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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 님의 서재입니다.

타락한 천사가 던전에서 하는 일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부기스
작품등록일 :
2018.06.28 21:32
최근연재일 :
2019.01.07 01:20
연재수 :
4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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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18
추천수 :
496
글자수 :
344,101

작성
18.08.14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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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글자
21쪽

꿩 먹고 알 먹고(1)

DUMMY

*** 꿩 먹고 알 먹고(1) ***


도시 실리아의 서문.

실리아의 영주 켈트라 자작은 도시 서문을 활짝 개방한 채 멀리서 다가오는 십 수 대의 마차를 지긋이 응시하고 있었다.

가난한 왕국 실론스에서는 구할 수조차 없는 휘황찬란한 마차에 켈트라 자작은 물론 곁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던 집사와 서문을 경비하는 병사들까지 침을 꿀꺽 삼켰다.

왕족이 방문한다고 해도 이 정도로 긴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켈트라 자작은 뜨거운 햇볕 아래 흐르는 땀방울을 조심스럽게 훔치며 안드로스가 실리아에 도달하기를 기다렸다.


“히리리리링!”

“푸르르르르!”


잠시 후, 마차들이 실리아의 서문에 도착했다.

군마로 사용해도 될 법한 튼실한 말들이 큰 울음소리를 내지르며 켈트라 자작의 앞에 멈춰 섰다.

먼 거리를 단시간에 주파하느라 힘에 부쳤는지 말들이 후끈한 열기를 뿜어낸다.

마부들 또한 말 못지않게 안색이 하얗게 질려있다.

켈트라 자작은 그런 말과 마부를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자신을 위해 안드로스가 이렇게까지 달려와 주다니.

안드로스에 대한 켈트라 자작의 충성심이 깊어진다.


‘역시 카리얀 같은 새끼보다는 안드로스가 짱이야!’


부하의 위험을 해결해 주기 위해 마부까지 닥달해 가며 뛰어와 준 안드로스에 비하면 과거의 상사 카리얀은 켈트라 자작에게 있어서 쓰레기 중의 쓰레기였다.

검정색 장발을 뒤로 질끈 묶고 자신의 집무실 상석에 앉아 책상 위로 다리를 꼬았던 그의 모습이 생생하다.

그 상태 그대로 지시를 내리며 자신을 한참이나 내려다보았던 카리얀 안드리에스 하워드.

켈트라 자작은 항상 그에게 가축보다 못한 취급을 받아왔다.

그가 대제국 케딜락이 운영하는 블랙마켓의 간부만 아니었다면 진작에 죽여버렸을 텐데.

기회만 있었다면 대갈통을 직접 부셔버렸을 텐데!

그가 먼저 죽어버려서 켈트라 자작은 이제 아쉽기까지 하다.

물론, 죽이고 싶다고 해서 죽일 수 있을 리는 없지만······.


“헹···!”


그렇게 켈트라 자작은 이미 죽어버린 빌어먹을 카리얀에 대해 생각하며 그를 짓씹었다.

다시는 볼일이 없을 그이기에.

켈트라 자작은 과거의 상사를 잘근잘근 씹어먹었다.


- 덜컹, 스르륵!


그때, 마차 중에서도 가장 화려한 마차에서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나타나는 인물은 회색 곱슬머리의 미청년이었다.

단정하게 정돈된 곱슬머리와 그에 잘 어울리는 검정 빛깔의 가죽갑옷.

마침내 마차에서 블랙마켓의 간부 안드로스가 내려왔다.

켈트라 자작은 개구리 같은 눈을 부리부리하게 띄우며 그를 향해 힘차게 소리쳤다.


“오셨습니까, 안드로스님!”


켈트라 자작의 목소리에 맞춰 서문에 대기하고 있던 모든 사람의 고개가 깊숙이 숙어진다.

병사들은 영주가 시킨대로 안드로스를 향해 열심히 경례했고 어느새 준비된 군악대가 악기를 연주했다.

이에 안드로스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권력욕이 상당한 안드로스로서는 이런 환대를 상당히 좋아한다.

