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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 님의 서재입니다.

타락한 천사가 던전에서 하는 일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부기스
작품등록일 :
2018.06.28 21:32
최근연재일 :
2019.01.07 01:20
연재수 :
4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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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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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4,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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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22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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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블랙마켓과 7인의 망나니(1)

DUMMY

*** 블랙마켓과 7인의 망나니(1) ***


-타닥, 탁, 탁, 탁!


마계의 동북 쪽에 위치한 탐욕(貪欲) 상회 라오스 지부 최상층.

그곳에 위치한 지부장실 안에는 정장 차림의 고블린 한 명이 한창 서류작업에 임하고 있었다.

엄청난 속도로 손가락을 놀리고 있는 고블린은 집중력이 얼마나 뛰어나던지 테이블 한켠에서 빛나는 통신구도 보지 못하고 있다.

그 정도로 탐욕 상회 라오스 지부의 지부장 다린은 온정신을 모니터와 키보드에 고정시킨 체 타이핑을 지속했다.

그의 눈은 이미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키릭··· 키리릭···.”


최근 라오스 지방은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가 된 것처럼 급격한 정세의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다.

다린은 상인으로서 이 변화를 따라가기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는 중이었다.

조금의 이익이라도 차지하기 위해 라오스 지방의 던전과 악마들의 움직임을 나노단위로 확인하고 있다.


“키리릭!”


조용하던 라오스 지방이 무엇 때문에 이리도 시끄러워진 것일까.

그 답은 참으로 간단했다.

다름 아닌 단 한 명의 악마 때문이었다.

단 한 명의 악마로 인해, 라오스 지방의 최대 세력 중 한 곳인 중급 악마 갈릭의 세력이 와해되었고 그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라오스의 악마들이 던전 침략전을 쉬지 않고 벌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 백여 년간 숨죽이고 있던 수많은 악마가 그동안의 웅크림은 이순간의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는 듯 라오스의 거의 모든 세력이 이때다 싶어 무기를 들고 일어났다.

세력과 세력 간의 대규모 전쟁뿐만 아니라 개인과 개인 간의 소규모 대전까지, 현재 라오스 지방은 솥 안에서 터져나가는 옥수수처럼 미친 듯이 타오르고 있었다.

기존의 세력은 갈려 나갔으며 그 뒤를 이은 새로운 악마들이 탄생하고 있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가장 바쁜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다름 아닌 상인들이었다.

기존의 세력들에게 군수 물자를 지원하고 새로운 악마들에게 자금을 대금 하는 상인들.

그중 탐욕 상회는 마계 제일의 상회로서 돈이 되는 곳이라면 한 군데도 빠지지 않고 전부 끼어드는 중이었다.

탐욕 상회 라오스 지부의 수장인 다린은 바쁠 수밖에 없는 입장인 것이다.


“키키킥!”


다린은 최근 치러진 중급 악마 미불티스와 중급 악마 케미케리스의 전쟁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그뿐이랴.

하급 악마들에게 군수품을 지원하고 전쟁을 종용시키며 새로 탄생한 악마들에게 고리대금을 추천하는 등 물불가리지 않고 수익을 창출하는 중이었다.

그에게 현재의 라오스는 말 그대로 땅만 파면 황금이 나오는 노다지였다.

전쟁을 전전하며 상당한 실적과 뒷주머니까지 충분히 챙긴 다린은 본사에 보낼 결산보고서를 작성하며 실실 웃음을 흘렸다.

기분이 안 좋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흐흐흐! 본사로 인사명령이 날 수도···?”


다린은 탐욕 상회의 본사에서 좋은 소식이 있을 거라 기대하며 열심히 타이핑을 지속했다.

실적과 능력을 인정받는다면 이런 시골이 아니라 마계의 중앙도시에 발령돼 더 큰 돈을 만질 수 있다.

다린은 오늘도 진급을 꿈꾸며 개미처럼 열심히 일했다.


“룰룰루~.”


그러길 잠시, 문서 작성을 끝낸 다린은 마계커뮤니티를 통해 문서를 본사로 전송했다.

이로써 오늘의 업무가 끝났다.


“후, 끝났다!”


다린은 뻐근한 몸을 풀기 위해 크게 기지개를 쭉 폈다.

최근 한숨도 자지 못하고 중노동을 해서 그런지 온몸이 쿡쿡 쑤셨다.

