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헤밍파파 님의 서재입니다.

다시 살아보니, 은행장 되기 참 쉽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공모전참가작

헤밍파파
작품등록일 :
2024.05.19 10:20
최근연재일 :
2024.07.15 17:20
연재수 :
42 회
조회수 :
3,377
추천수 :
75
글자수 :
192,790

작성
24.07.11 12:15
조회
20
추천
0
글자
10쪽

국가 부도의 서막이 울렸다.

DUMMY

1997년 1월 어느 날.

“오늘 한보그룹이 최종부도 처리되었습니다.”

뉴스에서 앵커의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직까지는 목소리가 평온하구나.‘


10개월후 이런 멘트가 흘러나올 것이다.

[오늘은 대한민국 국치의 날입니다. 한국이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였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슬픈 소식을 전하는 앵커의 눈에는 눈물이 맺힐 것이다.


’이제 시작이야.‘

윤필수는 은행장이 즉시 자기를 부를 줄 알았다.

하지만 소식이 없었다.


’아직 제대로 위기를 체감하고 있지 않아.‘

그는 실망스러웠다.


한 달 후 대기업 철강회사 S그룹과 소주 독점기업 J회사의 부도가 이어졌다.

이제야 사람들이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가끔 엘리베이터안에서 마주치는 부서장들이 윤필수를 범상치 않게 보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에게 앞으로 상황을 물어보는 사람도 생겼다.

“윤대리! 앞으로 국채금리는 어떻게 될까?”

“국가 신용등급이 하락하면 금리는 더 올라가겠죠.”


“달러 환율이 아직은 괜찮은 것 같은데..”“최대한 모아 놓으세요.”


자금시장이 서서히 경색되기 시작했다.

건설사, 철강회사, 식품회사 업종을 가리지 않고 돈이 모자랐다.

결제대금으로 주고 받은 약속어음을 믿을 수 없었다.


앞으로 3개월, 6개월 후 회사가 대금을 지급할 수 있을까?

거래은행도 어음할인을 꺼리기 시작했다.

어음할인으로 자금을 융통하는 기업들은 서서히 궁지에 몰리고 있다.


은행장이 드디어 그를 불렀다.


’조금만 일찍 부르지. 할 수 있는 게 더 많았는데.‘

윤필수는 아쉬웠다.


“윤대리! 몇 개월 전 나는 자네의 전망이 틀리기를 바랬네.”

“네?”


“미워하거나, 나쁜 감정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만약 보고서대로 세상이 흘러간다면 엄청난 혼란이 예상되니까.”

“지금이라도 대비를..”


“일단 몇 사람을 불렀으니 대화를 해보자고.”

은행장실로 몇 사람이 들어왔다.


기업금융팀장, 외환센터장, 그리고 익숙한 얼굴이 눈에 띄었다.

’앗! 저놈이 왜 여기에‘

국제금융 상황에 밝다고 인정받는 김철민도 함께 했다.


“최근에 한보그룹 부도 이후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윤필수 대리가 보고한 비상계획을 다시 살펴보는 게 좋겠어요.”

은행장이 회의를 시작했다.


“앞으로 대기업 부도는 계속 이어질 겁니다.”

윤필수가 경고를 하였다.


“그건 우리도 예상하고 있지만, 체급이 낮은 대기업이 대부분일 겁니다. 상위 그룹사는 괜찮다고 생각됩니다.”

기업금융팀장이 반론을 제기했다.


“아닙니다. 대한민국 모든 기업은 위기상황입니다. 어쩌면 우리 은행의 대주주 대호그룹도 해당될 수 있어요.”

“뭐라고? 대호그룹도? 그건 심하지 않은가?”


윤필수는 미래를 알고 있다.

몇 년 지나면 대호그룹이 해체 절차를 밟게 된다.

주력기업 대부분이 다른 회사로 매각된다.


“목소리를 낮추게. 우리 대주주가 걸린 일이야.”

은행장도 대호그룹 이야기가 나오자 불편하다.


대호그룹의 재무구조가 취약하다는 건 모두 알고 있다.

그래도 대마불사(大馬不死).

과중한 부채를 가지고도 지금까지 잘 버텨왔다.

이 기업이 무너지면 은행도 피해가 심각하다.

특히 대주주라는 관계 때문에 한독은행과 거래 규모가 크다.


“지금이라도 대호그룹 익스포져를 줄여야 해요.”

{*익스포져: 은행에서 차지하는 대출비중}

윤필수가 은행장에게 건의를 했다.


“그건 당신이 쉽게 이야기할 상황이 아니야.”

은행장이 날카롭게 반응했다.


회사의 재무리스크가 크다는 건 알고 있지만, 대주주인 대호그룹의 눈밖에 벗어나면 안 된다.

연임을 위해서는 최대한 잘 보여야 하는 입장이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제한적입니다.”

