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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3부작

웹소설 > 일반연재 > SF, 일반소설

RALL
작품등록일 :
2012.11.19 03:14
최근연재일 :
2013.01.16 00:09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22,286
추천수 :
109
글자수 :
147,598

작성
12.11.26 02:23
조회
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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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6쪽

<5> 하이퍼케인 - 1

소금 민들레



DUMMY

1.


생존자들이 당도한 방공호는 우유니 소금사막의 인근에 자리한 지하 방공호였다. 기존의 방공호가 지상 건축물이라 하이퍼케인과 같은 초대규모 재난에 취약한 것과 달리, 지하 깊숙이에 만들어져 지진으로 땅이 갈라지는 일이 없는 이상 웬만한 재해는 거의 피할 수 있었다.

최대 200명까지 수용 가능한 실내는 알맞은 농도의 산소와 실내온도가 늘 유지되어 쾌적했다. 지열을 통한 발전 덕분에 설비 고장이 아니면 오염으로 피해를 당하는 일은 없었다. 의료시설도 있었다. 생존자들은 천국에 온 기분을 만끽했지만, 예상외의 부분에서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식량이 너무 적어.”

식량 창고를 살피던 고운과 케인은 창고 가득히 쌓여 있을 것으로 생각한 식량이 고작 방 한구석을 차지할 만큼만 남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방공호의 다른 곳에도 식량은 보이지 않았다.

고운은 방공호 내 정보 기록표를 찾았다. 리스트를 확인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창고 최초 저장량은 일만 개야. 200명이 50일 동안 생존할 수 있어.”

“일만 개라고? 천 개도 안돼 보이는데?”

“최초 저장량이라고 했잖아. 우리가 첫 손님이 아니었던 모양인데. 이전에 방공호를 사용한 이력이 남아있어. 사용하고 나서 사용 분량만큼 보충되지 않은 것 같아.”

“그럼 어쩌지? 이거론 두 달이나 버틸까 싶어. 어쩌지?”

“낸들 알아! 바이오 캡슐은 있으니까 좀 더 버티겠지.”

바이오 캡슐은 식량이 없어도 굶어 죽지 않도록 생체 기능을 조절해주는 장치였다. 그러나 바이오 캡슐에만 의지해서는 살아있되 인간답게 살지 못했다. 식물인간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살아감을 의미했다. 고운은 말은 쉽게 꺼냈지만, 결코 녹록한 상황이 아니라고 깨달았다. 두 사람의 머리로는 해결 방안이 보이지 않았다.

고운과 케인이 돌아와 보니, 사람들이 의무실 문 앞에 모여 있었다. 라우라는 바닥에 주저앉아 울었다.

“무슨 일입니까?”

“고운- 고우운- 박사님, 안 일어나, 박사님 아파, 아파-”

“뭐? 별 일 아니라며!”

고운이 의무실 문의 창문으로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허버트는 산소 호흡기와 생명 유지 장치를 덕지덕지 붙였다. 척 보기에도 상태가 좋아 뵈지 않았다. 멍하게 안쪽을 바라보던 고운이 정신을 차리고 사람들을 향해 윽박질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박사님이 말했잖은가, 사고였다고. 그건 정말…… 사고였네.”

아이작이 나섰다. 고운은 시선을 피하는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믿을 수 없었다.

“사고였다고요? 정말로 사고였으면 어디 날 똑바로 보고 말 해봐요. 어디 처음부터 끝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 해보라고!”

“자네 왜 이러나. 이러지 말게. 우리는 목숨을 걸고 여기까지 왔어. 다들 지쳤고 힘들어. 이야기를 한 대도 일단은 쉬고 나서 하세. 지금은 이렇게 싸울 때가 아니라 박사님께서 무사하시기를 기도해야지.”

“말을 돌리는 건 켕기는 게 있기 때문이잖아? 왜 말을 못해? 다들 그렇게 박사님 찾을 때는 언제고?”

“이 녀석, 고운!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아이작도 폭발했다.

“박사님이 사고였다고 말했잖아! 어른이 그렇다면 그렇다고 알 것이지, 박사님을 그리 못 잡아먹어 안달이던 놈이 뭐가 잘났다고 큰 소리야? 우리는 최소한 네놈처럼 박사님을 적대하진 않았어. 불가항력이었다고! 비난한다면 박사님이 해야지, 너 같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감히, 방자한 녀석!”