이러다 정말 과로사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끄으응···! 끄흐흐흐···!”


하지만, 온몸이 천근만근임도 다린은 마냥 기분이 좋았다.

왜냐.

막대한 수익을 올리기도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한동안 라온에게서 시달리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흐흐흐··· 라온님이 안보이니깐 이렇게 좋네! 한동안 안 돌아왔으면 좋겠다! 그러면 정말 좋을 것 같은데 말이야! 으흐흐!”


라온이 자리를 비운 지 한 달이 지났다.

그 한 달 동안 다린은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듬성듬성하던 머리가 수북해질 정도였으니 말 다 했으리라.

그 정도로 다린은 라온이란 존재로 인해 정말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그놈의 사기(?) 계약만 아니었더라도···!’


던전 ‘타락한 천사의 요람’과 탐욕 상회 사이에서 체결된 계약은 다린의 스트레스 원동력이었다.

모든 건 그 계약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불공정 거래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사기 계약 때문에 다린은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 계약서를 지부의 간부들에게 들켜 사지가 찢기는 꿈을 꾼다.

단 한 번의 실수로 인해, 항상 죽음의 위기에 놓여있는 다린이었다.


‘시부럴 탱탱부럴···.’


물론, 모든 건 자업자득이었다.

본인이 직접 사인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그래도 고블린이란 게 남탓 하면서 살아가는 생물이다.

라온을 속으로 욕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실제로 다린은 라온을 좋아한다.

라온이 지닌 그 사기적인 능력과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가능성을 믿고 있었다.

그래서 대규모 투자까지 강행하지 않았던가.

다린은 라온이 가까운 미래에는 자신의 배경이 되어줄 것이라 믿고 있으며 그를 통해 몇 배나 되는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최근 중급 악마 갈릭을 잡고 막대한 이익을 얻었기도 했고 말이다.

그저, 다린은 하소연할 상대가 없어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 것뿐이었다.

라온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이다 보니 반항심이 조금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는가.

라온도 이러한 자신을 이해해주리라.


“후후···!”


다린은 풍부한 머리카락을 한번 쓸어넘기며 타차원으로 침략을 떠난 라온을 떠올렸다.

한 일 년 정도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되도록 그곳에서 천사 놈들에게 된통 혼난 뒤 돌아오면 만사형통일 것이다.

그러면 얼마나 통쾌할까?


‘쯧! 그럴 리는 없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것 같진 않다.

아마, 중간계를 쑥대밭으로 만들었으면 만들었지 꼬랑지를 말고 도망치진 않으리라.

여태껏 라온의 수발을 들며 그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한 다린이었다.

감(感)이 뛰어난 그이기에 확신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래도 고생해라!’


어쨌거나, 다린은 라온이 혼쭐나길 간절히 기도하며 책상에 널브러져 있는 서류를 하나씩 들어 올렸다.

그곳에는 다양한 악마의 정보와 그들이 속한 세력, 그리고 각 던전의 재정 사항까지 라오스의 각종 던전에 대한 모든 정보가 기록되어 있었다.

다린은 그 정보들을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다.

이 정보를 토대로 다음 전쟁에서 승리할 던전을 지원하고 투자해야 한다.

그래야 또다시 큰 이익을 얻을 수 있기에.


‘자··· 이번엔 어느 쪽에 배팅할까나? 이번 전쟁은 생각보다 변수가 많은데···, 음···. 아! 그러고 보니 요즘 ‘텍스터’가 안보인다?’


다린은 서류를 검토하며 최근 잠적한 중급 악마 ‘텍스터’에 대해 생각했다.

중급 악마 ‘텍스터’.

그는 중급 악마 갈릭과 마찬가지로 라오스 지방을 등분하는 실세 중의 실세이다.

그런 텍스터가 이런 환란기에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다소 의아한 일이었다.

전쟁과 전리품에 환장하는 녀석인데, 어째서 그가 참전하지 않는 건지.


“흠.”


텍스터가 나설 경우, 전쟁의 판도는 180도 달라질 것이다.

그것을 잘 알기에 상인으로서 다린은 모든 변수를 고려해야만 했다.


‘뭐 하고 있는 거지? 녀석이 이 시기에 혼자 가만있을 리는 없고. 설마 차원 침략이라도 갔나···? 지금 시기에 차원 침략이라···. 요거 조사 좀 해봐야겠는걸?’


