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풀때기밭 곡식창고

종말 3부작

웹소설 > 일반연재 > SF, 일반소설

RALL
작품등록일 :
2012.11.19 03:14
최근연재일 :
2013.01.16 00:09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22,287
추천수 :
109
글자수 :
147,598

작성
12.11.30 01:09
조회
417
추천
1
글자
8쪽

<5> 하이퍼케인 - 7

소금 민들레



DUMMY

7.


“고운 일어나- 일어나.”

라우라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고운이 잠에서 깨자 우유니가 마테차를 끓여주었다. 멍하니 받아 마셨다가 쓴맛에 정신이 들었다.

“잘 잤어? 머리 까치집-”

라우라가 여기저기 삐친 고운의 머리를 보고 깔깔 웃었다. 화들짝 거울을 보고 손 갈퀴로 머리를 쓸어내렸다. 시계를 보니 정오에 가까웠다. 세수를 하고 우유니가 준비한 식사를 했다.

“다른 사람들은?”

“식사 중이십니다. 아이작님이 고운님이 깨시면 뵙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아저씨가? 또 무슨 소릴 지껄이려고……”

“고운 찡글찡글-”

“안 찡그렸어. 그리고 여로문제는 나 혼자 결정할 문제가 아니야. 다른 사람들 의견을 듣고 조율해야겠지. 네 판단은 어떤데?”

“합리적으로 맞는 의견입니다. 이견은 없습니다.”

딱딱한 비스킷을 씹으면서 결정을 내렸다. 식사를 다 마쳐갈 즈음 기억을 끄집어내 물었다.

“그래서 데메테르의 관제기지로 가는 일이 얼마나 힘들지?”

“저도 직접 보지 않는 이상은 확실하게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관제기지 내 방범 시스템과 다른 안드로이드의 공격이 고려해야 할 사항입니다.”

“추격자와 정면으로 맞붙게 될 가능성이 큰 거군.”

“그렇습니다.”

승산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피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피할 가능성이 없는 일이었다. 싸움과 도피. 사람들이 어느 쪽을 선택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했다. 안드로이드 추격자에 대한 두려움을 꺾고 싸우자고 일어날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고운의 근심이 깊어졌다.

아이작이 의무실로 찾아왔다. 라우라는 가장 안쪽 침대의 커튼 뒤로 숨어버렸다. 아이작이 고운을 폭행한 일 이후 라우라는 아이작을 부쩍 두려워했다.

“일어났군.”

“식사는 하셨습니까?”

“그래. 할 말이 있다.”

고운이 힐끔 의무실 문 밖을 바라보았다. 아이작 혼자가 아니었다. 몇 사람이 문밖에서 보초를 섰다. 우유니가 아이작에게 마테차를 내주었다. 고운은 불편한 기분으로 아이작이 말하기를 기다렸다.

“단도직입으로 말하마.”

“그러십시오. 저도 빙 돌려 말하면 못 알아듣습니다.”

“박사님이 네게 뒷일을 맡기면서 안드로이드와 라우라를 맡긴 걸 안다. 숨길 생각 하지 말고 모두 털어놔라.”

고운은 어떻게 아느냐고 되물으려다 케인을 떠올렸다. 라우라와 우유니가 말하지는 않았을 테니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케인뿐 이었다. 고운은 치솟는 배신감에 몸을 떨었다. 어차피 공유할 정보였지만, 고운에게 일언반구 없이 아이작에게 털어놓았다는 데서 화가 났다. 고운의 조짐이 심상치 않자, 아이작은 큰 목소리로 기선을 제압했다.

“박사님이 네게 뒷일을 부탁했대도 네 뜻대로 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건 생존자 모두의 문제니까. 케인은 너와 달라서 사리분별을 확실히 할 수 있는 아이지. 뭐가 잘못된 줄 알아. 네가 제멋대로 구는 걸 막고자 내게 말했다.”

고운은 주먹을 꽉 쥐고 터져 나오려는 노성을 참았다.

“이보세요, 아저씨. 왜 멋대로 판단합니까? 제가 멋대로 굴 거라고 확신하는 이유가 뭡니까?”