“그렇게나 자신들 행동이 정당했다고 말하고 싶으면 왜 그걸 이해 못 시키는데? 어른이면 다야?”

“이, 이 빌어먹을 새끼가!”

아이작이 고운의 얼굴을 후려쳤다. 고운이 이를 갈며 아이작을 노려보았다.

“하, 쳤어?”

“어디서 그따위 행실머리를 배워갖고선……! 그래, 쳤다. 어쩔 테냐. 왜, 죽이기라도 하려고? 네가 그렇게 잘났어? 내세울 것도 없는 주제에 분수도 모르고 까불지 마라!”

“정말 죽고 싶어서 환장했군.”

깜짝 놀란 사람들과 케인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말렸지만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성미를 더 돋울 뿐이었다. 고운의 기계 팔다리를 막기는 대단한 곤욕이었다. 허버트의 의식불명과 험악한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하얗게 질려 있던 라우라가 급기야 비명을 내지르고 혼절했다.

의무실에서 우유니가 나왔다. 고운의 주먹질을 우유니가 막았다.

“비켜!”

“고운 님. 진정하십시오. 당신의 팔로 사람을 치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무슨 상관이야!”

“진정하십시오. 허버트님은 지금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소란을 부리면 안 됩니다.”

고운이 말을 들을 기미가 없자, 우유니는 고운을 한쪽 어깨에 짊어졌다. 졸지에 짐 취급을 당한 고운이 벗어나려 허둥거렸다.

“이거 놔!”

“고운 님은 현재 휴식이 필요합니다. 다른 분들 역시 누적 피로가 깊습니다. 주무십시오. 박사님께 이상이 생기면 알리겠습니다. 경고합니다. 누적 피로가 높습니다. 주무시기 바랍니다.”

“놓으라고!”

고운의 의사를 무시하고 우유니는 다른 어깨에 라우라를 맸다. 방공호의 방 하나에 고운을 던져 넣었다. 침대 위에 팽개쳐진 고운이 으르렁거리며 벌떡 일어섰다. 고운은 분을 못 이기고 달려들 것처럼 흥분했다. 그러나 고운이 진정할 때까지 우유니는 방 입구에서 비키지 않았다. 고운은 벽을 한번 주먹으로 후려치고 드러누웠다. 우유니는 조용히 방문을 닫아주었다.

고운이 사라지자 사람들도 자연히 흩어졌다. 분이 덜 풀린 아이작은 케인을 붙잡고 고운에 대한 욕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길지는 않았다. 우유니 말 대로 모두가 지쳤다. 우유니는 생존자들이 푹 쉴 수 있도록 방공호의 조명을 줄이고 의무실로 돌아왔다. 허버트의 옆 침대에 라우라를 눕혔다.

허버트는 산소호흡기에 의존해 잠들었다. 옆구리의 상처는 깊었다. 안드로이드가 쓰는 광선총은 사람이 제대로 맞으면 순식간에 피부와 내장을 녹였다. 보호복이 완충 효과를 해줬지만, 허버트의 내장은 수복 불가능할 정도로 헤졌다. 천부적인 체력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을 뿐 오래 살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방법은 인공장기이식 뿐이었다. 현재로썬 불가능한 방법이었다.

“박사님……”

라우라가 잠꼬대를 했다. 감긴 눈에서 눈물이 쉼 없이 흘렀다. 눈물을 닦아주고 이불을 바로 덮어주었다. 우유니가 한쪽 손으로는 라우라의 손을, 반대편 손으로는 허버트의 손을 잡았다. 한시도 눈을 감지 않은 채로, 날이 밝고 사람들이 깨어날 때까지 그렇게 기다렸다.


다음 날 생존자들은 늦은 오후가 돼서야 일어났다. 모두가 한자리에 모였지만 고운은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케인이 걱정하자 아이작은 큰 목소리로 으름장을 놓았다. 아이작은 다시는 고운이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을 모양새였다.

“저런 놈 신경 써줄 필요 없다! 벽에 머리 박고 반성 하라지!”

“아버지. 너무 그러지 마세요.”

“아버지 말 들어라. 저런 놈과 어울리다간 크게 후회하게 될 테니까. 그보다도 식량 창고는 어떻더냐?”