지금 시기에 차원 침략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은 마계에서의 전쟁보다 더 좋은 먹잇감이 그곳에 있다는 뜻이다.

만약 정말로 그런 멋진 먹잇감이 있다면, 어떡해서든지 그곳에 숟가락을 얹어야 한다.

그게 바로 탐욕 상회의 비전이니까.

다린은 텍스터에 대해 생각을 이으며 혀로 입을 훔쳤다.

어떤 경우에든 이익을 챙겨야 한다.

그래야 자신이 살 수 있다.

그렇게 다린이 어떻게 하면 텍스터의 밥상에 숟가락을 얹을 수 있을까 하고 심각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을 때.

그때, 책상 위에 설치되어 있던 통신구가 다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응?”


다린은 집중을 방해하는 통신구를 찌릿 노려봤다.


‘아씨,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려 했는데!’


얼굴을 잔뜩 찌푸린 다린은 발신자에게 한소리 하기 위해 재빨리 통신구를 확인했다.

그리고, 발신자를 확인한 순간 그는 움찔 몸을 떨어야만 했다.

통신구의 발신자에 나와선 안될 인물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잉!? 아니, 이 양반이 어떻게 벌써 돌아왔지···?”


통신구의 발신자는 다름 아닌 라온이었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다린이 순간 허탈한 음성을 흘렸다.

그를 보자 텍스터에 대한 고민이 씻은 듯 싹 사라진다.


“아나··· 시부레···.”


풍성했던 머리가 다시 빠지는 기분이다.














***


“······.”


도시 실리아의 영주 저택은 그 어느 때보다 조용했다.

영주를 모시던 그 많은 고용인이 다 어디 갔는지, 단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그 쓸쓸한 거리에서 집사 사울은 카리얀의 뒤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와 함께 걷고 있는 카리얀은 그리 급하지 않은지, 느긋하기만 하다.


“······.”


사울은 카리얀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자신이 어떻게 살아난 건지.

그리고 켈트라 자작은 어떻게 되었는지···.

질문할 게 정말 많았지만, 사울은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카리얀이 친절하게 대답해 줄 것 같지도 않았고 그를 배신했던 과거가 찔리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입을 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실수로라도 말꼬투리를 잡히면 귀하게 얻은 목숨을 한순간에 잃지 않을까 싶었다.


“······.”


사울은 그렇게 아무 말 없이 길을 걸었다.

싸늘한 정적.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머지않아 두 사람은 목적지로 보이는 문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은, 강철로 만들어진 문.

목적지에 도착한 사울은 그 문을 보고 입을 꾹 다물었다.

카리얀과 사울이 멈춘 곳은 다름 아닌 저택의 가장 은밀한 곳, 영주의 침실이었다.

과거 영주 켈트라 자작이 사용했던 침실.

이 침실에서 얼마나 많은 더러운 행위들이 일어났는지 잘 아는 사울로서는 영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괜히 추궁당하는 기분이랄까.

본인이 직접, 이 안에 집어넣었던 기백 명의 아이들을 떠올리자 씁쓸함이 가슴속에서 차오른다.

후회하는 것은 아니지만, 답답한 마음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사울은 얼굴을 굳히며 카리얀의 입이 열리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그러길 잠시.


‘왜 아무 말도 없는 거야···.’


아무리 기다려도 카리얀은 요지부동이었다.

아무런 제스처도 취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카리얀을 보며 사울은 의문을 품었다.


‘여기서 무엇을 기다리는 거지···? 음···?’


그때서야 사울은 카리얀이 그가 말했던 ‘로드’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울은 궁금했다.

과연, 이 로드라는 인물은 누구일까.

실론스 왕국에서 카리얀이 존칭할만한 인물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와 함께 블랙마켓을 운영하는 일곱의 귀족들은 서로 존칭으로 부를 사이가 아니었으니 제외.


‘그들 말고 누가 있지?’


일곱의 귀족을 제외한다면 왕국에 가끔 파견 나오는 대귀족밖에 없는데, 과연 제국에서 대귀족을 이런 누추한 시골까지 보낼까?

의문이 든다.

그렇다면 도대체 ‘로드’라는 인물은 누구일까.


