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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파파 님의 서재입니다.

다시 살아보니, 은행장 되기 참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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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헤밍파파
작품등록일 :
2024.05.19 10:20
최근연재일 :
2024.07.15 17:20
연재수 :
42 회
조회수 :
3,374
추천수 :
75
글자수 :
192,790

작성
24.07.15 17:20
조회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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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1997년에는 크리스마스 캐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DUMMY

“큰일 났어요! 아빠 회사에 빨리 가봐요.”

오선녀가 다급하게 연락을 했다.


중견 건설회사도 무너지는 지금.

장인이 아직 버티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는데, 결국 부도를 낸 모양이다.


’그래. 올 것이 왔군.‘


윤필수가 청우건설 사무실에 도착했다.

이미 수많은 채권자들이 몰려 있었다.


“장인어른! 괜찮습니까?”

“윤서방! 창피한 모습 보여줘서 미안해.”


모두 낯선 남자의 등장에 궁금하게 생각했다.

“누구지?”

“맞아. 오사장 사위가 은행 다닌다 했지.”

성난 표정의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그래. 저 친구한테 받아낼 것 없을까? 은행원이라면 신용이 최고지”

“연대보증이라도 서 달라고 할까?”


“오사장! 보아하니 사위가 착실해 보이는데, 우리한테 보증 좀 서라고 말해보지? 돈을 주면 더 좋고.”

빚쟁이 중 하나가 다가왔다.


“여봐요! 당신 장인이 우리한테 갚을 돈이 아주 많아요. 해결 방법을 생각해봐요.”

누가 윤필수의 어깨를 툭툭 치며 시비를 걸어왔다.


’내 이럴 줄 알고 미리 다 조치해두었지.‘

윤필수는 오늘을 대비해서 손을 써놓았다.


걸레처럼 만들어 놓은 개인신용.


그동안 마누라의 잔소리와 처가 식구들의 경멸하는 눈빛을 참고 있었던 보람이 있었다.


“죄송하지만. 제가 신용불량자인데, 그래도 보증인으로 받아주신다구요?”

채권자들에게 윤필수가 뜻밖의 말을 했다.


“자네는 집에 가 있게.”

오사장은 창피했다.


자신이 부도를 낸 마당에 사위까지 이미 신용불량자라니, 도움은커녕 채권자들을 더 자극하고 있었다.


“젠장!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모두 한통속이군,”

“무슨 수작이야! 젊은 은행원이라는 놈이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연기하고 있어.”

일부 채권자들이 의심하고 있다.


“연기는 무슨 연기입니까? 주민번호 알려줄 테니 조회해보세요. 6XXXXX-XXXXXXX.”


이미 윤필수의 개인신용정보조회표에는 십 여 개의 적색거래가 등재되어 있었다.


고의적으로 대금결제를 미루고 있는 적은 금액의 카드회사 연체정보.

박정호실장의 도움으로 만들어 놓은 가상의 채무금액.

XXX캐피털 수십억.

신용점수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저 자식 정말 그런 모양이군,”

“주민번호 적어 놓았어. 까보면 알지.”

그의 개인신용정보 결과를 본다면, 아무런 능력이 없다는 것을 단박에 알아챌 것이다.


’이 정도면 폭탄에서 비켜나가겠지.‘

전생에서 오랜 세월 괴롭혔던 일들.

장인 어른의 빚 때문에, 나락으로 떨어졌던 사건들은 이제 잊어도 되었다.


지금은 도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더 좋은 방법으로 보답할 수 있을 것이다.


***


정부와 당에서는 여러 가지 정책을 내놓고 있다.

환율시장이 계속 불안해지자 재경원이 외환규정을 개편했다.

자유롭게 달러가 들어 올 수 있도록 완화한 것이다.

그럼에도 시장은 진정되지 않았다.


“S&P에서 우리나라 신용등급을 낮추었어요.”

팀원들이 긴급히 보고를 했다.


“아직 바닥이 드러나지 않았어요.”

윤필수는 담담한 표정이었다.


“팀장님이 보시기엔 신용등급 강등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말씀인지?”


“수영장에 물이 가득 차 있을 때는 얼굴만 보이잖아요? 누가 발가벗고 있는지, 구멍 뚫린 수영복을 입고 있는지 알 길이 없지요. 모두 투명하게 밝혀져야 새 출발이 가능해요.”

수수께끼 같은 말만 읊고 있다.


“가능하면 자동차에 기름을 가득 채우세요.”

“네? 왜 갑자기?”

“제 말씀 들으면 점심 값 한 끼 금액은 아낄 겁니다.”


윤필수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환율폭등은 기름 값 폭등을 가져왔고, 새벽부터 주유소에 길게 늘어선 자동차 행렬.

상습적으로 구제금융에 의존하던 남미국가에서 볼 수 있었던 장면.

며칠 후면 우리나라에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외환시장이 개장하자마자 8분 만에 일일 변동폭 상한선에 도달했다.

달러를 팔 사람들은 자취를 감추었고, 거래가 중단이 되었다.


