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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파파 님의 서재입니다.

다시 살아보니, 은행장 되기 참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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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파파
작품등록일 :
2024.05.19 10:20
최근연재일 :
2024.07.04 12:15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2,529
추천수 :
42
글자수 :
171,561

작성
24.07.01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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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내 딸이니까 닮은 구석이 하나라도 있어야지.

DUMMY

윤필수의 아이는 무럭무럭 자랐다.

이름은 세라.

그가 직접 지은 이름이다.


장인이 작명소에서 비싼 돈을 주고 지었다는 이름 몇 개가 있었으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윤지호. 윤은우, 윤이나 등등.


세라.

큰 의미나 깊은 뜻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예쁜 이름을 주고 싶었다.


[세상을 아름답게 하라.]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를 이어 붙인 것이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정말 고된 일이었다.

오선녀는 잠자리에 들면 천둥 벼락이 쳐도 깨지 않았다.


새벽에 아이에게 분유를 주는 일은 윤필수 몫이었다.

쏟아지는 잠을 참으며 젖병을 물려주면 ”쪽 쪽“빠는 힘이 강력했다.


”세라야!“

몇 개월이 지나자 자기의 이름에 반응하였다.

차츰 차츰 목의 무게를 이기고 뒤집기를 시작했다.


세라는 정말 예쁘게 컸다.


윤필수 혼자서 아이를 데리고 나가면 항상 듣는 소리.

”어머! 참 예쁘다. 피부 좀 봐. 백옥 같아. 엄마 닮았나 보네.“


그는 시골 농부처럼 까만 피부색이었다.

간혹 동남아 노동자들이 웃으며 다가와 말을 건넬 정도로.


오선녀도 살결이 흰 편은 아니었다.


‘정말 다행이야. 나를 닮지 않아서.‘

윤필수는 안도했다.


”와~ 아기 콧대가 이렇게 오똑할 수 있나?“

사람들이 아빠와 딸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감탄했다.


”혹시 엄마가 러시아 여자인가요?“

이렇게 묻는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아기의 백옥같은 피부와 유난히 높은 콧대.

어딜 가나 탄성이 흘렀다.


세라는 윤필수에게 에너지를 주는 존재였다.


하지만 직장에서 마주하는 일은 괴로웠다.


호경기가 끝나가고 기업은 흔들리고 있다.

자금이 필요하다고 요청하는 곳은 많지만, 정작 기업심사를 해보면 상황이 나빴다.

혹여 대출해주었다가 부실이 나면 책임질 일이 두려웠다.


윤필수의 실적은 바닥을 기고 있었다.


”윤대리! 너무 보수적인 시각 아닌가?“

지점장은 실망하는 표정을 보였다.


한참 고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부동산 금융팀에서 연락이 왔다.

공동으로 대출 마케팅을 하자는 것이다.


[XXX동 주택조합 부동산금융]

은행이 절반 정도 자금을 지원하고, 나머지는 개인투자자를 모아 펀딩.

분양이 완료되면 자금을 회수하는 구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본부의 담당 책임자는 김철민.

그가 처음부터 기획하고 발굴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부정적인 건 아니었다.


현장을 오래 다니면 촉이 온다.

회사 대표의 방이 지나치게 크거나 비서의 미모가 너무 뛰어나면,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내용물이 시원찮을수록 포장에 치중하는 법.


”XXX 조합장입니다. 큰 건 한번 해보시죠.“

주택조합장은 탤런트를 연상케 할 만큼 용모가 수려했다.


”이 지점에 지하철역이 3년 후 완성됩니다. 이미 시장에 다 알려져 있어요. 분양 백프로 장담합니다.“

그의 브리핑 솜씨는 현란했다.


투자자들 앞에서 얼마나 많이 떠벌렸으면 저렇게 능수능란할까?

윤필수는 손을 떼고 싶었다.


답답했는지 김철민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윤대리! 오랜만이야. 아이는 잘 크고 있나?“

”음~ 그럼.“


’자식. 내 딸한테 무슨 관심이야.‘

윤필수는 재수가 없었다.


”XXX동 주택조합. 할 거야? 말 거야?“

”기다려. 살펴보고 있어.“


”야! 내가 다른 은행하고 경쟁해서 따냈다고, 아무 문제 없어.“


두 사람의 목소리가 커지더니 언쟁이 붙고 전화를 끊었다.


”이보게 윤대리! XXX동 주택조합 대출. 왜 이리 진행이 더디나?“

지점장은 닦달이 났다.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나?“

”저기.. 느낌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경험으로 얻은 직관은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뭐야! 느낌? 당신이 느낌이 안 좋다고 꾸물거리는 바람에 다른 지점에 뺏기게 생겼다고.“

”-------“


”윤대리 은행경력 이제 4년이야. 나는 20년이 넘었어. 내 경험이 무시되는 걸 용납할 수 없네.“


어쩔 수 없었다.

