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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파파 님의 서재입니다.

다시 살아보니, 은행장 되기 참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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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헤밍파파
작품등록일 :
2024.05.19 10:20
최근연재일 :
2024.07.05 12:25
연재수 :
38 회
조회수 :
2,656
추천수 :
75
글자수 :
175,869

작성
24.07.04 12:15
조회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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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신용이 문제야. 내 신용을 형편 없이 만들자.

DUMMY

윤필수는 오사장의 사업상황이 어떤지 궁금했다.


”요즘 장인 사업은 어떠셔?“

오선녀에게 슬쩍 떠보았다.


”아주 잘 되고 있어요. 공사 물량이 너무 많아서 탈 이래요. 차도 이번에 벤츠로 바꾸었어요.“


역시나 기대했던 답이었다.


원래 장인의 스타일이 그랬다.

좋게 이야기하면 무한 긍정, 불굴의 의지를 가진 사업가.

실상은 일을 펼치기만 하고 마무리 능력이 없었다.

손에 돈이 조금 들어오면 미래를 위해서 저축하는 것이 아니라 차부터 바꾸었다.


윤필수의 기억이 맞으면, 장인의 회사는 6개월 정도 지나면 자금 압박이 시작될 것이다.

발주 업체의 부도가 시작되고, 수령한 약속어음이 휴지 조각이 된다.

그때부터 연대보증을 끊임없이 요구할 것이다.


윤필수가 청우건설 사무실을 찾았다.

”장인어른! 하시는 일은 잘 되십니까?“

”어쩐 일인가? 자네가 사무실로 다 찾아오고.“

오사장은 조금 놀라는 눈치였다.

결혼 후 장인의 회사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사업하시는데 어려움은 없는지 걱정이 되어서요.“

”자네 일이나 잘하게. 여긴 아무 문제 없네.“

사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조금씩 밑바닥에서는 아우성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고객 중에 건설업에서 잔뼈가 굵은 분이 계시는데, 전망을 어둡게 보더라고요.“


윤필수는 향후 일어날 일을 이야기해주었다.


한국은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가이다.

최근 무역수지 적자 폭이 커지고 있다.

들리는 소문에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숫자보다 훨씬 적은 외환보유고를 가지고 있다.


”만약 환율이 급등하면, 금리를 급하게 올려야 해요.“

윤필수가 최대한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금리가 높아지면 재무구조가 취약한 건설회사가 제일 먼저 타격을 입을 것이다.


”이보게! 이런저런 걱정 다 하면 사업 못 해. 사업은 예측이 아니라 대응이야. 나 보라고. 수없이 실패를 거듭했지만, 항상 이렇게 살아남지 않았나?“

오사장은 윤필수의 말을 전혀 듣지 않았다.


하긴 전생에서 윤필수가 목격한 장인의 생존능력은 탁월했다.

IMF 이후 사업이 쫄딱 망하고, 윤필수에게 연대보증채무를 넘겼지만, 몇 년 후 사업자 대표를 다른 사람 이름으로 대신하여 거뜬히 사업을 또 시작했다.

그의 화려한 언변으로 눈 먼 돈을 빌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윤서방! 이왕 온 김에 나한테 투자 좀 하지. 주변에서 어음깡 해 달라고 난리야. 부도 위험 없는 업체는 내가 잘 알아. 월급 몇 배는 벌어줄 수 있는데.“

오사장은 전혀 사업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래. 장인어른은 평생 저런 방식으로 살아오신 분이야. 사업이 망해도 모든 걸 툴 툴 털고 다시 시작하지. 그렇지만 사위에게 그 많은 빚을 떠넘기고도 미안해 하지 않으셨어.’

윤필수는 오사장을 설득하려는 생각을 접었다.


‘내가 문제야. 또 덤터기를 쓰고 추락할 수는 없어.’


하루종일 머리를 짜내었다.


결국 국가부도는 피할 수 없고 장인과 마누라는 그에게 매달릴 것이다.

채권자들은 은행원 윤필수처럼 확실한 신용을 가진 사람을 데려오라고 요구할 것이다.


‘그렇다. 신용이 문제야. 내 신용을 형편 없이 만들자.’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 올랐다.


한때 명동불곰의 비서 역할을 했던 박정호 실장을 찾아갔다.


[XX실업 사장 박정호]

반짝 반짝 빛나는 책상 위의 명패가 그의 성공을 말해주었다.


한때는 사채업자의 보디가드로 출발했으나, 열심히 살아간 덕택에 청소용역 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다.


”실장님! 나날이 회사가 커지고 있네요.“

”회사는 무슨. 구멍가게지.“


박실장은 명동불곰에게서 독립하여 속칭 [카드깡] 사업을 시작해서 짭짤한 수익을 거두었다.

하지만 오래 사업을 지속하지는 않았다.


”이만하면 벌 만큼 벌었어. 쉽게 버는 돈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지.“

그도 명동불곰의 영향을 받았는지 합법적인 사업을 원했다.


”땀 흘리는 만큼 수입이 생기는 정직한 사업이야.“

박실장은 현재의 청소용역 사업에 만족하고 있었다.


