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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 님의 서재입니다.

타락한 천사가 던전에서 하는 일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부기스
작품등록일 :
2018.06.28 21:32
최근연재일 :
2019.01.07 01:20
연재수 :
4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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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04
추천수 :
496
글자수 :
344,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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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21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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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꿩 먹고 알 먹고(2)

DUMMY

*** 꿩 먹고 알 먹고(2) ***


라온이 카리얀과 함께 영주의 저택에 도착했을 때, 하늘은 이미 주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도시에 막 들어선 직후만 해도 해가 중천에 떠 있었는데, 어느덧 밤하늘의 별들이 반짝이는 밤이 찾아왔다.

라온은 그런 밤하늘에 떠있는 별들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니들 뭐야!? 당장 안 비켜!?”

“잠시만 대기해 주십시오. 영주님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뭐? 영주의 허락? 이 새끼들이 돌았나! 영주 데려와!”


밤하늘을 감상하는 라온의 곁에서 한참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지만 라온은 못 본 채 했다.

저 하늘 위의 무수히 많은 별을 보고 있자니 흐릿한 기억 속의 ‘여인’이 문득 떠올랐다.

그녀도 저 하늘의 별들처럼 아름답게 빛났는데······.

그녀의 얼굴을 라온은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그녀에게서 풍기는 향기와 분위기는 똑똑히 기억났다.

엘린을 처음 만났을 때, 떠오른 기억 속의 그 여인을 라온은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손에 닿을 듯하면서도 닿지 않는 그 여인은 첫사랑처럼 라온의 가슴에 남아 있었다.

그녀를 생각할 때면 라온은 늘 가슴이 답답해지곤 한다.


“후우······.”


라온은 진한 한숨을 내 쉰 후 고개를 흔들었다.

항상 이런 식으로 생각나곤 하는 그녀가 누구인지 정말 궁금했지만, 알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 있을 때가 아니었다.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실랑이도 라온에게 있어 중요했기에 멍하니 있을 수만은 없었다.

라온은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후 아직까지 몸싸움을 벌이고 있는 카리얀과 천사의 하수인들을 바라보았다.


“흠.”


카리얀과 함께 영주의 저택에 도착했을 때, 저 하수인들이 나타나 카리얀의 발걸음을 막아섰다.

카리얀은 자신을 막아선 그들에게 불같이 화를 냈고 저들은 카리얀이 화를 냄에도 불구하고 길을 막고 비키지 않았다.

도시 실리아 내에서는 카리얀의 발걸음을 막을 수 있는 이는 없었다.

아니, 없어야 했다.

하지만, 도시의 실질적인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카리얀을 보고도 그들은 무덤덤하기만 하다.

카리얀의 반응을 보아 저들은 카리얀이 알지 못하는 인물들이었다.

그리고 저들은 카리얀만큼은 아니지만, 에론에게 필적할 만한 강자들이었다.

라온은 저 천사의 하수인들의 역량을 헤아리며 생각을 이어갔다.


‘켈트라 자작이 반란을 도모할 가능성은···?’


없다.

카리얀에게 들은 도시 실리아의 영주 켈트라 자작은 제대로 멍청한 녀석이었다.

듣는 것만으로도 무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허수아비 같은 녀석이기에 라온은 그를 도시 점령 계획에서 배제할 정도였다.

그런 켈트라 자작이 카리얀이 돌아오지 않았다고 해서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카리얀이 자리를 비운 그 짧은 시간에 이렇게 강한 천사의 하수인을 그 켈트라 자작이 구할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되지도 않고.


'그러면······. 켈트라 자작이 아니라면······.'


이 정도의 하수인들을 보유할 정도면 카리얀과 맞먹는 인물이 도시에 왔다고 생각하는 게 맞다.


‘카리얀과 견줄만한 사람······. 같은 블랙마켓의 간부 정도?’


카리얀의 발걸음을 막을 수 있을 만한 인물은 실론스 왕국 내에서 같은 계급의 블랙마켓 간부 일곱밖에 없다.

실론스 왕국의 왕족이라 해도 블랙마켓의 간부를 막아서진 못한다고 했으니까.


“간부라······. 계획을 조금 수정해야 하나···?”


말 그대로 불청객이 나타났다.

계획의 2단계인 도시 점령 작전이 생각보다 조금 힘들어질지도 모르겠다.

원래는 카리얀을 대동한 채 저택에 입장하기만 하면 끝나는 계획이었다.

