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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재 님의 서재입니다.

대한조명기(大韓朝明記)

웹소설 > 작가연재 > 대체역사

수어재
작품등록일 :
2023.01.13 03:25
최근연재일 :
2023.02.08 15:45
연재수 :
3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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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4
추천수 :
443
글자수 :
176,916

작성
23.01.16 05:53
조회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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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글자
11쪽

제6장 티엔 이의 흔적을 발견하다

DUMMY

서로를 힐끔힐끔 쳐다보던 하림과 미츠키가 한순간 헛웃음을 흘렸다. 조상들이 싸웠다고 그들까지 날을 세울 필요는 없었다.


미츠키가 먼저 입을 열었다.


“뭔가 오해하고 있는 모양인데 난 지금의 일본은 관심 없어.”

“왜지?”

“남자 중심으로 돌아가는 일본 사회에서 내가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올라왔는지 알아? 그 노력과 시간을 백지로 돌리고 다시 남자들의 부속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죽으면 죽었지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거야.”

“······.”


하림 역시 조선을 도와 역사를 바꿔보겠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그럴 능력도 없었다. 그의 얄팍한 역사 지식과 우주항공 기술은 지금 시대에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하지만 미츠키는 달랐다. 그녀의 선택에 따라 많은 사람의 운명이 뒤바뀔 수 있었다.


“하지만 하림, 이건 알아둬. 아무리 미워도 저들은 내 조상이야. 만약 네가 조선을 도와 일본을 친다면 나도 일본을 도와 너와 맞설 거야.”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나도 전쟁이 임박한 땅에서는 살고 싶지 않으니까.”

“중국으로 가겠다는 거야?”

“응, 최소한 전쟁에 휘말릴 염려는 없잖아.”


그리고 중국에는 티엔 이가 있다. 그라면 하림이 중국에 정착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그것이 있었다.


티엔 이는 개인 태블릿에 백과사전과 역사서를 깔아놓고 스테가노그래피(Steganography)의 수법으로 지구방위군의 기밀을 빼돌렸다.


하림도 그가 중국 스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티엔 이는 하림에게만큼은 비밀이 없었다. 중국 당국에 가족이 협박받고 있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했다.


하림도 그를 탓할 생각은 없었다. 가족을 인질로 잡고 협박한다면 그 역시 같은 선택을 했을 테니까.


티엔 이가 빼돌린 기밀에는 관심 없다. 어차피 이 시대에는 쓸모없는 정보였다. 하림이 원하는 것은 그의 태블릿에 저장된 백과사전과 역사서였다. 아쉽게도 역사서는 중국의 것이었다.


하림이 중국으로 가려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미래를 알면 그만큼 생존율을 높일 수 있었다.


어차피 조선이나 중국이나 위험하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생존 가능성이 높은 곳을 택하는 것이 맞았다.


하림의 말에 미츠키가 상념에 잠겼다. 미츠키는 한참을 숙고한 끝에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나도 중국으로 가겠어. 나도 데려가 줄래?”

“네가 간다면 나도 환영이야. 그렇다고 너를 아내로 맞을 생각은 없으니까 엉뚱한 기대는 하지 말고.”

“웃기시네!”


미츠키가 어이없어하는 웃음을 피식 흘렸다. 하림도 흰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었다. 만약 그녀가 일본으로 가겠다고 했으면 크게 고민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친구를 잃지 않아서 기뻤다.


* * *


하림과 미츠키는 착륙 예정지를 정밀하게 관측한 후에 모월 모일, 새벽을 기해 착륙을 시도했다.


모두가 잠든 시간, 링산 상공에 작은 물체가 대기를 뚫고 나와 지상으로 낙하했다. 누가 봤다면 별똥별이 떨어지는 줄 알았을 것이다.


타이푼 1호 옆에 착륙한 하림과 미츠키는 나뭇가지를 끌어다가 선체를 덮었다. 위장 작업은 동이 트고도 한참이 지난 후에야 끝이 났다. 미사일 적재함의 암호는 새로 바꾸고 하림과 미츠키가 반씩 공유했다.