‘딱히 떠오르는 분이 없는데···?’


아무리 사울이 뛰어나다고 해도 로드가 누구인지 짐작하기는 쉽지가 않았다.

그때, 사울의 뇌리에 떠오르는 하나의 생각이 있었다.


‘혹시···?’


사울이 생각했다.

카리얀은 분명 던전에서 행방불명됐었다.

던전에서의 행방불명은 곧 죽음이지만, 카리얀은 그 죽음에서 살아 돌아왔다.

그렇다면, 여기서 로드라는 자는 던전에서 카리얀을 구해준 은인이 분명했다.

사울은 침을 꿀꺽 삼켰다.


‘카리얀의 목숨을 살린 은인, 그리고 카리얀이 로드라고 부를 정도의 신분. 로드라는 사람은 제국의 대귀족쯤 되지 않을까?’


사울은 그렇게 로드라는 인물이 제국의 대귀족쯤 되는 인물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로드가 던전의 악마라는 사실을 전혀 떠올리지 못했다.

그것도 그런 것이.


‘천사의 축복을 받은 인간이 악마의 앞잡이 노릇을 할 리가 없지!’


천사의 축복을 받은 각성자는 천사의 부름을 받아 악마를 토벌하는 목적을 지닌다.

그런 천사의 검이 악마에게 충성을 받칠 리 만무했다.

이는 사울만의 생각이 아닌 세상에 널리 알려진 ‘상식’이었기에.

사울은 로드가 악마라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게 사울은 로드에 대해 이런저런 상상을 하면서 상념에 빠졌다.


-스르르륵.


그때, 사울의 귓가에 옷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깜짤놀란 사울은 고개를 옆으로 슬쩍 돌렸고 그곳에 있는 인물을 보고 기함하고 말았다.


‘헉! 안드로스!?’


여기서 안드로스가 웬 말인가.

카리얀이 살아있다는 것은 안드로스가 죽었다는 뜻 아니었나.


‘카리얀이 안드로스를 살려줬다고···?’


사울은 도무지 작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좌 안드로스에 우 카리얀이라니.

사울은 자신의 양옆에 시립한 두 명의 위대한 귀족을 보며 몸을 떨었다.

아무리 머리가 좋은 사울이라 할지라도 지금 상황을 이해하기엔 벅찼다.


‘둘이서 나란히 세뇌라도 당한 거야 뭐야!?’


하루아침에 과묵해진 두 귀족을 보며 사울은 바짝 긴장했다.

지금 당장 칼부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사울은 로드라는 분이 빨리 오기만을 바랐다.


“······.”


그렇게 한동안 침묵을 지키며 기다리길 잠시.

사울의 다리가 떨릴 때쯤, 침실 안에서 인기척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때가 되었음을 느낀 사울이 침을 삼켰다.

꿀꺽.

방안에서 서릿발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들어오십시오.”


먼저 움직인 것은 카리얀이었다.

일언반구도 없이 문을 열기 시작한 카리얀을 보고 사울은 속으로 육두문자를 열심히 날렸다.

적어도 경고 정도는 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카리얀은 사울의 마음을 전혀 읽어주지 않았다.

사울은 고개를 숙이며 카리얀을 따라 들어갔고 그의 뒤를 안드로스가 따른다.


“······.”


사울은 무겁게 짓누르는 방 안의 공기 때문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괜히 고개를 잘 못 들어 실수할까도 싶었고 순간 몸을 엄습하는 두려움에 눈마저 감아버리고 말았다.

사울은 무섭다고 느꼈다.

그런 자신을 지긋이 내려다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잠시 후, 묵직한 음성이 주먹을 꽉 쥐고 있는 사울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고개를 들라.”


분위기 때문일까.

아니면, 땀에 푹 젖은 긴장감 때문일까.

그의 목소리는 마치 사자의 으르렁거림과 같이 웅장하게 들려왔다.

그 위엄 서린 음성이 사울의 심장에 내리꽂혔다.

사울은 움찔 몸을 한차례 떤 후 살며시 고개를 들어 올렸다.

사울이 제일 처음 본 것은 검게 타오르는 두 개의 눈동자였다.

그의 눈은 칠흑 속에서 반짝이는 하얀 보석처럼 보이기도 했고 끝이 보이지 않는 심해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


자신도 모르게 탄성이 튀어나왔다.