저택에 도착한 순간 모두가 라온을 향해 고개를 조아릴 것이고 그 순간 도시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랬었는데,

뜬금없이 나타난 불청객 때문에 조금 고생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뭐, 고생이라고 해봤자 몸을 조금 움직이는 것 정도? 딱히 문제 될 건 없네.’


카리얀 정도의 강자가 나타났다고 해서 문제 될 것은 1도 없다.

아니, 문제 되기는커녕 이는 라온에게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라온의 예상대로 저택에 들어와 있는 인물이 정말 블랙마켓의 간부라면 그는 불청객이 아니라 반가운 손님이었다.

그를 인형으로 만든다면 블랙마켓을 점령하는 일이 많이 수월해질지도 모른다.

카리얀 혼자 빨빨거리며 돌아다녀야 했던 일에 그를 지지해 줄 동료가 추가된다는 것이다.

이는 카리얀의 행동 범위가 몇 배는 더 넓어진다는 것을 뜻했고 계획된 시간이 단축된다는 것을 뜻했다.


‘호갱님이 굴러들어오셨네?’


라온은 기분좋은 웃음을 흘렸다.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왔다.

그를 세뇌한다면 세번째 계획은 분명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라온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후 곧 있으면 나타날 호갱님을 기쁜 마음으로 기다렸다.


"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라온의 추리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듯 카리얀에 필적할 정도의 하수인이 나타났다.

그 ‘청년’은 저택의 입구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라온은 그를 주시했다.

실랑이를 벌이고 있던 이들도 머지않아 그 청년을 발견한다.


“카리얀님이라고 해서 칼을 뽑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고정하십시······.”

“당장 비켜라. 마지막 경고다! 그렇지 않으···!”


카리얀과 천사의 하수인이 실랑이를 벌이다 말고 저택 안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리곤 너나 할 것없이 눈동자를 크게 키웠다.

카리얀은 자신을 향해 뛰어오는 청년을 단숨에 알아보곤 그를 향해 벌컥 소리쳤다.


“안드로스!?”


카리얀이 바라본 곳에는 회색의 곱슬머리 청년 안드로스가 무서운 속도로 살기를 뿔뿔 흘리며 뛰어오고 있었다.

카리얀 만큼이나 강한 마력을 지녔으며 카리얀보다 더 귀티 나는 인물.

라온의 추리는 정확했다.

블랙마켓의 노예거래를 담당하는 간부 안드로스가 그곳에 나타났다.


“안드로스! 네가 어째서···!?”

“카리얀···! 정말 살아 돌아왔나! 젠장, 필요 없다···! 그냥 죽어라···!”


안드로스라고 불린 블랙마켓의 간부는 카리얀과 안부를 나눌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 같다.

그는 허리에 찬 세검을 잽싸게 집어 들더니 달려오던 상태 그대로 카리얀을 들이받았다.

날카로운 세검이 카리얀의 목을 향해 휘둘러진다.

카리얀도 그에 대응하기 위해 허리 위에 있는 두 자루의 단 검을 급히 꺼내 들었다.

채 - 챙!


“크흑···!”


카리얀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깔끔하게 호선을 그리고 떨어진 세검이 붉은 선혈을 그려냈고 카리얀은 안드로스의 공격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단검으로 힘을 상쇄시키려 했지만, 역시 무리였다.

아슬아슬하게 치명상은 면했지만 목의 살점 일부가 떨어져 나가 진득한 피를 뿜어냈다.

안드로스는 그런 카리얀의 상처를 보고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듯 재빨리 주변의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카리얀을 죽여!”


안드로스가 카리얀을 공격한 직후 전투를 예감한 그의 부하들이 지체없이 카리얀을 향해 달려들었다.

마력을 두른 단검과 표창이 카리얀의 급소를 노렸고 창과 검들이 매섭게 쇄도했다.

카리얀은 무서운 기세로 다가오는 살검들을 몸을 날려 피해 내려했지만, 적들의 공격이 끊임없이 밀려온다.


“젠장···!”


그들의 합격은 생각보다 체계적이었다.

서로의 움직임이 한 몸을 이루듯 매끄럽게 연결되었으며 서로의 공격이 방해되지 않았다.

방해되기는커녕 그들의 합격은 시너지효과를 불러일으켰다.

결국 카리얀의 어깨에 날카로운 화살이 틀어박히고야 말았다.


"큭···!"


카리얀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원형진을 짠 안드로스와 부하들이 천천히 카리얀을 압박했다.

카리얀은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적들의 공격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아슬아슬하게 피하기 바빴다.