아이작은 케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케인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어제 고운과 확인했던 사항을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케인의 보고를 듣자 탄식을 터트렸다. 기껏 문제 하나를 필사적으로 넘었다 생각했더니 또 다른 문제가 앞을 가로막았다. 이것은 ‘다음’과 직결된 일이었으나 누구도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했다. 언제나 다음을 가늠하고 지휘하는 사람은 허버트였기 때문이다. 허버트는 지금 중태였다.

모두가 머리를 맞대도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았다. 초조해진 아이작은 의무실로 달려갔다. 허버트는 여전히 생명유지 장치에 몸을 의탁한 채 헤어 나오지 못했다. 아이작이 의무실로 들어오자 라우라가 질겁하며 침대 밑으로 숨었다. 아이작은 라우라를 무시하고 우유니에게 물었다.

“박사님 상태는 어때?”

“위독하십니다.”

“살 수 있나?”

“지금으로썬 가망이 없습니다.”

“말도 안 돼!”

아이작이 큰 혼란에 빠졌다. 우유니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살려. 무슨 일이 있어도 살리라고! 이 사람은 이렇게 죽으면 안 되는 사람이야.”

“가장 나은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반드시 찾아!”

아이작이 우유니를 뿌리치고 허버트에게 달려가 넙죽 고개를 숙였다.

“박사님, 이렇게 가시면 안 됩니다. 제발 일어나 주십쇼. 저희를 이끌어 주십시오.”

괴롭게 말하고 의무실을 나갔다. 겁에 질린 라우라는 침대 밑에서 나오지 않았다. 우유니가 달래도 소용없었다.

아이작이 의무실에서 나오자, 생존자들이 상태를 물었다. 아이작은 침통하게 말했다.

“위중하시다 합니다. 반드시 일어나실 겁니다. 어떻게 살아오신 분이신데요. 박사님을 위해 기도합시다. 저 하이퍼케인도 앗아가지 못한 박사님의 목숨을 우리가 지켜냅시다.”

생존자들은 모여앉아 허버트를 위해 기도했다. 그러고서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식사를 했다. 보존식량은 퍽퍽하고 맛이 없었지만, 입을 통한 제대로 된 식사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이작은 허버트 대신 사람들을 위로하고 눈물을 닦아주었다. 허버트가 했던 그대로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다정하게 대해 주었다. 의지할 곳을 잃은 사람들은 아이작의 호의를 기쁘게 받아들였다.

케인은 아이작의 모습을 불안하게 지켜보았다.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 고운과 라우라가 없어지자 그룹 내에서 청년은 케인뿐이었다. 케인은 남은 식량을 챙겨 일어났다.

“어디 가느냐?”

“고운한테요. 식사는 해야죠.”

“가지 마라. 그놈에게 직접 나와서 먹으라고 해. 그놈이 뭔데 네가 직접 식사까지 갖다 바친단 말이냐? 그놈이 그러라고 시키든?”

“아니에요. 제가, 제…… 제가 설득, 이야기를. 고운과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케인은 안절부절못하고 불안 증세를 보였다. 목소리가 떨리고 식은땀이 흥건하게 흘렀다. 케인은 필사적으로 말했다.

“아버지, 고운은 나쁜 녀석이 아, 아니에요. 고운은 이제까지 힘든 일은 전부, 먼저 나서서 했어요. 박사님도 믿고 있…… 있고요. 어제 일도 고운은, 걱정돼서……”

“알고 있단다. 케인, 그만 해라. 내가 그 정도도 모를 줄 아느냐? 사람에게는 지켜야 할 도리라는 게 있는 법이야. 무리하지 마라. 네가 그놈에게 해코지라도 당할까 봐 걱정되는구나.”

“고운은 제 친구예요. 제가, 제가 잘, 설득…… 서, 설득해볼게요.”

아이작은 끝까지 허락하지 않으려 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케인의 입장을 이해해주었다.

“그래요, 아이작. 고운도 케인도, 이제 또래라고는 라우라까지 해서 셋밖에 없잖아요.”

“그래도 걱정이 되는 걸 어떡합니까. 이 아이가 얼마나 여리고 심약한 아인데요. 고운같은 우악스러운 놈과는 어울리지 않는단 말입니다.”

