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로펌 변호사 실종사건 (37)
[48]
교류경찰청 광역수사대 사무실 앞, 평소 누구보다 자신의 감정을 잘 숨기던 고 형사가 아주 약간 긴장한 듯한 표정으로 사무실 문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고 있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 뒤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그를 불러 세웠다.
“어이-! 고지석!”
고 형사의 이름을 부르는 그 소리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듯, 주변 전체를 울리고도 남을 만큼 매우 컸다.
큰 데시벨 때문이 아닌, 자신을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 때문에 아주 미세하게 흠칫 놀라며 그 자리에 멈춰선 고 형사는, 이내 빠르게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는 약간의 미소를 띠며 뒤를 돌아보았다.
“··· 아, 팀장님. 아, 아니···”
“아아- 괜찮아, 괜찮아. 지금도 팀장은 팀장이니까. 뭘 그렇게 당황하고 그래?”
강력 3팀 김상만 팀장보다도 몇 살은 많아 보이는 남자가 고 형사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너무 오랜만에 봬서 그만. 잘 지내시죠?” 고 형사가 다시 표정을 가다듬고는 남자를 보며 말했다.
“그럼-! 잘 지내지. 너는, 지금 김상만이랑 같이 있다지? 그 자식이랑 일할만해?”
“예, 뭐.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 ··· 아이, 그러니까-! 얼굴은 좋아 보여! 김상만이 잘해주나 봐? 내 밑에 있을 때보다 낫냐??”
“아이, 그렇진 않습니다. 그때가 훨씬 좋았죠, 뭐.”
“하! 짜식, 여전히 거짓말엔 소질이 없네? ··· 아 맞다, 소개가 늦었네. 이쪽은 예전에 내 밑에 있던 고지석이라고, 아주 능력 출중한 우리 경찰대 후배. 아주 에이스야 이 친구-. 그리고 이쪽은 박지혁이라고, 마찬가지로 능력 좋은 우리 경찰대 후배. 고지석이 보다 한, 두세 기수 아래지 아마?”
남자의 소개에, 고 형사와 박지혁이라는 남자는 서로 억지웃음을 보이며 살가운 척 인사를 나누었다.
“아- 그러고 보니까 두 사람 아주 비슷한 면이 많아. 자, 그럼 안에 들어가서 얘기마저 나눌까? 고 형사, 아직 언론에 나기 전인데 말이야. 우리가 최근에 꽤 규모가 큰 마약 조직을 하나 싹- 털었거든? 근데 그게 대박인 거 아니냐-! 너, 거기 교류서 강력반에선 이런 경험 평생 못 해본다?”
남자는 영웅담을 늘어놓듯 말을 하며 고 형사의 어깨에 팔을 얹고는 광수대 사무실 안으로 그를 데리고 들어갔다.
끝까지 얼굴에 옅은 미소 띠며 눈꼬리를 최대한 아래로 내리려 애쓰는 듯한 고 형사의 눈빛은 전반적인 얼굴의 표정과는 상반되게, 그 어느 때보다도 비장해 보였다.
[49]
최 형사와 김 형사가 탄 차량이 막 교류 2구역에 접어들었을 때, 조수석에 앉은 김 형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최 형사를 향해 말했다.
“아니 이 사람, 신호는 가는데 받질 않네요.”
“그래? 핸드폰이 꺼져있지 않다는 건 뭐, 어쨌든 도망칠 우려가 없다는 거 아니겠어? 그냥 모르는 번호라 전화 안 받을 수도 있잖아-” 최 형사가 대답했다.
