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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재 님의 서재입니다.

대한조명기(大韓朝明記)

웹소설 > 작가연재 > 대체역사

수어재
작품등록일 :
2023.01.13 03:25
최근연재일 :
2023.02.08 15:45
연재수 :
3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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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64
추천수 :
443
글자수 :
176,916

작성
23.01.20 06:00
조회
784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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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제10장 일그러진 개혁가

DUMMY

-혼자만 미래를 아는 것이 이처럼 외롭고 지치는 일일 줄은 미처 몰랐다. 하지만 그들이 야속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됐다. 처지가 바뀌었으면 나도 저들과 똑같이 행동했을 테니까. 어쨌든 혼란한 정국을 수습해야 했다. 난 저들과 야합하는 대신 내가 가진 힘을 보여주기로 했다.


티엔 이가 택한 방법은 하림의 예상을 완전히 뛰어넘었다. 그가 한 일이라곤 황궁에 거대한 제단을 쌓고 제사를 지낸 것이었다.


-한 100일 정도 제사를 지내야 모양새가 나겠으나 그럴 시간이 없었다. 나는 나를 의심하는 황제와 중신들을 향해 열흘간 천지신명께 내 죄를 묻겠다고 공표하고 제사를 지냈다. 열흘째 되던 날, 전국에서 괴이한 일들이 동시다발로 일어났다. 나를 탄핵했던 자들이 한날한시에 급살을 맞아 죽었던 것이다.


하림이 헛웃음을 삼켰다.


“뭐냐? 진짜 도사라도 됐던 거야?”


그럴 리가 없다. 우주비행사가 미신이라니,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었다.


-하림, 일이 잘 안 풀리거나 길이 막혔다고 느껴지거든 눈높이를 낮춰서 생각해라.

‘눈높이를 낮추라고?’


갑자기 무슨 선문답인가 했더니 다음 장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하림이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사기꾼 자식.”


티엔 이가 해결책으로 내놓은 방법은 암살이었다. 자객을 보내 한날한시에 상소문을 올린 자들을 암살했다. 물론 사고사로 위장해서 말이다. 그래 놓고 정작 본인은 태연하게 제사를 지냈다.


인간은 일상 경험이나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신과 연결 짓는 습성이 있다. 일식을 보고 하늘이 노했다고 생각하는 이 시대에는 그런 경향이 더욱 강했다.


티엔 이의 사기극은 효과 만점이었다. 황제를 비롯해서 그를 의심했던 중신들까지 벌벌 떨며 티엔 이의 눈치를 봤다. 개중에는 의혹을 품은 자도 있었으나 전말을 밝히기에는 늦은 감이 있었다. 그의 사기극을 증명해 줄 증인들이 모두 죽었기 때문이다.


-그 일이 있고 더는 나를 대적하는 자를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그 기세를 몰아 주환, 유대유, 척계광, 육병, 이성량 등을 중용하여 강병 양성에 주력했고 오래지 않아 힘으로 외세의 침략을 물리칠 수 있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하림은 티엔의 지략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주환, 유대유, 척계광 등은 명에 다시 없을 충신들이었다. 실제 역사에서는 간신들의 모략으로 큰 공을 세우고도 좌천을 당하거나 평생 변방을 전전하다가 생을 마감한 인물들이었다.


주환 같은 경우는 명을 침략한 왜구 96명을 죽이고도 누명을 쓰고 옥에 갇혔다. 그의 죄명은 살인이었다. 선량한 왜인을 죽여 왜를 자극했다는 것이 그의 죄목이었다.


상을 주진 못할망정 영토를 침입한 왜적을 죽였다고 살인마로 누명을 씌우다니, 어처구니가 없는 사건이었다. 이는 가정제 시절, 명의 정치가 얼마나 썩었는지 보여주는 사례였다.


-정확히 3년 뒤, 무로마치 막부는 나와의 협약을 깨고 왜구들이 명을 약탈하는 것을 방관했다. 정확히는 그들을 통제할 수 있는 여력이 없었다. 당시는 오다 노부나가가 발호하여 무로마치 막부를 축출하기 직전이었으니까. 나는 오히려 기뻤다. 나의 개혁이 얼마나 진척됐는지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나는 유대유, 주환, 척계광을 왜구가 자주 출몰하는 장쑤성, 푸젠성, 광둥성 등에 파견했고 이어 연일 승전보가 올라왔다. 그리고 그 시기에 내 정치 인생의 조력자를 얻었다.

‘인생의 조력자?’


