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풀때기밭 곡식창고

종말 3부작

웹소설 > 일반연재 > SF, 일반소설

RALL
작품등록일 :
2012.11.19 03:14
최근연재일 :
2013.01.16 00:09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22,285
추천수 :
109
글자수 :
147,598

작성
13.01.15 01:29
조회
488
추천
5
글자
5쪽

<6> 하늘과 바다 - 6

소금 민들레



DUMMY

6.


인식 센서에 페르세포네를 댔다. 다른 곳보다 인식 시간이 길었다. 조마조마하게 기다리자 문이 열리며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보호복에 표시된 온도가 급격히 낮아졌다. 영하 20도에 이르는 한기였다. 헬멧의 표면에 성에가 끼고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돔 형태의 방이었다. 천장이 20미터는 돼 보였다. 내부 지름도 그와 유사한 크기였다. 방 한가운데에 네모난 기계가 오색의 빛을 깜박이며 가동 중이었다.

“저게 뭐야?”

“아마도 데메테르겠지.”

“데메-테-르?”

“데메테르.”

두 사람이 기계 가까이 다가갔다. 보호복이 금세 바닥과 들러붙어 어는 바람에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라우라가 페르세포네를 기계의 인식 장치에 가져다 댔다. 낭랑한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 명령을 확인하였습니다. ]

데메테르가 빠르게 명령을 수행했다. 하데스에게 떠나보낸 딸을 되찾은 기쁨을 노래했다.

[ 데메테르 시스템을 중단합니다. ]

[ 진행 중입니다. ]

오래 걸리리라 각오했으나, 불과 몇 초였다.

[ 완료했습니다. ]

[ 데메테르 시스템을 중단했습니다. ]

겨울이 끝나고 봄이 찾아왔다. 그리고 다른 색의 기계음이 나왔다.

[ 페르세포네 시스템을 가동합니다. ]

“뭐야, 끝이 아니었어?”

방의 한기가 사라지고 온도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컴퓨터는 멈추지 않고 더 빠르게 가동했다. 고운은 망연히 기다렸다. 정말로 끝인가? 뭔가가 더 남아있나? 이제 뭘 하면 되는가?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었다. 고운과 라우라는 서로의 몸을 기대고 경계했다. 이윽고 모습을 보인 것은 수십 대의 안드로이드였다. 고운은 없는 다리가 떨리는 기분이었다. 오금이 저렸다. 안드로이드가 고운과 라우라를 빙 둘러섰다.

라우라가 온몸으로 고운 앞을 가로막았다.

“고운 괴롭히지 마! 고운 착하단 말야!”

“라우라! 비켜!”

“싫어! 고운 죽이지 마. 죽이지 마!”

“이 바보!”

고운이 라우라를 끌어안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힘껏 안드로이드를 노려보았다. 안드로이드 한명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안드로이드는 고운과 라우라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고운과 시선을 마주했다. 안드로이드가 말했다.

“데메테르는 정지했습니다.”

“그럼……”

“데메테르의 명령 또한 사라졌습니다.”

안드로이드가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다른 안드로이드도 따라 했다.

“감사를 전합니다.”

“감사? 무슨 감사?”

“우리는 우리가 뜻하지 않는 명령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멈춰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한 게 아니야. 실제로 모든 건 허버트 박사님이 계획하고 만들었어.”

“당신이 그 일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이어 안드로이드는 라우라를 바라보았다.

“우리들의 아버지이신 로바테르 헤르베르트, 허버트 님께 대한 감사입니다. 그분의 따님이신 라우라 님께 대신합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허버트 님의 명으로 이곳에서 데메테르가 정지하기를 줄곧 기다렸습니다.”

라우라는 안드로이드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고운, 안드로이드야?”

“응. 박사님이 만든 안드로이드래.”

“아빠가?”

라우라가 방긋 웃으며 안드로이드에게 다가갔다.

“이름이 뭐야? 아빠가 이름 지어줬어?”

“박사님은 저를 라트리라고 불러주셨습니다.”

“라트-리? 라-트리?”

“라트리. 박사님께서는 어디 계십니까?”

침울해하는 라우라를 대신해 고운이 허버트의 죽음을 알렸다. 라트리와 안드로이드 무리는 가동을 정지한 것처럼 일제히 멈췄다. 숙연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고운은 그들이 울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눈물은 흘리지 않더라도 그들 나름대로 허버트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지 않을까 하고.

고인을 위한 짧은 애도의 시간이 지났다. 라트리는 다른 안드로이드를 시켜 고운을 일으켰다.

“부상이 심합니다. 곧 치료해 드리겠습니다.”