“그렇긴 하죠. 혹시 도망갈까 싶어서 문자도 안 남겨 놨으니까요··· 근데, 지금 이 시간에 집에 있을까요? 그 살인범 자식 때문에 시간을 너무 끌어버려서···”
“일단 가봐야지. 집에 찾아가 보는 거 말곤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너무 조급해하지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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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뒤, 목적지인 교류 2구역의 한 아파트에 도착한 최 형사와 김 형사는 곧장 차에서 내려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때마침 나오고 있던 입주민 덕에 공동현관을 무사히 통과한 두 형사는 곧장 엘리베이터를 타고 박지우가 사라진 날 그녀의 차량을 미행하던 남자가 거주 중인 것으로 추정되는 18층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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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눌러볼까요?”
1804호 현관문 옆 초인종 앞에 가까이 선 김 형사가 침을 한번 꼴깍 삼키더니, 마찬가지로 긴장된 표정으로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있는 최 형사를 향해 물었다.
그러자, 최 형사가 아무런 대답 없이 비장한 표정으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띵- 동-’
‘······’
‘띵- 동-’
‘······’
“저기요-! 아무도 안 계세요?! 이봐요!!”
초인종을 눌러도 한참 동안 아무런 반응이 없자, 김 형사가 이번엔 현관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그러나, 여러 번 문을 두드렸음에도 1804호 안에서는 어떠한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 이 자식 이거, 진짜 없는 건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최 형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도망친 걸까요···? 후···” 김 형사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걔가 어떻게 알고 도망을 쳐?”
“박지우 씨 실종이랑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거면 당연히 우리가 수사하고 있는 걸 알고 도망쳤겠죠. 수사 시작되고 나서 갑자기 누군가 박지우 씨 차도 옮겼잖아요-”
“그래, 도망친 거라면 뭐 당연히 그런 이유겠지. 근데 아직 핸드폰 신호도 가는 걸 보면 글쎄···”
“최 형사님은 이 사람이 박지우 씨 실종이랑 관련이 없는 거 같아 보이세요?”
“아직 핸드폰 신호가 가잖아. 여태 박지우 실종 수사 과정에서 결정적 단서로 보이는 건 죄다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애쓴 것처럼 보였는데, 개인 핸드폰 신호가 계속 간다? 그건 좀 분위기가 다르지. 그리고, 이 자식이 박지우를 미행했던 건 맞지만, 결론적으로 끝까지 쫓아가지 않고 차를 돌렸잖아? 그래서 거기 그 박지우 차가 실종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찍혔던 CCTV에서도 이 자식 차를 발견할 수 없었고 말이야.”
“그건 그렇긴 한데··· 근데 왜 미행을 했겠어요? 하필 사라지기 직전까지? ··· 게다가, 이 사람은 재판 과정에서 박지우 씨와 마찰을 빚었다고 수재에서 콕 집어준 세 명 중 한 사람이잖아요.”
“그래, 뭐 미행한 건 당연히 수상하긴 한 건데··· 그게 실종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냐 이 말이지-”
“팀장님 말씀대로 이 사람 역할은 딱 거기까지였을 수도 있잖아요. 자기 임무대로 거기까지 미행하다 다음 사람한테 넘겨준 걸 수도 있죠-”
“근데 만약 그렇게 직접 관여가 됐다면,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 살던 곳에 살고 있을까? 핸드폰 번호도 안 바꾸고-?”
‘철커덕-!’
두 형사가 1804호 현관문 앞 복도에서 열띠게 의견을 주고받던 그때, 갑자기 맞은편 세대 1803호의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이봐요- 조용히 좀 해요-! 무슨 일인데 남의 집 앞에서 이러고 있는 거예요?!”
문을 열고 나온 중장년의 여성이 형사들을 보며 짜증 섞인 말투로 소리쳤다.
그러자, 깜짝 놀란 듯한 표정의 최 형사가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조용히 하겠습니다-”
“아니- 무슨 일이시냐고요! 개인 가정집 앞이잖아요, 여기!”
“아, 그게요. 지금···”
“제대로 말 안 하면 바로 경비, 아니, 경찰 부를 거예요!!”