사울은 급히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어두운색으로 점칠 된 옥좌에 앉아있는 그의 모습을 보고 뛰어대는 심장을 진정시키기엔 무리가 있었다.


‘뿔!’


그의 머리 위에 돋아난 두 개의 뿔을 보고 침착하긴 힘들었다.

제국의 황제가 앉을 법한 옥좌에 나른한 듯 기대앉은 그의 모습.

눈을 씻고 쳐다봐도 그는 악마였다.


“내가 악마라 놀랐는가?”


그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사울은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저 고개를 숙였다.

심장이 미친 듯이 벌렁거렸다.

방안을 가득 채운 복종의 분위기가 점점 사울을 짓누른다.

그 상황에서 사울의 머리에는 하나의 문장이 떠올랐다.


‘로드는 악마다.’


참으로 간단하고 쉬운 단어로 이루어진 문장이었지만, 사울이 이해하기에는 쉽지 않은 문장이었다.

그나마 이 상황에 처한 인물이 사울이었기에 망정이지, 다른 민간인이었다면 대번에 기절했으리라.

눈치가 비상한 사울은 심호흡을 크게 한 후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카리얀과 안드로스.

그리고 그들이 경외하는 악마가 옥좌 위에 앉아 있다.

이 상황이 가리키는 진실은 딱 하나.

사울은 빨리 결론을 내렸다.


‘내 주인은 악마다.’


자신의 주인이 될 분이 악마라는 사실을 사울은 아무 거리낌 없이 받아들였다.

순식간에 주인을 정한 사울의 눈이 충성심으로 불타오른다.

충성으로 다시 그분을 바라보자 새로운 모습이 사울의 눈에 들어왔다.

로드는 인간과 비슷한 생김새를 지니고 있었다.

악마 중에는 괴물의 형상을 한 이들이 있는 반면 인간의 형상을 한 이들도 많다고 알려져 있다.

다행히 자신의 주인은 인간의 형상을 한 악마였다.

사울은 대화가 통할 것이란 생각에 내심 안도했다.

다음으로 보인 것은 그의 등 뒤에서 뻗어 나간 칠흑의 날개였다.

주변의 빛을 모조리 빨아들이는 듯한 검은 날개에 그의 주변은 온통 검게 보였다.


‘멋있다···.’


남다른 미적 감각을 가진 사울에게 그의 모든 형상은 멋있게 다가왔다.


‘저기에 검 하나만 들려있다면 정말 완벽했을 텐데···.’


사울은 아쉬운 마음을 삼키며 주인이 입을 열길 기다렸다.

잠시 후, 그의 입이 열린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사울은 순간 데자뷰를 느꼈다.

꿈에서 겪었던 익숙한 광경에 그는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아뢰었다.


“이 미천한 종이 주인께 아룁니다···. 제 이름은 ‘사울’입니다. 평민 출신이라 성은 없사옵니다.”


사울은 쿵쾅대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대답을 마쳤다.

꽉 쥔 두 주먹에는 흥건한 땀이 맺혀간다.

곧이어 주인의 음성이 울렸다.


“사울, 네가 내게 충성을 바친다면···, 내가 살아있은 즉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이뤄주겠다. 내게 다가와 무릎을 꿇으라.”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이뤄주겠다고?

저 말은 진실일까.

아니면 악마의 속삭임일까.

사울은 생각했지만, 답을 낼 필요는 없었다.

이미 마음속에 자신의 주인을 정한 상태였기에, 사울은 그저 앞으로 나가 주인 될 자에게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릴 뿐이었다.

이 충성의 맹세가 독이 될지 날개가 될지 사울은 모른다.

다만, 제 발로 찾아온 기회를 걷어찰 정도로 그는 멍청하지 않았다.

한참전에 무릎 꿇고 있는 카리얀과 안드로스를 보고 이미 확답을 내린 상황.

사울은 엎드린 상태로 주인에게 고했다.


“미천한 종이 당신께 충성을 바칩니다.”


이에 만족한 듯 기분 좋은 목소리가 주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네게 카리얀과 안드로스에 대한 모든 권한을 양도할 터이니. 이 땅을 번성시켜 내게 받치라. 그게 네 삶의 목표요, 네 존재 가치가 될지니 나를 기쁘게 만들어라. 그리하면 너의 모든 근심을 내가 없애주리라.”