상처는 계속해서 늘어났고 조금이라도 마음을 놓았다간 목숨을 잃을 위기의 순간이 끊임없이 만들어졌다.

본래의 카리얀이었다면 반격을 시도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라온에게 세뇌당한 카리얀은 본 실력을 백분 발휘하지 못했다.

카리얀의 허벅지에 긴 자상이 생겨났다.


"윽···!"


카리얀이 비틀거리며 힘겹게 다시 한번 몸을 날렸다.

마력을 머금은 병장기들이 쉴세없이 쇄도해 온다.

라온은 멀지 않은 거리에서 그런 카리얀의 처절한 몸부림을 묵묵히 지켜봤다.

그리고 조용히 읊조렸다.


“생각보다 전투력이 많이 감소했네······.”


급박한 카리얀의 상태와 대조적으로 라온의 입에서 무덤덤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라온은 세뇌를 당한 인간의 전투 능력이 얼마나 감소하는지에 대해 정확히 판단할 필요가 있어 전투에 가담하지 않았고 카리얀을 관찰하고 있었다.

라온이 전투에 참여한다면 쉽게 적들을 무릎 꿇릴 수 있겠지만, 이런 좋은 실험기회를 놓칠 그가 아니었다.

저 안드로스라는 인간뿐만 아니라 이번 차원 침략 이후로도 다양한 천사의 하수인을 대상으로 세뇌를 진행해야 했기에, 표본은 많을수록 좋았다.

라온은 카리얀이 죽기 직전에 몰릴 때까지 그의 전투를 관찰했다.

챙! 챙! 챙!


“크흑···! 빌어먹을, 안드로스! 이 개자식이···!”

“죽어라, 카리얀! 네가 설 자리는 더 이상 없다!”


안드로스가 온 힘을 다해 세검을 휘둘렀다.

카리얀은 온몸에서 피를 흘려대며 죽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라온은 그들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머지않아 실험의 결과를 정리할 수 있었다.


“20프로 정도인가······.”


던전에서 카리얀을 최초로 마주했을 때와 비교해 카리얀의 전투력은 대략 80퍼센트 정도로 떨어졌다.

무려 20퍼센트나 되는 능력치가 감소한 것이다.

라온은 죽지 않기 위해 애쓰면서도 라온의 도움을 갈구하지 않는 카리얀을 바라보며 생각을 이었다.


‘전투력 감소율을 줄일 순 없을까···?’


생각보다 너무 많이 약해진다.

세뇌를 당한 천사의 하수인이 전투력을 보존할 수만 있다면, 라온의 던전 전력은 폭발적으로 늘어날 텐데······.

20퍼센트라는 전투력 감소율이 라온은 너무 아쉬웠다.

아직 개선시켜야 될 사항이 너무 많았다.


“칫.”


라온은 아쉬운 마음을 애써 달래며 피 칠갑이 된 카리얀을 구하기 위해 걸음을 내디뎠다.

저대로 더 방치했다간 정말 죽을 것 같았다.


'에이스 카드를 이런 곳에서 버릴 순 없지.'


라온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후 카리얀의 목을 치기 위해 세검을 높이 들어 올린 안드로스에게 말했다.


“거기까지 하지.”


마력을 담은 라온의 목소리가 카리얀을 둘러싼 적들에게 똑똑히 틀어박혔다.

라온은 땀에 푹 젖은 회색 머리를 거칠게 늘어뜨린 안드로스에게 한 발 한 발 앞으로 다가갔다.

안드로스는 그런 라온이 고까운지 눈살을 찌푸리며 신경질 냈다.


“넌 뭐야···? 넌 또 뭔데 방해하고 지랄이야!? 시발······. 별 같잖은 게 자꾸······.”


안드로스가 김이 샌 듯 세검을 떨구며 이마를 짚었다.

지금 막 빌어먹을 카리얀을 죽이려고 했는데 웬 후드를 눌러쓴 병신 같은 자식이 처형을 방해하니 짜증이 날만 했다.

라온은 그런 안드로스를 보며 더 화내라고 씨익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러곤 허리춤에 있는 유니크 검 ‘글라인’에 손을 가져다 댔다.

잔챙이들을 잡기 위해서는 굳이 ‘레바테인’을 꺼낼 필요조차 없다.

이들을 무릎 꿇리는데 있어 글라인은 충분하다 못해 넘쳐날 것이다.

스릉!

시원한 울림과 함께 글라인이 검집에서 뽑혀 나왔고 눈부신 존재감을 표출한다.

