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거북이 님의 서재입니다.

타락한 천사가 던전에서 하는 일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부기스
작품등록일 :
2018.06.28 21:32
최근연재일 :
2019.01.07 01:20
연재수 :
48 회
조회수 :
25,299
추천수 :
496
글자수 :
344,101

작성
18.08.08 21:10
조회
443
추천
9
글자
24쪽

악마가 인간들의 도시를 파괴하는 방법(4)

DUMMY

*** 악마가 인간들의 도시를 파괴하는 방법(4) ***


차원 게이트가 발생한 지 30일째가 되는 날.

라온은 차원 게이트 앞에 모인 일행들을 향해 말을 흘렸다.

드디어 ‘외출’을 시작한다.


“자, 준비됐어?”


라온이 고개를 돌린 곳에는 중무장을 하고 있는 카리얀과 에론이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또 그들의 옆에는 허름한 가죽 갑옷을 입고 있는 박찰선이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힘차게 대답했다.


“네··· 넷! 준비 끝났습니다!”


아직까지 많이 얼떨떨한지 차원 난민 박찰선의 대답에는 어색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는 힐끗힐끗 라온의 눈치를 살피면서 옆에 있는 에론을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는데.

한쪽 눈으론 자신을, 반대쪽 눈으론 에론을 보는 있는 그의 눈에 라온은 정말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박찰선이 왜 저러고 있는지 알고는 있다.

라온은 에론에 대한 복수심을 그에게 직접 전해들었다.

하지만, 그가 에론을 증오한다고 해서 라온의 장기 말이라고 할 수 있는 에론과 싸우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둘이 싸워서 에론이 망가지기라도 한다면 계획에 큰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두들겨 맞을게 뻔해.’


둘이 싸움을 붙여도 박찰선이 이길 것 같진 않았다.

그래서 라온은 그들의 은원을 풀어주지 않았다.

한쪽 눈은 순한 양처럼, 다른 한쪽 눈은 화난 도깨비처럼 치뜨고 있는 박찰선을 바라보며 라온은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을 회상했다.








***


“착하다···?”

“사··· 살려··· 살려주세요······. 으으으······.”


라온이 그를 치료해주기 위해 다가갔을 때, 박찰선은 라온의 작은 행동에도 벌벌 떨기만 했었다.

라온의 손이 박찰선에게 뻗어 나갈수록 그의 몸은 점점 둥글어져 갔다.

그에게 공포를 주입하지 않았는데도 박찰선은 자기 혼자서 공포를 열심히 생성해 내고 있었다.


"허어······."


라온은 그런 박찰선의 맛있는 공포를 맛보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인간들은 왜 이렇게 하나같이 나약한 것인지 모르겠다.

라온은 엘린에게 부탁해 ‘하급 체력회복 물약’을 건네받은 후 그를 치료하기 위해 움직였다.


----------

[하급 체력회복의 물약(특별)]


생명체의 재생력을 극도로 높여준다고 알려진 알카트로스 잎사귀와 각종 치료제를 혼합하여 만든 체력회복의 물약이다.

저주나 독은 해소할 수 없지만. 깊은 상처는 물론 부러진 뼈를 붙이는 데 큰 효과를 발휘한다.

하급 체력회복의 물약에는 마취 효과가 없어 치료하는 과정에서 크나큰 고통이 따르니 중급 이상의 물약을 구입하지 못하는 당신은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고통을 감내해야 하리라.

생명체의 체력 재생만을 높이기 때문에 상처 자국이 남는 게 큰 단점이라고 할 수 있다.

치료과정에서 발생하는 고통과 상처 자국을 신경 쓴다면 돈을 왕창 벌어 중급 이상의 체력회복 물약을 구입하는 것을 권장한다.


* 물약을 많이 사용할수록 고통은 배가 된다.

----------


“음, 이거 세 병정도면 괜찮으려나?”


라온은 엘린에게 건네받은 하급 포션의 설명을 읽으며 생각을 읊조렸다.

한 병에 들어있는 포션의 양을 보건데 박찰선의 만신창이가 된 신체를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세 병 정도가 효과적이리라.

하급 포션의 사용 숫자만큼 고통이 커질 수 있다고는 하는데······.


‘뭐······.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


라온은 빠르게 결론을 내리곤 포션의 뚜껑을 따버렸다.