“이유? 네가 이제껏 해 온 행실을 돌아보지 그래? 네가 신뢰를 잃을 짓을 했잖아.”

“그래서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사람을 몰아붙이는 건 그렇게나 어른스러운 일입니까?”

“네가 정말 모두를 생각했다면 박사님의 말을 우리 모두에게 전해야 했어. 박사님이 설령 네게만 말하고 부탁했을지라도 그런 문제를 독차지하려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왜 말하지 않았지?”

“이봐요! 박사님이 돌아가신지 이제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고요. 박사님이 무슨 심정으로 나만 불렀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고!”

고운이 화를 참지 못하고 성을 냈다. 아이작은 예상했다며 비꼬았다.

“오호라, 성질내는 본새 하고는. 변명하지 마라. 넌 우리를 미워하고 있어. 그런 녀석에게 뭘 맡긴단 말이냐. 박사님이 잘못 생각해도 단단히 잘못 생각했어. 역시 우성인자니 열성인자니 하면서 엉터리 판단이나 하는 사람이라 어쩔 수 없나?”

고운이 문밖의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그들 눈에 적개심이 가득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몰라 당황했다. 아이작이 으스댔다.

“내가 다 말했다.”

“뭐라고?”

“수순에 맞는 일이지. 너도 박사님의 죄를 묻겠다고 하지 않았더냐? 본인 입으로 털어놓을 기회를 놓쳤으니 이제 더 숨겨봤자 하나마나 한 일이 되었고.”

고운이 입을 뻐끔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아이작은 기세등등했다.

“긴말 할 필요 없다. 이제껏 네가 부린 패악을 사과해라. 그리고 다시는 대들지 않고 얌전하게 지내겠다고 맹세해라.”

“누가 그딴 소리 할 줄 알아? 난 의논하려고 했다고! 나 혼자서 결정할 사항이 아니란 것쯤은 나도 알아. 사람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지 마!”

“그 말 그대로 돌려주마. 박사님은 라우라가 해코지를 당할까 봐 정체를 말 못했다고 했지? 마찬가지로 우릴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세웠어! 그런 취급당해서 기분 좋을 사람이 어디 있나. 너 역시 우릴 무시하고, 박사님이 돌아가신 이유는 명백히 사고였다고 했는데도 책임을 우리에게 덮어씌웠잖아!”

언성이 높아지고 감정싸움의 조짐이 보이자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가세했다. 고운은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허버트에 대한 적의, 고운에 대한 적의가 똘똘 뭉쳤다. 머리꼭지가 돌아버릴 것 같았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아이작을 비롯한 사람들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우유니가 제때 끼어들지 않았다면 정말로 주먹부터 날아갈 뻔 했다.

“여러분은 지금 이성적이지 않습니다. 진정하시기 바랍니다.”

고운과 사람들 사이에 선 우유니가 양쪽을 향해 손을 들어 제지했다. 고운이 무시하고 나서려 들었지만, 뒤에서 공포에 질린 라우라가 고운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 모습을 보자 라우라의 팔을 매정하게 뿌리칠 수 없었다. 아이작과 사람들의 관심이 우유니에게 쏠렸다.

“이봐 안드로이드. 박사님이 무슨 방법을 남겼는지 말해. 저 놈과는 말이 안 통하는 군.”

“설명 드리겠습니다. 우선 여기서 나가시지요. 여러분은 지금 합리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환경의 전환을 경고합니다.”

“어차피 우리도 저 꼴통 놈과 말 섞기 싫다. 틀어박혀서 반성해!”

아이작과 사람들이 의무실을 나갔다. 우유니가 고운을 돌아보고 양쪽 어깨를 탁탁 두드렸다. 얼마나 세게 쳤는지 다리가 휘청거렸다.

“라우라를 부탁하네.”

우유니는 허버트의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허를 찔려서 대꾸하지 못했다. 우유니가 의무실을 나가고 정적이 찾아왔다. 고운은 텅 비어 버린 기분에 시달렸다. 시야가 흐릿하고 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갔다.