제국에서는 받을 수 없었던 환대와 존경을 안드로스는 너무나도 사랑했다.

오죽했으면 대우를 받기 위해 블랙마켓의 간부가 되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안드로스는 권력에 집착했다.


'짜릿해.'


그가 블랙마켓을 손에 넣으려는 것도 이러한 권력욕 때문이었다.

녀석들로부터 대우를 받기 위해.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는 그들을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싶기에.

안드로스는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카리얀의 모든 것이 필요했다.

안드로스는 짜릿함을 느끼며 흡족한 목소리로 켈트라 자작에게 말했다.


“고객 명부와 작업장 리스트부터 보겠다. 집무실로 안내해.”

“옙!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안드로스의 명령에 켈트라 자작은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정말 운수가 좋은 날이다.

새로운 상사와의 첫 만남부터 분위기가 좋았는데 더 볼게 있겠는가.


"흐흐흣!"


게다가 안드로스를 보자니 계속해서 피가 가운데로 몰려간다.

그의 외형을 볼때마다 마음속에서 욕망이 들끌어올랐다.

켈트라 자작은 안드로스를 바라보며 더러운 생각을 했다.


‘얄상하게 생긴 것도 그렇고 딱 내 스타일이구먼, 흐흐흐. 아주 잘생겼어! 덮쳐버리고 싶게 말이야······. 후···! 안 되겠다. 오늘은 하나 먹어야겠어. 참을 수가 없군.’


이제 갓 성년이 된 듯한 안드로스의 앳된 얼굴과 호리호리한 체형, 그리고 자신감에 찬 옥빛 눈동자가 켈트라 자작의 남색을 자극했다.

다행인 것은 안드로스가 켈트라 자작보다 상급자라는 것.

켈트라 자작은 끈적한 눈빛으로 안드로스를 한차례 훑어보고는 눈을 돌려 집사를 응시했다.

그러고는 집사를 향해 눈빛으로 뭐라 말을 한다.


"······."


집사는 켈트라 자작의 속마음을 읽어냈는지 썩어들어가는 표정을 애써 감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켈트라 자작은 퉁퉁한 뱃살을 통통 두드리며 더러운 미소를 만들어 냈다.

기분 좋은 하루다.


‘크흐흐흐···!’


켈트라 자작이 그렇게 안드로스를 대상으로 더러운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안드로스는 이를 못 느낀 것인지 도시 실리아의 거리를 둘러보기만 할 뿐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아니, 안드로스의 머릿속은 이미 블랙마켓의 간부들을 모두 무릎 꿇리고 정상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랬기에 안드로스에게 있어 켈트라 자작의 이런 몰상식한 행동 따위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안드로스는 그저 자신만의 상상의 나래에 푹 빠져 켈트라 자작의 뒤를 따라갔다.


“도착했습니다, 안드로스님!”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안드로스와 켈트라 자작은 도시의 중앙에 위치한 영주의 저택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안드로스는 함께 온 부하들에게 ‘준비되었던 일’을 처리하라고 지시를 내린 후 켈트라 자작과 함께 그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좋군."


켈트라 자작의 집무실은 다행히 안드로스의 마음에 쏙 들었다.

외형은 돼지 같지만 과시하는 면에서 켈트라 자작은 부족하지 않았다.

값비싼 장식들이 가득 들어찬 켈트라 자작의 집무실은 안드로스에게 대우를 받는다는 느낌을 주었다.

안드로스는 표정을 늘어뜨리며 과거 케리얀이 앉았던 상석에 착석한 후 켈트라 자작에게 턱짓했다.

그러자 켈트라 자작보다 눈치 빠른 집사가 서류를 켈트라 자작에게 건넨다.

켈트라 자작은 집사에게 서류를 건네받으며 어색하게 헛기침을 한 후 조심스럽게 안드로스에게 넘겼다.


“크··· 크흠! 여기 있습니다! 하하···!”


안드로스는 마냥 기분이 좋아 멍청한 켈트라 자작에게 아무 내색하지 않고 서류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서류를 한 장 한 장 꼼꼼히 살폈다.