몸에 좋을 것 같은 한약 냄새가 진득하게 퍼져나간다.


"흐으윽···! 흐윽···!"


그때, 박찰선이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붉디붉은 액체가 든 병과 그곳에서 새어 나오는 알싸한 향기를 맡으며 박찰선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드디어 라온의 진심을 알아주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라온이 자신을 잡아먹는다고 생각한 것일까.

라온은 더 이상 아랑곳하지 않고 병을 들어올렸다.

이제는 인간의 행동에 하나하나 고민하고 싶진 않다.


“야, 아파도 참아라?”

“흐으윽···. 제발 살려주세······. 끄···! 끄아아아악···!”


라온은 체력회복 물약 세 병을 박찰선에게 냅다 들이 부어버렸다.

진득한 한약재 냄새가 사방에 퍼지면서 뿌연 증기가 피어오른다.


“끄어어억···! 끄어어어억···! 끄억···!”


붉은 물약을 한껏 뒤집어쓴 박찰선이 소금에 저려진 미꾸라지처럼 발딱거리기 시작한다.

예상한 것보다 치료에 따른 고통이 큰 것 같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꺾인 관절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찢어지고 멍들었던 피부가 아물어 간다.

그리고 10분 정도 지난 시점에서 새하얀 증기가 뚝 끊기며 박찰선의 몸부림이 멈췄다.

박찰선은 상처를 치료하는데 체력을 다 써버렸는지 바닥에 쓰러져 한참을 헐떡였다.

그 모습을 관찰하며 라온은 엘린과 대화를 나눴다.


“엘, 효과 괜찮은데?”

“조금 고통스러워 보이지만······, 전사들에게 보급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다린과 상의해 물량을 확보해 보겠습니다.”

“오케이.”


박찰선의 몸에 가득했던 시퍼런 멍 자국과 팅팅 부어있던 얼굴이 가라앉았다.

그리고 부러지고 꺾인 뼈가 제대로 붙었다.

하급 체력회복 물약의 효과는 상당했다.

단 세 병으로 죽기 직전의 신체가 말끔하게 치료되었다.

하급 포션이라 잘린 신체는 재생되지 않겠지만, 찢어진 피부나 부러진 뼈는 잘 붙는다.

하급 체력회복 물약을 처음 사용해 본 라온은 조금 전의 실험결과에 퍽 만족했다.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치료에 따른 고통이 동반된다는 것 정도.


‘중급 물약도 하나 사놔야겠네.’


돈이 있는데 저런 고통을 감내하면서 저런 식으로 치료하고 싶지는 않았다.

실험을 마친 라온은 생각을 정리한 후 축 처진 박찰선을 어깨에 들쳐메곤 인간 노예를 관리하는 인간 박춘식에게 데려갔다.

이 인간이 왜 이러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또······.

거기까지 생각을 하다가, 라온은 문득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왜 자신은 이 인간 하나를 위해 이러고 있는 것일까.

박찰선이라는 인간은 라온에게 있어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낯선 인물이었다.

라온의 던전에 쳐들어온 다른 천사의 하수인과 다를 바 없는 침입자였다.

그런데 왜 자신은 이 녀석을 위해 구해주고 물약까지 갖다 주며 그를 걱정하고 있는 것일까.

그의 모습을 보고 고블린에게 두들겨 맞던 과거의 자신과 겹쳐 보여 연민이라도 느낀 걸까.


‘아니면 나는 이 녀석에게 아량이라도 베풀어 만족이라도 느끼고 싶었나···?’


라온은 이 이유 없는 호의에 딱히 답을 낼 수 없었다.

그저 몸과 마음이 시키는 대로 움직였을 뿐이었다.

라온은 알 수 없는 ‘운명’이 자신을 인도하는 것만 같은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이 남자가 내게 가치가 있을 수 있다···? 흠······. 모르겠네.’


라온은 떠오르는 의문을 곱씹으며 박춘식을 불러냈다.

의문은 천천히 해결해 나가면 될 것이다.

인간 한 명을 살리고 죽이는 것은 자신에게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일단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행동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일단 지켜봐야겠어.”


그렇게 라온이 생각을 정리할 때쯤, 박춘식이 라온의 부름에 헐레벌떡 뛰어왔다.

과거에 삐쩍 말라 있던 노인은 이제 없었다.