검신을 들어낸 글라인을 보고 안드로스와 떨거지들이 순간 멈짓했다.


“뭔······.”


검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봐도 ‘글라인’은 명검 중의 명검이었다.

강철도 종잇장처럼 베어낼 수 있다는 명검 글라인을 보는 저들의 반응도 이해가 된다.

안드로스조차도 유니크 검은 구경하기 힘든 물건일 것이다.

라온은 멍하니 글라인을 마주하는 안드로스에게 미소를 유지하며 질문을 돌려줬다.


“그러는 넌 누구니?”


카리얀에게 들어서 블랙마켓에 일곱의 간부가 있다는 사실과 그들이 담당하는 업무에 대해선 잘 알지만, 그 일곱 간부에 대한 정확한 생김새와 성격에 대해서는 새겨듣지 않았다.

그래서 라온은 안드로스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인형이 될 그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라온은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궁금증을 내보이며 천천히 걸어갔다.


“뭐··· 뭐···?”


라온의 질문에 안드로스가 말을 더듬었다.

대뜸 자신이 누구냐고 물어 황당한 걸까.

그의 눈썹이 치켜세워 진다.

안드로스가 중얼거렸다.


“이런 빌어먹을 새끼들이······. 뭐가 어쩌고 저째···? 내가 누구냐고···? 별 같잖은 새끼가 감히···! 이놈이나 저놈이나 나를 뭐로 보고···!”


후드 밖으로 드러난 라온의 의미심장한 입술을 본 안드로스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씩씩거리는 콧김을 보건대 라온의 행동에 제대로 뿔이 난 것 같다.

안드로스가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힘껏 소리쳤다.


“저 새끼 당장 잡아 와! 내 앞에 당장 무릎 꿇려! 이 시발새끼!”


안드로스의 마력을 담은 일갈이 저택 부지에 크게 울려 퍼졌다.

하지만, 아쉽게도 화난 안드로스의 말을 들어줄 부하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그곳에 있는 것이라곤 공포를 마주한 겁쟁이들뿐.

그의 부하들은 이미 어느샌가 흩뿌려진 라온의 공포에 찌들어 두려움에 한껏 몸을 떨기 바빴다.


“뭐··· 뭐 하는 거냐, 너희들! 뭐 하는 거야!”


뒷걸음질 치며 무기를 떨어뜨리는 부하들을 보며 안드로스가 당황했다.

라온은 안드로스가 당황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꾸준히 앞으로 전진했다.

라온의 번뜩이는 두 눈이 안드로스를 직시한다.


“어··· 어······.”


그 순간, 안드로스는 온몸에 돋아나는 소름과 이유 모를 떨림을 느껴야만 했다.

두 다리가 땅에 뿌리를 내린 듯 움직여지지 않았고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빙글빙글 도는 감각에 안드로스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안드로스는 이게 무슨 일인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몸이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낯설게 느껴졌고 마치 영혼이 신체에서 빠져나가 버린 듯한 기분이었다.

뭔가 잘못됐다.

안드로스는 자신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는 갈색 후드의 남성을 마주하며 두려움에 빠져들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이고 저 사람은 누구이기에······.

안드로스는 더 이상 생각을 잊지 못했다.

그는 본능에 몸을 맡긴 채 떨리는 입술을 가까스로 열었다.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오··· 오지··· 마······.”

“네가 오라고 하지 않았나.”


라온은 주변에서 끓어오르는 공포의 기운을 만끽하며 글라인을 촥 하고 내 뻗었다.

그러자 안드로스가 움찔하고 심하게 몸을 떤다.

라온에게서 흘러나오는 짙은 검정의 기운이 주변에 자욱하게 깔렸고 저택 내에 있는 천사의 하수인은 모두 바닥을 기어다니기 시작했다.

라온은 그런 하수인들을 뚫고 안드로스의 앞에 도달했다.


“아······. 아······.”


여느 하수인들과 마찬가지로 안드로스도 라온의 공포를 견뎌내지 못했다.

라온은 심하게 몸을 떨어대는 안드로스를 바라보며 그에게 강요했다.

카리얀처럼 너도 덤벼봐라! 어서 싸워!

짙은 공포의 기운이 안드로스를 잠식한다.

안드로스는 라온의 공포를 더는 견디지 못하고 그에게 무작정 달려들었다.

안드로스의 세검이 라온을 향해 떨어진다.


“으··· 으아아아아아!”


땀으로 흥건한 회색 머리카락을 흔들며 안드로스가 다크서클 진 두 눈을 번뜩였다.