“애들 일은 애들이 제일 잘 알지 않겠소.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고운도 자꾸 고립시키면 더 난폭해질 테니까. 케인의 자상하고 다정한 성격이라면 고운도 많이 진정 될 거요.”

“여러분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어쩔 수 없군요.”

아이작이 마지못해 수락했다.

“녀석이 널 괴롭히거나 힘들게 하면 꼭 말해야 한다.”

“네, 네 아버지.”

케인은 식량 깡통을 꽉 쥐고 고운의 방으로 달려갔다. 노크에 반응이 없자 열림 버튼을 눌러보았다. 문은 잠겨 있지 않고 열렸다. 고운은 불도 켜지 않고 침대에 대자로 누워 있었다. 어둠 속에서 건조한 목소리가 들렸다.

“뭐야.”

케인이 들어와서 실내조명을 약하게 켰다. 고운은 눈이 부신지 팔로 눈가를 가렸다. 케인이 테이블을 끌어와 식량을 준비했다. 고운은 음식 냄새가 풍기자 어기적 일어났다. 손을 뻗어 있는 데로 집어 먹기 시작했다. 케인이 건너편 침대에 쓰러져 눈을 감았다.

“고운, 나 여기 있을게.”

“그러던가.”

“미안해.”

“네 사과도 지겹다. 그만 해.”

“미안해…… 박사님 위독하시데. 어쩌지? 박사님이 이대로 돌아가시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지? 이대로 굶어 죽을까? 우린 이제부터 뭘 해야, 사람들이, 무서워. 고운. 나 너무 무섭다.”

“뭐가. 또 뭐가 무서운데.”

“전부다. 전부다. 전부다. 차라리 하이퍼케인이 덜 무서워. 나는 이제 너무 많이 보이지 않아. 너무 많이 들리지 않아. 말을 못하겠어. 글자가 머릿속에서 사라져가. 캄캄해져. 어쩌지?”

케인이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소리 죽여 울기 시작했다. 몸을 잔뜩 웅크리고 떨었다. 고운은 당혹스러워하다 손을 뻗어 케인의 머리를 꾹 누르듯이 쓰다듬었다. 케인이 고운의 손을 꽉 붙잡고 이마에 댔다.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차갑고 딱딱한 기계손이었지만 안심이 됐다.

“내 안에 갇혀버릴 것 같아. 어릴 때랑 똑같아. 아버지가 어머니랑 싸웠어. 많이 싸웠어. 서로 아픈 말만 했어. 그걸 듣고 있다간 고막이 터지고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듣고 싶지 않았어. 두 분은 날 사랑한다고 했어. 날 사랑하고 서로 미워했어. 나는 그게 너무 싫었어. 차라리 날 미워하더라도 두 분이 서로 사랑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했어. 나 때문에 아버지도 어머니도 불행해지는 것 같았어. 지금도 그래. 내가, 내가 우리 아버지를 불행하게 만들어. 미안해 고운. 미안해. 역시 나 같은 애는 살아 있어선 안 됐어.”

“멍청한 자식아. 자꾸 헛소리하면 맞는다. 어제 안드로이드가 말했잖아. 내가 제대로 치면 너 죽어.”

“미안해.”

“어른이란 인간들이 앞뒤가 꽉 막혀서 아주 난리들이다. 네 아버지가 잘못했다고 네가 사과할 필요 없어. 그리고 이거 좀 놔라. 징그럽다.”

케인이 순순히 손을 놓았다. 고운은 손에 묻어난 케인의 눈물을 떨떠름하게 바지에 닦고 식량 부스러기와 쓰레기를 정리했다. 눈을 감은 케인을 바라보다 이내 천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답답하다.”

두 평 남짓한 방이었다. 창문도 없고 사방이 막혔다. 천장이 높은 것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지하 방공호 어디에도 트인 공간은 없었다. 빼곡한 방 너머에는 넓은 홀이 있었지만, 건물 내라는 사실은 변함없었다. 청정한 공기만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괴로움이었다. 방공호에 들어온 지 고작 하루 만에 답답함에 숨이 막혔다. 나쁜 기분이 배출되지 못하고 속으로 자꾸만 쌓여갔다. 허버트의 일이 무엇보다 고운을 괴롭혔다. 허버트가 이대로 죽는다면, 케인의 걱정과 다른 의미로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불쑥 케인이 말했다.