“주인의 분부를 받드나이다.”


그 말을 끝으로 주인은 눈을 감았고 사울은 그 뜻을 받들어 곧장 퇴실했다.

사울은 자신의 뒤를 따라 나오는 두 명의 귀족을 보며 웃음을 참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주인은 분명히 말했다.

카리얀과 안드로스에 대한 모든 권한을 양도하겠다고.

이는 곧 자신이 이들보다 위라는 뜻일 터.

사울은 침실의 문이 닫히자마자 카리얀과 안드로스에게 명령을 내렸다.


“지금 당장 내 귀족작위를 가져와!”

“예!”


동시에 고개를 숙이는 카리얀과 안드로스를 보며 사울은 싱긋한 미소를 지었다.

들어갈 땐 이들의 눈치를 보며 들어갔지만, 나올 때는 달랐다.

이제 거부(巨富)가 부럽지 않다.













***


“흐아앙···! 누나가! 누나가 잡혀갔어요··· 힝!”


몇 시간 전, 에나의 행방에 대해 말하는 에일을 보며 박찰선은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에일의 말을 들어보면 에나는 다행히 돼지 새끼에게 죽진 않았다.

다만···.


“무서운 아저씨들이··· 막··· 누나를 경매장에 내놓을 거라 했어요···, 아저씨! 우리 누나 살려줘요···. 흑, 흐윽,”


노예경매장은 도시에서 고작 4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을 살았던 박찰선도 아름아름 들었던 장소였다.

노예경매장, 다른 말로 블랙마켓.

박찰선은 에일이 말한 경매장이 블랙마켓이라는 것을 대번에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박찰선은 에일을 끌어안아야만 했다.

저 세계든 이 세계든 가난한 인간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고 항상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시발···! 블렉마켓이 어디지···? 그 조그만 아이가 노예로 팔려간다니···. 이 좆 같은 세상!’


박찰선은 좌절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블랙마켓이 어디에 있는지, 블랙마켓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아는 것이 전무했다.

지금 당장 달려가 에나를 구하고 싶지만, 박찰선으로서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돼지 새끼에게 이것저것 좀 물어보고 죽일 것을.


‘시발···.’


아무리 후회해도, 후회는 항상 늦는 법이다.

박찰선은 일단 에일을 달래기로 했다.


“걱정하지마, 에일! 야 인마, 울지 마! 뚝···! 형이··· 형이 누나 꼭 구해줄 테니까! 응? 형 믿지?”

“으아아아앙!”


에일을 안심시키기 위해 한 헛소리가 오히려 역효과가 났다.

더욱더 서럽게 우는 에일을 보며 박찰선은 입술을 깨물었다.


‘울지마, 시발··· 나도 너희 누나 살리고 싶단 말이야···! 젠장.’


박찰선은 그렇게 속마음을 삼키며 에일을 어르고 달랬다.


“하아···.”


이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마음만은 블랙마켓을 때려 부수고 있는데, 현실은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아무리 짱구를 굴려도 인맥도 지식도 없는 자신이 블랙마켓을 홀로 찾으러 가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와 다를 바 없었다.

그렇게 박찰선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끙끙 앓아갔다.

그때, 그의 시야에 하나의 장면이 포착됐다.

침실문을 열고 나오는 세 명의 인물과 그 침실 안에 있는 한 명의 악마.

박찰선은 순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


박찰선은 고민할 겨를이 없었다.

그는 에일을 업은 체로 곧장 달려갔다.

자신이 무슨 생각으로 라온의 앞에 당도했는지는 모른다.

그저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침실문을 열고 들어간 상태였다.


“아씨, 깜짝이야! 뭐··· 뭐야?”


악마 라온의 당황하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박찰선은 물러설 수 없었다.

지금 자신이 서 있는 곳은 낭떠러지 앞이었다.

누구든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물고 늘어져야만 했다.

박찰선은 냅다 라온의 앞으로 뛰어가 무릎을 꿇고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두근두근두근!

심장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입은 잘 움직이는 것 같다.


“라··· 라온님!”


새로 생긴 스킬 덕분일까?

어디서 이런 용기가 샘솟는지.

박찰선은 불만 가득한 라온을 향해 냉큼 읍소했다.