“아, 선생님. 저희는 사건 수사 중인 경찰이에요. 시끄럽게 해서 너무 죄송한데, 지금 중요한 사건 수사 중이라 조금만 더 있다가 갈게요-” 김 형사가 여자에게 공무원증을 꺼내 보이며 살가운 말투로 말했다.
“경찰?! 어디-”
김 형사의 말에 여자가 놀란 듯한 표정으로 되묻더니, 이어서 김 형사의 공무원증을 앞뒤로 여러 번 확인했다.
그리고는 그가 다시 말했다.
“어떤 수사? 앞집 남자 말하는 거예요?!”
“아, 예. 혹시 1804호 남자에 대해서 좀 아시는 게 있으십니까?” 최 형사가 공손한 태도로 여자를 보며 물었다.
“뭐, 잘 알죠? 왜요. 무슨 잘못을 했는데?”
“죄송하지만 자세한 건 말씀드리기가 좀 곤란하고요. 혹시 최근에 언제 보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김 형사가 물었다.
“그냥 뭐라도 좋으니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있으신 건 모두 다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최 형사가 간절한 표정으로 여자를 보며 말했다.
“음··· 아니 그게, 사실 요 전에 저 앞집 인간한테서 좀 수상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긴 있었어-” 여자가 갑자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낮은 목소리로 형사들을 향해 말했다.
“수상해요? 구체적으로 좀 말씀해주시겠어요?” 김 형사가 말했다.
“음- 한 달 전인가···? 나가다가 마주쳤는데, 무슨 어디 오랫동안 여행 가는 사람처럼 이렇게 큰 캐리어 하나랑 작은 캐리어 하나를 힘겹게 끌고 나오더라고-”
“그게 정확히 언제죠?”
“아이, 정확히는 기억 못 하지-! 한 한 달 전쯤인 건 확실해요-”
“아- 정확히는 모르지만 한 달 전쯤이요. 그런데요? 그게 뭐가 수상했다는 건가요?”
“아니 글쎄, 나는 그냥 맨날 울상인 표정으로 혼자 사는 인간이 드디어 어디 여행이라도 가는가 싶어서, 웃으면서 어디 가는지 물었거든? 그랬더니 글쎄, 무슨 내가 못 물어볼 거라고 물어본 것처럼, 그 인간이 막 엄청 당황한 것 같은 표정으로 어버버하면서 대답을 제대로 못 하는 거야-! 결국 뭐, 그러고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가는 내내 어디 간다고 말은 안 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까 딱 어디 다급하게 도망가는 모습 같더라고-. 단순히 여행가는 게 아닌 거 같았어!!”
“그래요?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시고요?”
“아니 글쎄, 들어봐요. 그 인간이 그러고 그냥 가는데, 내가 또 엄청 예리한 구석이 있걸랑? 1층에 도착해서 그 인간이 캐리어 두 개 혼자 끌고 힘들게 엘리베이터 내리는 거 내가 문 잡아주면서 기다리고 있었거든? 근데 어머나 글쎄, 갑자기 핸드폰을 떨어뜨리는 거 있지?”
“핸드폰이요? 그래서요?”
“내가 주워주려고 바로 딱 집었는데, 보니까 글쎄 그 핸드폰에 지도가 켜져 있는 거야-!!”
“혹시 목적지를 보신 겁니까?!” 최 형사가 눈이 동그랗게 커지며 물었다.
“아니 그게 그러니까 글쎄, 하필 딱 내가 아는 곳이더라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주워서 건네주는 찰나의 순간에 내가 딱! 보고 바로 알아챈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선생님. 거기가 어딘데요?” 김 형사가 물었다.
“안산이에요, 안산-”
여자는 엄청난 비밀이라도 말해주듯 갑자기 형사들을 향해 아주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말했다.
“안산시요?!”
“더 구체적인 장소는 모르시는 겁니까?” 최 형사가 물었다.
“아이, 난 모르지!”