케리얀이 지난 십여 년간 관리해 왔던 고객과 상품 유통 루트 그리고 그 상품을 만들어 내는 작업장까지.

그 모든 정보가 서류 속에 가지런히 기록되어 있었다.

서류 다 읽은 안드로스는 입이 찢어져라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으하하하하하! 훌륭하다! 아주 훌륭해! 크흐흐흐흐흐! 이제 블랙마켓은 내 것이야! 으하하하하! 내 것이라고!”


오늘을 기점으로 안드로스는 다른 간부들보다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이 상태를 유지하면서 다른 간부들이 카리얀의 죽음을 알기 전에 작업을 끝낸다면 빠르면 일년 내에 블랙마켓을 집어삼킬 수 있을 것이다.


'간부들이 카리얀의 죽음을 알 수 있는 시기는 간부 정기회의 밖에 없다.'


그 정기 회의가 시작될 때까지 남은 시간은 앞으로 열흘.

블랙마켓을 손아귀에 넣기 위해선 이 열흘 동안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녀야 한다.

그래야만 그들의 위에 오롯이 설 수 있는 것이다.

안드로스는 생각을 정리하며 우선순위를 선정했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이 서류를 준비했던 켈트라 자작의 요청사항을 처리하는 것.

도시 실리아 동문 부근에 카리얀이 죽었을 거라 생각되는 던전이 터졌다고 한다.

그 던전을 빠른 시일 내에 공략해 줘야 된다.


‘빨리 처리해야겠어.’


D급 던전 따위는 도시에 함께 들어온 부하들과 함께라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그 던전을 지금 당장 공략을 진행해야 다음 단계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으리라.

던전을 공략한 이후에는 케리얀의 작업장을 돌아다니면서 그의 부하를 죽이고 그 자리에 자신의 부하를 심어놓는 것.

그리한다면 큰 희생 없이 카리얀의 세력을 날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을 정리한 안드로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탁상에 앉아 지시를 내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기한은 열흘밖에 주어지지 않았으니 직접 뛰어다녀야 한다.

자리에서 일어난 안드로스는 멀뚱히 서 있는 켈트라 자작에게 던전을 공략할 테니 그 던전으로 안내하라고 명했다.

아니, 명령하려 했다.

쿵!

커다란 소리와 함께 자신의 부하가 집무실 문을 박차고 들어오기 전까진 말이다.


“안드로스님! 큰일 났습니다···! 귀신이···! 귀··· 귀신이 나타났습니다!”


부하가 시뻘건 눈을 부라리며 안드로스를 향해 크게 소리쳤다.

그리고 집무실 안에 있는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옮겨졌다.

안드로스는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헛소리를 지껄이는 부하 때문에 순간 짜증이 치밀었다.


'귀신?'


원래 저런 부하가 아니었는데······.

켈트라 자작의 영지에 들어와서 다들 멍청해진 것일까.

미간을 살짝 찌푸린 안드로스는 숨을 헐떡이는 부하를 향해 차가운 목소리를 흘렸다.

쓸데없는 일로 시간을 끈거라면 지체없이 목을 쳐내리라.


“귀신···? 네가 감히 나랑 말장난해? 근처에 레이스 던전이라도 있다는 말인가? 똑바로 말하지 못하겠나!”


싸늘하다 못해 따가운 안드로스의 목소리가 부하를 강타했다.

하지만, 다급한 부하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살기를 받아들이며 급히 대답했다.

주인이 두렵다고 해서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었다.

부하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안드로스님! 저택에 카리얀이 나타났습니다! 그 카리얀 말입니다!”

“뭐···!?”


부하의 말에서 튀어나온 카리얀이라는 단어에 집무실 안에 있던 안드로스와 켈트라 자작, 그리고 집사까지 모두 입을 다물었다.

안드로스는 순간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까지 생각했다.


‘카리얀이 나타나···?’


던전에서 죽었다고 생각했던 카리얀이 레이스라도 되서 나타났다는 말인가.

아니면 이것들이 작정하고 자신을 기만하려는 것인가.

안드로스의 신체에서 마력이 넘실넘실 새어 나온다.