두 사람은 잠시 숨을 돌리고 타이푼 1호로 향했다. 타이푼 1호의 외관을 둘러본 하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츠키도 어이가 없다는 듯이 하림을 쳐다봤다.


“그냥 나뭇가지를 덮어 놓은 게 아니었어?”

“······.”


하림의 말에 미츠키가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잡목으로 덮어 놓은 줄 알았던 선체는 살아있는 덩굴이 새까맣게 뒤덮었고 오랜 세월 자란 듯한 이끼가 잔뜩 끼어 있었다.


하림과 미츠키는 출입구의 덩굴을 잘라내고 이음새에 붙어 있는 이끼를 긁어냈다. 잠시 후, 이끼가 걷히고 드러난 출입구의 모습은 두 사람을 더욱 당혹하게 만들었다. 출입문은 오랜 세월 풍상을 견뎌낸 듯 여기저기 녹슬고 때가 끼어 있었다.


하림과 미츠키는 극도로 말을 아꼈다. 입을 여는 순간 불길한 생각이 현실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선체 내부에서도 세월의 흔적이 목격됐다. 우주선의 시스템은 다운된 지 오래였고 메인 전력은 물론이고 보조 배터리까지 모두 방전된 상태였다. 위치 발신기는 외부 전력이 끊긴 채로 자체 배터리로 작동 중이었다.


“미츠키, 태블릿 PC가 있는지 찾아봐.”

“알겠어.”


미츠키가 선내를 뒤지는 동안 하림은 메인 컴퓨터의 저장 장치를 찾았다.


‘없다.’


저장 드라이브가 통째로 뜯겨 있었다. 미츠키도 소득이 없는지 하림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티엔 이, 어디에 있는 거야?’

“하림, 여기!”


미츠키가 뭘 찾았는지 다급하게 하림을 불렀다. 미츠키가 가리킨 곳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이건······좌표다!’

“미츠키!”

“알고 있어. 티엔 이가 남긴 것 같지?”

“틀림없어.”


어찌 몰라보겠는가. 티엔 이의 글씨체가 분명했다. 좌표를 적는 하림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하림과 미츠키는 어둠 속에서 광명을 찾은 사람처럼 환희에 차 있었다.


* * *


이튿날, 하림과 미츠키는 반나절 넘게 협곡을 헤맨 끝에 좌표지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림이 잡목과 수풀을 걷어내자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통로가 드러났다.


동굴은 인위적으로 만들었는지 네모반듯하였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공간이 넓어졌다. 통로가 끝나는 지점에 철문이 나타났다. 철문에는 티폰 프로젝트의 상징인 괴수의 모습이 양각돼 있었다.


잔뜩 녹이 슨 문은 미츠키까지 가세한 후에야 겨우 열렸다. 제일 먼저 거실로 보이는 널찍한 공간이 두 사람을 맞았다. 거실 안쪽으로 문짝이 없는 방 3개가 보였다.


한쪽 벽에 걸린 우주복을 보고 하림과 미츠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시대에 우주복이 있을 리 만무했다.


“티엔 이!”


하림이 반색을 하고 방을 뒤지고 다녔다. 그리고 결국 마지막 방에서 티엔 이를 찾을 수 있었다.


“티엔 이?”


티엔 이로 추측되는 백골이 돌침대에서 영면을 취하고 있었다. 물건을 한 아름 안고 들어오던 미츠키가 백골을 보고 놀라서 물건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하, 하림?”

“맞아. 티엔 이야. 이런 곳에서 자고 있었구나.”


백골은 하림과 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었고 가슴에 선명하게 ‘티엔 이’라는 이름이 수놓아져 있었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시신이 백골이 되려면 최소 6개월에서 수년이 걸린다. 게다가 이곳은 해발이 높아 평균 온도가 낮았다. 최근에 사망했다면 절대 저런 모습을 하고 있을 수 없었다.


하림이 돌침대 옆에 있는 책상으로 걸어갔다.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우주선에서 선반을 떼어와서 만든 것 같았다.


책상에는 두툼한 책자가 잔뜩 싸여있었다. 책자는 영어와 한자, 한글을 섞어 기록하여 오직 하림만 읽을 수 있었다.