박춘식은 혼자 좋은 것을 많이 먹었는지 웬만한 젊은이들 뺨칠 정도로 기골이 장대해져 있었다.

곡괭이질로 단련된 우락부락한 근육.

박춘식은 분명 천사의 하수인이 아니었을 진데.

신체가 날이 가면 갈수록 좋아지는 것 가다.


'체질인가?'


F급 하수인 박찰선 정도는 그냥 씹어먹을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박춘식이 다가와 라온에게 고개를 숙였다.


“부··· 부르셨습니까···!”

“어, 춘식이. 얘 좀 봐줄래? 상태가 이상한 거 같아서. 얘가 왜이러는지 나는 도저히 모르겠네.”

"예···?"


라온이 말을 끝맺은 순간, 박춘식의 동공이 살짝 흔들렸다.

정말 모르는 거냐는 듯이 라온을 한 번 훑어본 박춘식은 라온의 앞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던 박찰선을 마주했다.

그리고 잠시 후.

한참 고심을 한 박춘식이 박찰선을 향해 신기한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 당신, ‘한국’ 사람이오?”

“으으으으······. 으에···?”


겁에 질려 있던 박찰선은 박춘식의 입에서 흘러나온 한국이라는 말에 순간 반응했다.

동태눈깔처럼 심하게 흐려져 있던 그의 동공이 밝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한국.

그곳은 예전에 박춘식에게 들었던 아주머니 이선희의 고향이었다.

이선희 아줌마가 지켜냈던 인간 노예들을 돌려보내 주겠다고 약속했던 장소였다.

라온은 박찰선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박춘식을 향해 물었다.


“한국? 춘식이, 거긴 아줌마 고향 아니었어? 네가 아는 사람이야?”

“아··· 아닙니다. 확실한 건 아닌데···. 그······ 그냥 고향 사람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물어봤습니다. 피부색도 그렇고 검은 머리카락도 그렇고, 또 라온님도 아실지 모르겠지만 얼굴 생김새가 저희와 비슷합니다. 인간마다 생김새가 조금씩 다르거든요.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에게서 고향의 향기가··· 났습니다. 타지에서 고향 사람을 만났을 때의 기분 같았달까요······.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 사람에게서 익숙한 향기가 납니다. 예.”


박춘식의 말을 들은 라온은 박찰선을 한 번 꼼꼼히 훑어봤다.

자세히 보니 이번에 침략한 천사의 하수인과 생긴 게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하다.

인간들 사이에서도 종을 구분한다는 사실을 생각해본 적이 없는 라온이었다.

박춘식은 바닥에서 끔벅거리고 있는 박찰선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라온님이 말씀하신 이 행성에서도 저희와 같은 동양인이 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만, 이 사람의 생김새만 봐서는 저희와 비슷하군요. 이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알 것 같습니다.”


라온은 박춘식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박찰선도 이 대화를 듣고 있었는지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의 중얼거림을 들은 라온은 잠시 박춘식과의 대화를 멈추곤 그의 행동을 살폈다.


“고향···? 한··· 국···? 대한민국···? 어······. 어···? 어···!”


박찰선이 박춘식을 바라보더니 순간 튀어나올 정도로 눈이 커졌다.

그도 박춘식과 마찬가지로 고향 사람에 대한 향수를 느낀 것일까.

박찰선은 박춘식을 인식하자마자 그에게 달려들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졌다.


“하··· 할아버지···! 한국 사람입니까···!? 한국 사람이에요···!? 어··· 어떻게···? 한국 사람이 던전에? 이런 일이···? 아··· 아니! 아니! 사··· 살려주십시오···! 전······ 전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요···! 저는 던전을 공략하러 온 게 아니라 그게···! 아니···! 제발, 살려주세요! 전 고향에 어머니가 있습니다! 어머니를 만나고 싶어요···! 제발, 살려주세요···! 제발···! 할아버지!”

“아··· 아니······. 자네 왜 이러나······. 나··· 나에게 이러지 말게···! 나···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나한테 이러지 마!”


박춘식에게 들러붙은 박찰선은 울고 불며 살려달라고 애원했고 박춘식은 그런 박찰선을 떨어뜨리기 위해 노력했다.

박춘식 또한 라온의 눈치를 보는 식객이었다.

