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

미래를 바꾸는 천재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넓은남자
작품등록일 :
2021.05.12 16:17
최근연재일 :
2021.05.29 06:49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4,605
추천수 :
181
글자수 :
110,787

작성
21.05.25 08:53
조회
114
추천
5
글자
12쪽

16화

DUMMY

“말해보세요. 제가 다른 건 몰라도 들어주는 건 잘 합니다.”

“미친 새끼. 너 같으면 생전 처음 보는 사람한테 주저리주저리 말하겠어?”

“오히려 그래서 더 편한 거 아닌가요? 이해관계가 얽혀있으면 속에 있는 이야길 꺼내기가 힘들잖아요."


사람은 누구나 타인의 평가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그리고 그런 심리가 강할 수록 속에 있는 이야기를 쉽게 꺼내지 못한다.


“시발 정신과 의사 납셨네.”

“이제 어느 정도 진정됐고, 상황 파악도 된 것 같은데. 말해보시죠. 참고로 저희한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어요. 그래서 그런 거니 이해해 주시고요.”

“나도 몰라. 말하기 싫어.”

“그럼 시간 좀 드릴까요?”

“그래. 시간 좀 줘. 나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

“뭐 그러죠. 저도 처음부터 다그칠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래. 진작 그랬어야지.”

“그런데 말이죠.”

“왜?”

“당신 몇 살이에요? 아까부터 말이 짧네요.”


겉모습만 보면 20대 초반이다.

근데 훨씬 오래 산 나보다 반말이 자연스럽다.


“왜? 억울하면 너도 말을 까던가.”


하 역시 여자는 어렵다.

잠깐 대화했는데도 10년은 나이를 먹은 기분이다.

무엇보다 이 여자.

속에 칼을 품은 이유가 있어 보였다.

하긴.

이유 없는 반항은 없다.

오히려 반항하는 사람이 감정에 더 솔직한 편이라 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가 들려줄 이야기가 기대되긴 하네.


*


“잘 안됐죠?”


특조단의 박정석이란 남자가 다가왔다.

평범한 얼굴. 평범한 체격.

하지만 심층은 나와 비교하지 못할정도로 깊다.

역시 특조단이다.

어쨌든 말하는 투가 이렇게 될 걸 알고 있는 뉘앙스였다.


“알았으면 진작 좀 도와주시지.”

“뭐 이 바닥에선 유명한 여자거든요.”

“어떻게 유명한데요?”

“얘기하자면 좀 긴데. 이거 어디 가서 말하면 안 됩니다.”

“제가 생각보다 입이 무겁습니다.”

“어디 가서 말하지만 않겠다고만 해주세요.”

“약속하죠.”


박정석은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특조단엔 애연가만 모였는지, 그 역시 내게 담배를 주려고 했다.


“저 담배 안 피우는데.”

“아 그래요?”


담배를 다시 주머니에 넣은 그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한 모금 시원하게 빤 그가 담배 연기를 한차례 내뱉고 난 뒤에야 이야길 시작했다.


“사실 그 여자 강간을 당한 전적이 있어요.”

“강간을요? 언제요?”

“한 1년 정도 됐을 거예요.”

“힘들었겠네요.”


하지만 1년이면 자살의 근거가 되기엔 약하다.

이야기를 좀 더 들어봐야 할 것 같다.


“근데 이게 좀 이상한 사건이었습니다.”

“왜요?”

“그 대상이 남자친구였거든요.”

“그럼 데이트폭력이었다는 말인가요?”

“그보다 잘 사귀는 도중에 강간을 당했다고 신고가 접수된 경우였습니다.”


이건 뭔 참신한 개소리래.


“그게 죄가 성립되나요?”

“성립은 되더라고요.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으로 풀려나서 그렇지.”

“그럼 강간이 맞았다는 말이네요.”


판사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진실이 무엇이든 겉으로 보인 행위는 강간이 맞다는 소리다.


“근데 사실 다들 속은 거였어요.”

“아 뭐가 또 있나 보죠?”