자신을 기만한 것이라면 누구라도 가만두지 않겠다.

안드로스는 자리에 우뚝 멈춰선 상태로 부하의 말을 되새긴 후 그에게 다시 물었다.


“카리얀이 뭐···?”

“아··· 안드로스님······. 카리얀 안드리에스 하워드가 살아 돌아왔습니다······. 그가 저택 앞에 나타났단 말입니다···! 저희가 일단 들어올 수 없도록 제지하고 있긴 하나··· 오래 막을 수 있을 것 가진 않습니다······. 빨리··· 빨리 결단을 내려주십시오···!”

“무··· 무슨···!?”


카리얀이 살아 돌아왔다는 부하의 말에 안드로스는 기함하고 말았다.

그가 거짓말 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면······.

어떻게 카리얀이 살아난 거지?

던전이 오늘 터졌다며?

터진 던전을 뚫고 도망쳤다?

아니면, 카리얀이 악마의 하수인이라도 되었다는 말인가···?


“후우······. 이건 중요한 게 아니야······.”


안드로스는 해결할 수 없는 의문을 한쪽으로 치워버린 후 심호흡을 크게 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카리얀이 어떻게 살아났냐는 것이 아니다.

안드로스에게 중요한 포인트는 카리얀이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 하나였다.

당황도 잠시.

안드로스는 머리를 빠르게 회전시켰다.

혈통만으로 블랙마켓의 간부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다.

뛰어난 판단력과 과감한 결단력을 갖춘 인물이 바로 안드로스인 것이다.

안드로스는 빠르게 상황을 정리했다.


‘카리얀이 살아서 돌아왔다······.’


지금 카리얀이 살아 돌아왔다는 말은 안드로스의 계획이 모두 일그러졌다는 뜻이었다.

그것뿐만 아니다.

또, 그가 살아 돌아왔다는 말은 안드로스가 여태껏 해왔던 일을 카리얀에게 모두 들킬 것이란 이야기이고 그에게 역으로 공격의 빌미를 제공한다는 뜻이었다.

안드로스가 도시 실리아에 있는 것부터가 잘못된 상황이다.

카리얀의 부재 동안 그의 세력을 안드로스가 갉아먹고 있었다는 사실이 카리얀과 다른 간부들에게 알려진다면, 안드로스는 모든 간부에게 공격당할 것이고 이는 블랙마켓의 정상에서 멀어진다는 말과 진배없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있어서는 안 될 이야기였다.

안드로스는 급히 자리를 박차고 저택 입구를 향해 달려나갔다.

안드로스가 살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던전을 클리어하고 나온 지금, 놈을 끝장낸다! 놈은 지쳐있을 게 틀림없어!’


카리얀을 죽이는 것.

그를 죽여 원래의 행방불명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 안드로스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선택지였다.

지금 당장 카리얀을 죽여야 한다.

안드로스는 저택의 입구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저택 입구에 진을 치고있는 부하들과 합공한다면 카리얀 정도는 쉽게 잡을 수 있어···!’


안드로스의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이게 안드로스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생각인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와 그의 부하들이라면 지친 카리얀 정도는 정말 간단하게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간과한 사실이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안드로스로서는 절대 알 수 없는 사실이었다.


"넌 누구니?"


카리얀의 곁에는 지옥의 문지기가 함께 있다는 것을······.

카리얀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안드로스는 알지 못했다.

안드로스는 그렇게 지옥행 급행열차 티켓을 구매했다.












***


차원 난민 박찰선은 혼자서 실리아의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애들이 어디 갔지?”


던전 안에서 악마님에게 부탁했던 것처럼 실리아에 남아 있는 골목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용병 길드 주점에서 악마님이 바쁜 시간을 보낼 때, 자신은 그에게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에게 말해 자리를 빠져나왔다.

악마님이 일을 할 때, 자신이 그의 곁에서 알짱거리는 것은 악마님의 일을 방해하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자리를 빠져나온 것은 정말 잘한 일인 것 같다.


“음음.”


박찰선은 고개를 끄덕이며 골목 아이들의 은신처를 빨빨거리며 돌아다녔다.