불룸버그에서 보도자료를 내었다.

{한국 외화 가용자금 20억달러에 불과}


“아니? 100억 달러 이상 가지고 있다고 그러더니, 그 돈 다 어디 갔어?”

팀원 한 명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환율은 1천원을 순식간에 돌파해버렸다.

주가는 사상 최대 폭락을 기록했다.


“팀장님! 우리 이러다가 다 망하는 거 아닌가요?”

“이런 일들은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지도 않아요.”

팀원들의 동요가 심했다.


“진정 합시다. 마지막 고비가 한 번 더 있을 겁니다.”

“네? 이게 끝이 아니라고요?”


“깊은 바닷물 속에 침몰하고 있다고 상상해봅시다. 바닥에 도달해야 지면을 박차고 수면 위로 헤엄쳐 떠오르겠죠, 그러기 위해서는 몸이 가벼워야 합니다. 고통이 있겠지만, 생존하려면 자기 살을 도려내야 할 겁니다. 아주 많이..”

앞으로 다가올 위험을 팀원에게 경고해 주었다.


은행장이 윤필수를 불렀다.

“IMF와 비밀리에 협상 중이라는 소문이 들리고 있어. 재경원에선 전면 부인하고 있지만.”

“어차피 가야 할 길입니다. 별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윤팀장! 그렇게 간단히 결론을 내릴 사안이 아니야. 구제금융을 받는다는 건 나라가 망하는 거라고,”

은행장은 약간 화가 나 있었다.


“행장님! IMF구제금융을 받은 나라는 생각보다 많습니다. 영국도 오래전에 신세를 졌었죠. 멕시코도 그랬고요.”

“그건 맞지만 경우가 좀 다르지.”

은행장은 여전히 못마땅했다.


“너무 걱정마세요. 우리 국민들은 위기를 잘 극복해 냅니다.’

윤필수는 은행장 문을 닫고 나오며 마음속으로 이야기했다.


며칠이 지났다.

97년 11월 어느 날 김영삼 대통령이 긴급 담화문을 발표했다.

”친애하는 국민여러분...“


재경부총리가 IMF구제금융 신청을 공식 발표했다.


”팀장님! 나라가 망했어요.“

팀원들의 얼굴이 노랗게 변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들은 미리 구축해 놓은 포지션에 만족하고 있었다.


환율상승에 베팅 했으니 환차익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고, 주가지수 선물매도 포지션은 지수가 하락하여 평가 이익이 계속 쌓이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이게 무슨 소용인가?

나라가 망하면 금융기관도 모두 망하는 것,

시스템은 붕괴되고 국가가 해체되는 것 아닌가?


”팀장님! 우리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들은 가끔 신기(神氣)가 있다고 느껴지는 윤필수에게 의지했다.


”다 지나갑니다.“

그는 짧게 답했다.


지나고 보니 그랬다.

몇 년 만에 거뜬히 구제금융을 모두 갚았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한국경제는 성장을 거듭했다.

시간이 지나면 지금의 이 혼란도 역사 속에서 한 장면으로만 기록될 정도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찬 바람이 불었다.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은 대폭 강등되어 정크본드 수준으로 떨어졌다.

변동환율제도로 바뀌자마자 환율은 2천원 수준에 도달했다.

시중금리는 20프로에 육박했다.

주가지수는 300선을 밑돌았다.


처음 겪는 일들에 공포에 질려 소리를 질렀으나, 이제는 그럴 힘도 없었다.


1997년 겨울에는 크리스마스 캐럴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


1998년이 되면서 변화가 시작되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새로 취임하자마자 급한 불이 꺼지기 시작했다.


”이제 포지션을 청산합니다.“

윤필수가 투자의 방향을 틀었다.


2천원을 돌파했던 달러 환율은 1800원 부근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종합주가지수는 최저 300선 밑으로 하락했다가 급하게 오르고 있었다.


미리 사 놓은 달러는 팔아치웠고, 주가지수 선물매도는 정리했다.


”어마어마한 수익률입니다. 전세계를 통틀어 우리만큼 돈을 번 기관이 있을까요?“

팀원들이 진심으로 윤필수를 존경의 눈빛으로 보기 시작했다.


‘미래를 훤히 알고 있는데, 이길 수 밖에.’

더욱 자신감이 들었다.


”지금 은행전체 상황이 나빠서 그렇지. 보너스도 많이 기대할 수 있겠어요,“

성과급에 익숙한 트레이더 직원들이 은근히 욕심을 부리고 있다.


윤필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가 돈 몇 푼 더 받으려고, 내 욕심 채우려고 지옥에서 살아 나온 건 아니야.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하자.’


그는 은행장을 찾아갔다.

”행장님!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윤필수는 {리스크헤지 트레이딩팀}이 달성한 눈부신 실적을 보여주었다.


”와우~ 대단하군. 윤팀장. 자네 덕분에 내 체면이 섰어.“

은행장은 매우 만족했다.


금융상황이 안정되면 자기의 업적이 천하에 홍보자료로 쓰일 것이다.

