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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파파 님의 서재입니다.

다시 살아보니, 은행장 되기 참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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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헤밍파파
작품등록일 :
2024.05.19 10:20
최근연재일 :
2024.07.05 12:25
연재수 :
38 회
조회수 :
2,653
추천수 :
75
글자수 :
175,869

작성
24.07.03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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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지난 생에서는 고스란히 당했지만, 지금 생에서는 다른 길을 갈 거야

DUMMY

”윤대리! 어제 XX기업 사장님한테 가서 뭐라고 말했나?“

아침부터 지점장이 호통을 치고 있다.


”지점장님! 달러 대출은 지금 위험해요. 환율이 급하게 올라가면 기업들이 버티지 못한다 구요.“


1996년 현재 달러 환율은 800원대를 넘고 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눈에 훤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1년이 지나면.

대한민국 모든 기업들이 부채의 바다에 빠져 구명보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윤필수는 온몸이 불에 휩싸이는 일을 겪은 후 전생의 일을 생생히 기억해내었다.


‘미래를 알고 있는 내가 어떻게 기업들을 궁지에 빠트리겠는가?’

윤필수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지점장의 추궁이 계속되고 있다.

”야 이 사람아! 작년보다 올해 거의 환율이 100원 가까이 올랐어. 근데 여기서 더 간다고? 여기 리포트 보라고. 공부 좀 해.“

그가 내놓은 자료를 얼핏 보니 볼펜 자국이 제법 있다.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한 모양이다.


”이 자료 전망은 틀렸습니다. 천원을 훌쩍 넘어 1700원까지 갑니다.“

윤필수도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고집이기 보다는 사실 그대로 이야기할 뿐이다.


”이 사람이? 이 정도 말했으면 알아 들어야지. 자네가 어떻게 그걸 장담하나? 대부분 경제연구소에서는 환율은 이 정도에서 멈추거나 내려간다고 전망하고 있어. 당신이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에 가보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네. 그럼요. 똑똑히 보았죠. 나라가 망해가는 모습을.’

이렇게 말하고 싶었으나 참았다.

그랬다가는 정말 미친놈으로 찍힐 거니까.


윤필수는 요즘 기업을 방문하면 항상 보수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사장님! 가급적 여유자금 있으면 대출은 갚으세요.“

”부지매입 때문에 자금이 필요하다고요? 조금만 기다리면 싸게 구입할 수 있을 겁니다.“


반면 지점의 경영평가 점수는 바닥을 기고 있었다.

실적을 올려야 할 판에, 반대로 대출을 갚으라고 하니 당연한 결과였다.


지점장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윤대리는 기업심사역 자리에서 물러나게. 새로운 책임자가 올 거고, 당신은 보조 역할이나 충실히 해.“


윤필수는 자존심이 상했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었다.

‘그래. 지점장님은 답답하겠지. 하지만 나 때문에 나중에 웃을 수도 있을 거야.’


그는 실적에 대한 압박감에서 벗어나자 더욱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회장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명동불곰을 찾아갔다.


그가 명동사채시장에서 물러나고, 제도권 경제로 입성한 지 3년이 넘었다.


외모도 많이 변했다.

처음에는 배가 불룩 나온 탐욕스러운 고리대금업자의 모습이었으나, 지금은 중후한 분위기의 기업 대표로 보였다.


”어떻게 지냈나? 고생 많았지.“


윤필수는 명동불곰과 한동안 연락을 끊고 지냈었다.

장인 오사장의 사주를 받아 자금을 빌리러 갔다가 면박 당한 후에는 접촉이 없었다.


그가 단칼에 거절한 것이 섭섭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보다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웠다.

명동불곰의 평소 투자방침을 안다면 성사하기 어려운 딜을 가지고 덤빈 것이다.

단지 잘 안다는 이유로, 몇 번 도움을 주었다는 사유로 건방지게 행동한 것이다.


”일을 단단히 처리해야지. 모든 일의 처음이자 마지막은 정확한 서류를 챙기는 거야. 알만한 사람이 왜 그런 실수를 했나?“

그는 윤필수가 주택조합 부실대출 건으로 징계 받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제가 경솔했습니다.“

지점장과 김철민의 압력도 있었지만, 제일 큰 책임은 본인에 있음을 쿨하게 인정했다.