“라··· 라온님! 제 얘기 좀 들어주십시오! 제발, 부탁드립니다!”

“와씨, 고막 나가겠네! 이 자식이, 다짜고짜 무슨 개소리야?”


라온이 입을 열 때마다 온몸이 떨려갔지만, 그가 아니라면 박찰선이 의지할 곳은 이곳에 없었다.

이 도시의 실세로 보이는 세 명의 인간을 종으로 부리는 듯한 그를 보면 에나를 구할 길은 라온에게 바짝 엎드리는 것뿐이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자신이 라온에게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라온이 자신에게 바라는 것이 있으면 좋을 텐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라온이 박찰선의 말을 들어줄 생각이 있는 것 같다.

그가 박찰선에게 말했다.


“뭔데 그래? 사내자식이 질질 짜기나 하고 말이야, 쯧. 말해봐”


눈물을 흘리고 있었나 보다.

몰랐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 박찰선은 빨리 사정을 읊었다.

에나와 에일에 관한 이야기.

두 아이가 돼지 새끼에게 성폭행을 당한 이야기.

마지막으로 노예 경매에 관한 이야기까지.

박찰선은 두서없이 아이들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장황하게 설명했고 마지막까지 이야기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어느새 자신의 품에 안겨있는 에일을 꼭 끌어안으며 박찰선은 라온의 입이 떨어지기만을 간절히 기다린다.

머지않아, 그의 입이 열렸다.


“블랙마켓?”


박찰선에게 희망적인 단어가 그의 입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


작가의말

반지 ‘델피니엔’의 능력 하나를 깜박하고 빠트려서 추가했습니다.
추가 내용 :
-모든 상태 이상 효과 차단/무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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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블랙마켓과 7인의 망나니(3) +1 18.12.23 186 3 25쪽
46 블랙마켓과 7인의 망나니(2) +1 18.11.29 240 4 25쪽
» 블랙마켓과 7인의 망나니(1) 18.11.22 223 5 24쪽
44 약속의 반지 ‘델피니엔’(2) +1 18.11.19 253 4 24쪽
43 약속의 반지, 델피니엔(1) +2 18.11.11 248 5 16쪽
42 식민지(3) +1 18.11.06 270 5 19쪽
41 식민지(2) +2 18.10.29 268 8 12쪽
40 식민지(1) +1 18.10.22 267 6 14쪽
39 꿩 먹고 알 먹고(3) +1 18.10.21 267 7 18쪽
38 꿩 먹고 알 먹고(2) +1 18.08.21 379 6 19쪽
37 꿩 먹고 알 먹고(1) +1 18.08.14 402 10 21쪽
36 악마가 인간들의 도시를 파괴하는 방법(5) 18.08.11 412 10 18쪽
35 악마가 인간들의 도시를 파괴하는 방법(4) +4 18.08.08 444 9 24쪽
34 악마가 인간들의 도시를 파괴하는 방법(3) +2 18.08.06 420 9 21쪽
33 악마가 인간들의 도시를 파괴하는 방법(2) 18.08.03 436 8 16쪽
32 악마가 인간들의 도시를 파괴하는 방법(1) +5 18.07.29 481 11 17쪽
31 라온의 차원 침략 데뷔전(2) 18.07.26 474 11 14쪽
30 라온의 차원 침략 데뷔전(1) +4 18.07.24 468 10 21쪽
29 차원 게이트(2) +2 18.07.22 483 11 13쪽
28 차원 게이트(1) 18.07.21 502 13 17쪽
27 '충동'의 악마와 첫 번째 날개(3) +2 18.07.20 463 13 15쪽
26 '충동'의 악마와 첫 번째 날개(2) +3 18.07.19 470 12 11쪽
25 ‘충동’의 악마와 첫 번째 날개(1) 18.07.17 448 12 19쪽
24 중급 악마 vs 하급 악마(2) +2 18.07.16 477 12 15쪽
23 중급 악마 vs 하급 악마(1) +2 18.07.15 478 10 13쪽
22 다린과 선물 보따리(2) +1 18.07.14 478 11 13쪽
21 다린과 선물 보따리(1) 18.07.13 458 11 14쪽
20 라온과 라오스의 하급 악마들(3) +2 18.07.12 478 15 16쪽
19 라온과 라오스의 하급 악마들(2) +3 18.07.12 526 1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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