박춘식은 라온을 앞에 두고 어찌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한 채 눈치를 계속해서 살피며 안절부절못했다.

잘 짜인 콩트같이 재밌는 광경에 라온은 웃음을 흘렸다.

그리곤 라온은 박춘식에게 고개를 끄덕여줬다.

식객이 한 명이 늘어나든 두 명이 늘어나든 일만 제대로 한다면 상관없는 일이다.


“춘식이, 너를 좋아하는 것 같으니 잘됐네. 네 고향 사람이라고 하니, 네가 이 녀석을 잘 보살펴봐. 너희를 고향에 데려다줄 때 같이 돌려보내면 되겠지.”


라온의 말에 박춘식이 벙찐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박춘식도 이런 낯선 타지에서 고향 사람을 만날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라온도 자신의 던전 입구에서 두들겨 맞고 있는 녀석이 이선희 아줌마와 같은 고향 사람이란 것을 알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의 황당함이 이해된다.

그렇게 라온은 박찰선을 박춘식에게 떠넘긴 후 엘린과 함께 코어룸으로 이동했다.


‘한국이라······.’


뭔가 자신은 한국이란 나라에 인연이 깊은 것 같다.

처음 눈을 뜬 곳에서 만난 인간들도 한국 사람들이었고 차원 게이트가 열린 후 처음 만난 인간도 박찰선이라는 한국인이었다.

이런 게 바로 운명이라는 것일까.

누군가 라온을 한국이라는 나라로 인도하는 것만 같았다.

도대체 그 나라에 뭐가 있길래.

아무리 고민해봐도 궁금증만 더 늘어날 뿐이었다.

답은 한국이라는 나라에 가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 가야하는 이유가 하나 늘었다.

그로부터 이틀 뒤, 박춘식은 박찰선과 함께 라온을 찾아왔고 박찰선은 자신이 바라는 사소한 일을 부탁했다.


“저··· 도시 안에 제가 돌봐주던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 혹시 허락만 해주신다면 그 아이들에게 작별 인사라도 하고 싶습니다···. 저랑 처지가 비슷한 아이들이거든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건 아니지만, 골목을 전전하는 그 아이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정이 들 대로 들었다고 한다.

이대로 떠나면 후회할 것 같다고 말한 박찰선은 박춘식과 함께 고개를 깊이 떨구었다.

노예 주제에 무슨 부탁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라온은 아주머니와 추억도 생각나고 딱히 자신의 계획에 방해되는 부분은 없어 그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었다.

만약 그가 다른 마음을 먹었다고 해도 별 상관은 없었다.

박찰선이 이런 식으로 도망간다고 해서 그에게 이득이 되는 부분은 하나도 없을뿐더러 이제 곧 있으면 차원 게이트가 개방되는 날이기 때문에 걱정될 건 없었다.

차원 게이트가 개방되는 순간, 차원 침략뿐만 아니라 후퇴도 가능하다.

그가 도망간 후 강력한 천사의 하수인을 데려온다고 해도 도망치면 그뿐이었다.


‘뭐···. 저 녀석이 도망칠 것 같진 않고.’


그렇게 해서 도시로 떠날 인원이 정해졌다.

도시 실리아를 한 손에 꽉 잡고 있는 카리얀과 그를 지원해줄 브로커 에론.

그리고 차원 난민 박찰선까지.

라온을 포함한 네 명의 인물이 도시 실리아를 향해 떠나게 되었다.








***


라온은 차원 게이트를 앞에 두고 마중 나온 엘린과 경비대장 아이론, 그리고 나머지 간부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갔다 올게!”

“라온님, 잘 다녀오십시오. 던전은 제가 잘 관리하고 있겠습니다.”

“주군! 이 아이론! 주군이 믿음에 힘입어 던전을 철통같이 방어하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엘린부터 시작해 아이론 그리고 간부들이 힘차게 자신들의 의지를 표현했다.

라온은 이 든든한 부하들을 바라보며 함께 웃어주었다.

이들 덕분에 안심하고 외출을 할 수 있다.

라온은 그렇게 그들과 인사를 마무리하고는 고개를 돌려 차원 게이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기다리자, 던전 코어가 라온에게 말한다.


[띠링!]

[30일간의 던전 디펜스에 성공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차원 침략 및 마계로의 후퇴가 가능합니다.]

[띠링!]