“날더러 어쩌라고.”

억하심정 이전에 슬펐다. 고독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외로웠다. 허버트의 빈자리가 너무 컸다. 가슴께에 깊은 통증을 느꼈다. 답답하고 아팠다.

“고우운- 울지마. 울지마아-”

“우는 거 아냐. 제기랄. 젠장.”

“고운……”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무너진 고운을 라우라가 덮듯이 안았다. 비키라는 말도 하지 못하고, 고운은 셈 못할 괴로움에 울었다.

이후 고운은 방에서 얼굴을 비추는 일 없이 외떨어져 지냈다. 사람들은 고운을 철저히 무시했고, 위험한 짓을 저지르지 않을까 걱정하며 감시했다. 케인은 고운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고운과 다른 생존자들 간의 틈은 마지막까지 좁혀지지 않았다. 허버트는 사람들에게 용서받지 못할 사람으로 낙인 찍혔다. 허버트에 대한 선의는 티끌만큼도 남지 않았다.


한 달 뒤, 하이퍼케인이 지나가고 마지막 여파로 비가 내리던 날의 새벽, 보호복과 헬멧을 쓴 두 사람이 방공호를 나왔다. 두 사람은 북서쪽을 향해 걸었다. 배웅은 없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종말 3부작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종말 3부작>의 연재를 시작합니다. +7 12.11.10 997 1 -
31 에필로그 : 선물 +20 13.01.16 651 11 3쪽
30 <8> 소금 민들레 +2 13.01.16 574 4 10쪽
29 <7> 구원 13.01.16 406 2 1쪽
28 <6> 하늘과 바다 - 6 +4 13.01.15 489 5 5쪽
27 <6> 하늘과 바다 - 5 +2 13.01.14 439 3 7쪽
26 <6> 하늘과 바다 - 4 +5 13.01.13 562 9 8쪽
25 <6> 하늘과 바다 - 3 +6 13.01.12 487 3 13쪽
24 <6> 하늘과 바다 - 2 +4 13.01.11 547 4 11쪽
23 <6> 하늘과 바다 - 1 +4 13.01.10 545 3 10쪽
22 <5> 하이퍼케인 - 9 +4 12.12.07 705 4 8쪽
21 <5> 하이퍼케인 - 8 +2 12.11.30 598 2 11쪽
» <5> 하이퍼케인 - 7 +2 12.11.30 418 1 8쪽
19 <5> 하이퍼케인 - 6 +2 12.11.29 497 2 11쪽
18 <5> 하이퍼케인 - 4, 5 +4 12.11.27 559 1 15쪽
17 <5> 하이퍼케인 - 2, 3 +2 12.11.27 673 2 16쪽
16 <5> 하이퍼케인 - 1 +4 12.11.26 512 1 16쪽
15 <4> 마지막 날 - 5 +2 12.11.21 525 3 10쪽
14 <4> 마지막 날 - 4 +3 12.11.21 747 1 7쪽
13 <4> 마지막 날 - 3 +2 12.11.19 574 2 12쪽
12 <4> 마지막 날 - 2 +2 12.11.18 584 3 12쪽
11 <4> 마지막 날 - 1 12.11.17 622 2 13쪽
10 <3> 여덟째 날과 아홉째 날 - 4 12.11.16 701 2 14쪽
9 <3> 여덟째 날과 아홉째 날 - 3 +2 12.11.14 691 3 10쪽
8 <3> 여덟째 날과 아홉째 날 - 2 +2 12.11.14 807 3 9쪽
7 <3> 여덟째 날과 아홉째 날 - 1 +2 12.11.13 814 2 14쪽
6 <2> 여섯째 날과 일곱째 날 - 4 +3 12.11.13 757 4 9쪽
5 <2> 여섯째 날과 일곱째 날 - 3 +1 12.11.12 765 3 15쪽
4 <2> 여섯째 날과 일곱째 날 - 2 +5 12.11.11 886 3 18쪽
3 <2> 여섯째 날과 일곱째 날 - 1 12.11.10 1,144 4 1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