악마님이 일을 마무리하기 전에 자신도 일을 마무리해야 된다.


"······."


그렇게 실리아 구석구석을 한참 돌아다닌 박찰선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애들이 없어졌다···?”


아무리 골목을 돌아다녀도 아이들의 모습은 눈꼽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뛰어놀던 놀이터와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들러붙던 식당가, 그리고 그들이 잠을 청했던 상자 골목까지.

그 모든 곳을 돌아본 박찰선은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박찰선은 혹시 몰라 왔던 길을 거꾸로 돌아가며 그들의 은신처를 다시 한번 샅샅이 확인했다.


“······.”


없어졌다.

아이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털썩.

아이들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순간, 두 다리에 힘이 빠져나갔다.

이어서 믿고 싶지 않은 결말이 하나 둘씩 상상된다.

에론과 그의 일당들이 짐꾼들에게 했던 잔인한 일들도 떠오른다.


“안돼······. 안돼···!”


살아있는 사람의 눈을 파내고 머리카락을 뜯어냈으며 배를 갈라 장기를 하나씩 꺼낸다.

배 밖으로 장기가 뽑히는 고통을 생생히 느끼며 죽어갔던 짐꾼들이 골목 아이들과 겹쳐진다.

장기를 배 밖으로 꺼낸 상태로 걸어다니는 아이들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안돼···!"


추운 밤에 서로 꼭 껴안고 추위를 이겨냈던 아이들이 그 짐꾼들과 똑같이 죽는다고 생각하니 박찰선은 말할 수 없는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그 작고 연약한 생명들이 그런 최후를 맞이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다.

박찰선에게 그들을 구할 '힘'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곳에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박찰선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골목 아이들의 작은 흔적이라도 찾기 위해 박찰선은 도시의 거리를 뛰어다녔다.

그의 두 눈에서 눈물이 새어 나온다.


“이봐, 자네···!”


그때, 박찰선의 발목을 붙잡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것은 박찰선에게도 매우 익숙한 음성이었다.

한 인물이 그의 질주를 가로막았다.

박찰선은 벌게진 얼굴을 돌려 목소리가 흘러나온 곳을 바라보았다.


“자네···! 살아 있었구만···!?”


그곳에는 골목 아이들에게 팔다 남은 빵을 나눠 주던 빵집 아저씨가 서 있었다.

그 빵집 아저씨가 박찰선에게 손짓한다.


“자네 어디 갔었나! 내가 한참을 찾았는데!”

“예? 저를 왜···?”


박찰선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빵집 아저씨를 쳐다보았다.

가끔 박찰선에게도 빵을 나눠주던 그였기에 그에 대한 경계심은 없었지만, 아이들을 한시라도 빨리 찾고 싶은 상황이었다.

그에게 이 황금같은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박찰선은 그를 무시하고 발을 움직이려했다.


“자네 지금 아이들을 찾고 있는 겐가!? 그런 게야? 이런···! 아이들이 모르는 사람들에게 잡혀가는 것을 보고 내가 자네를 엄청 찾았는데···! 왜 이제야 나타났나! 도대체 어디 갔었던 거야···!?”


그런데 빵집 주인아저씨의 입에서 그토록 찾아 헤매던 아이들의 행방이 나왔을 때, 박찰선은 우뚝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의 팔뚝을 거칠게 붙들었다.


“···! 납치라고 하셨습니까!?”

“아···! 아프네! 힘 좀 빼시게! 난 각성자가 아니라고···! 조심하게!”

“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그··· 그것보다 방금 납치라고 하셨습니까!? 아이들이 납치됐다고요!?”


박찰선의 닦달에 빵집 주인아저씨는 천천히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박찰선은 그의 말을 들은 후 얼굴을 찌푸리고 말았다.


“얼마 되지 않았네. 그들이 나타나서 골목에 있는 아이들을 전부 잡아가 버렸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미안하지만 하나도 없었네···! 그저 그들이 누구인지 확인하는 것 말고는······. 정말 미안하네······.”