[한독은행장 금융위기에 대비한 선제적 리스크헤지]


”상황이 허락하면 팀원들에게 보너스를 제공하겠네.“

”그것보다는 좋은 데 쓰시죠.“


”응? 어떤 의미인가?“

은행장은 궁금했다.


윤필수는 기억한다.

IMF 구제금융을 받은 후 가정은 급속히 해체되고, 거리는 노숙인들로 넘친다.

그들의 숫자에 비하면 미미한 금액이지만 분명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은행장은 흔쾌히 그의 생각에 동의했다.

수익의 일정 부분은 어려운 상황에 놓은 이웃을 돕는데 쓰일 것이고, 일부는 팀원들에게 제공될 것이다.


기분 좋게 복도를 걷던 그에게 익숙한 인물이 눈에 들어왔다.


‘어? 왜 이리로 오다가 뒤로 물러나지?’

복도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김철민이 방향을 틀고 있다.


항상 당당하고 자신감에 충만했던 그였다.

주위에는 항상 여러 사람이 붙어 다녔다.

선배직원, 후배 가리지 않고 그와 친해지려고 노력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혼자서 도망치듯 조용히 다니고 있다.


미래의 은행장 후보 김철민.

최단기 책임자 승진, 최연소 팀장.

그가 맡은 부서는 항상 앞서 나갔고, 그가 기획한 상품은 항상 힛트를 쳤다.


유일하게 망한 상품은 달러 외화대출.


‘내 충고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밀어붙이더니. 쯧쯧.”

윤필수가 상품 출시 때부터 강력하게 반대했다.


달러환율 700원대 기획한 상품이 환율이 2천원까지 가버렸으니.

기업들은 달러로 대출 받은 원금이 한국 돈 기준으로 세 배로 늘어나는 마법을 보게 되었다.


“은행 때문에 회사가 망하게 되었다고.”

“너희들이 사기 친 거지? 내 돈 물어내.”

“이렇게 위험한 상품이었으면, 제대로 설명 했어야지.”

회사들은 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태세였다.


어느새 은행에서는 김철민을 좋지 않은 시각으로 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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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에는 크리스마스 캐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24.07.15 10 0 10쪽
41 미래가 보이니 투자가 너무 쉽다. 24.07.12 19 0 9쪽
40 국가 부도의 서막이 울렸다. 24.07.11 20 0 10쪽
39 드디어 시작이군. 부도 일보 직전이야 24.07.10 31 0 9쪽
38 “비상 계획을 짜보게.” 24.07.05 35 1 10쪽
37 신용이 문제야. 내 신용을 형편 없이 만들자. 24.07.04 30 0 11쪽
36 지난 생에서는 고스란히 당했지만, 지금 생에서는 다른 길을 갈 거야 24.07.03 48 0 9쪽
35 달러가 1700원까지 간다고? 완전 미친 놈이구만. 24.07.02 41 0 9쪽
34 내 딸이니까 닮은 구석이 하나라도 있어야지. 24.07.01 51 0 11쪽
33 네가 버린 카드도 내가 가꾸면 보석이 돼. 24.06.28 45 0 10쪽
32 정신차려. 넌 내가 버린 카드를 주웠어. 24.06.27 55 1 9쪽
31 심지어 자기의 피가 아닌 남의 피를 타고 난 경우에도. +1 24.06.26 56 1 10쪽
30 사랑에 2등은 없다. +1 24.06.25 61 1 11쪽
29 나쁜 일을 저질러 놓고, 지나고 나서 미안하다고 하더라. +1 24.06.24 60 1 11쪽
28 후폭풍. +1 24.06.21 62 1 10쪽
27 동작 그만! 지금부터 금융실명제 실시 +1 24.06.20 62 1 10쪽
26 100억 예금을 받았다 +1 24.06.19 57 1 9쪽
25 전설적인 사채업자 명동 불곰 +1 24.06.18 58 1 8쪽
24 쉿! 대마왕이 깨어나고 있다. +1 24.06.17 62 1 10쪽
23 [당신은 누구입니까?] [나는 또 다른 나입니다.] +1 24.06.13 68 1 11쪽
22 머리 좋은 사람이 영업도 잘하더라. +2 24.06.12 65 1 9쪽
21 머리가 이기나? 발바닥이 이기나? +1 24.06.11 68 1 10쪽
20 나는 인생 험하게 살았다. 어쩔래? +1 24.06.10 68 2 10쪽
19 머리 좋은 건 인정, 근데 싸가지가 너무 없다. +1 24.06.07 78 2 11쪽
18 은행장이 될 겁니다. +1 24.06.06 82 2 10쪽
17 [화장실에 귀인(貴人)이 숨어있다.] +1 24.06.05 93 2 11쪽
16 착하게 살아라. 그러지 않으면 지옥 간다. +1 24.06.04 96 3 9쪽
15 의문의 사진 +1 24.06.03 96 3 12쪽
14 컨닝의 천재. +1 24.05.31 106 3 10쪽
13 back to the past +1 24.05.30 103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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