”회장님! 요즘 회사 일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습니까?“

”빌딩은 여전히 임대는 잘 되고 있고, 공장은 그럭저럭.“


명동불곰은 1년 전 제지회사를 인수했다.

자금난에 시달리는 기업이라 좋은 가격에 손에 쥐었다.

제지업은 특별한 기술은 필요 없었다.

원재료인 폐지만 구해서 고가의 기계장치로 돌리면 되었다.


”요즘은 작은 철강회사를 보고 있어.“

나름 자신이 붙은 모양이었다.


”철강회사요? 그 방면은 잘 모르시잖아요?“

윤필수는 의외였다.


명동불곰은 미래가 불확실한 사업은 가급적 피한다.

작더라도 확실한 이익을 가져다주는 곳을 선호한다.

그래서 이익률은 낮으나 매출은 꾸준히 일어나는 제지업을 인수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철근 만드는 회사야. 요즘 없어서 못 팔아. 달러 대출을 받아서 인수해볼 생각이야.“

명동불곰은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평소의 신중한 모습과는 달리 어딘가 급해 보였다.

인수한 제지회사가 생각보다 빨리 본 궤도에 오르자 자만감에 빠졌다.


윤필수는 앞으로 닥칠 미래가 눈에 선했다.

한부철강의 부도.

건설회사 미분양.

달러 폭등.


”회장님! 감히 말씀드립니다. 그 생각 접으세요.“

윤필수는 과감히 조언을 했다.


”이보게. 자네보단 내가 잘 알아. 다 생각이 있어.“

명동불곰은 조금 빈정 상한 눈치였다.


”회장님! 이럴 가능성도 생각해보셔야 해요.“

윤필수는 조목조목 현 상황을 분석해주었다.


1995년부터 무역적자가 증가하고 있다.

건설사의 미분양이 조금씩 생기고 있다.

대기업의 부채비율은 심한 경우 500프로를 넘고 있다.

금융기관들이 달러를 단기조달하여 장기대출로 운용하고 있다.


”몇 년 전 금융위기를 겪었던 멕시코와 비슷한 상황입니다.“

”음~ 그래. 또 한 번 자네의 도움을 받게 되나?“

마지막 언급에 명동불곰은 신중한 표정을 지었다.


윤필수는 방을 빠져 나오면서 더욱 고민이 커졌다.


‘큰일 났어. 회장님처럼 똑똑하신 분까지도 거품에 흠뻑 빠졌어.’

그는 앞으로 벌어질 이 나라의 미래가 진심으로 걱정이 되었다.


‘가만! 내가 지금 남 걱정할 때인가?’

윤필수는 지난 생에서 그가 겪었던 참담한 현실을 기억해내었다.


정확히 97년경부터 인생이 꼬였다.


장인의 사업은 정치 인맥이 없어지자 고전했고, IMF 구제금융 직전 부도를 냈다.

사업이란 모래 기둥에 세운 10층짜리 건물과 같았다.

너무나 쉽게 무너지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망하고 나니 건질 것이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윤필수의 앞길에 영원히 재를 뿌렸다.


인생 살면서 주변에서 무수히 들었던 이야기.


”남에게 보증을 서주면 안 된다“

이 말의 위력을 여실히 깨달았다.


윤필수의 기억이 맞다면 앞으로 6개월 후 벌어질 일이다.


장인은 사업이 어려워지자 윤필수를 찾았다.


”이보게 이번에만 자네 도움이 필요해. 공사금액도 얼마 되지 않는데, 업체에서 보증인을 구해오라고 하네. 신용이 확실한 사람으로. 요즘 건설이 불황이다 보니 이런 수모도 다 겪고 말이야.“

오사장은 절박했다.


윤필수는 아무리 장인의 부탁이라도 선뜻 수락할 수 없었다.

거의 매일 집에 찾아왔다.


”당신! 아빠 일인데 이렇게 모른 채 할 수 있어요?“

장인은 오선녀를 앞세워 윤필수에게 연대보증을 강요했다.


보증서류에 도장을 찍은 후 6개월정도 지나 회사는 부도가 났다.

당연히 윤필수가 고스란히 보증채무를 져야 했다.


채권자들은 그의 월급에 가압류를 걸었고 매달 급여통장에 입금된 금액은 반으로 줄었다.