대출 진행이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지점장은 부족한 실적을 빨리 채우고 싶었다.

조합원 본인 확인 서류가 일부 부족했지만, 빠른 시일에 보완하는 조건으로 실행되었다.


윤필수의 촉이 맞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조합장이 돈을 횡령하여 달아났다.

대출금은 120억.

조합원 소유의 대지가 담보로 잡혀 있으나, 서류에 하자가 있었다.

일부 소유자들의 서명날인이 누락 되어 있었다.


”윤필수 대리님! 서류가 미비 되었는데 대출이 나갔군요. 중대한 과실입니다.“

검사부의 정확한 지적이었다.

달리 변명 거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지점장님이 빨리 진행을 하지 않는다고 압박을 주었어요.‘

’본부 김철민대리가 책임진다고 했어요.‘

이런 말은 초등학생이나 할 수 있는 말이다.


검사부 직원이 김철민과 지점장에게도 사건의 경과를 물었다.


”제가 모든 서류를 완벽히 갖추라고 주의를 주었어요.“

”윤대리가 다 좋은데 성격이 급해요.“

그들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모든 책임은 윤필수가 감당해야 했다.


은행 상벌위원회가 열렸다.

정직 3개월.


반성하라는 의미로 출근을 하지 못하고 집에서 대기한다.

당연히 월급도 없다.


오선녀는 남편을 원망하진 않았다.


”저는 당신이 집에 있는 동안 형부 일이나 도울게요.“

월급이 몇 달 동안 들어오지 않으니 돈도 벌고, 집에서 그동안 고생했으니 밖으로 내보냈다.


이제 당분간 아이를 키우는 건 윤필수 담당이다.


돌이 지났으니 좀 나을까 했지만, 더 힘들었다.

하루종일 따라다니며 밥을 먹이고, 넘어져 울면 달래고.

목욕을 시키느라 제대로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가 없었다.


그래도 좋았다.

언제 사랑하는 딸아이를 온종일 내 품에서 키워보겠는가.


어느 날 위급상황이 발생했다.

윤필수가 잠시 한눈파는 사이에 아이가 넘어졌다.


머리가 깨졌는지 피가 흘렀다.

대학병원 응급실로 데려갔다.


”일단 지금으로 봐서는 몇 바늘 꿔매면 괜찮을 것 같은데.“

의사의 말에 안심했다.


”그래도 혹시 뇌진탕이면 안 되니까 사진을 찍어봐야겠어요.“

”네. 그럼요.“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최악의 경우 수혈이 필요할 수도 있으니, 아이의 혈액형이 어떻게 됩니까?“

”그건 잘 모르겠는데요..“


오선녀와 아이의 혈액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그러면. 지금 여기서 검사 하시죠.“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틀 후 의사선생님이 불렀다.


”아이의 혈액형은 [O]형입니다.“

”아~ [O]형이요.“

윤필수가 A형, 오선녀가 B형이니 정상적인 결과다.


그런데.


”아버님! 아버님은 [바디바 혈액형] 아닙니까?“

”네? 처음 듣는 혈액형인데.“


[바디바 혈액형?]


의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최근에 학계에서 정식으로 인정되기 시작되었다.

혈액형 구분과 관계없이 혈장에 특이한 형체를 띈다.

인구 1만명당 한 명꼴로 나타나고 있다.

가급적 동일한 혈액형을 공급 받아야 위험이 적다.


”부모형제 중 그런 사람 없나요?“

”네. 전혀.“


오선녀의 집안에도 그런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며칠이 지나 집으로 왔다.


바디바 혈액형.

머리에 온종일 맴돌았다.


‘설마?’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은행에 입사하여 동기들끼리 가진 술자리의 기억.

김철민이 누군가와 잔을 세게 부딪치다 유리컵이 깨어졌다.


”조심해야 돼. 나는 피 흘리면 안 된다고. 특이한 혈액형이야.“

그놈이 지껄인 이야기가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듯 여기저기에서 울렸다.


약 2주의 시간이 흘렀다.

아이를 재워두고 동네 카페로 달려갔다.


어떤 남자가 윤필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종이봉투에서 비닐봉지를 꺼냈다.

그 안에 머리카락이 한 움큼 담겨있다.


”그러니까 이게 이 사람 꺼 확실한가요?“

윤필수가 사진을 보여줬다.


”의심할 것 같아서 현장 영상을 찍어왔죠.“

그 남자는 윤필수에게 비디오를 틀어주었다.


동영상 장면.

누군가 오토바이를 타고 한 남자의 뒤를 쫓고 있다.