단순히 동료를 얻은 거라면 저리 거창하게 표현하지 않았을 것이다. 의심 많은 티엔 이가 저리 말할 정도라면 보통 인물이 아닐 것 같았다.


궁금한 마음에 빠르게 다음 장을 넘겼다.


“엥? 무슨 생각인 거냐?”


조력자의 정체를 알게 된 하림이 헛웃음을 쳤다. 티엔 이가 인생의 조력자라고 말한 자가 그 유명한 간신 엄숭이었기 때문이다.


엄숭은 환관 위충현과 더불어 명나라를 대표하는 간신이었다. 그런 자를 곁에 두는 것도 부족해서 인생의 조력자라니, 하림은 티엔 이의 속내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엄숭, 그자의 임기응변이 얼마나 뛰어난지 두 번이나 내 손을 피해 달아났을 뿐 아니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방에서 때를 기다리며 와신상담(臥薪嘗膽: 복수를 위해 괴로움을 참고 견딤)하는 집요함을 보였다.


티엔 이가 누군가에게 감탄을 표한 것은 처음이었다. 엄숭이란 자가 그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었던가? 하긴 간신도 아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하루는 절강에서 유대유가 왜선 50척을 불태웠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같은 날 절강성 안찰사의 장계도 도착했는데 내용을 보니 유대유를 모함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유대유가 일을 그르쳤다는 증거를 어찌나 조목조목 열거했는지 순간적으로 진짜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하면 금방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당시 절강성 안찰사는 그 정도로 철두철미한 자가 아니었다. 난 즉시 금의위를 파견하여 안찰사를 잡아들였고 그의 배후에 엄숭이 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티엔 이는 거짓 장계를 받고 분노하기보단 기뻐하는 눈치였다. 그의 마음을 흔들 정도로 엄숭의 학문이 대단하다는 증거였다. 그런 자가 희대의 간신이 될 수밖에 없었던 명나라의 현실이 안타까웠다.


-엄숭을 잡아 심문했더니 내가 아끼는 장수들을 모함하여 내 기세를 꺾고 흩어진 재야인사들을 끌어모을 작정이었다고 하였다. 사실 난 그의 장계에 큰 감명을 받은 상태였다. 그의 장계가 내가 아니라 황제의 손에 들어갔다면 유대유는 처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나는 엄숭이 명의 3대 간웅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에게 호감을 느끼게 됐다. 난 그를 옥에 가두고 어찌 처리할까 고심했다. 그냥 죽이기에는 그의 재주가 너무 아까웠다. 그러던 중에 그로부터 옥중서신을 받았다. 그가 내게 올린 청사(靑詞)를 보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청사는 도교에서 제사를 지낼 때 올리는 글이었다.


-엄승은 내가 도사인 줄 알고 내게 청사를 지어 바쳤다. 그 내용이 얼마나 심금을 울렸던지 잠깐이지만 내가 진짜 도사가 된 줄 알았다. 나는 그를 방면하고 내각 수보에 앉혔다. 대신 그의 수족 노릇을 했던 자들은 모두 숙청하여 그의 손발을 잘라놓고 정사에만 집중하게 했다. 하나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또 옛 버릇이 나오려고 해서 놈의 큰아들을 잡아다 금의위 조옥에 가뒀다. 허튼짓을 할 때마다 아들놈의 사지를 하나씩 떼어 낸다고 했더니 그제야 고분고분 말을 들었다.


티엔 이는 엄숭을 옴짝달싹 못 하게 옭아매고 그의 능력만 빼먹으려고 했다. 그리고 그게 실제로 먹힌 것 같았다. 제아무리 엄숭이라고 해도 아들이 인질로 잡혀있는데 딴생각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주 고기가 물을 만났구나.”


미래에서는 인권 문제로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또한, 이 시대에서는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반대파를 저런 식으로 기용하지 않았다. 오직 티엔 이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티엔 이가 채찍만 때린 것은 아니었다. 공을 세우면 그의 위신을 세워주는 한편, 큰 재물을 내려 회유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림은 티엔 이의 지략에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려를 금치 못했다. 아무리 엄숭의 능력이 탐난다고 해도 아들을 인질로 잡고 협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티엔 이는 명을 개혁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식의 개혁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는 개혁은 사상누각(沙上樓閣: 기초가 약해 오래 버티지 못함)에 불과할 뿐이었다.


* * *


하림과 미츠키는 저녁 식사만큼은 꼭 함께했다. 매일같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티엔 이를 칭찬하던 하림이 오늘은 웬일로 잠잠했다.