“안산이면 이번 사건이랑 접점이 있는 곳은 아닌데··· 구체적인 주소를 모르면 찾아가 볼 수도 없고 이거-” 최 형사가 팔짱을 끼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러자, 여자가 앞으로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아니, 찾아갈 필요 없어요-!”
“예?!”
“그러고 다시 돌아왔어-”
“예? 돌아와요??” 김 형사가 말했다.
“그렇게 나가고 꽤 오랫동안 안 보였지 아마? 그러다가 한, 2주 전인가부터 다시 보였어- 뭐, 오랫동안 피신이라도 가 있었는지 어쨌는지 모르지-”
“그럼, 지금 계속 여기 살고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최 형사가 물었다.
“그렇지? 그저껜가도 배달음식인가 시켜먹는 거 같던데?”
“아니, 선생님- 그것부터 말씀해주셨어야죠-! 그럼, 지금 여기서 기다리면 혹시 만날 수도 있다는 거죠? 연락처는 모르시고요?” 김 형사가 말했다.
“아니-! 수상한 부분이 있어서 말해준 건데 왜 그래요?? 그리고, 그건 모르지 나야! 만날 수 있을지 을지는-! 연락처는 내가 알아뒀다 뭐하게?”
“아, 선생님. 말씀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저- 그럼 혹시, 이 분이 뭐, 직장생활을 한다거나 그렇습니까? 직장인들처럼 특정 시간대면 출퇴근을 한다랄지요···” 최 형사가 물었다.
“글쎄, 저 인간은 내가 보기엔 그냥 백수같애- 뭐 언제 되면 출근하고 이런 걸 딱히 본 기억이 없어-! 근데 또 우리 애들이 그러데? 요즘 사람들은 뭐 꼭 직장에 안 나가도 집에서 돈을 벌기도 한다나 뭐라나···”
“최 형사님, 어떡할까요? 계속 기다려볼까요?” 여자의 대답을 들은 김 형사가 최 형사를 보며 물었다.
“흠······ 아직 다른 쪽에서 연락이 없는 거 보면 시간이 좀 있는 거 같으니까, 일단 여기서 좀 기다려볼까?”
“음- 그러시죠. 일단 팀장님께 상황 보고부터 드릴게요.”
“아니 그럼, 두 사람 여기 서있지 말고 우리 집으로 들어와서 기다리셔- 아, 아니다. 내가 1804에 대해서 경비실에 좀 알아봐 줘요?”
“예?! 뭔가 알아봐 주실 수 있으십니까?” 최 형사가 놀라며 물었다.
“아- 그럼?! 내가 여기 동대표인데 뭐, 그 정도도 못 알아봐 줄까 봐?” 여자는 으스대는 듯한 표정으로 두 형사들을 번갈아 쳐다보며 대답했다.
“그럼 저, 혹시 뭐 차량 출입 기록이라든지 입주민 기록카드 같은 것들을 좀 볼 수 있을까요?” 김 형사가 물었다.
“아이, 다 가능하다니까? 가만있어 봐요. 내가 위에 걸칠 거만 챙기고···”
여자는 말을 하며 문을 열어둔 채 황급히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조용하던 엘리베이터 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전혀 예상치도 못하게 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어?!”
흠칫 놀라며 황급히 소리가 나는 엘리베이터 쪽을 쳐다본 두 형사는 얼마 안 가, 그 안에 타고 있던 한 남자와 교복을 입은 여학생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잠시 뒤 엘리베이터 문이 완전히 열렸음에도 두 사람 중 그 누구도 내릴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열렸던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닫히려는 그 찰나의 순간 최 형사는 본능적으로 한 발짝 더 앞에 서 있던 남자를 쳐다보았고, 김 형사는 그의 뒤에 서 있던 여학생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 순간, 남자의 뒤에 서 있던 여학생이 마치 김 형사의 의중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김 형사와 본인의 대각선에 선 남자를 번갈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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