“끝말잇기라도 할래?”

“뭐?”

“답답하다고 했잖아. 너 아까부터 한숨 엄청 쉬고 있어. 꾹꾹 눌러 담기보다 뭐라도, 말 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고운은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한숨을 쉬었다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케인이 장난삼아 제안했다고는 보이지 않았기에, 못이기는 척 응했다. 하다 보니 어느새 열중해버렸다. 집중할 동안에는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해서 케인 말대로 기분은 조금 나아졌다.

밤이 찾아왔다. 두 사람은 서로 말을 깨우칠 때부터 지금껏 알고 익힌 단어들을 거의 모두 쏟아낼 정도로 끝말잇기에 심취했다가 지쳐 잠들었다. 한참 꿈에서 단어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릴 때, 누군가 고운을 구했다. 퍼뜩 잠에서 깼다.

“고운 님.”

어둠 속에서 금색으로 빛나는 두 눈동자가 보였다. 잠결에 보고 놀라 침대에서 굴러 떨어졌다. 덕분에 케인도 깨버렸다.

“괜찮으십니까?”

“안드로이드였잖아! 무슨 일인데?”

우유니가 고운의 팔을 잡아 일으켜주었다. 우유니는 조용히 하라는 듯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댔다.

“박사님이 깨어나셨습니다. 고운 님을 찾으십니다.”

“깨어나셨다고? 상태는 어떤데?”

“더 나빠지셨습니다. 아마도……”

“아마도, 뭐?”

우유니는 약간의 시간을 두고 기복 없이 말했다.

“마음의 준비를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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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에필로그 : 선물 +20 13.01.16 651 11 3쪽
30 <8> 소금 민들레 +2 13.01.16 574 4 10쪽
29 <7> 구원 13.01.16 406 2 1쪽
28 <6> 하늘과 바다 - 6 +4 13.01.15 489 5 5쪽
27 <6> 하늘과 바다 - 5 +2 13.01.14 439 3 7쪽
26 <6> 하늘과 바다 - 4 +5 13.01.13 562 9 8쪽
25 <6> 하늘과 바다 - 3 +6 13.01.12 487 3 13쪽
24 <6> 하늘과 바다 - 2 +4 13.01.11 547 4 11쪽
23 <6> 하늘과 바다 - 1 +4 13.01.10 545 3 10쪽
22 <5> 하이퍼케인 - 9 +4 12.12.07 705 4 8쪽
21 <5> 하이퍼케인 - 8 +2 12.11.30 598 2 11쪽
20 <5> 하이퍼케인 - 7 +2 12.11.30 417 1 8쪽
19 <5> 하이퍼케인 - 6 +2 12.11.29 497 2 11쪽
18 <5> 하이퍼케인 - 4, 5 +4 12.11.27 559 1 15쪽
17 <5> 하이퍼케인 - 2, 3 +2 12.11.27 673 2 16쪽
» <5> 하이퍼케인 - 1 +4 12.11.26 512 1 16쪽
15 <4> 마지막 날 - 5 +2 12.11.21 525 3 10쪽
14 <4> 마지막 날 - 4 +3 12.11.21 747 1 7쪽
13 <4> 마지막 날 - 3 +2 12.11.19 574 2 12쪽
12 <4> 마지막 날 - 2 +2 12.11.18 584 3 12쪽
11 <4> 마지막 날 - 1 12.11.17 622 2 13쪽
10 <3> 여덟째 날과 아홉째 날 - 4 12.11.16 701 2 14쪽
9 <3> 여덟째 날과 아홉째 날 - 3 +2 12.11.14 691 3 10쪽
8 <3> 여덟째 날과 아홉째 날 - 2 +2 12.11.14 807 3 9쪽
7 <3> 여덟째 날과 아홉째 날 - 1 +2 12.11.13 814 2 14쪽
6 <2> 여섯째 날과 일곱째 날 - 4 +3 12.11.13 757 4 9쪽
5 <2> 여섯째 날과 일곱째 날 - 3 +1 12.11.12 765 3 15쪽
4 <2> 여섯째 날과 일곱째 날 - 2 +5 12.11.11 886 3 18쪽
3 <2> 여섯째 날과 일곱째 날 - 1 12.11.10 1,144 4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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