윤필수는 자기의 생각을 정리했다.

대출은 만기 전에 미리 갚으라고 독촉할 수는 없다.


“앞으로 대출신규는 가급적 제한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특히 외화대출은 아주 위험합니다.”

“아직 외환시장은 평온합니다. 그리고 이 상품만큼 수익성 높은 건 없어요.”

김철민이 끼어들었다.


현재시점 1997년 5월.

연초 환율이 850원으로 시작하여 아직 비슷한 수준.


“환율이 작년보다는 조금 올랐지만, 이 정도로는 위기라고 볼 수 없어요.”


“곧 아시아 통화위기가 도래합니다. 한국 원화도 피해갈 수 없습니다.”

“그놈의 위기. 위기 타령. 지겹군요. 구체적 근거를 대보세요.”

외환센터장이 질문했다.


“현재 외화대출의 상당부분이 미스매칭 상태입니다.”

{*미스매칭: 대출만기의 불일치}


국내은행도 외국은행에서 달러를 빌려온다.

빌려 온 돈을 다시 국내기업에 빌려주는 것이다.

싸게 빌려와서 비싼 이자를 받을 뿐.

문제는 외국은행에서 빌려오는 돈은 만기가 짧다.


“미스매칭? 맞습니다. 그래서 수익성이 좋습니다.”

격론이 붙었다.


“그럼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만기가 도래하는 외화대출은 연장을 하지 않고, 달러를 최대한 모으는 겁니다. 특히 한국의 종합금융사. 동남아 지역 금융기관에 빌려준 건 회수해야 합니다.”


금융위기의 시발점은 외화유동성 부족에서 시작되었다.

특히 종합금융사에서 아시아 지역은행에 빌려준 자금을 받지 못하면서 상황이 악화되었다.

결국 국내 대부분 종합금융사는 파산하게 된다.


“회수하라고요? 얼마나 수익성이 좋은데요. 이번에 은행이 어렵다고 우산을 뺏으면, 다음에 상황이 좋아지면 우리를 외면할 겁니다.”


은행장은 고민이 되었다.

’하~ 어쩐다? 묘안이 없을까? 그래. 윤대리를 헤징 용도로 활용하자.‘

{*헤징: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상반된 거래를 하는 행위}


“이렇게 합시다. 각 부서장 여러분들은 하던 대로 하세요. 다만 현재까지는 윤필수 대리의 전망대로 금융시장이 진행되었습니다. 리스크에 주의를 기울이세요. 향후 결과는 본인들이 책임지는 겁니다.”


“윤필수 대리를 팀장으로 리스크헤지 트레이딩 부서를 만들겠습니다. 전결권은 100억입니다.”

은행장이 파격적인 대우를 했다.


’억! 내가 팀장이라고? 전결권 100억?‘

윤필수는 당황했다.


“일종의 헤지용도로 거래를 하는 겁니다. 달러환율이 강세로 예상되면 그에 맞춰서 달러를 매입하는 겁니다. 형태의 제한은 없습니다. 전결권은 100억입니다. 대신 레버리지는 없습니다.”


“행장님! 저는 자금거래 경험도 없고 해서.. 자신이 없습니다.”

“윤대리는 앞으로의 방향만 정하는 겁니다. 걱정마세요. 트레이더 몇 명 붙여 줄 테니.”

은행장은 의지가 확고했다.


“행장님! 지금까지 상황을 맞추었다고 앞으로도 잘 맞춘다는 보장이 없는데, 경험이 부족한 친구에게 너무 과중한 부담을 주시는 게 아닌지요?”

자존심 상한 외환센터장이 이의를 제기했다.


“잘 해낼 겁니다. 김철민 팀장하고 최단기 책임자 승진한 사람 아닙니까? 그리고 전결권 100억이면 아주 많은 건 아닙니다. 말 그대로 헤징 용도에 적합한 금액이지요.”

은행장은 흔들리지 않았다.


윤필수는 잠시 위축되었지만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래. 내가 미래 일어날 일을 완전히 궤뚫고 있는데 무서워할 게 뭐람. 사고가 발생하는 지점을 알고 있으니 그곳을 피하기만 하면 되고, 보물이 나오는 곳에는 미리 가서 기다리고 있으면 돼.‘


***


“지원아! 앗! 취소. 제수씨! 오랜만입니다.”

김한수와 황지원이 찾아왔다.


옛 연인을 보자마자 반가운 마음에 그녀의 이름을 불렀던 것이다.


“제수씨라니, 형수님이라 불러야지.”

김한수가 친구의 경솔함을 너그럽게 용서했다.


“필수씨! 이런 게 인연인가요?”

황지원이 쑥스럽게 미소 지었다.


그녀는 김한수의 곁에서 더욱 빛나고 있었다.

’그래. 나보다는 저놈에게 더 잘 어울려.‘


김한수는 생각보다 결혼 승낙을 쉽게 받아냈다.