[차원 침략을 선택하셨습니다.]

[언제든지 후퇴가 가능하니 위험할 경우 후퇴하세요! 그럼 게이트를 개방합니다!]

[우우우우웅!]

[모쪼록, 주군께 행운이 함께하기를···!]


라온이 푸른 게이트를 향해 손을 뻗자 커다란 빛의 무리가 라온과 일행을 집어삼켰다.

세상이 반전되는 어지러움이 들이닥치더니 온도가 삽시간에 변화했다.

후끈한 열기를 동반한 바람이 라온의 피부를 스쳐 지나간다.

이어서 뜨거운 햇빛이 라온을 향해 내리 쬈고 라온은 고개를 들어 주변 풍경을 둘러보았다.


“오······.”


수많은 시선이 라온을 향해 내리꽂힌다.

푸르게 펼쳐진 초원과 그 위를 수놓은 수많은 인간.

한껏 겁을 집어먹은 표정으로 던전을 향해 병장기를 들어 보이고 있는 인간들이 라온의 시야에 들어왔다.

똑같이 생긴 갑옷과 도시 실리아를 상징하는 허브 문양을 가슴에 달고 있는 그들.

모로 봐도 용병 같아 보이진 않았다.


“병사들인가? 많이도 모여있네···.”


영주 켈트라 자작이 보낸 도시의 일반 병사들이 던전 앞에 진을 치고 대기하고 있었다.

켈트라 자작은 이 일반 병사들로 자신을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같잖네.”


라온은 벌벌 떨면서 자신에게 공포를 공급해 주는 그들을 바라보며 웃었다.

너무나 가소롭고.

너무나 멍청한 인간들이라고 생각했다.

라온은 침략 시작부터 힘을 아낌없이 폭발시켰다.

라온의 주변에서 이글거리는 검붉은 화염이 모습을 드러낸다.

새까만 공기가 라온이 자리한 땅에 자욱히 내려앉는다.










***


“이봐, 자네는 이제 어떻게 할 텐가?”

“이 사람아······. 말조심하게. 누가 듣기라도 했다간 큰일 나니깐···! 최근 영주 녀석이 하고 있는 짓을 자네도 알지 않은가, 쉿! 붙잡혀 갈지도 모른다고?”


도시 실리아 내에 있는 용병 길드 주점 안.

그 시끄럽던 용병들의 주점이 지금은 쥐죽은 듯 조용해져 있었다.

가끔 속닥거리는 소리만 조용히 울릴 뿐 그곳에선 과거의 떠들썩함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가득 차 있던 좌석은 텅텅 비어 있었고 활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용병 길드의 주점에는 이제 용병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 정적이 내려앉은 용병 길드 주점 안에 속닥거리고 있는 두 명의 인물이 있었다.

이는 주점의 관리인 헤스밀과 그의 친구 E급 용병 찰스였다.

찰스는 조용한 주점 내부를 한번 쓱 둘러보곤 점장 헤스밀을 향해 손짓했다.


“도시를 떠나야 한다고 시위하던 녀석들이 모두 사라진 것만 봐도 알 수 있잖나. 요 입을 조심해야 돼···! 요 입을! 알겠나? 자, 이리 가까이 붙어보게···! 어서!”


찰스의 손짓에 헤스밀은 얼굴을 가까이 들이댔고 그들의 얼굴은 서로 맞닿을 정도로 가까이 밀착됐다.

혹시라도 누가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을까 봐.

조금이라도 새어 나가는 목소리를 줄이기 위해서.

찰스는 눈으로 주변을 다시 한번 확인한 이후 점장 헤스밀에게 말을 이었다.


“헤스밀, 너도 알다시피 이 도시는 이제 안전하지 않아···! 무려 세 개의 용병대가 던전 공략에 참여했지만 모두 살아나오지 못했어···!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나, 친구? 오늘로써 그 던전이 발생한 지 30일이 되었다고 하네. 던전이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뜻이고 또 도시가 불바다가 될 날이 머지않았다는 뜻이지···! 나는 너무도 무섭네, 헤스밀. 이 도시에는 이제 싸울 수 있는 각성자가 없어! 나는, 이 도시를 하루라도 빨리 빠져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네!”

“하지만······. 찰스. 나는 이 도시에 집도 있고 가족도 있어. 이 도시에서 태어난 내가 도대체 어디로 간다는 말인가···? 가난한 실론스 왕국에서 터를 잡기란 쉽지 않은 일이네.”