그러더니 남자의 뒤통수를 치는 듯하더니 그대로 달아났다.

졸지에 머리를 가격 당한 남자는 황당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분명히 김철민 얼굴이다.


”약속한 이백만 원 입니다.“

윤필수가 돈을 건넸다.


***


윤필수는 봉투를 열어보지 못하고 한참을 망설이고 있다.


[한국 유전자 검사소]


그는 두 사람의 머리카락과 윤세라의 머리카락을 의뢰했다.


"후~"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한 후 떨리는 손으로 결과지를 꺼내 들었다.


검체 제공자: 윤필수

친부 가능성 0.001%


검체 제공자: 미상

친부가능성 99.999%


그는 아득히 깊은 바닷속에 빠진 것처럼 숨을 쉴 수 없었다.

바닥은 지진이 난 듯 울렁울렁 거렸다.


”아앙~“

아이가 울고 있다.


‘기저귀를 갈아 줘야 하나?’

윤필수가 반사적으로 튀어 나가 똥을 닦아주고 있다.


아이가 사랑스러우면 똥 냄새조차도 구수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방금 전 그의 머리를 강타했던 중요한 사실도 잊어버릴 만큼.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야?’

순간 세라의 몸에서 황급히 손을 뗐다.


‘아~ 어째 이런 일이.’


며칠 동안 혼란한 상황이 지속되었다.

아이가 울면 반사적으로 달려갔다가, 정신을 차리고 매몰차게 돌아섰다.


잠에 빠져든 세라를 우두커니 보고 있다.


김철민을 닮은 외모가 미워 보였다.

오똑 솟은 코가 눈에 거슬려 손가락으로 눌러보았다.

아이가 숨쉬기 힘들어 고개를 흔든다.


세수를 시킬 때면 하얀 피부가 거슬렸다.

거칠게 다루니 아이가 소리쳤다.

”아빠. 아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내가 이 아이의 아빠라고.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어.’


하지만.

자기와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는 것이 불편했다.


윤필수는 왼손잡이였다.


‘그래! 우리 아이도 왼손잡이로 만들자.’


그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놀고 있는 아이에게 장남감을 왼손에 쥐어 주었다.

세라는 불편한 듯 오른손으로 물건을 옮겼다.

윤필수가 이 모습을 보기 싫어 다시 반복하였다.


서너 번 같은 상황이 반복되자, 윤필수가 폭발했다.


”해야 돼. 싫어도 해야 돼. 너는 내 딸이니까 닮은 구석이 하나라도 있어야지.“


고함을 치며 아이의 등을 후려쳤다.

세라는 충격에 빠져 정신을 잃은 듯했다.


윤필수의 몸이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경련이 일었다.

그의 몸에 불이 활활 타올랐다.

착시현상이 아닌 진짜 불이었다.


‘악~이게 무슨 일이야.’

윤필수는 자기 팔과 몸통에 붙은 불을 보고 놀라 바닥에 쓰러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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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네가 버린 카드도 내가 가꾸면 보석이 돼. 24.06.28 35 0 10쪽
32 정신차려. 넌 내가 버린 카드를 주웠어. 24.06.27 39 0 9쪽
31 심지어 자기의 피가 아닌 남의 피를 타고 난 경우에도. 24.06.26 41 0 10쪽
30 사랑에 2등은 없다. 24.06.25 41 0 11쪽
29 나쁜 일을 저질러 놓고, 지나고 나서 미안하다고 하더라. 24.06.24 44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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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전설적인 사채업자 명동 불곰 24.06.18 46 0 8쪽
24 쉿! 대마왕이 깨어나고 있다. 24.06.17 49 0 10쪽
23 [당신은 누구입니까?] [나는 또 다른 나입니다.] 24.06.13 50 0 11쪽
22 머리 좋은 사람이 영업도 잘하더라. +1 24.06.12 51 0 9쪽
21 머리가 이기나? 발바닥이 이기나? 24.06.11 56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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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머리 좋은 건 인정, 근데 싸가지가 너무 없다. 24.06.07 64 1 11쪽
18 은행장이 될 겁니다. 24.06.06 66 1 10쪽
17 [화장실에 귀인(貴人)이 숨어있다.] 24.06.05 73 1 11쪽
16 착하게 살아라. 그러지 않으면 지옥 간다. 24.06.04 76 2 9쪽
15 의문의 사진 24.06.03 78 2 12쪽
14 컨닝의 천재. 24.05.31 87 2 10쪽
13 back to the past 24.05.30 83 2 12쪽
12 게이트가 열렸다. 24.05.29 81 2 10쪽
11 소원을 말해봐 24.05.28 79 2 11쪽
10 해방의 날 24.05.27 89 2 11쪽
9 재판 24.05.24 101 2 13쪽
8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 24.05.23 94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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