하림이 표지에 ‘권수(卷首)’라고 적힌 책자를 집었다. 권수의 ‘수(首)’는 ‘머리 수’로 책의 수량이 아니라 첫째 권을 의미했다.


첫 장을 넘기자 다음과 같은 글귀가 보였다.


-나의 친구 장하림.


눈물이 앞을 가려 그 뒤를 읽을 수 없었다. 힘들게 친구를 찾아왔는데 저런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 견디기가 어려웠다.


“미츠키, 잠깐 바람 좀 쐬고 올게.”

“······.”


밖으로 나가려는 하림을 미츠키가 졸졸 따라왔다. 하림이 그녀를 돌아보자 미츠키가 겸연쩍은 듯 이마를 긁적거렸다.


“나, 나도 바람 좀 쐬고 싶어서.”

“······.”


바람은 무슨, 시체가 있는 곳에 혼자 있기 무서웠겠지. 그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하림이 고개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갔다.


하림과 미츠키는 절벽 끝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산 정상에서 세상을 일망(一望: 한눈에 바라봄)하면 호연지기(浩然之氣: 씩씩한 기상)가 생겨야 정상인데 호연지기는커녕, 산 아래에 펼쳐진 세상이 두렵기만 했다.


“하림, 이제 어떡하지?”


철석같이 믿었던 티엔 이가 저 지경으로 누워있으니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막막했다. 원점으로 되돌아온 기분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티엔 이라면 뭔가 도움이 될만한 걸 남겼을 거야.”

“미래를 안다고 달라지는 게 있을까?”

“······.”


하림도 묻고 싶었다. 미래에서 온 남녀가 이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티엔 이를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었다. 하나 그는 이미 고혼(孤魂:외로운 넋)이 된 지 오래였다.


인터넷 소설을 보면 과거에 떨어지자마자 한 지역을 접수하고 미래에 벌어질 일들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하며 승승장구한다. 현대에서는 멍청했던 인물이 갑자기 똑똑해져서 군중을 선동하고 기라성 같은 위인들을 수하로 거둔다.


그때는 어이가 없어서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하나 지금은 소설 속 이야기가 자신에게도 일어나길 간절히 바라본다.


* * *


다음날, 하림과 미츠키는 티엔 이를 양지바른 곳에 묻고 우주선에서 음식과 필요한 물건을 챙겨 동굴로 돌아왔다. 동굴에도 말린 고기와 곡물이 있었지만 오래 묵어서인지 곰팡이가 끼어 있었다.


하림과 미츠키는 팔을 걷어붙이고 동굴 안을 청소했다. 거미줄을 걷어내고 쌓인 먼지를 털어내자 그럭저럭 살만한 공간이 되었다.


난방이나 조명도 문제없었다. 창고로 쓰는 방에 품질 좋은 숯과 양초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하림과 미츠키는 알지 못했지만, 이 시대에 고급 숯과 양초의 가격이 상상을 초월했다.


내부 정리가 끝나고 둘은 각자 맡은 일에 열중했다. 하림은 티엔 이가 남긴 일기의 판독작업을 시작했고 미츠키는 티엔 이의 태블릿에서 찾은 메모리 카드를 복구하여 그 안에 저장된 백과사전을 옮겨적었다. 태블릿을 충전하기 위해 매번 수백 리 길을 왕복할 수는 없었으니까.


책상 앞에 앉은 하림이 심호흡을 하고 책장을 넘겼다.


-내 친구 장하림. 너를 못 본 지도 벌써 반세기가 넘었구나.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나는 북받쳐 오르는 흥분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하루하루가 얼마나 기대되고 기다려지는지 마치 소풍을 앞둔 아이와 같이 들떠 있었다.


티엔 이의 일기는 첫 장부터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타이푼 1호와 3호는 불과 몇 시간 차이로 전자기 폭풍을 통과했다. 그런데 50년이 지났다고?’


티엔 이의 말이 사실이라면 일행이 마주쳤던 전자기 폭풍은 단순한 전자기 폭풍이 아니라 시공간을 왜곡할 수 있는 웜홀이었다는 얘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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