록이었다 +7 23.01.20 782 18 11쪽
10 제10장 일그러진 개혁가 +2 23.01.20 784 17 11쪽
9 제9장 명나라 역사를 공부하다 23.01.19 846 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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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제6장 티엔 이의 흔적을 발견하다 23.01.16 1,045 2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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