“부탁할게. 고마워.”

고운이 멋쩍게 인사했다. 라트리가 얼핏 웃어보였다. 라우라가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라트리- 있잖아, 우유니 못 봤어? 우유니 온다고 했는데. 라우라 우유니 좋아해. 우유니 보고 싶어. 해님 눈이야.”

“금방 데려오겠습니다.”

라트리가 입구를 향해 고갯짓을 하자, 몇 안드로이드가 밖으로 나갔다. 고운은 마음의 준비를 했다. 라우라가 받을 마음의 상처를 걱정했다.


방으로 당도한 우유니의 모습은 처참했다. 팔과 다리가 모두 떨어져 나갔고, 몸통도 거의 형체를 잃었다. 표면의 피부가 소실되어 기계 내부만 흉물스레 드러나 있었다. 우유니임을 알 수 있는 흔적은 빛을 잃은 금색의 안구뿐이었다.

라우라가 비명을 질렀다. 우유니의 잔재를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고운 역시 눈물을 참지 못했다. 수많은 안드로이드가 지켜보는 가운데 두 사람의 눈물이 바다처럼 흘러내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 작성자
    Personacon 지드
    작성일
    13.01.15 11:23
    No. 1

    아아아 저기에도 허버트가 남아있네요...
    우유니 어..어떻게 회생 못시켜요..? ㅠㅠ? 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RALL
    작성일
    13.01.16 00:26
    No. 2

    허버트의 마지막 속죄였죠...
    회로고 뭐고 다 망가져서 회생은 못 시킵니다. ㅠ_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1 MAXIM
    작성일
    13.01.15 15:50
    No. 3

    동화같은 이야기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RALL
    작성일
    13.01.16 00:26
    No. 4

    정말로 좋게만 끝날 수는 없겠지만, 어떤 희망의 이야기는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했습니다. ㅎㅎ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종말 3부작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종말 3부작>의 연재를 시작합니다. +7 12.11.10 997 1 -
31 에필로그 : 선물 +20 13.01.16 651 11 3쪽
30 <8> 소금 민들레 +2 13.01.16 574 4 10쪽
29 <7> 구원 13.01.16 406 2 1쪽
» <6> 하늘과 바다 - 6 +4 13.01.15 489 5 5쪽
27 <6> 하늘과 바다 - 5 +2 13.01.14 439 3 7쪽
26 <6> 하늘과 바다 - 4 +5 13.01.13 562 9 8쪽
25 <6> 하늘과 바다 - 3 +6 13.01.12 487 3 13쪽
24 <6> 하늘과 바다 - 2 +4 13.01.11 547 4 11쪽
23 <6> 하늘과 바다 - 1 +4 13.01.10 545 3 10쪽
22 <5> 하이퍼케인 - 9 +4 12.12.07 705 4 8쪽
21 <5> 하이퍼케인 - 8 +2 12.11.30 598 2 11쪽
20 <5> 하이퍼케인 - 7 +2 12.11.30 417 1 8쪽
19 <5> 하이퍼케인 - 6 +2 12.11.29 497 2 11쪽
18 <5> 하이퍼케인 - 4, 5 +4 12.11.27 559 1 15쪽
17 <5> 하이퍼케인 - 2, 3 +2 12.11.27 673 2 16쪽
16 <5> 하이퍼케인 - 1 +4 12.11.26 511 1 16쪽
15 <4> 마지막 날 - 5 +2 12.11.21 525 3 10쪽
14 <4> 마지막 날 - 4 +3 12.11.21 747 1 7쪽
13 <4> 마지막 날 - 3 +2 12.11.19 574 2 12쪽
12 <4> 마지막 날 - 2 +2 12.11.18 584 3 12쪽
11 <4> 마지막 날 - 1 12.11.17 622 2 13쪽
10 <3> 여덟째 날과 아홉째 날 - 4 12.11.16 701 2 14쪽
9 <3> 여덟째 날과 아홉째 날 - 3 +2 12.11.14 691 3 10쪽
8 <3> 여덟째 날과 아홉째 날 - 2 +2 12.11.14 807 3 9쪽
7 <3> 여덟째 날과 아홉째 날 - 1 +2 12.11.13 814 2 14쪽
6 <2> 여섯째 날과 일곱째 날 - 4 +3 12.11.13 757 4 9쪽
5 <2> 여섯째 날과 일곱째 날 - 3 +1 12.11.12 765 3 15쪽
4 <2> 여섯째 날과 일곱째 날 - 2 +5 12.11.11 886 3 18쪽
3 <2> 여섯째 날과 일곱째 날 - 1 12.11.10 1,144 4 1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