“이봐, 자네! 그럼 이곳에서 눈뜨고 죽기로도 할 거란 말인가···? 도시에서 내놓으라 하는 용병대가 벌써 세 개나 증발했네···! 이게 무슨 뜻인지 정녕 모르겠는가···!? 내가 자네를 두고 떠날 수가 없어서 하는 말이네! 내 말을 듣게, 헤스밀! 어서 도시를 떠나자고···! 자네는 주점을 운영한 경험과 수완이 있으니 어디든 자리를 잡을 수 있어!”

“하지만, 찰스······”


찰스는 헤스밀의 답답한 대답에 벌컥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혹시라도 자신의 말이 영주의 귀에 들어갈까 봐 무서워 숨을 죽였다.

잘못해서 자신의 목소리가 영주에 귀에 들어간다면 자신은 분명 해코지를 당하게 될 것이다.

던전 공략을 떠난 D급 용병단 세 개가 전멸한 이후 도시를 떠나야 한다며 소리친 인물들이 대부분 사라졌다.

이는 분명 무능한 영주 켈트라 자작이 행한 짓이리라.

켈트라 자작이 안 그래도 부족한 병력을 도시에서 떠나게 만들 리가 없었다.

최근 도시의 검문을 강화하고 용병들이 떠나지 못하게 막는 것만 봐도 답이 나온다.

찰스의 목소리가 급해졌다.


“이 친구야! 정신 차리게, 내가 장담하는데 우리는 살아남지 못해···! 내 ‘감’이 뛰어나다는 것을 자네도 잘 알지 않은가! 내 말을 들어, 헤스밀! 빨리 탈출을 준비하게나···! 내가 아는 쥐구멍이 있다네! 그곳을 이용하면 네 가족 모두가 도시를 빠져나갈 수 있어!”

“그건 그렇지만······.”


아무리 찰스가 열과 성을 다해 설득을 시도해도 헤스밀은 말끝을 흐리기만 했다.

도시 실리아는 헤스밀이 나고 자란 고향이었다.

고향을 떠나기엔 그는 아직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그리고 헤스밀의 마음 한편에는 투입된 세 개의 용병대가 D급 던전을 공략할 것이라는 믿음이 남아 있었다.

세 개의 용병대 모두 지난 과거 동안 수없이 많은 하급 던전을 공략했던 베테랑들이 아니던가.

그중 용병대 ‘늑대 이빨’은 도시 내에서 가장 강한 인물들이었다.

그런 강한 용병대가 고작 D급 던전을 공략하지 못한다고 헤스밀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이 던전에 입장한 지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던전이 워낙 넓어서 공략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리라.

헤스밀은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아니, 그는 이미 그렇게 생각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점장 헤스밀은 친구 찰스의 걱정어린 설득을 흘려듣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헤스밀에겐 이제 막 젖을 뗀 딸아이가 있었다.

그런 딸아이를 데리고 도시를 떠날 용기는 아쉽게도 헤스밀에겐 없었다.

헤스밀의 모습을 마주한 찰스는 생각을 정리해야만 했다.


‘이 친구도 글렀군······. 하아······. 이젠 정말 나 혼자서라도 도시를 빠져나가야 해. 지금도 너무 늦었어!’


찰스는 자신의 감을 믿었다.

이 도시의 생명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그의 감이 계속해서 말해주고 있었다.

찰스는 최대한 빨리 이 자리를 떠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몸에 베어있는 죽음에 대한 경종이 오늘, 아니 지금 당장 도시를 빠져나가라고 계속해서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찰스는 마음을 다잡고 죽을지도 모르는 친우에게 명복을 빌어주었다.

그렇게 찰스는 도시를 떠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헤스밀, 자네의 뜻은 잘 알겠네······. 그럼 나는 먼저 일어나보겠······.”


쾅!

그때, 찰스의 말을 자르고 울리는 큰 굉음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찰스는 도시는커녕 주점조차 빠져나갈 수 없었다.

찰스가 엉덩이를 들어 올린 그 순간, 찰스의 발걸음을 가로막는 낯선 인물들이 주점에 방문했다.

문을 부슬 듯이 힘껏 걷어차고 들어온 낯선 네 명의 인물들.