“판결 이후 다시 사귀더라구요.”

“네?”


상식적으로 그게 말이 되나.

아니 그렇다는 말은 애당초.


“화풀이였나요?”


그게 아니면 말이 안 된다.

그리고 그 말이 사실이라면?


와 생각보다 더 대단한 여자네.

수 틀린다고 남자친구를 강간범으로 만들어 버리다니.

고소하고, 재판 받고, 판사의 판결까지 간다는 건

보통 사람은 할 수 없는 발상이다.

그만큼 강단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속단은 이르다.

굳이 한쪽 말만 듣고 선입견을 가질 필요는 없다.

무엇보다 고소까지 당한 남자친구가 왜 그런 여자와 다시 사귀었을까?

사람들이 모르는 비밀이 숨어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사건은 그렇게 해프닝으로 끝났죠. 아니 끝난 줄 알았죠.”

“뒤에 뭐가 또 있는 겁니까?”


이건 뭐 양파도 아니고.


“사실 그 남자친구라는 사람 얼마 전에 죽었습니다.”

“사인은요?”

“자살이었습니다.”


이거 냄새가 나네.

그놈들의 냄새가.


“혹시 마물이 끼어든 흔적은 없었나요?”

“안 그래도 낌새가 이상해서 저희도 나름 조사를 해 봤는데.”

“별 이상은 없었다?”

“네.”

“그 양반이 자살한 이유는 뭐래요?”

“그게 아직 밝혀진 게 없습니다.”

“자살은 확실해요?”


밝혀진 게 없는데, 왜 자살이라고 단정 지었을까?


“특이하게 자신이 자살하는 장면을 핸드폰으로 찍어놨더군요.”

“마치 누가 보라는 듯 말이죠?”


누구에게 보라고 찍었는지는 말 안 해도 알 것 같다.

그나저나 충격이 클 수밖에 없겠는데.


나는 박정석과의 대화를 끝내고, 그녀가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리고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는 그녀를 쳐다봤다.

순간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곧바로 내 눈을 피하는 그녀.

나는 그것만 봐도 그녀가 자존심은 세도 자존감은 낮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강한 척 한 건 열등감이었나.


*


다음날.

대대적으로 방공호에 대한 수색이 이루어졌다.

역시 특조단.

권력의 실세답게 동원할 수 있는 인력이 수백 명이나 됐다.


스케일 하고는.


무엇보다 이걸 이런 식으로 키워버리는 걸 보며, 이해준이 생각하는 정치적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일단 체급을 높여서 중요한 일이라는 걸 어필하는 것.

그리고 자신이 그럴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주는 것.

마지막으로 특조단의 무슨 일을 하는지, 그리고 특조단이 왜 필요하는지 대대로 선전하는 효과를 누리는 것.

무엇보다 이 일이 성공한다면 이해준의 입지 또한 덩달아 커질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래서 위태로워 보였다.

실패하면 역풍을 맞을 게 뻔한 일을 이런 식으로 진행하는 거니까.

나는 이해준이란 사람이 왜 기억에 없나 했는데, 아마 이런 성격 탓도 있는 것 같다.

물론 이해준은 누구보다 똑똑한 사람이며, 의미 없이 일을 키울 사람은 아니다.

아마 이런 식으로밖에 할 수 없는 이유 정도는 있을 거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나저나 바쁘시네.”


책임자답게 이해준은 끊임없이 보고를 받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야기를 나누려면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그럼 밀렸던 부채나 받으러 가볼까.

나는 차선으로 이석준의 딸. 이해수에게 찾아갔다.

제법 시간을 줬으니, 이제 대답을 들어야겠다.


그런데 이해수의 얼굴.


상태를 보니 어제보다 더 어둡다.

광대는 두드러질 정도로 해쓱하고 눈 밑의 다크서클은 더 시커멓다.

성격이 어떻든 동정심을 부르는 외모다.


“좀 자지 그래.”

“또 너냐.”

“피부 다 망가지겠다.”