그가 연대보증을 섰던 금액은 10억.

매달 그의 월급에서 뜯겨나간 금액은 2백만원 정도.

대충 계산해보아도 50년 걸려야 갚을 수 있다는 가정이다.

답이 없었다.

답이 없는 것은 돈을 받아야 하는 빚쟁이도 마찬가지였다.


‘아! 그랬지. 이놈들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윤필수는 지난 생의 악몽. 그날을 기억했다.


고객들과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수모를 겪었다.

윤필수가 평생 직장생활에서 기를 펴지 못하고 그럭저럭 살아가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지점으로 덩치 큰 스포츠 머리의 깍두기들이 찾아왔다.

“당신이 윤철수야? 생긴 건 멀쩡하게 생겨 가지고 돈 떼먹으면 되겠어? 매달 200만원 가지고 어느 세월에 갚겠어. 집을 팔아서라도 목돈 일부라도 빨리 갚아. 안 그러면 매일 찾아올 거야.“


그렇다 윤필수와 가족들이 살고 있는 집이 있었다.

소유주는 오선녀.

윤필수의 장인이 결혼 당시에 사준 집이었다.

덕분에 윤필수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서 고생은 덜했다.

하지만 오랜 기간 오선녀와 처갓집 식구들에게 한없이 고개를 숙여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헐값에 집을 처분할 것이다.

모두 채무를 갚는데 사용하였다.

그것 만으로 모자라 월급 가압류는 계속되고, 오랜 기간을 궁핍한 상태로 지내야 했다.


‘안 돼. 지난 생에서는 고스란히 당했지만, 지금 생에서는 다른 길을 갈 거야.’

윤필수는 미래를 바꾸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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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살아보니, 은행장 되기 참 쉽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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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비상 계획을 짜보게.” 24.07.05 15 1 10쪽
37 신용이 문제야. 내 신용을 형편 없이 만들자. 24.07.04 13 0 11쪽
» 지난 생에서는 고스란히 당했지만, 지금 생에서는 다른 길을 갈 거야 24.07.03 28 0 9쪽
35 달러가 1700원까지 간다고? 완전 미친 놈이구만. 24.07.02 27 0 9쪽
34 내 딸이니까 닮은 구석이 하나라도 있어야지. 24.07.01 31 0 11쪽
33 네가 버린 카드도 내가 가꾸면 보석이 돼. 24.06.28 37 0 10쪽
32 정신차려. 넌 내가 버린 카드를 주웠어. 24.06.27 42 1 9쪽
31 심지어 자기의 피가 아닌 남의 피를 타고 난 경우에도. +1 24.06.26 43 1 10쪽
30 사랑에 2등은 없다. +1 24.06.25 44 1 11쪽
29 나쁜 일을 저질러 놓고, 지나고 나서 미안하다고 하더라. +1 24.06.24 47 1 11쪽
28 후폭풍. +1 24.06.21 46 1 10쪽
27 동작 그만! 지금부터 금융실명제 실시 +1 24.06.20 50 1 10쪽
26 100억 예금을 받았다 +1 24.06.19 43 1 9쪽
25 전설적인 사채업자 명동 불곰 +1 24.06.18 47 1 8쪽
24 쉿! 대마왕이 깨어나고 있다. +1 24.06.17 51 1 10쪽
23 [당신은 누구입니까?] [나는 또 다른 나입니다.] +1 24.06.13 53 1 11쪽
22 머리 좋은 사람이 영업도 잘하더라. +2 24.06.12 52 1 9쪽
21 머리가 이기나? 발바닥이 이기나? +1 24.06.11 57 1 10쪽
20 나는 인생 험하게 살았다. 어쩔래? +1 24.06.10 57 2 10쪽
19 머리 좋은 건 인정, 근데 싸가지가 너무 없다. +1 24.06.07 65 2 11쪽
18 은행장이 될 겁니다. +1 24.06.06 68 2 10쪽
17 [화장실에 귀인(貴人)이 숨어있다.] +1 24.06.05 75 2 11쪽
16 착하게 살아라. 그러지 않으면 지옥 간다. +1 24.06.04 78 3 9쪽
15 의문의 사진 +1 24.06.03 80 3 12쪽
14 컨닝의 천재. +1 24.05.31 89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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