역시 영화감독 지망생답게 시나리오를 잘 짰다.


“아버지 결혼할 여자가 생겼어요. 곧 인사를 가겠습니다.”

미국에서 전화를 받은 부모님들은 기대를 잔뜩 하고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황지원입니다.”

수줍게 인사하는 여자의 얼굴보다 불룩 나온 배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한수의 부모님은 빨리 자신의 대를 이어가고 싶었다.

결혼에 한 번 실패한 여자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으나, 이미 아들의 씨가 자라고 있으니, 내칠 수는 없는 일.


그리고 찬찬히 여자를 살펴보니 행동이 신중하고 밝아 보였다.

“그래 허락하마. 결혼식은 빠를수록 좋겠다.”

친구 부모님들은 흔쾌히 결혼을 허락하였다.


“천천히 있다가, 아이를 낳고 미국으로 갈 생각이야.”

김한수는 장래 계획을 밝혔다.


’맞아. 친구도 달러가 많이 필요하겠구나.‘

윤필수의 머릿속에 좋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야! 미국에 살림 장만하려면 돈 많이 가져가야겠네?”

“아무래도 그렇지. 근데 지금 환율이 너무 많이 올랐잖아? 나중에 하려고.”


“이번에 싹 다 바꿔. 내 말 들어라.”

“작년보다 이미 올랐던데? 내가 처음 공부하러 갈 때는 700원대였는데. 지금은 850원?”


“금방 2천원 간다. 친구 말 믿어라.”


김한수는 윤필수의 강력한 권고를 따르기로 했다.


’가만? 나도 달러를 사놓을까? 가만히 있으면 두 배 먹는데‘

잠시 고민을 했다.


’그만하자. 윤필수. 착하게 살아야지. 미래를 안다고 내 이익을 챙겨선 안 돼. 그러다가 다음에 또 지옥에 간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다시 살아보니, 은행장 되기 참 쉽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2 1997년에는 크리스마스 캐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24.07.15 10 0 10쪽
41 미래가 보이니 투자가 너무 쉽다. 24.07.12 20 0 9쪽
» 국가 부도의 서막이 울렸다. 24.07.11 21 0 10쪽
39 드디어 시작이군. 부도 일보 직전이야 24.07.10 31 0 9쪽
38 “비상 계획을 짜보게.” 24.07.05 35 1 10쪽
37 신용이 문제야. 내 신용을 형편 없이 만들자. 24.07.04 30 0 11쪽
36 지난 생에서는 고스란히 당했지만, 지금 생에서는 다른 길을 갈 거야 24.07.03 48 0 9쪽
35 달러가 1700원까지 간다고? 완전 미친 놈이구만. 24.07.02 41 0 9쪽
34 내 딸이니까 닮은 구석이 하나라도 있어야지. 24.07.01 51 0 11쪽
33 네가 버린 카드도 내가 가꾸면 보석이 돼. 24.06.28 45 0 10쪽
32 정신차려. 넌 내가 버린 카드를 주웠어. 24.06.27 55 1 9쪽
31 심지어 자기의 피가 아닌 남의 피를 타고 난 경우에도. +1 24.06.26 56 1 10쪽
30 사랑에 2등은 없다. +1 24.06.25 61 1 11쪽
29 나쁜 일을 저질러 놓고, 지나고 나서 미안하다고 하더라. +1 24.06.24 60 1 11쪽
28 후폭풍. +1 24.06.21 62 1 10쪽
27 동작 그만! 지금부터 금융실명제 실시 +1 24.06.20 62 1 10쪽
26 100억 예금을 받았다 +1 24.06.19 57 1 9쪽
25 전설적인 사채업자 명동 불곰 +1 24.06.18 58 1 8쪽
24 쉿! 대마왕이 깨어나고 있다. +1 24.06.17 62 1 10쪽
23 [당신은 누구입니까?] [나는 또 다른 나입니다.] +1 24.06.13 68 1 11쪽
22 머리 좋은 사람이 영업도 잘하더라. +2 24.06.12 65 1 9쪽
21 머리가 이기나? 발바닥이 이기나? +1 24.06.11 68 1 10쪽
20 나는 인생 험하게 살았다. 어쩔래? +1 24.06.10 68 2 10쪽
19 머리 좋은 건 인정, 근데 싸가지가 너무 없다. +1 24.06.07 78 2 11쪽
18 은행장이 될 겁니다. +1 24.06.06 82 2 10쪽
17 [화장실에 귀인(貴人)이 숨어있다.] +1 24.06.05 94 2 11쪽
16 착하게 살아라. 그러지 않으면 지옥 간다. +1 24.06.04 96 3 9쪽
15 의문의 사진 +1 24.06.03 96 3 12쪽
14 컨닝의 천재. +1 24.05.31 106 3 10쪽
13 back to the past +1 24.05.30 103 3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