“그보다 어지간히 억울했나 보네.”

“뭐. 혼자 존대하는 것도 웃기잖아. 네가 내 상사도 아니고.”

“어제 했던 얘기 그거 무슨 말이야?”

“어떤 얘기?”

“누가 나 자살할 거라고 예언했다며?”

“아 그거? 어제 죽은 사람 봤지? 그놈이 그러더라.”

“음.”

“뭐가 음이야. 설마 걔 말이 맞는 거냐?”

“뭐 아예 틀렸다고 말할 순 없지.”

“너도 인생 참 버라이어티한가 보다.”

“신경꺼.”

“나도 끄고 싶은데 너한테 꼭 들어야 할 말이 있어서 말이지. 그러니까 이제 설명 좀 해주실까?”

“보채지 좀 마. 안 그래도 머리 깨질 것 같으니까."

“그러니까 잠 좀 자라니까.”

“네가 내 남자친구야? 뭔 잔소리가 이렇게 많아.”

“말 안 듣는다고 때릴 순 없잖아.”

“야만인 같은 자식.”

“네 언어 폭력도 야만인급이다.”

“사내새끼가 말은 더럽게 많네.”

“흰소리 말고 이거나 받아.”


나는 주머니에서 뭔갈 꺼내 주었다.

내가 휙 하고 던지자 이해수는 엉겁결에 그것을 받았다.

이게 뭐냐는 눈빛?


“뭐긴 뭐야 정이지. 그거라도 먹어둬라.”


초코파이는 단순히 과자지만 그 안엔 감정이 있다.

이해수가 드디어 피식 웃었다.


“미친놈.”

“하긴 네가 전우애가 뭔지 알겠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말과 달리 이해수는 초코파이를 맛있게 먹었다.


“우유는 없냐?”

“하여튼 검은 머리 짐승이 이래서 문제에요. 물에서 건져주면, 보따리도 내놓으라고 하지.”


물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물을 가져다주었다.

내가 건넨 물을 받은 이해수는 허겁지겁 마셨다.

물이 입가로 흐르며 상의를 적시지만, 그녀는 괘의치 않았다.


“천천히 마셔라. 누가 잡으러 안 온다.”


정확히 말하면 손에 힘이 없어 물조차 마음대로 마실 수 없는 몸이라 그렇다.

그런 애가 악바리처럼 병원에 가지도 않고 여기에 있다.

어쨌든 물을 다 마신 이해수가 내게 물었다.


“야 솔직히 말해. 너 나한테 왜 이리 신경 쓰냐?”

“넌 어째 신경 써줘도 불만이냐.”

“나는 대답을 원했어. 질문을 받으려는 게 아니라.”

“나도 굳이 대답해 줄 이유는 없는 것 같은데?”

“너 나한테 듣고 싶은 대답이 있을 텐데?”

“생각보다 치사하네.”

“그러니까 그만 까불고. 얼른 대답해봐? 도대체 뭘 원하는 거야?”


안색도 안 좋은 애가 눈빛 만은 살아 있다.

그 특유의 고집스러운 눈매에 나 역시 물을 마셨다.

물을 다 마신 나는 그녀의 질문을 상기했다.

왜 신경 쓰냐고?

사실 진짜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뭐 별다른 이유는 없어. 굳이 말하자면 너를 돕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서랄까.”

“왜?”

“관계를 맺고 싶으니까.”

“뭐? 이 변태 새끼!”


이해수가 주위에 있던 물건을 잡아 던졌다.

피하고 보니 휴대용 손전등이다.

나는 얼른 오해를 풀고자 그녀의 손을 잡았다.


“야. 오해 그만. 그런 거 아니니까. 머릿속에 음란마귀만 가득하네.”

“뭐?”

“내가 말하는 건 대인관계를 말하는 거야. 대인관계.”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어야지.”

“그러니까 다음부턴 끝까지 좀 들어라. 성질 좀 죽이고.”

“하. 진짜 어디서 이런 게 굴러와서는.”