하림이 밥을 깨작거리다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왜? 입맛이 없어?”

“조금.”

“티엔 이에게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긴거야?”

“그래봤자 죽은 사람인데 뭐.”

“하긴.”

“중국어 공부는 잘 돼가? 내일부터는 나랑 회화도 해보자.”

“응. 우리말이야······이곳에서 안전하게 살 수 있을까?”

“······.”


하림도 자신할 수 없었다. 미래를 안다고 해서 모두가 티엔 이처럼 행동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림, 우리 그냥 유럽 가서 살까? 적어도 유럽은 최소한의 인권은 보장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 16세기 유럽은 정복 전쟁이 최고조에 달해 있어.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식민지를 개척하고 본격적으로 흑인 노예들이 유입되던 시기라고. 그들의 눈에는 황인종이라고 해서 흑인과 별반 다를 게 없어.”

“젠장, 세상이 너무 거지 같아.”

“너무 조급해하지 마. 여기서 철저하게 준비해 나가면 적응하는 데 큰 문제는 없을 거야.”

“그럴까? 백과사전을 필사하는 게 지겹다가도 막상 이곳을 떠날 생각을 하면 겁이 나.”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야. 지레 겁먹을 필요 없어. 필사하는 게 따분하면 다른 작업도 해보는 게 어때?”

“어떤?”

“라이플이나 권총 같은 무기를 설계해 보면 어떨까?”


무기라는 말에 미간을 찌푸렸던 미츠키가 금방 얼굴을 폈다.


“나보고 무기를 만들라고?”

“응, 이 시대에 용인될 만한 수준으로. 하지만 타국의 무기보다는 월등히 강해야겠지. 당장 만들라는 게 아니라 미리 개념 정도만 잡아놓으라는 거야. 너도 네 이름을 딴 무기를 만들고 싶다고 했잖아?”

“정복 전쟁 좋지!”

“뭐? 하하하.”


미츠키에 말에 하림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 미츠키는 박사학위를 3개나 갖고 있을 정도로 똑똑했지만, 세상 물정은 영 꽝이었다.


“미츠키, 지금도 중국은 대국이야. 명나라 때 인구가 이미 2억을 넘었다고. 2억을 상대로 우리 둘이서 정복 전쟁을 벌여서 뭘 어쩌자구?”

“그깟 2억쯤이야. 삼국지처럼 사람을 끌어모아서 훈련도 시키고 무장도 시켜서······.”


자기가 말하고도 이상했는지 미츠키가 혀를 내밀었다.


“때가 되면 전쟁을 해야 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은 우리의 생존이 먼저야.”

“동의! 좋아, 시간도 때울 겸 몇 개 구상해 볼게.”

“식량은 얼마나 남았어?”

“보름치 정도?”


우주 식량만 그렇다는 얘기였고 창고에 있는 육포와 곡물까지 합치면 몇 달은 충분히 버틸 수 있었다. 먼저 곰팡이부터 제거해야겠지만 말이다.


식사를 마치고 둘은 늦게까지 장기를 두며 놀았다. 둘의 실력이 막상막하여서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았다. 장난으로 시작한 놀이가 점점 진검승부처럼 변해갔다.


한 수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승리를 거머쥔 미츠키가 돌멩이로 만든 장기알을 쥐고 환호했다.


동굴에서 생활한 지도 벌써 열흘이 넘었다. 밀폐된 공간에서 오래 지내다 보면 정신 기능이 저하될 수 있었다.


하림은 정기적으로 미츠키와 장기나 체스를 두면서 그녀의 심리상태를 확인하는 한편, 매일 조금씩 중국어를 가르쳤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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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98 온조동
    작성일
    23.02.08 12:26
    No. 1

    인권이 없고 평범하게 살아야 하는 중국에서 고생하지 말고 일본 통해서 신대륙으로 가서 인디언 하고 어울려서 나라를 건설 하는게 좋지 않나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8 수어재
    작성일
    23.02.08 14:58
    No. 2

    신대륙 좋죠. 언젠가 꼭 한번 다뤄보고 싶은 배경이었습니다. 차기작에서.......^^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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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장 일그러진 개혁가 +2 23.01.20 785 1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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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제8장 약초꾼 오철산을 죽이다 23.01.18 928 20 12쪽
7 제7장 티엔 이의 일기 +4 23.01.17 959 23 12쪽
6 제6장 티엔 이의 흔적을 발견하다 23.01.16 1,045 23 11쪽
5 제5장 A.D 1580년 +6 23.01.16 1,084 2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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