하늘 위로 쭉 뻗어진 세검이 라온을 두 동강 내겠다는 듯 떨어졌고.

라온은 자신을 향해 떨어지는 안드로스의 세검을 무심한 듯 쳐다보며 글라인을 한손으로 가볍게 휘둘렀다.

안드로스의 세검이 글라인의 검날을 타고 땅바닥에 그대로 떨어진다.

푹!

너무도 간단하게 라온은 안드로스의 공격을 흘려보냈다.

이에 순간 무게 중심을 잃은 안드로스가 휘청거리며 바닥에 그대로 엎어졌다.

라온은 꼴사납게 넘어진 안드로스를 보며 혀를 찼다.

너무 시시하다.

라온은 시간을 끌지 않고 깨끗하게 드러난 그의 복부를 그대로 발로 걷어 차버렸다.

쾅!

큰 소리와 함께 묵직한 감각이 라온의 발끝에 맴돌았다.

축구공처럼 뻥 차인 안드로스가 저 멀리 날아가더니 저택의 벽면에 부딪혔고 또 한 번 굉음을 만들어냈다.

안드로스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크헉···!”


안드로스가 붉은 핏물을 한 바가지 뿜어냈다.

장기가 터져버린 것일까?

안드로스는 미칠 것만 같았다.

감당하기 힘든 통증이 복부를 타고 올라왔고 복부 위에 큰 돌이 올라와 있는 것처럼 몸을 짓누르는 압박감이 심하게 다가왔다.

힘껏 소리치고도 싶었지만, 숨이 턱 막힌 듯 비명조차 제대로 새어 나오지 않았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싸움이 끝났다.

그가 어떻게 자신의 공격을 흘려냈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안드로스가 아는 것이라곤 이제 자신은 죽었다는 사실뿐.

카리얀이 어떻게 살아 돌아왔는지.

저런 괴물이 어디서 튀어나왔으며 어째서 이곳에 카리얀과 함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이제 궁금하지도 않았다.

안드로스는 그저 이 말도 안 되는 통증이 사라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돈과 권력으로 항상 편한 길만 걸어왔던 안드로스다.

그로서는 이런 고통이 익숙하지 않았다.

안드로스의 두 눈에서 투명한 물방울이 방울방울 떨어진다.


“그러게 내가 웃을 때 대답을 잘 했어야지.”


라온은 바닥에 몸을 웅크린 채로 꺽꺽대는 안드로스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안드로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공포에 라온은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라온은 그와 눈을 마주하며 후드를 조심히 들어 올렸다.

두 개의 아름다운 검은색 뿔이 세상에 드러난다.

안드로스는 자신 앞에 느닷없이 나타난 악마를 마주하며 미친 듯이 쿵쾅대는 심장을 느껴야만 했다.


“너무 걱정하지는 마.”


라온의 손이 안드로스를 향해 조용히 뻗어 나갔다.

안드로스는 두려운 마음에 눈을 꼭 감았고 덜덜 떠는 그의 몸짓이 공포가 되어 라온의 활력이 된다.

라온은 그런 안드로스를 보며 씨익 웃었다.

그리고 그에게 속삭였다.

라온의 목소리가 안드로스의 귀에서 서서히 메아리친다.


“아프진 않을 거야······.”


안드로스의 기억은 거기에서 멈췄다.

진득한 어둠의 바다에 빠져버린 안드로스는 그 상태 그대로 의식을 잃었고 여지없이 망망대해와 같은 공포의 바다에 천천히 잠식되어 갔다.

호갱님이 그렇게 라온의 손아귀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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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악마가 인간들의 도시를 파괴하는 방법(2) 18.08.03 436 8 16쪽
32 악마가 인간들의 도시를 파괴하는 방법(1) +5 18.07.29 481 11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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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라온의 차원 침략 데뷔전(1) +4 18.07.24 468 10 21쪽
29 차원 게이트(2) +2 18.07.22 483 11 13쪽
28 차원 게이트(1) 18.07.21 502 13 17쪽
27 '충동'의 악마와 첫 번째 날개(3) +2 18.07.20 463 13 15쪽
26 '충동'의 악마와 첫 번째 날개(2) +3 18.07.19 470 12 11쪽
25 ‘충동’의 악마와 첫 번째 날개(1) 18.07.17 448 12 19쪽
24 중급 악마 vs 하급 악마(2) +2 18.07.16 477 1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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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라온과 라오스의 하급 악마들(2) +3 18.07.12 526 1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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