“그··· 그들은 누구였습니까! 그들을 봤습니까!? 알려주십시오!”

“봤지······. 똑똑히 봤네. 그들이 누구인지 나는 너무나 잘 알지. 도시의 시민으로서 그들을 모르면 쓰겠는가···?”

“뜸 들이지 마세요···! 누구입니까!”


그날의 일을 떠올리는 게 많이 힘들었는지 빵집 아저씨의 손이 떨리는 게 눈에 보였다.

아마 그의 마음도 편치는 않을 것이다.

어린아이들이 저항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붙잡혀 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을 박찰선이라고 모를까.

상상만으로도 이렇게 답답한데······.

붙잡혀가는 아이들을 도와주지도 못한 그가 오늘까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간다.

박찰선은 빵집 아저씨가 입을 열길 애타게 기다렸다.

한참 고개를 숙이고 있던 빵집 아저씨가 잠시 후 고개를 들어 올려 박찰선을 마주했다.

그의 붉은 두 눈이 똑똑히 보인다.

빵집 아저씨가 말했다.


“실리아의··· 경비병들이 아이들을 끌고 갔네······.”

“경비병······.”

“우리를 지켜주던 그들이 골목의 아이들을 모조리 끌고 갔어······. 나는··· 나는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네······. 그들이 왜 아이들을 끌고 갔는지 나는 도저히 모르겠네······. 나는 이 이야기를 나눌 사람을 찾아봤지만···, 내 주위에는 이 말을 들어줄 사람은 없었다네······ 그래서··· 그래서 자네를 찾았던 게야. 왜 이렇게 늦게 온건가······.”


이후 빵집 아저씨는 계속해서 박찰선을 향해 말을 했지만, 박찰선은 빵집 아저씨가 무어라 말을 하는지 귀담아듣지 못했다.

박찰선의 뇌리에는 도시를 지키던 경비병들이 아이들을 끌고 갔다는 말만 유유히 맴돌고 있었다.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네······.”


그리고 박찰선이 고뇌를 마친 후 다음 목적지를 정했을 때.

때마침 빵집 아저씨의 말도 그쳤다.

미안하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빵집 아저씨는 조용히 찰선을 떠나간다.

박찰선은 그런 빵집 아저씨를 보며 고맙다고 말했다.


“고맙습니다, 아저씨.”


빵집 아저씨가 고개를 돌리며 희미하게 미소 짖는다.

박찰선에게 고해함으로써 그의 죄책감이 조금이나마 사라졌을 것이다.

그걸로 된 것이다.

박찰선은 아저씨를 원망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렇게 마음을 갈무리한 박찰선은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영주의 저택···!’


골목 아이들이 끌려갔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장소를 향해.

박찰선은 미친 듯이 달려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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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악마가 인간들의 도시를 파괴하는 방법(2) 18.08.03 436 8 16쪽
32 악마가 인간들의 도시를 파괴하는 방법(1) +5 18.07.29 481 11 17쪽
31 라온의 차원 침략 데뷔전(2) 18.07.26 475 11 14쪽
30 라온의 차원 침략 데뷔전(1) +4 18.07.24 468 10 21쪽
29 차원 게이트(2) +2 18.07.22 483 11 13쪽
28 차원 게이트(1) 18.07.21 503 13 17쪽
27 '충동'의 악마와 첫 번째 날개(3) +2 18.07.20 463 13 15쪽
26 '충동'의 악마와 첫 번째 날개(2) +3 18.07.19 471 12 11쪽
25 ‘충동’의 악마와 첫 번째 날개(1) 18.07.17 449 12 19쪽
24 중급 악마 vs 하급 악마(2) +2 18.07.16 477 12 15쪽
23 중급 악마 vs 하급 악마(1) +2 18.07.15 479 10 13쪽
22 다린과 선물 보따리(2) +1 18.07.14 479 11 13쪽
21 다린과 선물 보따리(1) 18.07.13 459 11 14쪽
20 라온과 라오스의 하급 악마들(3) +2 18.07.12 478 15 16쪽
19 라온과 라오스의 하급 악마들(2) +3 18.07.12 526 1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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