”실장님! 저 좀 도와주세요. 연극 한번 해야겠어요.“

”누가 자네에게 협박이라도 하는 건가?“


두 사람은 소리를 낮추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실은...장인이...보증...미리 손을 써야.....“

”월급?...집까지...“


몇 시간 동안 윤필수는 박실장의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며칠 후 윤필수가 퇴근하고 저녁식사를 할 무렵.


”딩동 딩동“

”누구세요.“

오선녀가 인터폰을 확인했다.

여러 명의 남자가 문 앞에 버티고 있다


”여기 윤필수라는 인간이 살고 있습니까?“

”네? 대체 누구시길래?“


”윤필수씨 부인 되시는 모양인데, 그놈 여기 있죠?“

”네?“

오선녀가 고개를 돌려 윤필수를 바라보았다.


윤필수의 표정이 쥐에게 쫓기는 고양이 신세처럼 떨고 있었다.

손가락을 입에 대며, 집에 없다고 대답하라는 듯 손짓을 한다.

그다음 방으로 숨어버리는 윤필수.


오선녀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쾅 쾅. 빨리 문 열라고!“

남자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어디서 행패를 부리세요. 자꾸 이러시면 경찰을 부를 거예요.“

오선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흥! 내가 이 안에 있는 거 아는데, 오늘은 이만 물러가지. 윤필수 그놈한테 내 돈 빨리 갚으라고 해.“

”예? 돈이라니?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이야기하면 알 거요.“

남자들이 물러나고 잠잠해졌다.


”갔어?“

윤필수가 살금살금 방에서 기어 나왔다.


”가긴 갔어요. 그 사람들 깡패처럼 보이는데, 돈을 갚으라니 무슨 말이에요?

오선녀가 물었다.


“사실은..용서해줘..”

윤필수가 무릎을 꿇으며 두 손을 빌었다.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흘렀다.

방금 방안에 숨어 있으며, 안약을 눈동자 안에 가득 넣은 덕택이다.


“내가 주식투자로 돈을 많이 날렸어. 그놈들한테서 빌린 게 좀 있어.”

“대체 얼마를?”


“금액이 좀 커. 대략 2억 정도?”

“억! 2억! 아니 우리 월급이 얼마인데, 당장 나가!”


윤필수는 저녁식사도 마치지 못하고 쫓겨났다.

배는 조금 고파왔지만 괜찮았다.

지금의 불편함과 배고픔으로 나중에 닥칠 위험을 피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


다음날.

“실장님! 어제 고생하셨어요. 정말 연기 잘 하시던 대요.”

“야! 내가 데리고 간 얘들이 원래 그쪽 계통에 있는 사람들이야. 그 사람들이야 사연을 모르니, 너무 거칠게 행동하더라고. 좀 약하게 하라고 주문했지. 네 마누라 진짜 놀라면 안 되잖아.”


윤필수는 박실장에게 부탁을 했다.

고의적으로 본인의 신용을 엉망으로 만들 생각이다.

장인 오사장이 연대보증을 감히 생각하지도 못할 만큼.


박실장이 사채업자로 활동했던 만큼 손발이 잘 맞았다.

윤필수가 작성한 이억원 차용증은 공증사무소에서 공증까지 받았다.

빚쟁이들이 윤필수의 집에 들이닥치는 걸로 끝낼 순 없었다.

확실히 신용에 흠집을 내야 한다.

소문이 널리 퍼지도록.


윤필수가 집에 퇴근하니 난리가 났다.

장인부터 시작해서 처가 식구들이 총출동했다.


“엉엉! 창피해서 내가 못 살아.”

오선녀는 안방에서 울고 있다.


“자네. 이게 무슨 꼴인가?”

오사장이 윤필수에게 주먹이라도 날릴 태세였다.


거실의 모든 가구에 빨간 딱지가 붙어있다.

[유체동산 가압류] 통지장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죄송합니다.”

윤필수가 또 한 번 무릎을 꿇었다.


‘잘 되었어. 장인까지 모두 알게 되었네.’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마지막 종지부를 찍어야 했다.

사실 이 부분은 창피하기도 했으나, 만일을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절차였다.


“윤대리님! 급여 담당 XXX대리입니다. 법원에서 가압류 결정문이 왔습니다.”

인사부에서 전화가 왔다.


“아! 드디어. 하하하.”


아마 그 직원은 놀랐을 것이다.

‘이런 정신 나간 사람이 있나? 자기 월급에 가압류를 걸었다는 대 웃고 있다니?’


“여보! 미안해요. 앞으로 월급은 반만 나올 거야.”

윤필수는 반으로 확 깎인 월급명세서를 오선녀에게 보여줬다.


물론 가압류로 뜯겨가는 돈은 윤필수에게 고스란히 다시 돌아온다.

2년 정도만 참으면 될 것이다.


“와장창. 퍽 퍽.”

오선녀는 주방의 모든 접시를 박살 냈다.


이 광경을 지켜보면서 윤필수는 쾌재를 불렀다.

‘완벽해. 이제 내 인생이 달라졌어. 찌질이로 살게 되지 않을 거야.’