“그래도 이런 대화 오랜만이지 않냐? 꽤 즐겁지?”


사람의 심리가 그렇다.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힘든 것 같고, 아무도 그 힘듦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렇지 않은데도 그러는 게 사람이다.

문제는 그러한 상황이 심해지면 스스로 고립감과 단절감을 키우며, 트라우마를 만들어낸다는 것.

즉 그런 의미에서 이런 대화는 그녀에게 유익한 자극이 될 것이다.


“느끼한 소릴 잘도 내뱉네. 됐고 왜 나랑 관계를 맺으려는 건데? 내가 불쌍해서?”

“피해의식 있냐? 그럴 리 없잖아.”

“그럼?”

“야. 뭘 어렵게 생각해. 도와주고 싶으니까 도와주는 거지. 남을 돕는 건 생각보다 보람찬 일 아니냐? 그거면 됐지.”

“한국형 간디가 꿈이세요?”

“왜 조금만 노력하면 될 것 같냐?”


내 능글맞은 대답에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꿈도 야무지네.”

“꿈은 원래 커야 하는 거다.”

“미친놈.”

“야 네가 버스나 지하철 타면서 노인이나 임산부한테 자리 비켜줘 봐라. 그 작은 일만 해도 엄청 뿌듯하지.”


그게 사람이다.

사소한 것에도 뿌듯함을 느끼고, 상대의 감사함에 내가 필요한 사람이라고 희열을 느낀다.


“그래서 자기만족 때문에 도와준다?”

“뭐 자존감이 심층 성장과 직결되긴 하고.”

“그럼 그게 진짜 이유네?”

“뭐 날 엿 먹인 놈들한테 빚진 것도 있고.”

“뭐야? 뭔 이유가 이리 많아? 없다며?”

“겸사겸사 지. 뭘 당연한 걸 물어.”

“뻔뻔한 놈. 어쨌든 날 도와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얘기지?”

“뭐 그런 셈이지.”

“그럼 너한테 부담 느낄 필요도 없고?”

“뭐 하러 부담을 느끼냐. 내가 너한테 뭘 요구한 것도 없는데.”

“고마워할 필요도 없고?”

“그건 좀 선 넘는 거 같은데.”

“사내 새끼가 쪼잔하긴.”

“그건 쪼잔한 거랑 별개다.”

“됐어. 쪼잔한 새끼야.”

“야 어쨌든 인생 별거 없다. 맛있는 거 먹고, 목표도 좀 세우고,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면 끝나는 거야.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라.”


*


이해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녀가 말을 꺼낸 건 지하 3층쯤에 도착할 때였다.


“14살 때 엄마가 아빠가 아닌 다른 남자와 있는 걸 목격했어.”




피드백 해주실 분 찾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의말

피드백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쪽지나 댓글로 남겨주시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미래를 바꾸는 천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제목 변경 합니다. 21.05.20 112 0 -
20 20화 21.05.29 64 2 12쪽
19 19화 +2 21.05.28 95 2 12쪽
18 18화 21.05.27 98 4 13쪽
17 17화 21.05.26 107 5 14쪽
» 16화 21.05.25 115 5 12쪽
15 15장 +2 21.05.24 128 4 12쪽
14 14화 21.05.22 124 4 11쪽
13 13화 21.05.21 136 3 11쪽
12 12화 21.05.20 131 5 14쪽
11 11화 +2 21.05.19 154 6 14쪽
10 10화 +2 21.05.18 162 8 18쪽
9 9화 +1 21.05.17 174 8 12쪽
8 8화 +1 21.05.16 195 9 14쪽
7 7화 +1 21.05.15 191 8 11쪽
6 6화 +1 21.05.14 235 10 8쪽
5 5화 +1 21.05.14 248 13 10쪽
4 4화 +1 21.05.13 313 14 10쪽
3 3화 +1 21.05.13 406 14 14쪽
2 2화 +3 21.05.12 598 23 18쪽
1 1화 +5 21.05.12 929 34 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