그들이 주점 안으로 들어와 소리쳤다.


“어이, 주인장! 당장 술부터 가져와!”


얼굴을 전부 가릴 정도로 큰 후드를 걸치고 들어온 낯선 사람들 때문에 찰스는 주점을 빠져나갈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찰스는 커다란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찰스가 믿었던 그의 감이 그를 죽음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다.

찰스의 감이 그들 사이 존재하는 위험한 인물을 찾아주고야 말았다.


“아······.”


무의식적으로 찰스는 그 위험인물을 주시했고 부지불식간에 그와 눈을 마주해 버렸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심해와도 같은 그의 어두운 두 눈이 찰스와 마주했다.

찰스는 그 순간 아찔한 감각과 함께 몸이 쑥 가라앉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마치 공중을 부양을 하는 것처럼.

혹은 바다에 풍덩 빠진 것처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찰스는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목구멍이 꽉 막혀버린 듯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고.

땀이 비 오듯이 줄줄 새어 나왔다.

이후 찰스는 더는 생각을 이어가지 못했다.

엉덩방아는 진작에 찍었으며 동공은 풀린지 오래였다.

그 헤어나올 수 없는 깊은 바다에 빠진 찰스는 하나의 지독한 어둠을 만났다.

그 어둠이 찰스에게 천천히 다가오며 말했다.


“날 봤구나?”


찰스의 낯이 멍해지고 그의 몸에 내재되어 있는 경보만이 세차게 울려 나간다.

찰스는 그렇게 자아를 잃었다.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타락한 천사가 던전에서 하는 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8 블랙마켓과 7인의 망나니(4) +2 19.01.07 184 3 26쪽
47 블랙마켓과 7인의 망나니(3) +1 18.12.23 186 3 25쪽
46 블랙마켓과 7인의 망나니(2) +1 18.11.29 240 4 25쪽
45 블랙마켓과 7인의 망나니(1) 18.11.22 222 5 24쪽
44 약속의 반지 ‘델피니엔’(2) +1 18.11.19 253 4 24쪽
43 약속의 반지, 델피니엔(1) +2 18.11.11 248 5 16쪽
42 식민지(3) +1 18.11.06 269 5 19쪽
41 식민지(2) +2 18.10.29 267 8 12쪽
40 식민지(1) +1 18.10.22 267 6 14쪽
39 꿩 먹고 알 먹고(3) +1 18.10.21 267 7 18쪽
38 꿩 먹고 알 먹고(2) +1 18.08.21 378 6 19쪽
37 꿩 먹고 알 먹고(1) +1 18.08.14 402 10 21쪽
36 악마가 인간들의 도시를 파괴하는 방법(5) 18.08.11 412 10 18쪽
» 악마가 인간들의 도시를 파괴하는 방법(4) +4 18.08.08 444 9 24쪽
34 악마가 인간들의 도시를 파괴하는 방법(3) +2 18.08.06 420 9 21쪽
33 악마가 인간들의 도시를 파괴하는 방법(2) 18.08.03 436 8 16쪽
32 악마가 인간들의 도시를 파괴하는 방법(1) +5 18.07.29 481 11 17쪽
31 라온의 차원 침략 데뷔전(2) 18.07.26 474 11 14쪽
30 라온의 차원 침략 데뷔전(1) +4 18.07.24 467 10 21쪽
29 차원 게이트(2) +2 18.07.22 483 11 13쪽
28 차원 게이트(1) 18.07.21 502 13 17쪽
27 '충동'의 악마와 첫 번째 날개(3) +2 18.07.20 462 13 15쪽
26 '충동'의 악마와 첫 번째 날개(2) +3 18.07.19 470 12 11쪽
25 ‘충동’의 악마와 첫 번째 날개(1) 18.07.17 448 12 19쪽
24 중급 악마 vs 하급 악마(2) +2 18.07.16 476 12 15쪽
23 중급 악마 vs 하급 악마(1) +2 18.07.15 478 10 13쪽
22 다린과 선물 보따리(2) +1 18.07.14 478 11 13쪽
21 다린과 선물 보따리(1) 18.07.13 458 11 14쪽
20 라온과 라오스의 하급 악마들(3) +2 18.07.12 478 15 16쪽
19 라온과 라오스의 하급 악마들(2) +3 18.07.12 526 12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