전생에서 겪었던 수모는 없던 일이 될 것이다.


장인에게 연대보증을 선 덕분에 감당해야 했던 어마어마한 채무.

은행에 찾아와서 그를 한없이 초라하게 만들었던 해결사들의 욕설.


이런 일들은 앞으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


한동안 그의 머리를 복잡하게 했던 연대보증 문제가 사라지자, 다시 현재의 경제상황에 주목을 했다.


지난 생과 변함이 없었다.

YS 정권의 무능함은 계속되었고, 레임덕 현상은 가속되었다.

무역수지 적자는 계속되고, 노동자들의 파업도 거세지고 있다.


명동불곰은 윤필수와 대면하고 보수적인 자세로 돌아섰다.


“회장님! 달러를 비축하십시오.”

그의 조언에 따라 현금의 많은 비중을 외화자산으로 전환했다.


남들이 보면 이해가 되지 않을 행동이었다.

원화예금과는 금리 차이가 꽤 많이 나는데.


“어이! 박사장! 점심 한번 합시다. 친한 은행직원이 있는데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요. 재미있을 겁니다.”

명동불곰은 주변의 기업대표에게 윤필수를 소개시켜 주었다.


“앞으로 경제위기가 오면 달러가 귀해질 수 있습니다.”

“대출금리가 많이 오를 수 있으니 보수적인 자세가 필요해요.”

윤필수가 자기의 견해를 밝혔다.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달러가 그동안 많이 올라갔는데, 더 가겠어요?”

“실물경기 괜찮아요. 밤에 한 번 나가봐요. 술집에 자리가 없어요.”


‘그래.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많으면 역사가 바뀌겠지.’

한 개인이 나라의 운명을 바꿀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필수는 고객을 만날 때마다 자신의 견해를 서슴없이 밝혔다.

당연히 은행 내부에서 이단아라는 낙인이 찍혔다.


“여기 비서실입니다. 행장님이 찾으십니다.”


돌연 은행장의 호출이 들어왔다.

입사 초기 재임하던 은행장은 이미 물러났다.


현재의 은행장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데 왜 불렀을까?

실적이 부진하다고 그를 부르나?


윤필수는 약간 걱정이 되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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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살아보니, 은행장 되기 참 쉽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8 “비상 계획을 짜보게.” 24.07.05 15 1 10쪽
» 신용이 문제야. 내 신용을 형편 없이 만들자. 24.07.04 14 0 11쪽
36 지난 생에서는 고스란히 당했지만, 지금 생에서는 다른 길을 갈 거야 24.07.03 28 0 9쪽
35 달러가 1700원까지 간다고? 완전 미친 놈이구만. 24.07.02 28 0 9쪽
34 내 딸이니까 닮은 구석이 하나라도 있어야지. 24.07.01 31 0 11쪽
33 네가 버린 카드도 내가 가꾸면 보석이 돼. 24.06.28 37 0 10쪽
32 정신차려. 넌 내가 버린 카드를 주웠어. 24.06.27 42 1 9쪽
31 심지어 자기의 피가 아닌 남의 피를 타고 난 경우에도. +1 24.06.26 43 1 10쪽
30 사랑에 2등은 없다. +1 24.06.25 44 1 11쪽
29 나쁜 일을 저질러 놓고, 지나고 나서 미안하다고 하더라. +1 24.06.24 47 1 11쪽
28 후폭풍. +1 24.06.21 46 1 10쪽
27 동작 그만! 지금부터 금융실명제 실시 +1 24.06.20 50 1 10쪽
26 100억 예금을 받았다 +1 24.06.19 43 1 9쪽
25 전설적인 사채업자 명동 불곰 +1 24.06.18 47 1 8쪽
24 쉿! 대마왕이 깨어나고 있다. +1 24.06.17 51 1 10쪽
23 [당신은 누구입니까?] [나는 또 다른 나입니다.] +1 24.06.13 53 1 11쪽
22 머리 좋은 사람이 영업도 잘하더라. +2 24.06.12 52 1 9쪽
21 머리가 이기나? 발바닥이 이기나? +1 24.06.11 57 1 10쪽
20 나는 인생 험하게 살았다. 어쩔래? +1 24.06.10 57 2 10쪽
19 머리 좋은 건 인정, 근데 싸가지가 너무 없다. +1 24.06.07 65 2 11쪽
18 은행장이 될 겁니다. +1 24.06.06 68 2 10쪽
17 [화장실에 귀인(貴人)이 숨어있다.] +1 24.06.05 75 2 11쪽
16 착하게 살아라. 그러지 않으면 지옥 간다. +1 24.06.04 78 3 9쪽
15 의문의 사진 +1 24.06.03 80 3 12쪽
14 컨닝의 천재. +1 24.05.31 89 3 10쪽
13 back to the past +1 24.05.30 84 3 12쪽
12 게이트가 열렸다. +1 24.05.29 83 3 10쪽
11 소원을 말해봐 +1 24.05.28 81 3 11쪽
10 해방의 날 +1 24.05.27 92 3 11쪽
9 재판 +1 24.05.24 106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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